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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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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굴원
文跌宕하고 其所責屈原以柳下惠者似也니라
문장이 규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였으며, 그중에 굴원屈原유하혜柳下惠의 사례로써 나무란 것은 그럴듯하게 보인다.
予竊謂 使原如札之逃而終身焉不入於吳之市라도 亦可니라
나는 가만히 생각하건대, 가사 굴원屈原이 도피하여 〈종신토록 나라의 저자에 들어오지 않은〉 계찰季札처럼 하였더라도 역시 옳았다고 여긴다.
나라 가의賈誼장사왕長沙王태부太傅가 되어 멱라강汨羅江을 지나며 를 지어 굴원屈原을 조문하기를 “구주九州를 돌아다니며 임금을 도울 수 있었거늘 어찌 꼭 이 고도故都만을 잊지 못하였는가?”라고 하였으니, 가의賈誼의 말이 혹 〈임금을 도울〉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지만, 굴원屈原의 뜻은 아니다.
이니 不忍棄其君而之四方이어늘 而誼敎之以孔子孟軻歷聘諸侯하고 以求行道하니 勢必不從矣니라
굴원屈原나라는 이 같으니, 차마 그 임금을 버리고 사방(諸侯國)으로 갈 수 없었거늘 가의賈誼공자孔子맹가孟軻제후諸侯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를 행하기를 구하던 것을 가지고 굴원屈原을 가르쳤으니, 형세상 반드시 따르지 못할 것이었다.
유하혜柳下惠사사士師(典獄官)가 되어 세 번이나 파면당하면서도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바른 도리로 사람을 섬긴다면 어디에 간들 세 번쯤 파면당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바른 도리를 굽혀 사람을 섬긴다면 하필 부모가 사시던 내 나라를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惜乎
애석하다.
屈原廉直而不知道하고 殉節以死然後爲快하니 此所以未合於聖人耳니라
굴원屈原은 청렴하고 정직하나 를 알지 못하였고, 절의節義를 위해 죽은 연후에야 상쾌할 수 있었으니, 이 때문에 성인에 부합되지 못한 것이다.
使原如柳下惠用之則行하고 捨之則藏하여 終身於楚 優游以卒歲 庶幾乎其志也哉인저
가사 굴원屈原유하혜柳下惠처럼 등용되면 나아가 를 행하고 버려지면 들어앉아, 나라에서 죽을 때까지 한가하게 지내면서 세월을 보냈다면 거의 그의 뜻대로 되었으리라.
역주
역주1 屈原 : 屈原(B.C. 340~B.C. 278)은 전국시대 楚나라 사람이다. 이름은 平, 자는 原이다. 또는 스스로 ‘이름은 正則, 자는 靈均이다.’라고도 하였다.
처음에 懷王을 보좌하여 左徒, 三閭大夫가 되어 ‘法度를 彰明하고 賢能을 임용하고 齊나라와 연합하여 秦나라에 항거할 것’을 주장하였다. 頃襄王 때에 참소로 인하여 관직을 내놓고 流放되어 장기간 湘江과 沅江 사이에서 유랑하다가 뒤에 楚나라의 郢都가 秦나라 군대에게 함락되자 汨羅江에 투신자살하였다. 〈離騷經〉 등의 작품이 전해진다. 자세한 것은 《史記》 〈屈原賈生列傳〉에 보인다.
이 글은 《古史》 卷53 〈屈原列傳 제30〉에서 篇目으로 취하였다.
역주2 漢賈誼爲長沙傅 過汨羅爲賦以弔屈原 : 賈誼는 西漢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인데, 文帝가 그를 불러서 博士로 삼았다가 太中大夫로 승진시켰다. 文帝는 賈誼를 重用하고 싶었지만, 周勃‧灌嬰‧東陽侯(張相如)‧馮敬의 무리가 참소했기 때문에 賈誼를 長沙王의 太傅로 삼았다. 賈誼는 長沙로 가는 걸음이 가볍지 못하였으며, 湘江을 건널 때에 〈弔屈原賦〉를 지어서 屈原을 弔問하였다. 자세한 것은 《史記》 〈屈原賈生列傳〉에 보인다.
역주3 歷九州而相君 何必懷此故都 : 〈弔屈原賦〉 중에 있는 구절로 原文은 “歷九州而相其君兮 何必懷此都也”로 되어 있는데, 《漢書》 顔師古의 注에서는 “ ‘長沙에 가서 太傅가 되는 것은 족히 哀傷할 것이 아닌데, 어찌 구차하게 여기의 都邑만을 생각하리오?’라는 말인데, 대개 또한 賈誼가 스스로 마음을 너그럽게 달래기 위해 한 말이었을 것이다.[言往長沙爲傅 不足哀傷 何用苟懷此之都邑 蓋亦誼自寬廣之言]”라고 하였는데, 蘇轍은 이 구절을 이끌어서 賈誼가 屈原을 이르는 것으로 말하였다.
역주4 原楚同姓 : 《史記》 〈屈原賈生列傳〉에 “屈原은 이름이 平인데 楚나라의 同姓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正義〉에서 “屈‧景‧昭가 모두 楚나라의 동족이다.”라고 하였다.
역주5 柳下惠爲士師……何必去父母之邦 : 《論語》 〈微子〉에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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