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 무제武帝에 대한
蘇氏兄弟 晩年竝以釋典之旨 自解脱이니라
소씨蘇氏 형제兄弟만년晩年에 아울러 석전釋典(佛經)의 뜻을 가지고 스스로 속박에서 벗어났다.
其言如此하니라
그러므로 그 말이 이와 같은 것이다.
然而所本易之形而上으로 以爲釋老之原則하니 又對癡人說夢矣니라
그런데 《주역周易》의 ‘형이상形而上’을 가지고 석가釋迦노자老子의 원칙으로 삼았으니, 또 어리석은 사람을 마주하고 꿈 이야기를 한 것이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형이상形而上의 것을 라 이르고, 형이하形而下의 것을 라 이른다.”고 하였다.
으로 以形器治天下하되 導之以禮樂하고 齊之以政刑하여 道行於其間이나 而民莫知也니라
오제五帝삼왕三王으로부터 형기形器(물질)를 가지고 천하天下를 다스리되 예악禮樂으로써 지도하고 정형政刑으로써 규제하여 가 그 사이에 행하였으나 백성들은 〈를〉 알지 못하였다.
文武之後 雖召公畢公之賢이라도 君子不以爲知道者니라
문왕文王무왕武王 이후에는 비록 소공召公(姬奭)‧필공畢公(畢公高)처럼 현명하다 하더라도 군자君子는 그들이 를 알았다고 여기지 않았다.
至春秋之際 管仲晏子子産叔向之徒 以仁義忠信으로 成功於天下이나 其於道則已遠矣니라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와서 관중管仲(管夷吾)‧안자晏子(晏嬰)‧자산子産(公孫僑)‧숙향叔向(羊舌肸)의 무리가 으로써 천하天下을 이루었으나 그 에 대해서는 거리가 이미 멀었다.
孔子出於周末하여 이니라
공자孔子나라의 말기에 출생하여 문왕文王무왕武王유의遺意를 거두고 극치極致를 얻었다.
其稱曰 이라하며 라하고 於其門人 惟顔子曾子 庶幾以道許之니라
그리고 칭하기를 “군자君子는 위로 통달하고 소인小人은 아래로 통달한다.”고 하였으며, 일찍이 스스로 ‘나는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 하늘의 진리를 통달한 자’라고 생각하였고, 그 문인門人에 있어서는 오직 안자顔子증자曾子에게만 거의 를 허여하였다.
一時賢者 若老子之明道 其所以尊之者至矣니라
그래서 한때 현자賢者 중에 노자老子처럼 를 밝힌 이를 추숭한 것이 이미 정점에 도달하였다.
史稱孔子旣見老子하고 退謂弟子曰 鳥 吾知其能飛 魚 吾知其能遊 獸 吾知其能走니라
사기史記》에서 칭하기를 “공자孔子가 이미 노자老子를 만나보고 물러와서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새는 잘 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고, 물고기는 잘 헤엄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고,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走者 可以爲網이요 遊者 可以爲綸이요 飛者 可以爲繒이니라
그러나 달리는 것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것도 낚시로 낚을 수 있고, 나는 것도 주살로 잡을 수 있느니라.
至於龍하여는 吾不能知 其乘雲氣而上天이니라
에 대해서만은 내가 알 수 없으니, 그것은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노자老子를 만나보니 그는 과 같았느니라.’ 했다.”고 하였다.
老子體道而不嬰於物하니 孔子至以龍比之니라
노자老子를 체득하고 외물外物에 얽매이지 않았으니, 공자孔子으로써 비유하기까지 하였다.
이나 卒不與共斯世也니라
그러나 끝내 그와 더불어 당세를 함께하지는 않았다.
捨禮樂政刑而欲行道於世하니 孔子固知其難哉인저
노자老子는〉 예악禮樂정형政刑을 놓아버리고 를 세상에 행하려고 하였으니, 공자孔子는 본래 그 어려운 점을 알았던 것이다.
하니 其道與老子相하여 皆易所謂形而上者언만 而漢世士大夫 不能明也 魏晉以後 略知之矣니라
동한東漢 이후에 불법佛法이 비로소 중국中國에 들어왔는데, 그 노자老子와 서로 출입出入이 있어 모두 《주역周易》에서 이른바 ‘형이상形而上’인 것이었건만, 한대漢代사대부士大夫들은 그것에 밝지 못하였고, 위진魏晉 이후에 약간 그것을 알았다.
好之篤者 則欲施之於世하고 疾之深者 則欲絶之於世하니 二者皆非也니라
독실하게 좋아하는 이는 그것을 세상에 베풀려고 하고, 심하게 미워하는 이는 그것을 세상에서 끊으려고 하였으니, 이 두 경우는 다 잘못된 것이다.
老佛之道 與吾道同而欲絶之하고 老佛之敎 與吾敎異而欲行之하니 皆失之矣니라
오도吾道(儒道)와 같은데도 끊으려고 하고, 오교吾敎(儒敎)와 다른데도 행하려고 하였으니, 모두 잘못된 것이다.
하여 譯經談妙하니 至者凡數千人이나 而姚氏之亡 이니라
나라의 요흥姚興이 자그마한 영토에서 승려僧侶신도信徒들을 초청하여 불경佛經을 번역하고 묘리妙理를 담론하니, 이르는 자가 무려 수천 명이나 되었지만, 요씨姚氏의 멸망은 〈왔던 사람이 채〉 발꿈치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빨랐다.
梁武繼之하니 江南佛事 前世所未嘗見이니라
무제武帝가 뒤를 이어 불교佛敎를 신봉하니, 강남江南불사佛事전대前代에 일찍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심지어 사신捨身하여 노예奴隷가 되고 교묘郊廟의 제사에 모혈毛血을 올리지 않기까지 하였으나, 부자父子가 모두 후경侯景에게 함락되고 나라가 따라서 망하였다.
議者觀秦梁之敗 則以佛法爲不足賴矣니라
의논하는 자가 나라와 나라의 패망敗亡을 보면 불법佛法은 족히 신뢰할 것이 못 된다고 할 것이다.
後魏太武 深信崔浩 浩不信佛法하여 勸帝斥去僧徒하고 毁經壞寺하니라
후위後魏태무제太武帝최호崔浩를 깊이 믿었는지라, 최호崔浩불법佛法을 불신하여 태무제太武帝에게 권해서 승도僧徒를 내쫓고 불경佛經을 헐고 사찰을 파괴하게 하였다.
이미 불법佛法을 멸하였으나 최호崔浩 또한 비죄非罪로 전 가족을 주멸誅滅시켰다.
무종武宗장생술長生術을 구하고자 도사道士사정私情을 따라주고, 불교佛敎를 깔아뭉개고 승려僧侶를 멸살하였는데, 1년이 채 안 되어서 시해당해 죽었다.
議者 觀魏唐之禍 則以佛法爲不可忤矣니라
의논하는 자가 나라와 나라의 를 보면 불법佛法은 거역할 수 없는 것이라 할 것이다.
二者皆見其一偏耳니라
두 가지 경우는 모두 한쪽만을 본 것일 뿐이다.
老佛之道 非一人之私說也 自有天地而有是道矣니라
는 한 사람의 사설私說이 아니고 천지天地가 생겨난 이래로 이 가 있었던 것이다.
古之君子 以之治氣養心하여 其高不可嬰이요 其潔不可溷이니 天地神人 皆將望而敬之니라
옛적의 군자君子로써 를 다스리고 마음을 수양하여, 그 높음은 부여잡을 수 없고, 그 깨끗함은 더럽힐 수 없으니, 천지天地신인神人이 모두 바라보고 존경하였다.
성인聖人이 속행하지 않아도 신속하게 도달하고 행하지 않아도 다스려지게 된 것은 한결같이 이 를 썼기 때문이다.
老子曰 天得一以淸하고 地得一以寧하고 神得一以靈하고 得一以盈하고 萬物得一以生하고 侯王得一以爲天下貞하니라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하늘은 하나인 를 터득해서 청명하고, 땅은 하나인 를 터득해서 영정寧靜하고, 은 하나인 를 터득해서 영묘靈妙하고, 골짜기는 하나인 를 터득해서 충만하고, 만물萬物은 하나인 를 터득해서 생육生育하고, 임금은 하나인 를 터득해야 천하가 바르게 다스려진다.
無以盈이면 將恐竭하고 萬物無以生이면 將恐絶하고 侯王無以爲貞而貴高 將恐蹶이라하니라
하늘이 〈만일 하나인 를 잃고〉 청명하지 못하면 아마도 갈라져 내릴 것이고, 땅이 〈만일 하나인 를 잃고〉 영정寧靜하지 못하면 아마도 무너져 뒤집힐 것이고, 이 〈만일 하나인 를 잃고〉 영묘靈妙하지 못하면 아마도 막히고 통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골짜기가 〈만일 하나인 를 잃고〉 충만하지 못하면 아마도 말라 고갈될 것이고, 만물萬物이 〈만일 하나인 를 잃고〉 생육生育하지 못하면 아마도 죽어 없어지게 될 것이고, 임금이 〈만일 하나인 를 잃고〉 바르게 다스려 고귀하지 못하면 온 천하가 쓰러지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
道之於物 無所不在어늘 而尙可非乎
는 만물에 있어서 없는 데가 없거늘 오히려 비난할 수 있겠는가?
雖然이나 其弊必有不可勝言者니라
그러나 군신君臣을 멸하고 부자父子를 폐하고서 를 세상에 행한다면 그 폐단에는 반드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을 것이다.
誠以形器治天下하되 導之以禮樂하고 齊之以政刑하여 道行於其間이나 而民不知하고 하여 泯然不見其際而天下化 不亦周孔之遺意也哉
진실로 형기形器(물질)를 가지고 천하天下를 다스리되 예악禮樂으로써 지도하고 정형政刑으로써 규제하여 가 그 사이에 행하였으나 백성들은 〈를〉 알지 못하고, 만물萬物이 아울러 생육生育하여 서로 해치지 않고, 가 아울러 행하여 서로 위배하지 않아, 그 즈음을 보지 못하나 천하가 교화되는 것이 또한 주공周公공자孔子유의遺意가 아니겠는가?
역주
역주1 梁武帝 : 梁 武帝는 蕭衍(464~549)을 가리킨다. 蕭衍은 원래 南齊의 大臣이었다가 뒤에 군사를 일으켜 建康에 들어가서 齊主를 폐하고 南康王 蕭寶融을 받들어 帝로 삼고 자신은 大司馬가 되어 정권을 전담하였으며, 中興 2년(502)에 蕭寶融을 폐하고 ‘帝’라 칭하며 梁나라를 세웠다.
역주2 形而上者……謂之器 : 《周易》 〈繫辭 上〉에 보이는데, 대의는 ‘형체를 초월한 곧 無形한 것을 道(진리‧정신‧추상)라 이르고, 형체를 갖춘 곧 有形한 것을 器(사물‧물질‧물체)라 이른다.’는 말이다.
역주3 五帝三王 : 五帝는 黃帝‧顓頊‧帝嚳‧堯‧舜을 가리키고, 三王은 夏禹‧商湯‧周 文王을 가리킨다.
역주4 收文武之遺 而得堯舜之極 : 《中庸》에 “仲尼는 堯, 舜을 祖述하고 文王, 武王을 법받으셨다.[仲尼 祖述堯舜 憲章文武]”란 말이 보인다.
역주5 君子上達 小人下達 : 《論語》 〈憲問〉에 보이는데, 곧 ‘君子는 天理를 따르므로 날로 高明한 데로 나아가고, 小人은 人慾을 따르므로 날로 汚下(卑下)한 데로 나아간다.’는 말이다.
역주6 嘗自謂我下學而上達者 : 《論語》 〈憲問〉에 “공자가 ‘〈나는〉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고,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 하늘의 진리를 통달하노니, 나를 알아주는 자는 하늘뿐이다.’라고 했다.[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는 말이 보인다.
역주7 史稱孔子旣見老子……其猶龍邪 : 《史記》 〈老子韓非列傳〉에 보인다.
역주8 東漢以來 佛法始入中國 : 東漢 明帝 때에 印度의 佛敎가 中國에 傳入되었다고 한다.
역주9 出入 : 여기서는 서로 같은 부분도 있고, 서로 다른 부분도 있음을 가리킨다.
역주10 秦姚興……至者凡數千人 : 《晉書》 〈姚興載記〉에 의하면 “姚興(366~416)은 後秦을 세운 姚萇의 아들로, 그는 항상 여러 沙門과 함께 澄玄堂에서 天竺(印度)의 高僧 鳩摩羅什으로부터 佛經에 대한 演說을 들었고, 아울러 佛經의 교감작업을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먼 곳으로부터 이르는 沙門이 5천 명이 되었고, 坐禪하는 沙門도 항상 수천 명이나 되었으며, 州郡이 동화하여 佛을 섬기는 자가 열 집에 아홉 집이나 되었다.”고 한다.
역주11 緇素 : 緇는 緇衣로 僧侶의 옷이고, 素는 素衣로 곧 印度 俗人의 옷이니, 곧 僧俗의 別稱이다.
역주12 姚氏之亡 曾不旋踵 : 姚興이 죽은 뒤에 그 아들 姚泓이 嗣立한 지 2년 만에 東晉의 劉裕에게 멸하였다. ‘不旋踵’은 ‘와서 채 발꿈치를 돌리기도 전에’란 뜻이니, 곧 짧은 시간을 형용한 것이다.
역주13 梁武繼之……不薦毛血 : 《梁書》 〈武帝紀〉에 의하면 “梁 武帝가 皇帝로 즉위하여 크게 佛寺를 짓고 淨饌(素饌)을 베풀었으며, 정무를 보고 여가 나는 대로 重雲殿과 同泰寺에서 講經을 들었고, 세 차례나 同泰寺에 捨身(修行‧報恩을 위하여 俗界의 몸을 버리고 절에 들어감)하여 奴隷가 되었다.”고 하였다. 江南은 당시 南朝 梁나라의 관할지역이고, 佛事는 僧侶의 誦經‧祈禱‧禮佛 등을 가리키고, 郊廟는 天子나 諸侯가 天地 또는 祖上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고, 毛血은 동물의 피와 털이니 곧 제사 때 쓰는 犧牲을 가리킨다. 梁 武帝가 淨饌을 베푼 것은 佛家에서 殺生하지 않는 敎義를 따랐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4 父子皆陷於侯景 而國隨以亡 : 侯景(?~552)은 東魏의 叛將으로서 梁나라에 붙어 河南王에 봉해졌다가 太淸 2년(546)에는 또 梁나라를 배반하였고, 다음해에는 建康을 攻破하였다. 梁 武帝는 台城(宮城)에서 侯景에게 포위를 당하여 굶어죽었고, 그 아들 簡文帝 蕭綱이 嗣立하였는데, 재위한 지 2년 만에 侯景에게 피살되었다. 뒤에 元帝, 敬帝가 嗣立하여 6년 만에 나라가 망하였다.
역주15 後魏太武……而浩亦以非罪赤族 : 後魏(386~534)는 北朝의 하나로 鮮卑族 拓拔珪가 太元 11년(386)에 세운 나라이다. 國號를 魏라 하고 도읍을 平城에 세웠는데, 역사에서 北魏 또는 後魏라고 칭하였다. 太武는 곧 魏 太武帝(408~ 452) 拓拔燾로, 일명 佛狸이다. 그는 일찍이 崔浩(?~450)의 계책을 써서 佛敎를 嚴禁하여 沙門을 묻어 죽이고 佛像을 헐어버렸다. 崔浩는 佛道를 불신하고 佛敎를 비판하여 벼슬이 司徒에 이르렀으나 여러 大臣들에게 꺼리는 바 되어 太平眞君(太武帝의 연호) 11년(450)에 矯誣罪로 誅死滅族되었다. 非罪는 강제로 씌운 죄를 가리키고, 赤族은 전 가족을 주멸함을 가리킨다.
역주16 唐武宗欲求長生……不期年而以弑崩 : 《新唐書》 〈武宗本紀〉에 의하면 “唐 武宗은 곧 李瀍(814~846)으로, 穆宗의 아들이다. 會昌 5년(845)에 武宗이 道士 趙歸眞을 총애하고 신임하였는데, 趙歸眞은 소위 長生術을 가졌다는 鄧元起를 추천하였다. 趙歸眞과 鄧元起 및 衡山道士 劉玄靖이 釋氏를 배척하고 사찰을 헐도록 청하니, 武宗은 사찰을 헐고 僧侶가 일반 백성으로 회귀하도록 詔書를 내렸다. 會昌 6년(846)에 武宗은 長生藥을 복용한 원인으로 죽었다.”고 하였으니, 蘇轍이 “시해당해 죽었다.[以弑崩]”고 한 것은 잘못인 듯하다.
역주17 聖人之所以不疾而速 不行而至者 : 聖人이 大道를 治國에 행하여 하는 일이 없어도 저절로 다스려지고 교화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진다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역주18 : 저본에는 ‘穀’으로 되어 있는데, 《老子》와 《欒城集》에 의하여 ‘谷’으로 바꾸었다.
역주19 天得一以淸……將恐蹶 : 《老子》 제39장에 보인다.
역주20 : 저본에는 ‘穀’으로 되어 있는데, 《老子》와 《欒城集》에 의하여 ‘谷’으로 바꾸었다.
역주21 滅君臣廢父子 而以行道於世 : 老子의 說은 權貴를 멸시하고 仁義를 버리고 禮義를 끊는 것을 주장하였고, 佛敎의 이론은 아버지를 버리고 아들을 끊고 夫婦를 맺지 않는 것을 강조하였으니, 佛敎와 道敎는 이와 같은 이론으로 천하를 다스렸다.
역주22 萬物竝育而不相害 道竝行而不相悖 : 《中庸》 제30장에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