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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1)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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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胸次 博大하다
太尉執事
生好爲文이라 思之至深 以爲文者 氣之所形이나이나 文不可以學而能이요 氣可以養而致니이다
太史公 行天下하여 周覽四海名山大川하고 與燕趙間豪俊으로 交遊
其文 疏蕩하여 頗有奇氣하니
豈嘗執筆하여 學爲如此之文哉리잇가
其氣充乎其中而溢乎其貌하며 動乎其言而見乎其文이로되 而不自知也니이다
生十有九年矣
其居家所與游者 不過其隣里鄕黨之人이요 所見 不過數百里之間이라
無高山大野可登覽以自廣이요 百氏之書 雖無所不讀이나이나 皆古人之陳迹이라 不足以激發其志氣이어늘 恐遂이라
決然捨去하고 求天下奇聞壯觀하여 以知天地之廣大하노이다
하여 恣觀終南嵩華之高하고 하여 慨然想見古之豪傑하며 至京師하여 仰觀天子宮闕之壯 與倉廩府庫城池苑囿之富且大也하고 而後 知天下之巨麗하고
見翰林歐陽公하여 聽其議論之宏辯하고 觀其容貌之秀偉하며 與其門人賢士大夫游하고 而後 知天下之文章 聚乎此也니이다
太尉 以才略으로 冠天下하니 天下之所恃以無憂 四夷之所憚以不敢發이며
入則이요 出則어늘 而轍也 未之見焉이로소이다
且夫人之學也 不志其大 雖多 而何爲리잇가
轍之來也 於山 見終南嵩華之高하고 於水 見黃河之大且深하고 於人 見歐陽公이로되 而猶以爲未見太尉也니이다
願得觀賢人之光耀하여 聞一言以自壯하오니 然後에야 可以盡天下之大觀而無憾矣리이다
年少하여 未能通習吏事니이다
非有取於斗升之祿이언마는 偶然得之하니 非其所樂이니이다
이나 幸得賜歸待選하여 使得優游數年之間이면 將歸益治其文하고 且學爲政하리니 太尉 苟以爲可敎而辱敎之시면 又幸矣


01. 추밀사樞密使 한기韓琦에게 올린 서찰
가슴속에 품은 생각이 대단히 방대하였다.
태위太尉 집사執事께 말씀드립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글짓기를 좋아하였는지라, 깊이 생각해볼 때에 ‘문장이란 것은 의 표현이지만, 문장은 배워서 능할 수 없고, 는 길러서 이룰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맹자는 말씀하기를 “나는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고 하셨는데, 지금 그 문장을 살펴보면 관후寬厚하고 굉박宏博하여 천지 사이에 충만한 것이 그 의 크고 작음에 걸맞았으며,
태사공太史公(司馬遷)은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온 천하의 명산名山대천大川을 두루 구경하고, 나라와 나라 지방의 재지才智가 뛰어난 사람들과 교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문장이 소통하고 호탕하여 자못 기이한 가 있었습니다.
이 두 분은 어찌 일찍이 붓을 쥐고 이와 같은 문장을 배웠겠습니까?
가 가슴속에 충만하여 용모에 넘쳐흐르고 말에 움직여 문장에 나타나는데도 그렇게 되는 까닭을 자신들도 몰랐던 것입니다.
저는 태어난 지가 19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으면서 더불어 교유한 대상은 이웃 마을과 주변 시골 마을의 사람들에 불과하였고, 눈으로 본 것도 수백 리 사이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올라가서 바라보고 좁은 시야를 확 넓힐 만한 높은 산이나 큰 들도 없으며, 백가百家의 글을 비록 읽지 않은 것이 없으나 모두 옛사람들의 묵은 자취라 지기志氣격발激發시키기에 부족한데, 거기에 골몰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결연決然히 시골을 버리고 천하의 기문奇聞장관壯觀을 구하여 천지의 광대廣大함을 알려고 하였습니다.
나라와 나라의 옛 도읍지에 들러서 종남산終南山숭산嵩山화산華山의 높은 경관을 마음껏 구경하고, 북쪽으로 황하黃河의 줄기찬 흐름을 보고서 개연慨然히 옛사람의 호걸스러움을 상상해보며, 경사京師에 이르러 천자天子께서 거처하시는 궁궐의 장엄함과 창름倉廩부고府庫성지城池원유苑囿의 풍성하고 거대함을 우러러보고 나서야 천하의 거대하고 화려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한림翰林 구양공歐陽公(歐陽修)을 만나서 그 의론의 굉장한 변설을 듣고 그 용모의 수려하고 위대함을 보며, 그의 문인 중에 어진 사대부들과 교유해본 뒤에야 천하의 문장이 모두 이곳에 모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태위太尉께서는 재주와 지략으로 천하에 으뜸이 되셨으니, 천하 사람들은 태위를 믿어 근심 없이 살고 있고, 사방의 오랑캐들은 태위가 두려워서 감히 발동하지 못합니다.
태위께서는 조정에 들어오면 주공周公소공召公 같은 어진 재상이시고, 국경에 나가면 방숙方叔소호召虎 같은 훌륭한 장수이신데, 저는 아직 뵙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사람이 학문을 함에 있어서 큰 것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아무리 학문이 많은들 어디에 쓰겠습니까?
제가 이곳에 올 때에 산에 있어서는 종남산‧숭산‧화산과 같은 높은 산을 보았고, 물에 있어서는 황하와 같은 크고 깊은 물을 보았고, 사람에 있어서는 구양공과 같은 훌륭한 인물을 보았으나 아직도 태위를 뵙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컨대 어진 분의 빛나는 의용儀容을 뵙고 한 말씀 들음으로써 장대한 포부를 갖고자 하니, 그런 연후에야 천하의 장관壯觀을 유감없이 다 관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나이가 어려서 아직 관리의 사무에 숙달하지 못합니다.
전번에 경사京師에 온 것은 적은 祿을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건만 우연히 녹을 얻게 되었는데, 즐거워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다행히 고향으로 돌아가서 후일 관리 선발의 기회를 기다리며 몇 년간 한가로이 지낼 수 있게 해주신다면, 장차 돌아가서 문장을 더욱 다듬고 또 정치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니, 태위께서 진실로 저를 가르칠 만하다고 여기어 외람되이 가르쳐주신다면 또한 다행이겠습니다.


역주
역주1 上樞密韓太尉書 : 이 서찰은 嘉祐 2년(1057)에 쓴 것인데, 곧 蘇轍이 進士로 뽑힌 뒤에 당시 樞密使로 있는 韓琦에게 올린 것이다. 韓琦는 樞密直學士‧樞密副使 등을 거쳐 魏國公에 봉해진 인물이다.
역주2 浩然之氣 : 자연에 있어서는 우주공간에 가득 차 있는 원기이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울 바 없는 도덕적 용기. 《孟子》 〈公孫丑 上〉에 나온다.
역주3 今觀其文章……稱其氣之小大 : 현재 맹자의 문장을 보면, 深沈渾厚하고 宏偉博大하여 가슴속에 간직한 局量이 곧 천지 사이에 꽉 찬 浩然之氣와 서로 부합된다는 말이다.
역주4 二子 : 孟子와 司馬遷을 가리킨다.
역주5 汨沒 : 다른 생각은 일체 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쏟는 것을 이른다.
역주6 秦漢之故都 : 秦은 咸陽에, 西漢은 長安에 도읍을 세웠는데, 그 유적지는 모두 지금의 陝西省에 있고, 東漢은 지금의 河南省인 洛陽에 도읍을 세웠다.
역주7 北顧黃河之奔流 : 咸陽‧長安‧洛陽 및 終南山‧嵩山‧華山이 모두 黃河 이남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8 周公召公 : 周나라의 武王과 成王을 보필한 어진 재상들이다.
역주9 方叔召虎 : 周나라 宣王 때에 荊蠻과 淮夷를 토벌한 훌륭한 장수들이다.
역주10 嚮之來 : 전번에 京師에 왔음을 말한다.
역주11 轍은………又幸矣 : 樓昉의 《崇古文訣》에는 “가슴속의 담론과 문장의 기세는 司馬子長(司馬遷)의 自序 중에서 유래하여 歐陽公(歐陽修)으로부터 韓太尉(韓琦)의 신상에 이르기까지를 언급하였으니, 기이한 구문법이라고 할 만하다. 이때 子由의 나이 19세였으니, 어떤 사람은 ‘老泉(蘇洵)이 대신 지었다.’고 한다.[胸臆之談 筆勢規摹 從司馬子長自敍中來 從歐陽公轉韓太尉身上 可謂奇險 子由時方十九歲 或云 老泉代作]”라고 비평하고, 金聖歎의 《天下才子必讀書》에서는 “‘기이한 氣’라고 하였는데, 이 한 조각의 기이한 氣는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이다. 만일 붓을 휘두를 때에 쓰지 않았다면 곧 이 문장은 전편을 통하여 존재할 수 없다.[奇氣 此一片奇氣 最難得 若落筆時 寫不得着 卽此文通篇都無有]”라고 비평하고, 吳楚材와 吳調侯의 《古文觀止》에서는 “생각은 단지 太尉만을 만나보기 원했을 뿐이었건만, 天下의 大觀을 다 보아 그 志氣를 激發하였고, 문득 歐陽公을 만나본 것을 가지고 太尉를 만나보려는 마음을 일으켰고, 名山大川과 京華人物을 두루 본 것을 가지고 歐陽公을 만나보려는 마음을 일으켰고, 문장을 짓고 기를 기르는 것을 가지고 名山大川과 京華人物을 두루 보려는 마음을 일으켰다. 注意는 여기에 있고 立言은 저기에 있으니, 絶妙한 奇文이다.[意只是欲求見太尉 以盡天下之大觀 以激發其志氣 却以得見歐陽公 引起求見太尉 以歷見名山大川京華人物 引起得見歐陽公 以作文養氣 引起歷見名山大川京華人物 注意在此 而立言在彼 絶妙奇文]”라고 비평하고, 邊珙은 “‘養氣’ 두 글자가 한 편의 骨子가 되고, 이하 ‘名山大川를 구경했다.’는 것과 ‘賢豪‧長者를 만나보기를 구했다.’라는 것은 모두 그 養氣를 돕는 부분이다. 山水로부터 歐公을 모셔 내고, 歐公으로 좇아 太尉를 모셔 내어 한 번 늦추고 한 번 죄는 문장 구사가 高奇하고 豪邁하니 분명 太史公을 모방한 부문이다. 그 意氣가 천하를 텅 비게 하여 안목이 한 세상에 높았으니, 少年이 아니라면 이와 같은 本色이 없을 것이다. 옛날 사람이 ‘老泉의 代作’이라고 의심한 것은 잘못이었다.[養氣二字 爲一篇骨子 以下觀名山大川 及求見賢豪長者 皆是助其養氣處 從山水陪出歐公 從歐公陪出太尉 一過一束 高奇豪邁 的是規模史公處 其意氣自空天下 眼高一世 非少年 無此本色 昔人疑老泉代作 謬矣]”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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