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蘇轍(1)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05. 에 대한 1
此篇 過秦失所以取天下니라
에서는 천하天下를 취하는 방법을 잃었던 점을 나무랐다.
秦人 居諸侯之地하여 而有之志러니 侵辱六國하고 斬伐天下하여 不數十年之間니라
나라 사람은 제후諸侯지위地位에 처하여 천자天子의 자리를 넘볼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육국六國침욕侵辱하고 천하天下참벌斬伐(征伐)하여 채 수십 년이 못 되어 해내海內에서 천자天子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소원을 이루었다.
至其後世하여 而遂亡하니라
그러나 그 후세後世에 이르러서 두 번 전하고는 드디어 망하였다.
하여 斬刈하고 蹶秦誅楚하여 以有天下하고 而其傳子孫하여 數十世而不絶하니라
유계劉季필부匹夫의 신분으로 군사를 일으켜서 호걸豪傑들을 참살斬殺하고 나라와 나라를 패멸敗滅하여 천하天下를 차지하고 그 자리를 자손子孫에게 전하여 수십 가 가도록 끊어지지 않았다.
蓋秦漢之事 其所以起者 不同이나 而其所以取之者 無以相遠也니라
대개 의 일은, 그 군사를 일으킨 방법은 같지 않으나 천하天下를 얻은 방식은 서로 가까웠다.
이나 劉項 奮臂於閭閻之中하여 率天下蜂起之兵하고 西嚮以攻秦이니라
그러나 유방劉邦항적項籍여염閭閻(民間)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대사大事를 일으켜 천하天下에서 봉기蜂起한 군사들을 거느리고 서쪽을 향하여 을 공격하였다.
無一成之聚 一夫之衆하고 驅罷敝之人하여 以求所非望하니 得之則生이요 失之則死 以匹夫而圖天下 其勢不得不疾戰以니라
조그마한 촌락村落이나 한 명의 인민도 확보한 지반地盤이 없는 상태에서 적벌謫罰로 괴롭게 변방에서 수자리하는 사람들을 몰아서 분수 밖의 소원을 구하였으니, 천하天下를 얻으면 생존하고 전투에서 패전하면 사망하기 마련이므로 필부匹夫로서 천하天下를 도모하는 것은 그 형세에 있어서 부득불 빨리 서둘러 싸워서 생존하기를 구해야만 했다.
是以 冒萬死求一生而不顧니라
그렇기 때문에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한 번 생존하기를 구하여 다른 것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今秦 擁千里之地하고이니하여 畜威養兵하고 拊循士卒이라도 而諸侯誰敢謀秦이리오
당시 은 천리나 되는 땅을 점유하고, 여러 세대의 공업功業을 빙자하였으니, 비록 함곡관函谷關만 지키며 군사의 위용과 사기를 기르고 사졸士卒(軍民)들을 편하게 어루만진다 하더라도 제후諸侯 중에 그 누가 감히 을 도모하겠는가?
라도 天下夫誰敢抗이리오마는
천하天下에 전란이 발생하는 것을 관망하고 나서 서서히 군사를 출동하여 제후諸侯들이 피곤에 지친 틈을 타 공격한다 하더라도 천하에 누가 감히 저항하겠는가?
而惠文武昭之君 하니 此宜其能以取天下 而亦能以亡之也니라
그런데 혜문왕惠文王도무왕悼武王소왕昭王 같은 군주君主제왕帝王의 자격으로 필부匹夫천하天下를 도모하기 위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빨리 서둘러 전쟁을 하는 방법을 취하였으니, 이 방법은 천하天下를 취득할 수도 있지만 또한 망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夫劉項之勢 天下皆非吾有 起於之中하여 因亂而爭之니라
유방劉邦항적項籍의 처지로 말하면, 천하天下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니니, 민간에서 일어나서 을 이용하여 천하를 다투었다.
雖驅天下之人하여 이나 而民猶有待於하여 以息肩於此니라
그러므로 비록 천하天下의 사람들을 몰아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평정平定되면 편해지리라 기대하였다.
以疾戰定天下하니 天下旣安 而下無背叛之志니라
그러므로 빨리 싸워서 천하天下를 평정하였으며 천하天下가 이미 안정되자 아래에 배반할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若夫六國之際 諸侯各有어늘 而秦乃欲以力征하여 强服四海하고 不愛先王之하며 以爲子孫之謀而竭其力하여 以爭隣國之利하니 六國雖滅이나 而秦民之心니라
육국六國 시대와 같은 경우는 제후諸侯들이 각각 봉지封地를 가지고 있었거늘, 이 힘으로 정벌하여 강제로 사해四海를 복종시키고 선왕先王유민遺民을 아끼지 않았으며, 자손子孫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고 힘을 다하여 이웃 나라의 이익을 쟁탈하였으니, 육국六國이 비록 멸망했으나 민심民心은 이미 흩어졌다.
秦之所以謀天下者 之勢 而非所以承祖宗之業하여 以求其不失者也니라
그러므로 천하天下를 도모한 것은 필부匹夫굴기崛起한 형세이지, 조종祖宗공업功業을 계승하여 영원히 잃지 않는 방법을 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예전에 듣건대, 나라가 일어난 지 수백 년 만에 문왕文王무왕武王에 이르렀고, 문왕文王무왕武王 때에 천하天下의 3분의 2를 차지하였다.
이나 商之諸侯 猶有所未服이니 紂之衆 未可以不擊而自解也니라
그러나 나라의 제후諸侯 중에는 오히려 복종하지 않는 자가 있었으니, 주왕紂王의 민중을 공격하지 않고서 스스로 패멸되게 할 수가 없었다.
以文武之賢으로 退而修德하여 以待其自潰니라
그러므로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어짊으로써 물러와서 을 닦아 그들이 스스로 궤멸潰滅되기를 기다린 것이다.
誠以爲后稷公劉太王王季 勤勞不懈而後 能至於此니라
진실로 후직后稷공류公劉태왕太王왕계王季가 태만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뒤에야 이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경솔하게 군사를 일으켜 나라를 토벌하지 않고, 꼭 군사를 부려야 할 때에 부득이 군사를 부린 것이다.
嗟夫
아!
秦人舉累世之資하여 一用而不復惜하고 其先王之澤 已竭於取天下하되 而尚欲求以爲國하니 亦已惑矣
나라 사람은 여러 세대에 걸쳐 쌓아온 자재資材를 아끼지 않고 한 번에 써버렸고, 그 선왕先王유택遺澤천하天下를 취하는 데에 이미 고갈되었는데도 오히려 구하여 나라를 만들려고 하였으니, 또한 이미 미혹된 것이다.
역주
역주1 秦論 : 이 〈秦論〉도 소싯적 작품이다. 秦은 秦 襄公이 봉해진 나라 이름이다.
역주2 萬乘 : 周代의 制度에서 天子의 영토는 사방 천리로서 兵車 萬乘(만 대)을 내놓을 수 있었기 때문에 萬乘은 天子나 天子의 地位를 가리킨다.
역주3 得志 : 소원을 성취함을 이른다.
역주4 不數十年之間 而得志於海內 : 秦나라는 孝公 때까지 雍州에 치우쳐 있어 夷狄 대접을 받아오다가 孝公 7년(서기 전 335)에 바야흐로 中原 諸侯와 交戰하여 周 赧王 58년(서기 전 257)경에 천자의 자리를 차지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5 再傳 : 2代를 전함. 곧 嬴政이 비로소 始皇이라 칭하고서 첫 번째로 胡亥에게 전해지고 두 번째로 扶蘇의 아들 子嬰에게 전해졌는데, 子嬰이 즉위하던 해에 劉邦에게 항복하였다.
역주6 劉季起於匹夫 : 劉季는 곧 劉邦을 가리킨다. 그의 자가 季였기 때문이다. 匹夫는 범연하게 平民을 가리킨다. 劉邦이 군사를 일으키기 전에는 泗上亭長이었다.
역주7 豪傑 : 여기서는 재능이 출중한 項羽와 韓信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
역주8 謫戍 : 謫罰로 변방에서 수자리하는 일이다.
역주9 趨利 : 이익을 추구하는 일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생존을 구하는 일을 가리킨다.
역주10 乘累世之業 : 여러 세대의 功業을 빙자하는 일. 秦나라는 襄公‧文公‧穆公‧惠王‧昭王이 모두 功業을 남긴 君主였다.
역주11 閉關而守之 : 函谷關 이내만을 지키며 諸侯와 交戰하지 않음을 가리킨다.
역주12 觀天下之釁而後 出兵以乘其弊 : 天下에 전란이 발생하는 것을 관망하고 나서 서서히 군사를 출동하여 諸侯들이 피곤에 지친 틈을 타 공격한다는 말이다.
역주13 乃以萬乘之資……疾戰而不顧其後 : 결국 帝王의 자격으로 匹夫가 天下를 도모하기 위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빨리 서둘러 싸우는 방법을 취택하였다는 말이다.
역주14 草莽 : 草野로, 곧 民間을 가리킨다.
역주15 以爭一旦之命 : 앞 文段의 ‘冒萬死求一生’과 같은 뜻으로 쓴 것이다.
역주16 戡定 : 平定과 같은 말이다.
역주17 分地 : 諸侯의 封地를 가리킨다.
역주18 遺黎 : 후세의 백성을 가리킨다.
역주19 : 歸附하지 않고 흩어짐을 가리킨다.
역주20 匹夫特起 : 平民이 벌떡 일어섬을 가리킨다.
역주21 周人之興……至於文武 : 周나라는 后稷으로부터 시작하여 14대를 지나 文王‧武王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22 文武之際 三分天下而有二 : 《史記》 〈齊太公世家〉에 “天下의 3분의 2가 周나라로 돌아온 것은 太公의 모사가 많이 작용하였다.”라고 보이고, 《論語》 〈泰伯〉에 “周나라가 天下의 3분의 2를 가졌으면서도 殷나라에 신하 노릇을 하였으니, 周나라의 德이야말로 지극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보인다.
역주23 其發之不可輕 而用之有時也 : 경솔하게 군사를 일으켜 商나라를 토벌하지 않고, 꼭 군사를 부려야 할 때에 부득이 군사를 부렸다는 말이다.
역주24 昔者에 嘗聞之………니라 : 康熙의 《御選古文淵鑑》에서 “嬴秦의 國勢의 終始에 대해 다루었는데, 立論의 高卓이 예상 밖에서 나왔다.[撥度嬴秦國勢終始 竪議高卓 逈出意表]”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