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
은 今月二十二日
에 延和殿
에서 進呈箚子
하여 論君子小人
은 不可竝處朝廷
하고 이온데 竊觀聖意
컨대 類不以臣言爲非者
니이다
退伏思念하니 若使邪正竝進하여 皆得與聞國事면 此治亂之幾요 而朝廷所以安危者也니이다
臣誤蒙聖恩
하여 이니 臣而不言
이면 誰當救其失者
리잇가
謹復稽之古今
하고 考之聖賢之
하니 莫不謂親近君子
하고 斥遠小人
하면 則人主尊榮
하고 國家安樂
하며 疏外君子
하고 進任小人
하면 則人主憂辱
하고 國家危殆
니이다
故로 一陽在下면 其卦爲復이요 二陽在下면 其卦爲臨이니이다
陽雖未盛이나 而居中得地니 聖人知其有可進之道니이다
一陰在下면 其卦爲姤요 二陰在下면 其卦爲遯이니이다
若夫居天地之正하여 得陰陽之和者는 惟泰而已니이다
君子旣得其位니 可以有爲요 小人奠居于外니 安而無怨이니이다
方泰之時에 若君子能保其位하고 外安小人하여 使無失其所면 天下之安이 未有艾也니이다
惟恐君子得位하고 因勢陵暴小人하여 使之在外而不安이면 則勢將必至反覆이니이다
故로 泰之九三則曰 無平不陂하고 無往不復이라하나이다
所以誨人者至矣니이다 獨未聞以小人在外로 憂其不悅하고 而引之於內하여 以自遺患者也니이다
故로 臣前所上箚子에 亦以謂小人은 雖決不可任以腹心이나
至於牧守四方과 奔走庶務하여는 各隨所長이요 無所偏廢며
寵祿恩賜를 彼此如一하여 無迹可指라하니 如此而已니이다
若遂引而寘之於內면 是猶畏盜賊之欲得財하되 而導之於寢室이요 知虎豹之欲食肉하되 而開之以坰牧이니 天下無此理也니이다
何者
오 小人
은 貪利忍恥
하니 擊之難去
요 君子
는 潔身重義
하니 知道之不行
이면 必先
니이다
昔
는 以聰明聖智之資
로 疾頹靡之俗
하고 將以
하여 니이다
而一時臣佐가 不能將順聖德하고 造作諸法하니 率皆民所不悅이니이다
及
臨御
하여는 因民所願
하여 取而更之
하시니 上下欣慰
니이다
當此之際
에 用事之臣
이 皆布列於朝
하여 自知上逆天意
하고 下失民心
이라 彷徨踧踖
하여 若無所措
하니 朝廷雖不斥逐
이나 其勢亦自不能復留矣
니이다
尙賴二聖慈仁하여 不加譴責하고 而宥之於外하니 蓋已厚矣니이다
今者
엔 政令已孚
하여 事勢大定
이어늘 而議者惑於浮說
하여 乃欲招而納之
하고 與之共事
하여 欲以此
이니이다
人臣被禍는 蓋不足言이요 而臣所惜者는 祖宗朝廷也니이다
라 建立黨與
하여 布滿中外
라가 一旦失勢
하니 晞覬者多
니이다
是以로 創造語言하여 動搖貴近하되 脅之以禍하고 誘之以利를 何所不至리잇가
聞者若又不加審察하고 遽以爲然이면 豈不過甚矣哉리잇가
諸葛亮治蜀
에 廢廖立李嚴爲民
하여 徙之邊遠
하고 久而不召
나 亮死
에 이라하니이다
管葛之所以能戮其貴臣이나 而使之無怨者는 非有他也라 賞罰必公하고 擧措必當하니 國人皆知其所與之非私하고 而所奪之非怨이니이다
今臣竊觀朝廷用捨施設之間하니 其不合人心者 尙不爲少하니
今乃直欲招而納之하여 以平其隙하니 臣未見其可也니이다
陛下誠以
爲憂
하시니 惟當久任才性忠良
하고 識慮明審之士
하되 但得四五人常在要地
하시면 雖未及皐陶伊尹
이나 而不仁之人
이 知自遠矣
니이다
故
로 臣願陛下斷自聖心
하여 不爲流言所惑
하고 毋使小人一進
하여 後有
면 則天下幸甚
이요 天下幸甚
이리이다
臣旣待罪執法이니 若見用人之失이면 理無不言이요 言之不從이면 理不徒止니이다
如此면 則異同之迹이 益復著明이리니 不若陛下早發英斷하사 使彼此泯然無迹可見之爲善也니이다
恐未必如子由所云이니라 內卽以之任於朝하고 外卽以之布於州郡也니라
子由與章蔡相讐者가 猶爲此言하니 然則彼之私相黨者는 安得不橫爲煽亂動搖之術乎아
02. 사邪와 정正을 분변할 것을 두 번째 논한 차자箚子
두 번째 올린 차자箚子는 의론議論이 상실詳悉함을 다시 깨닫겠다.
신臣은 이달 22일 연화전延和殿에서 차자箚子를 올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은 함께 조정朝廷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논하였고, 따라서 다시 구어口語로 상세하게 진술하여 천청天聽을 더럽혔사온데, 가만히 성상의 의중을 살펴보옵건대 신臣이 한 말을 그르다고 여기시지 않은 것 같사옵니다.
그러나 성상의 지엄하신 가까운 거리라서 말이 위축되어 드릴 말씀을 다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물러와서 신중하게 생각해보니, 만일 간사한 사람과 올바른 사람이 함께 진출하여 모두 국사國事에 참여하여 들을 수 있게 한다면, 이것은 치세治世로 갈 것인가, 난세亂世로 갈 것인가 하는 갈림길이 될 것이고, 조정朝廷이 안정할 것인가, 위태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신臣은 성은聖恩을 입어 방헌邦憲을 주관하였으니, 신臣이 이런 일을 말씀드리지 않으면 누가 그 잘못된 점을 말씀드리겠습니까?
조심스럽게 다시 고금古今의 일들을 살피고 성현聖賢의 격언格言을 상고해보니, 군자君子를 친근親近히 하고 소인小人을 척원斥遠히 하면 인주人主가 존영尊榮하고 국가國家가 안락安樂하게 되며, 군자君子를 소외하고 소인小人을 신임하면 인주人主가 우욕憂辱하고 국가國家가 위태危殆하게 된다고 이르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이것은 이치의 필연적인 일이고, 한 사람이 사적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논함에 있어서는 “정鄭나라의 음탕한 음악을 추방하고 말재주 있는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라고 하셨으며,
자하子夏가 순舜임금의 덕德을 논할 적에는 “고요皐陶를 등용하니 어질지 않은 사람들이 멀리 사라졌다.”라고 하고, 탕湯임금의 덕德을 논할 적에는 “이윤伊尹을 등용하니 어질지 않은 사람들이 멀리 사라졌다.”라고 하였으며,
제갈량諸葛亮이 그 임금을 경계함에 있어서는 “현신賢臣을 가까이하고 소인小人을 멀리함은 바로 전한前漢이 흥륭興隆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고, 소인小人을 가까이하고 현신賢臣을 멀리함은 바로 후한後漢이 경퇴傾頹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전책典冊에 실린 이와 같은 따위를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주역周易》에 이르러서 논한 바가 더욱 상밀詳密하니, 모두 군자君子가 안에 있고 소인小人이 밖에 있는 것으로 천지天地의 상리常理를 삼고, 소인小人이 안에 있고 군자君子가 밖에 있는 것으로 음양陰陽의 역절逆節을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일양一陽이 아래에 있으면 그 괘卦는 복괘復卦가 되고 이양二陽이 아래에 있으면 그 괘卦는 임괘臨卦가 됩니다.
양陽이 비록 성왕盛旺하지 못하나 중위中位에 거居하여 땅을 얻었으니, 성인聖人은 그것에 진취할 만한 길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일음一陰이 아래에 있으면 그 괘卦는 구괘姤卦가 되고 이음二陰이 아래에 있으면 그 괘卦는 둔괘遯卦가 됩니다.
음陰이 비록 장성壯盛하지 못하나 성인聖人은 그것에 두려워할 만한 조짐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천지天地의 정위正位에 거居하여 음양陰陽의 화和함을 얻은 것으로 말하면 오직 태괘泰卦뿐입니다.
태괘泰卦의 상象은 삼양三陽이 안에 있고 삼음三陰이 밖에 있습니다.
군자君子는 이미 그 위位를 얻었으니 작위作爲할 바가 있을 것이고, 소인小人은 밖에 전거奠居하였으니 편안하여 원망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그것을 명명하여 ‘태泰’라고 하였습니다.
태泰란 말은 안安의 뜻이니, 오직 이것만이 오래 편할 수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바야흐로 태泰할 때에 만일 군자君子가 그 위位를 잘 보존하고 밖으로 소인小人을 편안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안정된 처소를 잃지 않게 한다면 천하天下의 안정이 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염려되는 것은 군자君子가 지위를 얻고 그 세력을 이용해서 소인小人을 능폭陵暴(輕侮)하여 그들로 하여금 밖에 있으면서 편안함을 누릴 수 없게 하는 점이니,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 형세는 장차 반드시 정세가 뒤집히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괘泰卦의 구삼九三 효사爻辭에 “평평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것은 없으며,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하였나이다.
가만히 살펴보건대, 성인聖人의 경계가 의미심장하고 절실하며 상세하고 극진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가르치는 뜻이 지극하였사온데, 소인小人이 밖에 있다 하여 그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그들을 안으로 끌어들여서 스스로 화환禍患을 끼쳤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소신은 전에 올린 차자箚子에서 “소인에게는 결단코 복심腹心 역할을 하는 중요한 관직은 맡길 수 없지만,
사방 주군州郡의 장관長官이 되는 것과 여러 가지 일에 분주하게 봉사하는 관리 정도는 각각 그들의 장점에 따르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폐기하는 바가 없어야 할 것이며,
은총恩寵‧작록爵祿‧상사賞賜 등을 피차 동일하게 하여 지적할 만한 흔적이 없게 해야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할 뿐입니다.
만일 소인을 끌어들여서 안에 둔다면 이것은 마치 도적이 재물을 빼앗아 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도적을 침실로 인도하고, 호표虎豹가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줄을 알면서도 목장을 열어놓는 것과 같으니, 천하에 이와 같은 무모한 짓을 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또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은 형세가 마치 빙탄氷炭과 같으니, 함께 있으면 반드시 다투게 됩니다.
한번 다툼이 벌어지면 소인小人은 반드시 이기고 군자君子는 반드시 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소인小人은 이익을 탐하고 부끄러움을 견디므로 공격해도 제거하기 어렵고, 군자君子는 몸을 깨끗이 하고 의리를 중히 여기므로 도道가 행해지지 않을 줄을 알면 반드시 먼저 물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옛말에 “향내 나는 풀과 냄새 나는 풀이 같이 있으면 10년이 지나도 오히려 악취만 남는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옛날 선황제先皇帝께서 총명성지聰明聖智한 자질資質을 가지고 퇴미頹靡한 풍속을 밉게 보시고 장차 전국을 잘 다스려 삼대三代의 정법政法을 본받으려고 하셨습니다.
지금 그때 결심한 것을 보면 본디 한당漢唐시대의 임금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보좌하는 신하들이 성덕聖德을 잘 도와 이루어드리지 못하고 모든 법을 새로 제작하였으니, 온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두 분 성군聖君께서 임어臨御하여 백성들의 소원에 따라 그 신법新法을 고치시니, 온 국민이 기뻐하였습니다.
이때에 선조先朝에서 용사用事하던 신하들이 모두 조정朝廷에 포진해 있었는데, 그들은 스스로 위로는 천의天意를 거역하고 아래로는 민심民心을 잃은 줄 알았는지라, 방황彷徨하고 서성거리며 몸 둘 바가 없는 것처럼 하였으니, 조정朝廷에서 비록 그들을 척축斥逐하지 않더라도 그 형세는 또한 스스로 다시 머물러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두 분 성군聖君의 인자仁慈함을 힘입어 견책譴責이 가해지지 않고 외방外方으로 보내졌으니, 이미 후厚하게 배려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정책政策과 명령命令이 이미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받아 사세事勢가 크게 안정되었거늘, 의논하는 자들은 근거 없는 낭설에 현혹되어 그들을 불러들이려 하고, 그들과 함께 정사를 함으로써 붕당朋黨의 다툼을 조정하려 합니다.
신臣은 생각하옵건대, 그 사람들이 만일 돌아온다면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반드시 정직한 사람을 잔해殘害하고 점차로 예전의 신법新法 같은 일들을 회복함으로써 개인의 원한을 상쾌하게 풀 것입니다.
신하들이 화禍를 입는 것은 족히 말할 것이 못 되거니와, 신臣이 염려하는 것은 조종祖宗에서 건립하신 조정朝廷(王朝)입니다.
대개 희령熙寧 이후로 소인小人이 집권한 지 20년이라, 그들은 당여黨與를 건립建立하여 중앙과 지방에 그들먹하게 포진해 있다가 하루아침에 세력을 잃었으므로 요행을 바라는 자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유언비어를 조작하여 현귀顯貴한 근신近臣의 생각을 동요시키되 화환禍患으로 협박하고 이익으로 유인하는 등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신臣이 비록 그 말을 직접 듣지는 못하였지만 그것이 무슨 말들인가는 대략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듣는 사람이 만일 깊이 살펴보지도 않고 얼른 그 말이 옳다고 여긴다면 어찌 너무 지나친 짓이 아니겠습니까?
신臣은 듣건대 “관중管仲이 제齊나라를 다스릴 때에 백씨伯氏의 병읍騈邑 3백 리를 빼앗았는데 백씨는 죽을 때까지 거친 밥을 먹었으나 관중을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고 하고
“제갈량諸葛亮이 촉한蜀漢을 다스릴 때에 요립廖立과 이엄李嚴을 폐하여 서민庶民으로 만들어 먼 변방으로 이주시키고 오래도록 부르지 않았건만 제갈량諸葛亮이 죽을 때에 그 두 사람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제갈량諸葛亮을 사모했다.”고 합니다.
백씨伯氏‧요립廖立‧이엄李嚴 세 사람은 모두 제齊와 촉蜀의 귀신貴臣이었습니다.
관중管仲과 제갈량諸葛亮이 그 귀신貴臣을 처벌하였으나 그들로 하여금 원망이 없게 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벌賞罰이 반드시 공정하고 거조擧措가 반드시 타당하니, 백성들이 그 베풀어준 것은 사적인 생각에서 준 것이 아니고 빼앗은 것은 원망 대상을 빼앗은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서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구수仇讐라 하더라도 모두 성심誠心으로 귀부歸附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신臣이 가만히 조정朝廷에서 취사선택取捨選擇하고 안배시설安排施設하는 일들을 살펴보옵건대, 인심人心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적지 않습니다.
저들 소인은 이미 속에 좋지 못한 마음을 품고 있으니, 그들이 복종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을 불러들여 벌어진 틈을 미봉하려고 하니, 신臣은 그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시경詩經》에서 “더없이 강한 사람은 사방에서 교훈으로 삼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폐하陛下께서는 진실로 이동반복異同反覆하는 것을 걱정하시니, 마땅히 재성才性이 충량忠良하고 식려識慮가 명심明審한 인사에게 오래 관직을 맡기되, 다만 4, 5인을 얻어 항상 요지要地에 두시면 비록 고요皐陶나 이윤伊尹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질지 못한 사람들이 알아서 스스로 멀리 떠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臣은 원하옵건대 폐하陛下께서 성심聖心으로부터 결단을 내리시어 유언비어流言蜚語에 현혹되지 마시고 소인小人의 진출進出을 막아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신다면 천하天下가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신臣은 이미 법을 맡은 몸이니, 만일 사람을 등용하는 데서 잘못된 문제를 발견했으면 이치상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고, 이미 드린 말씀을 따라주시지 않으면 이치상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와 같다면 이동異同의 흔적이 더욱 나타날 것이니, 폐하陛下께서 일찍이 영단英斷을 내리시어 피차간에 이동異同의 흔적이 없게 하시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신臣은 은총恩寵을 받음이 심중深重하므로 문득 감히 일에 앞서 말씀을 드리오니, 그 죄罪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나는 가만히 생각하건대, 《주역周易》에서 “군자君子가 안에 있고 소인小人이 밖에 있다.”고 하였으니,
‘안[內]’이란 것은 나아가게 한다는 말이고, ‘밖[外]’이란 것은 물러나게 한다는 말이므로,
꼭 자유子由(蘇轍)가 말한 바와 같이 ‘안’은 곧 조정에 임관시킨 것이고, ‘밖’은 곧 주군州郡에 포진시키는 것은 아닌 듯하다.
송宋나라 때에는 위와 아래에 모두 조정調停에 대한 말이 있었다.
그래서 자유子由 역시 감히 이 조정調停이란 것을 덧붙여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유子由는 장돈章惇‧채확蔡確과 서로 원수지간인데도 오히려 이와 같은 말을 하였으니, 그렇다면 저들이 사적으로 서로 당여黨與를 한 것은 어찌 부당하게 선동하는 술책이 아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