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者必愼其所習
이니 習之不正
이면 終身病之
니라 는 好爲異說而無統
하고 多作新意
하여 以惑天下之耳目
이니라
是以로 漢之諸儒治춘추공양전公羊者는 比於他經에 最爲迂闊이니라
故로 춘추春秋之書 其體有二하니 有書以見褒貶者하고 有書以記當時之事하여 備史記之體요 而其中非必有所褒貶予奪者니라
은공公之及융戎盟於잠潛은 是無褒貶予奪者也어늘 而하휴休欲必爲之說하니
有用광무제武而征伐之者하니 고종高宗문왕文王之事是也요 有修문왕文而和親之者하니 한漢之문왕文경제景之事是也요 有拒絶而不納之者하니 광무제光武之謝西域却흉노匈奴之事是也니라
然이나 皆所以適吾中國之便하여 而置이적夷狄於不便之地니 此所以治之之大要也니라
今曰 來者必不可拒면 則是광무제光武之謝西域하여 以息中國之民者는 非乎아
去者必不可追면 則是고종高宗문왕文王이 凡有所以伐其不服而討其不庭者는 皆非也니라
凡하휴休之說을 施之於중국中國强盛이적夷狄暴橫之時면 則將養寇以遺子孫之憂요 施之於중국中國新定하휴休息自養之際면 則爲이적夷狄之所役使하여 以自勞弊而不得止니라
蓋聞之
컨대 聖人之於
이적夷狄也
에 吾欲其來則來之
하고 雖有欲去者
나 不可得而去也
니라 吾欲去則
之
하고 雖有欲來者
나 亦不可得而來也
니라
夫是故로 其伸縮進退가 莫不在我어늘 而하휴休欲聽其自來而自去也耶아
如使聖人이 未欲與이적夷狄交通이면 則雖有欲至者라도 尙可得而至哉아
愚故曰 춘추春秋之書은공公及융戎盟於잠潛은 是記事之體니 而하휴何休之說妄也라하노라
자유子由가 형과 함께 응시한 문장이 비록 자첨子瞻의 문장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일가一家의 정대正大한 의론議論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유자儒者는 반드시 학습하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니, 학습하는 일이 바르지 못하면 종신토록 병폐를 〈면하지 못한다.〉 공양고公羊高의 책은 이상한 말을 하기를 좋아하여 통서統緖가 없고, 새로운 뜻을 많이 지어 천하 사람의 이목을 미혹시켰다.
이 때문에 한대漢代의 제유諸儒 중에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전공한 사람은 다른 경經에 비하여 가장 오활하게 해석하였다.
하휴何休에 와서는 마음 씀이 또 공양고公羊高보다 심하였으니, 아마 그 형세가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춘추春秋》의 경문經文에서 “은공隱公이 융戎과 잠潛 땅에서 회맹會盟하였다.”라고 한 것에 대하여 공양고公羊高는 오히려 말이 없었는데, 하휴何休는 “왕자王者는 이적夷狄을 다스리지 않는 법인데, 융戎을 기록한 것은 오는 자를 거절하지 않고 가는 자를 쫓아가지 않은 것이다.”라고 풀이하였다.
은공隱公이 융戎과 잠潛 땅에서 회맹한 것은 그때 그런 사실이 있었다.
그때 그런 사실이 〈엄연히〉 있었는데, 공자孔子가 적지 않은 것이 옳겠는가?
그러므로 《춘추春秋》의 글은 그 체體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포폄褒貶을 보이기 위하여 적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의 일을 기록하기 위하여 적어서 역사를 기록하는 체體를 갖출 뿐이요, 그 속에는 반드시 포폄褒貶하고 여탈予奪하는 뜻을 담지 않은 것이다.
은공隱公이 융戎과 잠潛 땅에서 회합한 것은 포폄하고 여탈한 뜻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는데, 하휴何休는 반드시 〈포폄의 뜻을 가지고〉 말하려 하였다.
이 때문에 그 말이 망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왕자王者 중에 어찌 이적夷狄을 다스리지 않은 이가 있었던가?
‘왕자王者가 이적夷狄을 다스리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무사안일하고 싶어 하는 자의 말이다.
옛적에 이적夷狄을 다스린 방도에 대해서는 세상 군자들이 일찍이 논하였다.
무력을 써서 정벌을 한 이가 있었으니 은殷 고종高宗과 주周 문왕文王의 일이 바로 그것이고, 문덕文德을 닦아 화친和親을 한 이가 있었으니 한漢 문제文帝와 경제景帝의 일이 바로 그것이고, 거절하여 받아들이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가 서역西域을 사절하고 흉노匈奴를 물리친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 셋의 경우는 혹은 제재하기도 하고 혹은 제재하지 않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두들 우리 중국의 편의에 맞추기 위하여 이적夷狄을 불편한 곳에 두었으니, 이것은 그들을 다스리는 큰 요령이었다.
그런데 지금 말한 바와 같이 ‘오는 자를 반드시 거절하지 않는다.’면 이는 광무제光武帝가 서역西域을 사절하여 중국의 인민을 휴식시킨 것이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가는 자를 반드시 쫓아가지 않는다.’면 고종高宗과 문왕文王이 복종하지 않은 자를 치고 배반하고 오지 않은 자를 토벌한 것은 모두 잘못한 일이 된 셈이다.
하휴何休의 말을 중국中國이 강성强盛하고 이적夷狄이 포횡暴橫할 때에 실행하면 장차 도적을 길러서 자손에게 걱정을 끼치게 될 것이고, 중국中國이 갓 안정되어 휴식을 취하며 보양할 때에 실행하면 이적夷狄에게 사역되어 계속 노역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두 경우엔 하휴何休의 말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 옳다.
듣건대, 성인聖人은 이적夷狄에 대하여 내가 그들을 오게 하면 오고, 가려고 하는 자가 있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으며, 내가 그들을 가게 하면 가고, 오려고 하는 자가 있어도 또한 마음대로 올 수 없다.
이 때문에 그들을 늦추기도 하고 죄기도 하며, 오게도 하고 물러가게도 하는 것이 모두 나에게 달려 있거늘, 하휴何休는 그들이 스스로 오고 스스로 가도록 맡겨두려는 것인가?
하휴何休의 학문을 전공하는 자가 말하기를 “공자孔子는 《춘추春秋》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은공隱公과 환공桓公 시대에서 시작하였으니, 원대한 계략을 세울 겨를이 없었다.
그러므로 진晉나라가 하양夏陽을 멸한 사실을 먼저 적고 초楚나라가 곡穀나라와 등鄧나라를 멸한 사실을 끝에 적었다.”고 하였다.
곡穀나라와 등鄧나라를 멸한 사실이 《춘추春秋》에 적히지 않은 것은 곧 초楚나라를 통과하지 못한 관계로 보고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사 성인이 이적夷狄과 교통하고 싶지 않았다면 비록 이르려고 하는 자가 있어도 오히려 이를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나는 “《춘추春秋》에서 은공隱公이 융戎과 잠潛 땅에서 회합한 일을 적은 것은 바로 기사체記事體이니, 하휴何休의 말은 망령스런 것”이라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