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 가후賈詡에 대한
子瞻以魏重於取蜀하고 子由則以不取蜀으로 爲操之老於兵이니라
자첨子瞻(蘇軾)은 땅을 지키는 것을 땅을 취하는 것보다 중하게 여겼고, 자유子由(蘇轍)는 땅을 취하지 않은 것을 조조曹操가 군대에서 늙게 된 원인으로 여겼다.
曹公入荊州하여 降劉琮하고 欲順江東下하여 以取孫氏니라
조공曹公(曹操)이 형주荊州에 쳐들어가서 유종劉琮을 항복시키고 장강長江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서 손씨孫氏(孫權)를 취하려고 하였다.
賈詡言於公曰 公하고 今收江南하니 威名遠聞하고 兵勢盛矣니이다
그러자 가후賈詡조공曹公에게 말하기를 “께서 예전에는 원씨袁氏(袁紹)를 격파하고 지금은 강남江南을 거두어들였으니, 위명威名이 멀리 전해지고 병세兵勢가 크게 떨쳐졌습니다.
之饒하여 以饗吏士하고 撫安百姓이면 江東可以不勞衆而定也니이다하니 公不用其計하고 以兵入吳境이라가 遂敗於赤壁하니라
만일 기름진 옛 땅에서 생산되는 음식물을 관리와 군사들에게 배불리 먹이고 백성들을 어루만져 안정시키면 강동江東은 군사를 수고롭게 하지 않아도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조공曹公은 그 계략을 쓰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나라 지경에 들어갔다가 결국 적벽강赤壁江에서 패전당하였다.
무릇 가후賈詡조공曹公을 설득시킨 것은 바로 이좌거李左車회음후淮陰侯에게 나라를 격파한 기세를 타서 격문檄文을 전해 나라를 항복시키도록 설득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다.
方是時 孫氏之據江東 已三世矣니라
이때에 손씨孫氏강동江東에 웅거한 지 이미 3대였다.
國險而民附하고 賢才爲用하니 諸葛孔明以爲可與爲援이요 而不可圖라하거늘 而曹公以劉琮待之하여 欲一擧而下之하니 難哉로다
나라의 지형은 험준하고 백성들은 붙따르며 현재賢才들은 임용되고 있으니, 제갈공명諸葛孔明은 ‘더불어 지원할 수는 있어도 도모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건만, 조공曹公유종劉琮으로 〈손권孫權을〉 대하여 일거一擧에 항복시키려고 하였으니, 곤란한 일이었다.
使公誠用詡言하여 端坐荊州하여 使辯士持尺書結好於吳 吳知公無幷呑之心이니 雖未卽降이나 而其不以干戈相向者可必也니라
가사 조공曹公이 진정 가후賈詡의 말을 써서 형주荊州에 편안히 앉아 변사辯士에게 서신을 들려 보내서 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었다면 나라는 조공曹公병탄倂呑할 마음이 없음을 알 것이니, 비록 즉시 항복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상호간 무력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기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方是時 吳旣修好於公이라 其勢必不助劉 而玄德可蹙矣언만 惜乎 謀之不善하여 荊州旣不能守 而孫劉皆奮이니라
이때에 유현덕劉玄德(劉備)은 막 궁객窮客의 신세로 나라에 병력을 빌렸으니, 나라는 이미 조공曹公에게 우호관계를 맺었는지라 그 형세는 반드시 유현덕劉玄德을 돕지 않을 것이고, 유현덕劉玄德은 따라서 곤궁한 처지가 될 수 있었건만, 애석하게도 모책이 좋지 못하여 형주荊州는 이미 지켜지지 못하였고, 손권孫權유현덕劉玄德은 모두 분격하였도다.
孰謂曹公之智而不如淮陰侯哉
누가 조공曹公의 지혜가 회음후淮陰侯만 못하다고 하겠는가?
其後 公旣降張魯하고 下漢中하니 劉曄勸公乘勝取蜀曰 劉備 人傑也 有度而遲하고 得蜀日淺하니 蜀人未니이다
그 뒤에 조공曹公이 이미 장로張魯를 항복시키고 한중漢中을 함락시키자, 유엽劉曄조공曹公에게 승세를 타서 땅을 취하도록 권하며 말하기를 “유비劉備인걸人傑이라 도량은 있으나 굼뜨고 땅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땅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今擧漢中하니 蜀人震駭니이다 因其震而壓之 無不克也니이다
지금 한중漢中을 취득하자 땅 사람들이 〈그 풍문을 듣고〉 놀라고 있으니, 그 놀란 틈을 타서 압박한다면 이기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若稍緩之 諸葛亮善治國而爲相하고 勇冠三軍而爲將하니
만일 조금이라도 늦으면 제갈량諸葛亮치국治國을 잘하여 정승이 되고, 관우關羽장비張飛는 용맹이 삼군三軍에서 으뜸인 인물로 장수가 되며,
蜀人旣定 馮險守要 不可犯也니이다한대
땅 백성들이 이미 안정을 찾아 요새지에 의거해 지킨다면 범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으나,
公不從而反하니 天下皆惜曄計之不用이니라
조공曹公이 그 말을 따르지 않고 돌아오니, 천하 사람들은 모두 유엽劉曄의 계책이 쓰이지 않은 것을 애석하게 여겼다.
夫玄德之賢 過於仲謀어늘 賈詡欲以懷仲謀하고 而曄欲以虛聲下玄德하니 其愚智 蓋已遠矣니라
현덕玄德의 어짊이 중모仲謀(孫權의 )보다 뛰어났는데도, 가후賈詡문고文告로써 중모仲謀를 끌어안으려고 했고 유엽劉曄허성虛聲으로써 현덕玄德을 항복시키려고 하였으니, 그들의 는 대개 차이가 이미 심했다.
彼曹公不用曄計 豈非以詡言爲戒也哉
조공曹公유엽劉曄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은 어찌 가후賈詡의 말로 경계를 삼은 것이 아니겠는가?
春秋之際 楚子重伐鄭하니 晉欒武子救之 遇於繞角이나 楚師還하니라
춘추春秋 때에 나라 자중子重나라를 치자, 나라의 난무자欒武子(欒書)가 나라를 구원하러 감에 나라 군사와 나라의 요각繞角 땅에서 만났으나 나라 군사는 돌아가버렸다.
晉師遂侵蔡하니 楚人以申息之師救蔡하니라
나라 군사가 마침내 나라를 침략하니 나라 사람이 신현申縣식현息縣의 군사를 가지고 나라를 구원하였다.
晉群帥皆欲戰한대 智莊子范文子韓獻子謂武子曰 吾來救鄭이나 楚師不戰이라 吾遂至於此니이다
나라의 여러 장수들이 모두 싸우고자 하니, 지장자智莊子범문자范文子한헌자韓獻子무자武子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나라를 구하러 왔는데, 나라의 군사가 우리와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드디어 여기까지 이른 것입니다.
旣遷戮矣
이것은 죽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戮而不已하고 又怒楚師 戰必不克이요 雖克不令이니이다
죽이는 것을 멈추지 않고 또 나라를 노하게 한다면 싸워도 반드시 이길 수 없을 것이고, 비록 이긴다고 해도 좋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쳐부수지 못한다면 그 치욕은 너무 클 것이니, 돌아가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여 결국 군사들을 온전히 가지고 돌아왔다.
夫兵久於外 狃於一勝而輕與敵遇 我怠彼奮이면 敗常十九니라
무릇 군사가 밖에 오래 있으면 승리에 타성이 생겨 적을 가볍게 만나기 마련이니, 우리는 게으름을 피우고 저들은 분투를 한다면 열에 아홉은 패할 것이다.
古之習於兵者 蓋知之矣니라
옛날 병법을 익힌 자는 아마 이것을 알았을 것이다.
역주
역주1 賈詡論 : 賈詡는 三國時代 曹操의 謀臣으로 벼슬은 太尉에 이르고 魏壽鄕侯에 봉해졌다.
《欒城集》에 〈賈詡 上〉과 〈賈詡 下〉가 있는데, 本文은 바로 〈賈詡 上〉이다.
역주2 昔破袁氏 : 官渡의 싸움에서 袁紹를 격파한 일을 가리킨다.
역주3 曹公入荊州……遂敗於赤壁 : 《三國志》 〈魏志 賈詡傳〉에 의하면 “漢 獻帝 建安 13년(208)에 曹操가 荊州를 격파하니 劉表의 아들 劉琮이 曹操에게 항복하였다. 曹操가 승세를 타고 長江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려 하자 賈詡가 간하였으나 曹操는 따르지 않고 吳나라와 赤壁江에서 교전하였는데, 劉備와 孫權이 연합하여 曹操를 크게 깨뜨렸다.”고 한다.
역주4 舊楚 : 荊州 일대가 바로 춘추전국시대 楚나라의 옛 땅이기 때문에 舊楚라고 한 것이다.
역주5 李左車之所以說淮陰侯……傳檄以下燕者也 : 《史記》 〈淮陰侯列傳〉에 의하면 “淮陰侯 韓信이 趙나라와 싸워 이기고 나서 趙나라 謀士로 있다 항복해 온 사람 李左車에게 앞으로 해야 할 계책을 물으니, 李左車는 韓信에게 권하기를 ‘趙나라를 鎭撫하고 나서 辯士에게 書信을 들려 燕나라에 파견하면 燕나라가 감히 지시에 따라 항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韓信은 그 말을 따랐고, 燕나라도 그로 인하여 항복하였다.”고 한다.
역주6 劉玄德方以窮客 借兵於吳 : 《三國志》 〈蜀志 先主傳〉에 의하면 “劉備(劉玄德)는 長坂坡에서 曹操에게 크게 패한 뒤에 劉表의 맏아들 劉琦를 만나 그와 함께 夏口에 이르렀으며, 諸葛亮을 孫權에게 보내 우호관계를 맺으니, 孫權은 周瑜와 程普 등에게 水軍 수만 명을 딸려 보내 先主와 힘을 합하여 曹操와 赤壁江에서 싸워서 크게 깨뜨렸다.”고 한다.
역주7 : 四庫全書의 《唐宋八大家文鈔》, 《歷代名賢確論》, 《文編》, 《文章辨體彙選》에는 ‘固’로 되어 있다.
역주8 : 四庫全書의 《唐宋八大家文鈔》에는 ‘附’로 되어 있다.
역주9 關羽張飛 : 四庫全書의 《唐宋八大家文鈔》에는 ‘雲長益德’으로 되어 있다.
역주10 文告 : 여기서는 檄文이나 軍事文書를 가리킨다.
역주11 春秋之際……遂全師而歸 : 《春秋左氏傳》 成公 6년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