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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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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0. 왕자王者이적夷狄을 다스리지 않는다
자유子由가 형과 함께 응시한 문장이 비록 자첨子瞻의 문장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일가一家정대正大의론議論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儒者必愼其所習이니 習之不正이면 終身病之니라 好爲異說而無統하고 多作新意하여 以惑天下之耳目이니라
유자儒者는 반드시 학습하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니, 학습하는 일이 바르지 못하면 종신토록 병폐를 〈면하지 못한다.〉 공양고公羊高의 책은 이상한 말을 하기를 좋아하여 통서統緖가 없고, 새로운 뜻을 많이 지어 천하 사람의 이목을 미혹시켰다.
是以 漢之諸儒治公羊者 比於他經 最爲迂闊이니라
이 때문에 한대漢代제유諸儒 중에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전공한 사람은 다른 에 비하여 가장 오활하게 해석하였다.
하휴何休에 와서는 마음 씀이 또 공양고公羊高보다 심하였으니, 아마 그 형세가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춘추春秋》의 경문經文에서 “은공隱公 땅에서 회맹會盟하였다.”라고 한 것에 대하여 공양고公羊高는 오히려 말이 없었는데, 하휴何休는 “왕자王者이적夷狄을 다스리지 않는 법인데, 을 기록한 것은 오는 자를 거절하지 않고 가는 자를 쫓아가지 않은 것이다.”라고 풀이하였다.
夫公之及戎盟於潛也 時有是事也니라
은공隱公 땅에서 회맹한 것은 그때 그런 사실이 있었다.
時有是事어늘 而孔子不書可乎
그때 그런 사실이 〈엄연히〉 있었는데, 공자孔子가 적지 않은 것이 옳겠는가?
春秋之書 其體有二하니 有書以見褒貶者하고 有書以記當時之事하여 備史記之體 而其中非必有所褒貶予奪者니라
그러므로 《춘추春秋》의 글은 그 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포폄褒貶을 보이기 위하여 적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의 일을 기록하기 위하여 적어서 역사를 기록하는 를 갖출 뿐이요, 그 속에는 반드시 포폄褒貶하고 여탈予奪하는 뜻을 담지 않은 것이다.
公之及戎盟於潛 是無褒貶予奪者也어늘 而休欲必爲之說하니
은공隱公 땅에서 회합한 것은 포폄하고 여탈한 뜻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는데, 하휴何休는 반드시 〈포폄의 뜻을 가지고〉 말하려 하였다.
是以 其說不得不妄也니라
이 때문에 그 말이 망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且王者豈有不治夷狄者哉
또한 왕자王者 중에 어찌 이적夷狄을 다스리지 않은 이가 있었던가?
王者不治夷狄 是欲苟安於無事者之說也니라
왕자王者이적夷狄을 다스리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무사안일하고 싶어 하는 자의 말이다.
古之所以治夷狄之道 世之君子 嘗論之矣니라
옛적에 이적夷狄을 다스린 방도에 대해서는 세상 군자들이 일찍이 논하였다.
有用武而征伐之者하니 高宗文王之事是也 有修文而和親之者하니 漢之文景之事是也 有拒絶而不納之者하니 光武之謝西域却匈奴之事是也니라
무력을 써서 정벌을 한 이가 있었으니 고종高宗 문왕文王의 일이 바로 그것이고, 문덕文德을 닦아 화친和親을 한 이가 있었으니 문제文帝경제景帝의 일이 바로 그것이고, 거절하여 받아들이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서역西域을 사절하고 흉노匈奴를 물리친 일이 바로 그것이다.
此三者 或制之焉하고 或不能制之焉이니라
이 셋의 경우는 혹은 제재하기도 하고 혹은 제재하지 않기도 하였다.
이나 皆所以適吾中國之便하여 而置夷狄於不便之地 此所以治之之大要也니라
그러나 모두들 우리 중국의 편의에 맞추기 위하여 이적夷狄을 불편한 곳에 두었으니, 이것은 그들을 다스리는 큰 요령이었다.
今曰 來者必不可拒 則是光武之謝西域하여 以息中國之民者 非乎
그런데 지금 말한 바와 같이 ‘오는 자를 반드시 거절하지 않는다.’면 이는 광무제光武帝서역西域을 사절하여 중국의 인민을 휴식시킨 것이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去者必不可追 則是高宗文王 凡有所以伐其不服而討其不庭者 皆非也니라
‘가는 자를 반드시 쫓아가지 않는다.’면 고종高宗문왕文王이 복종하지 않은 자를 치고 배반하고 오지 않은 자를 토벌한 것은 모두 잘못한 일이 된 셈이다.
凡休之說 施之於中國强盛夷狄暴橫之時 則將養寇以遺子孫之憂 施之於中國新定休息自養之際 則爲夷狄之所役使하여 以自勞弊而不得止니라
하휴何休의 말을 중국中國강성强盛하고 이적夷狄포횡暴橫할 때에 실행하면 장차 도적을 길러서 자손에게 걱정을 끼치게 될 것이고, 중국中國이 갓 안정되어 휴식을 취하며 보양할 때에 실행하면 이적夷狄에게 사역되어 계속 노역을 하게 될 것이다.
凡此二者 休之說無施而可也니라
이 두 경우엔 하휴何休의 말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 옳다.
蓋聞之컨대 聖人之於夷狄也 吾欲其來則來之하고 雖有欲去者 不可得而去也니라 吾欲去則하고 雖有欲來者 亦不可得而來也니라
듣건대, 성인聖人이적夷狄에 대하여 내가 그들을 오게 하면 오고, 가려고 하는 자가 있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으며, 내가 그들을 가게 하면 가고, 오려고 하는 자가 있어도 또한 마음대로 올 수 없다.
夫是故 其伸縮進退 莫不在我어늘 而休欲聽其自來而自去也耶
이 때문에 그들을 늦추기도 하고 죄기도 하며, 오게도 하고 물러가게도 하는 것이 모두 나에게 달려 있거늘, 하휴何休는 그들이 스스로 오고 스스로 가도록 맡겨두려는 것인가?
此其尤不可者也니라
이것은 더욱 옳지 못하다.
治休之學者曰 하니 未暇遠略이라
하휴何休의 학문을 전공하는 자가 말하기를 “공자孔子는 《춘추春秋》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은공隱公환공桓公 시대에서 시작하였으니, 원대한 계략을 세울 겨를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라가 하양夏陽을 멸한 사실을 먼저 적고 나라가 나라와 나라를 멸한 사실을 끝에 적었다.”고 하였다.
夫穀鄧之不書 是楚之未通而不告也니라
나라와 나라를 멸한 사실이 《춘추春秋》에 적히지 않은 것은 곧 나라를 통과하지 못한 관계로 보고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如使聖人 未欲與夷狄交通이면 則雖有欲至者라도 尙可得而至哉
가사 성인이 이적夷狄과 교통하고 싶지 않았다면 비록 이르려고 하는 자가 있어도 오히려 이를 수 있었겠는가?
愚故曰 春秋之書公及戎盟於潛 是記事之體 而何休之說妄也라하노라
그래서 나는 “《춘추春秋》에서 은공隱公 땅에서 회합한 일을 적은 것은 바로 기사체記事體이니, 하휴何休의 말은 망령스런 것”이라 하노라.
역주
역주1 王者不治夷狄 : 〈王者不治夷狄〉은 東漢의 何休가 註解한 《春秋公羊傳解詁》에서 인용한 것인데,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과 《唐宋八大家文鈔》에는 실려 있지 않다.
四庫全書의 《東坡全集》에는 〈王者不治夷狄論〉에 이어 〈劉愷丁鴻孰賢論〉이 실려 있고, 《欒城應詔集》에는 秘閣試論으로 〈劉愷丁鴻孰賢論〉과 〈史官助賞罰論〉이 실려 있는데, 宋 仁宗 嘉祐 6년(1061)에 蘇轍이 형 蘇軾과 함께 秘閣에서 시험 볼 때 지은 策試題들이다.
그런데 〈王者不治夷狄論〉이 《東坡全集》에는 실려 있고 《欒城集》에는 실려 있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역주2 子由同兄應試之文……自足一家正大議論 : 茅坤의 이 批評이 四庫全書의 《唐宋八大家文鈔》에는 〈劉愷丁鴻孰賢〉에 실려 있는데, 거기에는 “이것은 子由가 형과 함께 응시한 문장인데, 비록 子瞻에게 미치지는 못하지만, 議論의 正大함은 스스로 一家言을 이루기에 충분하다. 宋 仁宗이 ‘자손을 위하여 두 사람의 어진 宰相을 얻었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사람을 알아보았다.[此子由同兄應試之文 雖不及子瞻 而議論正大 自足成一家言 仁宗謂 爲子孫得兩賢宰相[《宋史》 〈慈聖光獻曹皇后傳〉에 그 내용이 보인다.] 誠哉知人]”라고 되었다.
역주3 : 저본에는 ‘是’로 되어 있는데, 四庫全書의 《唐宋八大家文鈔》에 의해 ‘足’으로 바꾸었다.
역주4 公羊之書 : 公羊은 周代 말기 齊나라 사람이자 孔子의 문인 子夏의 제자인 公羊高를 가리킨다. 書는 公羊高가 撰한 《春秋公羊傳》을 가리키는데, 《春秋公羊傳》은 《春秋左氏傳》, 《春秋穀粱傳》과 함께 ‘春秋三傳’으로 일컬어진다.
역주5 至於何休……蓋其勢然也 : 何休는 東漢 사람으로 자는 邵公이다. 六經을 깊이 연구하였고, 특히 《春秋公羊傳》을 좋아하여 《春秋公羊傳解詁》를 찬하였으며, 또한 《公羊墨守》, 《左氏膏肓》, 《穀梁廢疾》 등을 저술하였다.
역주6 經書公及戎盟於潛……去者不追也 : 《春秋》 隱公 2년의 經文에 “隱公이 戎과 潛 땅에서 회합하였다.[公會戎于潛]”고 적은 것을 가리킨다.
이에 대하여 《春秋左氏傳》에서는 “隱公이 戎과 潛 땅에서 회합한 것은, 惠公 시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戎은 맹약을 맺자고 청했으나 隱公은 사절했다.[公會戎于潛 受惠公之好也 戎請盟 公辭]”고 해석하였고, 《春秋左氏傳》에 注를 단 杜預는 “戎인데도 ‘會’로 적은 것은 그 풍속에 따라 禮를 한 것이다.[戎而書會者 順其俗以爲禮]”라고 풀이하였으며, 《春秋穀粱傳》에서는 “회합하는 것은 밖이 主가 된다. 智者는 깊이 생각하고, 義者는 곧게 행동하고, 仁者는 굳게 지키니, 이와 같은 세 가지를 가진 연후에야 나가서 회합할 수 있다. 戎과 회합함은 隱公을 위험하게 한 것이다.[會者外爲主焉爾 智者慮 義者行 仁者守 有此三者然後 可以出會 會戎危公也]”라고 풀이하였다.
公羊高는 이에 대하여 말이 없었는데, 何休는 “회합을 적은 것은 내국을 비우고 외국의 우호를 믿는 것을 미워했기 때문이다. 옛적에 諸侯는 조회할 때가 아니면 국경을 넘지 않고 그 封界만을 지켰을 뿐이다.……王者는 夷狄을 다스리지 않는 법인데, 戎을 기록한 것은 오는 자를 거절하지 않고 가는 자를 쫓아가지 않은 것이다.[凡書會者 惡其虛內務 恃外好也 古者諸侯 非朝時不得踰境 守其封界而已……王者不治夷狄 錄戎者 來者勿拒 去者勿追]”라고 풀이하였다.
蘇軾은 그의 〈王者不治夷狄論〉 서두에서 “夷狄은 중국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 크게 다스려지기를 요구하면 반드시 大亂에 이를 것이다. 先王은 그런 이치를 알았다. 그 때문에 적극적으로 다스리지 않는 방식을 써서 다스렸다. 적극적으로 다스리지 않는 방식을 써서 다스린 것은 깊이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春秋》에서 ‘隱公이 戎과 潛 땅에서 회합하였다.’고 적은 것에 대하여 何休는 ‘王者는 夷狄을 다스리지 않는 법인데, 戎을 기록한 것은 오는 자를 거절하지 않고 가는 자를 쫓아가지 않은 것이다.[夷狄不可以中國之治治也 求其大治 必至於大亂 先王知其然 是故 以不治治之 治之以不治者 乃所以深治之也 春秋書公會戎於潛 何休曰 王者不治夷狄 錄戎 來者不拒去者不追也]”라고 적었다.
여기의 戎은 魯나라와 衛나라의 사이에 거주하는 戎을 가리킨다. 蘇轍은 ‘會’를 ‘盟’으로 바꿔서 적었으니, 아마 ‘會’를 ‘會盟’으로 본 것 같다. 그러나 ‘회합’과 ‘회맹’은 개념이 다르다.
역주7 : 저본에는 ‘拒’로 되어 있는데, 文義에 의하여 ‘去’로 바꾸었다.
역주8 孔子之於春秋……當隱桓之際 : 宋代 高閌이 撰한 《春秋集註》에 “王者의 자취가 사라진 것이 마침 魯 隱公 때에 있었다. 仲尼(孔子)는 天運을 묵묵히 관찰하여 三代의 순환하는 治道가 이에 이르러 다함을 알고, 先王의 經世하는 법이 땅에 떨어져 전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中庸의 제도를 만들어 만세에 통행할 수 있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周나라를 빌어 王法을 세우되 隱公에서부터 시작하였다. 또 文武의 道로써 후세의 왕에게 기대하고, 周公의 사업으로써 魯나라의 자손에게 바랐다.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春秋》는 한 왕의 법이 아니고 바로 만세에 통행하는 법이다.[王者之迹熄 適在隱公之時 仲尼黙觀天運 知三代循環之治 至是而極 懼先王經世之法 墜地莫傳 欲立爲中制 俾萬世可以通行 故假周以立王法 而託始于隱公焉 且以文武之道期後王 以周公之事業 望魯之子孫也 以此推之 春秋固非一王之法 乃萬世通行之法也]”란 내용도 참고할 만하다.
역주9 先書晉滅夏陽 末書楚滅穀鄧 : 何休는 ‘晉나라가 夏陽을 멸한 사실을 먼저 적고, 楚나라가 穀나라와 鄧나라를 멸한 사실을 끝에 적은 것’을 魯 桓公이 夏陽과 穀나라와 鄧나라를 구제하지 않은 것을 풍자한 것으로 풀이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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