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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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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왕연王衍에 대한
其罪王衍甚確하고 而其論東晉以來 迄于唐 似猶影響이니라
왕연王衍을 죄준 것이 매우 정확하고, 동진東晉 이래 나라에 이르기까지 논한 것이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고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는 것과 같다.
聖人之所以御物者三이니 道一也 禮二也 刑三也니라
성인聖人이 만물을 통어統御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道德)가 첫 번째이고, (禮制)가 두 번째이고, (刑法‧법도法度)이 세 번째이다.
易曰 形而上者 謂之道 形而下者 謂之器라하니 禮與刑 皆器也니라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형체 이상의 것을 (진리‧정신‧추상)라 이르고, 형체 이하의 것을 (사물‧물질‧물체)라 이른다.”고 하였으니, 은 다 이다.
孔子生於周末하여 內與門弟子言하고 外與諸侯大夫言하되 言及於道者 蓋寡也니라
공자孔子께서는 나라 말기에 태어나서 안으로는 문인 제자들과 말을 나누고, 밖으로는 제후諸侯대부大夫들과 말을 나누었으되, 에 대한 언급은 대개 적었던 것이다.
非不能言이라 謂道之不可以輕授人也니라
말씀을 할 줄 모른 것이 아니라 는 가볍게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蓋嘗言之矣니라하시니라
공자께서 일찍이 에 대해 언급하신 것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경우였으니, “(曾子)아, 우리 는 하나의 이치로 관철되어 있느니라.” 하셨다.
夫道하여니라
무릇 무형無形본체本體로 삼아 각종 실재적인 사물 중에 분산되어 있는 것이다.
에 있으나 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에 있으나 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에 있으나 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에 있으나 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惟其非形器也 目不可以視而見이요 耳不可以聽而知니라
그것(道)은 형기形器가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 보아도 볼 수가 없고, 귀로 들어도 알 수가 없다.
惟君子得之於心하여 以之御物하고 應變無方하여 而不失其政이니 則所謂니라
오직 군자君子만이 를 마음에 터득하여 로써 만물을 통어統御하고 어디에서든 변화에 순응하여 그 올바름을 잃지 않으니, 이른바 ‘시중時中’이란 것이다.
하여 與物相遇 輒捐理而徇欲이니 則所謂無忌憚也니라
소인小人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이름만을 도용하여 사물과 서로 만남에 문득 이치를 버리고 욕심을 따르니, 이른바 ‘기탄忌憚이 없다.’란 것이다.
孔子不以道語人이요 其所以語人者 必以禮니라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는 로써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지 않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반드시 로써 하셨다.
禮者 器也 而孔子必以敎人하되 니라
라는 것은 형기形器이니, 공자孔子께서는 반드시 로써 사람들을 가르치되 인색하시지 않았다.
蓋曰 君子由禮以達其道하고 而小人由禮以達其器니라
대개 “군자君子는 위로 통달하고 소인小人은 아래로 통달한다.”고 한 것은, 군자君子로 말미암아 그 를 통달하고 소인小人로 말미암아 그 를 통달한다는 것이다.
由禮以達道 則自得而不眩하고 由禮以達器 則有守而不狂이니라
로 말미암아 를 통달하면 자득自得한 바가 있어서 미혹되지 않고, 로 말미암아 를 통달하면 지키는 바가 있어서 함부로 진취하지 않는다.
此孔子之所以寡言道而言禮也니라
이것이 바로 공자孔子께서 에 대한 말씀을 적게 하고 그 대신 에 대한 말씀을 하시게 된 이유이다.
아랫사람과 같은 경우는 그들에게 로써 보이고 바르게 되지 않는 연후에 형벌로써 다스릴 것이다.
具而聖人之所以御物者 盡矣니라
세 가지가 갖추어지면 성인聖人이 만물을 통어하는 것이 완벽할 것이다.
三代已遠하니 漢之儒者 雖不聞道 而猶能守禮
삼대三代(夏‧)가 이미 멀어졌는데, 나라 유자儒者들은 비록 는 듣지 못하였으나 오히려 를 잘 지켰다.
在朝廷則危言하고 在鄕黨則危行하여 皆不失其正이니라
그러므로 조정朝廷에 있어서는 말을 곧게 하고 향당鄕黨에 있어서는 행동을 곧게 하여 모두 바른 도리를 잃지 않았다.
至魏武始好法術하니 而天下貴하고 魏文始慕하니 而天下賤守節이니라
무제武帝(曹操) 때에 와서 비로소 법술法術을 좋아하니 천하天下 사람들이 형명刑名을 귀하게 여겼고, 문제文帝(曹丕)가 비로소 통달通達을 사모하니 온 천하가 모두 절조를 지키는 행위를 경시하였다.
相乘不已하여 盈於朝野니라
이와 같은 풍조가 끊임없이 이어져서 허무방탕虛無放蕩이론理論이 조정과 민간에 가득하였다.
何晏鄧颺 導其源하고 漲其流하고 卒以亂天下니라
하안何晏등양鄧颺은 그 근원을 창도倡導하였고, 완적阮籍 부자父子는 그 흐름을 조장하였으며, 왕연王衍 형제兄弟는 마침내 천하天下를 어지럽혔다.
要其終皆以濟邪佞하고 成淫慾하여 惡禮法之繩其姦也
결과적으로는 모두 사녕邪佞을 증가시키고 음욕淫慾을 이루어 예법禮法이 그 간사함을 구속하는 것을 미워하였다.
蔑棄禮法하고 而以道自命하니 天下小人便之니라
그러므로 예법禮法은 폐기하고 로써 스스로 할 만한 일이라 여기니, 천하天下소인小人들이 이를 편리하게 여겼다.
君臣奢縱於上하고 男女淫泆於下하니 風俗大壞하여 至於中原爲墟而不悟니라
군신君臣은 위에서 사치를 부리며 방종하고, 남녀男女는 아래에서 음탕하며 방자하게 굴었으니, 풍속風俗이 크게 무너져 중원中原 지대가 폐허가 됨에 이르렀는데도 깨닫지 못하였다.
王導謝安 江東之賢臣也로되 하고 하니 則廢禮慕道之俗 然矣니라
왕도王導사안謝安강동江東현신賢臣이었으나 왕도王導성제成帝에게 무례하게 굴며 두려워할 줄을 몰랐고, 사안謝安기상期喪에 음악을 연주하며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니, 를 폐기하고 를 흠모하는 풍속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以來 天下學者 分而爲南北이니 이니라
동진東晉 이래로 천하天下학자學者들이 남방南方북방北方으로 나뉘었는데, 남방의 학은 간략해서 그 정화精華를 얻었고, 북방의 학은 거칠어서 그 지엽枝葉을 궁구하였다.
至唐始以義疏通南北之異하니 雖未聞聖人之大道 而形器之說備矣니라
나라에 와서 비로소 대의大義로써 남방과 북방의 학문 차이를 소통시켰으니, 비록 성인聖人대도大道는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형기形器은 갖추어졌다.
郊廟朝廷之儀 下至冠婚喪祭之法 何所不取於리오
위로 교묘郊廟조정朝廷예의禮儀에서부터 아래로 관혼상제冠婚喪祭의식儀式에 이르기까지 어찌 여기에서 취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나 以其不言道也 學者小之니라
그러나 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자學者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於是 捨之而求道 冥冥而不可得也 則至於禮樂度數之間 字書形聲之際하여는 無不指以爲道之極이니라
그래서 그것을 놓아두고 를 구하나 멍해서 얻을 수가 없으니, 예악禮樂도수度數자서字書형성形聲 같은 것에 이르러서 그것을 가리켜 의 정점으로 삼지 않은 이가 없다.
이나 反而察其所以施於世者 內則讒諛以求進이요 外則聚斂以求售니라
그러나 돌이켜 그들의 처세 방법을 살펴보면, 안으로는 아첨으로써 진취를 구하고 밖으로는 재물을 마구 거둬 내다 팔기를 힘쓴다.
廢端良하고 聚苟合하여 杜忠言之門하고 闢邪說之路하되 而皆以詩書文飾其僞하니 要之컨대 與王衍無異니라
단아하고 현량한 사람을 폐출하고 구차하게 영합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충언忠言이 들어오는 문을 틀어막고, 사설邪說이 행하는 길을 열어놓고도 모두 시서詩書로써 그 거짓을 문식하니, 결과적으로는 왕연王衍과 다를 것이 없다.
嗚呼
아!
世無孔孟하여 使楊墨塞路而莫之闢하니 吾則罪人爾矣로다
세상에 공자와 맹자가 없어서 양주楊朱묵적墨翟이 길을 막게 놓아두고 물리치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는 죄인일 따름이로다.
唐荊川曰 有識見하고 論處亦透라하니라
당형천唐荊川이 말하기를 “식견識見이 있고 한 곳 역시 투철하다.”고 하였다.
역주
역주1 王衍論 : 王衍(256~311)은 晉나라 때 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王戎의 從弟로, 벼슬은 尙書令‧太尉에 이르렀다. 王衍은 큰 재주가 있어 항상 子貢에게 비유되는 등 이름이 한 시대를 울렸다. 또한 玄談을 잘하여 老莊을 담론하는 것으로 일삼았다.
그는 宰輔의 지위에 있으면서 諸王들의 사이를 주선하되 오직 편안하고 온전하게 유지할 계책을 찾았을 뿐이다. 東海王 司馬越이 죽으니 군중이 王衍을 추대하여 元首로 삼았는데, 全軍이 石勒에게 격파되고, 王衍은 石勒에게 피살되었다.
《欒城集》에는 이 글의 標題를 〈王衍〉이라고 하였다.
역주2 參乎 吾道一以貫之 : 《論語》 〈里仁〉에 보인다.
역주3 以無爲體 : 無形의 사상체계로 본체를 삼는다는 말이다.
역주4 入於群有 : 無形의 사상체계가 각종 실재적인 사물 중에 분산되어 있다는 말이다.
역주5 在仁而非仁……在智而非智 : 대의는 孔子 사상의 핵심인 仁‧義‧禮‧智 중에 道가 분포되어 있으나, 다만 네 방면이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역주6 時中 : 儒家에서 ‘立身‧行事가 時宜에 부합하여 過不及이 없는 것’을 말한다.
역주7 惟君子得之於心……則所謂無忌憚也 : 이 말은 《中庸》의 “君子가 中庸을 하는 것은 君子이면서 時宜에 맞게 하기 때문이고, 小人이 中庸에 배치되게 하는 것은 小人이면서 忌憚이 없기 때문이다.[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反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역주8 竊其名 : 변화에 순응하는 표면 현상만을 흉내낸다는 말이다.
역주9 非吝之也 : 保守하고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음을 가리킨다.
역주10 君子上達 小人下達 : 이 말은 《論語》 〈憲問〉에 보인다.
역주11 若其下者……待之以刑辟 : 《孔子家語》 〈始誅〉에 “일단 道德을 베풀어 먼저 복종시키고, 그래도 되지 않거든 어진 이를 숭상하여 권면하고, 그래도 또 되지 않거든 곧 폐지시키고, 그래도 또 되지 않은 연후에 위엄으로 忌憚하게 한다. 이와 같이 3년을 하면 백성들이 바르게 될 것이다. 그중에 敎化를 따르지 않는 간사한 백성이 있은 연후에 형벌을 가지고 다스리면 백성들이 모두 죄를 알 것이다.[旣陳道德以先服之 而猶不可 尙賢以勸之 又不可 卽廢之 又不可而後 以威憚之 若是三年而百姓正矣 其有邪民不從化者然後 待之以刑 則民咸知罪矣]”란 공자의 말씀도 보인다.
역주12 三者 : 道‧禮‧刑을 가리킨다.
역주13 刑名 : 刑名之學의 약칭이다. 전국시대의 申不害가 이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이 학파는 ‘循名責實’과 ‘愼賞明罰’을 주장하였는데, 뒤에 그것을 ‘刑名之學’이라고 칭하였다. 韓非子도 刑名을 숭상하였다.
역주14 通達 : 여기서는 예법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을 가리킨다.
역주15 虛無放蕩之論 : 여기서는 道體가 虛無하고 마음대로 행동하여 자연을 따르는 道家의 理論을 가리킨다.
역주16 阮籍父子 : 阮籍과 그 從子 阮咸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예법을 준수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였다.
역주17 王衍兄弟 : 王衍과 그 아우 王澄을 가리킨다.
역주18 王導無禮於成帝而不知懼 : 《晉書》 〈王導列傳〉에 “처음에 帝(成帝)가 어려서 王導를 보면 매번 절을 하였다. 또 王導에게 직접 주는 글에서는 ‘惶恐言’이란 문구를 썼고, 中書省에서 지은 詔書에서는 ‘敬問’이란 문구를 썼으니, 이에 定制를 삼았다.”고 하였다. 成帝가 王導를 대할 때에 이처럼 낮은 이가 높은 이를 대하는 禮를 썼으나, 王導는 그것을 못하게 하지 않고 보통으로 成帝를 대하여 두려워할 줄 몰랐다.
역주19 謝安作樂於期喪而不受敎 : 《晉書》 〈謝安列傳〉에 “〈謝安이〉 台輔에 올랐을 때 期喪(1년 服喪)에서 음악을 폐하지 않자, 王坦之가 서신으로 깨우쳤으나 따르지 않으니, 지식층이 이를 본받아 결국 풍속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역주20 東晉 : 316년 前趙에 의해 멸망했다가 그 이듬해 再興된 이후의 晉나라를 이른다. 瑯琊王 司馬睿가 세워서 建康(지금의 南京)에서 즉위하여 元帝가 되고 江南 땅을 보유하였다.
역주21 南方簡約……窮其枝葉 : 이 말은 《北史》 〈儒林傳序〉의 “남쪽 사람은 간략하여 그 英華를 얻고 北學은 荒雜하여 그 枝葉을 궁구하였다.[南人約簡 得其英華 北學深蕪 窮其枝葉]”에서 기인한 것인데, 곧 河南과 河北의 儒學者가 經書의 章句를 함에 있어서 河南의 유학자는 간략하게 해서 그 精華를 얻었고, 河北의 유학자는 거칠어서 그 지엽을 궁구하였다는 뜻이다.
역주22 : 저본에는 ‘至’로 되어 있는데, 《欒城集》에 의하여 ‘自’로 바꾸었다.
역주23 : 여기서는 ‘形器之說’을 가리킨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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