右臣近於六月二十八日
에 奏以西使入界
면 恐必有
和請地之議
리니
乞因此時擧蘭州及安疆米脂等五寨地棄而與之하여 安邊息民이 爲社稷之計언마는
見今西使已到로되 竊聞 執政大臣棄守之論이 尙未堅決이라하나이다
臣竊見 皇帝陛下登極以來
로 나 而疆埸之事
를 하니 度其狡心
컨대 蓋知朝廷厭兵
이라 是以
로 確然不請
하고 欲使此議發自朝廷
하여 得以爲重
이니이다
朝廷深覺其意하고 忍而不與하니 情得勢窮하여 始來請命이니이다
今若又不許하면 遣其來使徒手而歸리니 一失此機면 必爲後悔리이다
彼若點集兵馬하여 屯聚境上에 許之則畏兵而與니 不復爲恩이요 不許則邊釁一開하여 禍難無已리이다
先帝始議取靈武나 內臣李憲畏懦하여 不敢前去하고 遂以兵取蘭州니이다
先帝始議取橫山이나 帥臣沈括种諤之徒 不能遵奉聖略하고 遂以兵取五寨니이다
此二者는 皆由將吏不職하여 意欲邀功免罪요 而先帝之意本則不然이니이다
先帝仍爲指揮保安軍與宥州하여 議立疆界나 因循未定하고 而先帝奄棄萬國하시니 遂以至今이니이다
由此言之컨대 蘭州五寨를 取之則非先帝本心이요 棄之則出先帝遺意니이다
今議者不深究本末
하고 하여 苟避棄地之名
하며 不度民力
하고 不爲國計
하니 其意止欲私己自便
이요 非社稷之利也
니이다
臣又聞 議者或謂棄守皆不免用兵이니 棄則用兵必遲하고 守則用兵必速이니 遲速之間에 利害不遠이니라
臣聞 聖人應變之機는 正在遲速之際라하니 但使事變稍緩이면 則吾得算已多리이다
昔漢文景之世
에 吳王濞
하여 稱病不朝
하고 積財養士
하여 謀亂天下
니이다
文帝專務含養하여 置而不問하고 加賜几杖하여 恩禮日隆이니이다
議者若不究利害之淺深하고 較禍福之輕重이면 則文帝隱忍不決은 近於柔仁하고 景帝剛斷必行은 近於疆毅니이다
然而如文帝之計인댄 禍發旣遲니 可以徐爲備禦요 稍經歲月이면 變故自生이나 以漸制之면 勢無不可니 雖有十濞라도 亦何能爲리잇가
如景帝之計인댄 禍發旣速이니 未及旋踵에 已至交兵이리이다
鋒刃旣接
에 勝負難保
하여 社稷之命
이 決於一日
이리니 이나 何益於事
리잇가
今者에 欲棄之策은 與文帝同하고 而欲守之謀는 與景帝類니이다
欲棄者는 理直而禍緩하고 欲守者는 理曲而禍速이니이다
況今日之事
는 主上妙年
하고 母后聽斷
하며 將帥吏士
하니 兵交之日
에 誰使效命
이리잇가
若其羽書沓至
면 이리니 臨機決斷
이면 誰任其責
이리잇가
惟乞聖慈
는 以此反覆深慮
하여 早賜裁斷
하사 이면 則天下幸甚
이리이다
05. 난주蘭州 등지等地를 두 번째 논한 장문狀文
신臣이 최근 6월 28일에 “서하西夏 사신이 지계地界에 들어오면 반드시 강화講和를 요구하고 침탈한 땅을 돌려달라고 청하는 의논이 있을 것이니,
바라옵건대 이때에 난주蘭州 및 안강安疆‧미지米脂 등 5채寨의 땅을 포기하여 그들에게 줌으로써 변경을 안정시키고 인민을 휴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직社稷을 위하는 계책입니다.”라고 아뢰었사온데,
현재 서하西夏 사신이 이미 이르렀건만 가만히 듣자옵건대 집정대신執政大臣의 포기해야 할 것인지, 지켜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아직도 결정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신臣이 가만히 보옵건대, 황제폐하皇帝陛下께서 등극登極하신 이래로 하국夏國이 비록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왔지만, 강역疆埸의 일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니, 그들의 교활한 마음을 헤아려보옵건대, 대개 그들은 조정朝廷에서 전쟁을 싫어한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에 강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하여 스스로 청하지 않고, 그 의논이 조정으로부터 나오게 해서 이것으로 일의 무게를 높이려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그들의 의도를 깊이 파악하고는 꾹 참고 돌려주지 않았으니, 그들은 결국 사정이 급박하고 형세가 궁해지자 비로소 와서 침탈당한 땅을 돌려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지금 만일 또 허락하지 않는다면 보내온 사신이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니, 이 기회를 한번 잃으면 반드시 후회가 될 것입니다.
저들이 만일 병정兵丁과 마필馬匹을 불러 모아 경상境上에 둔취屯聚시킬 때에 가서 허락한다면 전쟁이 두려워서 돌려주는 꼴이니, 다시 조정의 은혜를 보일 수 없고, 허락하지 않는다면 변경의 쟁단爭端이 한번 열려서 화난禍難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일의 대단히 위급함이 바로 이때에 있으니, 절대로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신臣이 또 듣자옵건대 “옛날 난주蘭州와 5채寨의 땅을 취한 것은 본래 선제先帝의 뜻이 아니었다.” 합니다.
선제先帝께서 비로소 영무靈武를 취할 것을 의결하였지만, 내신內臣 이헌李憲이 외나畏懦하여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결국 병력으로 난주蘭州를 취하였습니다.
선제先帝께서 비로소 횡산橫山을 취할 것을 의결하였지만, 수신帥臣 심괄沈括‧충악种諤의 무리가 선제先帝의 성략聖略을 받들지 않고 결국 병력으로 5채寨를 취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장리將吏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공로를 구하여 죄를 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고, 선제先帝의 뜻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뒤 원풍元豐 6년에 하국夏國이 사신을 보내와 죄를 청하니, 선제先帝께서 그의 공순함을 가상히 여기고는 변리邊吏에게 명하여 침략侵掠을 금지시켰습니다.
뒤에 그들은 또 사신을 보내와 사은謝恩하고 옛 강토疆土를 돌려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선제先帝께서는 이내 보안군保安軍과 유주宥州에 지휘하여 강계疆界를 정립定立할 것을 의논하게 하였으나 내키지 않아 머뭇거리다가 정립하지 못하고 선제先帝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으니, 결국 그 문제가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말한다면, 난주蘭州와 5채寨를 취한 것은 선제先帝의 본심本心이 아니고, 버리는 것은 선제先帝의 유의遺意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의논하는 자들은 사정의 본말은 깊이 고찰하지 않고 망령되이 굳게 지킬 의논을 확립하여 구차스럽게 땅을 포기한다는 이름을 피하며, 백성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나라를 위하는 계책을 하지 않으니, 그 뜻은 자기만 편안하려고 할 뿐이고 사직社稷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신臣이 또 듣자옵건대, 의논하는 자들 중에 어떤 이는 “포기하거나 지키거나 모두 용병用兵을 면치 못하니, 포기할 경우는 용병用兵이 반드시 더디어지고, 지킬 경우는 용병用兵이 반드시 빨라지니, 더디고 빠른 사이에 이해利害관계가 그리 멀지 않다.
만일 땅을 그들에게 돌려준다면 그것은 온당한 계책이 아닌 듯하다.”고 합니다.
신臣은 듣건대 “성인聖人이 사변을 대응하는 관건은 바로 더디고 빠른 데에 있다.”고 하니, 다만 사변을 조금 완화시킨다면 우리는 계책의 성과를 얻음이 이미 많을 것입니다.
옛날 한漢나라 문제文帝와 경제景帝의 세대에 오왕吳王 유비劉濞가 마음속에 모반할 생각을 품고 병을 핑계로 조회하러 오지 않고, 재물을 쌓아 군사를 양성해서 반란을 모의하여 천하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러나 문제文帝는 오로지 포용하고 양육하는 일에만 힘써 그를 놓아두고 문책하지 않았으며, 게다가 궤장几杖까지 하사하여 은례恩禮가 날로 융숭하였습니다.
유비劉濞는 비록 화심禍心을 품었지만 인택仁澤이 스며들었으므로 끝내 발작發作하지 않았습니다.
경제景帝 때에 와서야 조조鼂錯(晁錯)의 꾀를 써서 죄가 있음으로 인하여 그 군현郡縣을 깎아내려고 하되 “깎아내도 모반하고 깎아내지 않아도 모반할 것이지만, 깎아내면 모반이 빨라져서 화禍가 작게 발생하고, 깎아내지 않으면 모반이 더디어져서 화禍가 크게 발생한다.”고 하였는데, 삭서削書가 한번 내려가자 7국國이 모두 모반하여
결국 경제景帝로 하여금 천하天下의 군사를 발동하고 36명의 장수를 보내어 겨우 깨뜨리게 하였습니다.
의논하는 자들이 만일 이해利害의 천심淺深을 궁구하지 않고 화복禍福의 경중輕重을 비교하지 않는다면 문제文帝가 꾹 참고 결단하지 않은 것은 유인柔仁에 가깝고, 경제景帝가 강단剛斷으로 반드시 결행한 것은 강의彊毅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문제文帝의 계략과 같이한다면 화禍의 발생속도가 더디니 서서히 방비할 수 있고, 약간의 세월이 지나면 변고變故가 스스로 발생하나 점차 제어한다면 사세상 불가할 것이 없으니, 비록 10명의 유비劉濞가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경제景帝의 계략과 같이한다면 화禍의 발생이 빠르니, 미처 발꿈치를 돌려 돌아서기도 전에 이미 교전이 벌어집니다.
칼날이 이미 교접하면 승부勝負를 보장하기 어려워 사직社稷의 운명이 하루 사이에 결단날 것이니, 비록 조조鼂錯의 육신을 씹어 먹는다 하더라도 일에 무슨 도움이 있겠습니까?
현재 포기하려고 하는 계책은 문제文帝와 같은 것이고, 지키려고 하는 계책은 경제景帝와 같은 것입니다.
신臣은 비옵건대 집정執政에게 선유宣諭하옵소서.
포기하려고 할 경우에는 이유가 공정해서 화禍가 더디게 발생하고, 지키려고 할 경우에는 이유가 불공정해서 화禍가 빠르게 발생합니다.
곡직曲直과 지속遲速이 어떤 것이 이익이 되고 어떤 것이 해가 됩니까?
하물며 오늘의 일은 주상主上께서는 묘년妙年이시고 모후母后께서는 수렴청정하여 결단하시며, 장수將帥와 이사吏士들에게는 은정恩情이 아직 두루 미치지 못했는데, 접전하는 날에 누가 목숨을 바쳐 전과를 올리겠습니까?
만일 우서羽書(檄文)가 답지沓至하면 승부勝負가 일정하지 않을 것인데, 미리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가서 결단한다면 누가 그 책임을 맡겠습니까?
오직 비옵건대, 성자聖慈께서는 이것을 반복해 깊이 고려하사 일찍이 결단을 내리시어, 서융西戎으로 하여금 다시 창광猖狂을 일으킴으로써 포기하느냐 지키느냐에 대한 조정의 의론이 모두 현실성이 없게 만들지 않으신다면, 천하가 매우 다행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