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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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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5. 춘신군
황헐黃歇승상丞相으로 초왕楚王(考烈王)을 보필할 때에 에게 아들이 없는 것을 걱정하여 자기 아들을 몰래 그 후사後嗣로 삼았다.
설령 주영朱英의 말을 들어 이원李園을 죽이고 마침내 나라의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또한 장차 큰 재화災禍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何以言之
왜 그렇게 말하는가?
秦楚立國 僅千歲矣언만 無功於民而獲罪於天하니 니라
나라와 나라는 나라를 세운 지 천 년이 되었지만 백성에게는 공이 없고 하늘에는 죄를 얻었으므로, 하늘이 여불위呂不韋황헐黃歇로써 몰래 그 후사後嗣를 어지럽혀 모두 망하게 하였다.
豈區區朱英所能爲哉
어찌 구구한 주영朱英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不然이면 以黃歇之智 而朱英之言 獨無槪於中乎
그렇지 않으면 황헐黃歇의 지혜로써 주영朱英의 말이 유독 마음에 걸리지 않았겠는가?
역주
역주1 春申君 : 春申君은 곧 전국시대 楚나라 大臣이었던 黃歇(?~B.C. 238)이다. 頃襄王 때에 秦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昭王에게 글을 올려 秦나라의 군사를 퇴각시키도록 설득하였고, 또 秦나라에 들어가 기교한 계략을 써서 볼모로 잡혀 있던 楚나라 太子 完(考烈王)을 구해서 楚나라로 돌아오게 하였다. 太子 完이 즉위하자, 그는 정승에 임명되고 淮北 12縣에 봉해졌다가 다시 江東에 봉해져 吳 땅을 都邑으로 삼았다.
문하에 식객이 3천 명이나 되었고, 전국시대 ‘四公子’의 하나이다. 재임 중에는 군사를 발동하여 趙나라를 구원하여 秦나라 군사를 물리쳐서 邯鄲의 포위를 풀었고, 한 차례에 縱約長이 되니, 楚나라의 형세가 다시 떨쳤다. 뒤에 또 군사를 발동하여 魯나라를 멸하고, 荀卿을 蘇陵令으로 삼았다. 뒤에 考烈王이 죽자, 그는 內訌 중에 피살되었다.
이 글은 《古史》 卷48 〈春申君列傳 제25〉에서 篇目으로 취한 것이다.
역주2 黃歇相楚王 : 《史記》 〈春申君列傳〉에 “黃歇이 楚나라에 이른 지 석 달 만에 頃襄王이 죽고 太子 完이 즉위하니, 이가 바로 考烈王이다. 考烈王 원년에 黃歇을 丞相으로 삼고 春申君에 봉하여 淮北의 땅 12縣을 하사하였다.”란 내용이 보인다.
역주3 患王無子……盜爲其後 : 《史記》 〈春申君列傳〉에 “李園은 春申君을 섬기기를 요구하여 그 舍人이 되었다.……이에 李園이 자기 여동생을 春申君에게 바쳐 春申君에게 총애를 받았다.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고 春申君은 그녀를 내보내 楚王에게 가게 하니, 楚王이 그녀를 불러들여 총애하고 드디어 아들을 낳아 太子로 세웠다.……이가 바로 楚 幽王이다.”란 내용이 보이니, 이에 따르면 楚 考烈王의 아들 幽王은 실제 春申君과 李園의 여동생의 아들인 것이다.
역주4 雖使聽朱英殺李園……亦將不免大咎 : 《史記》 〈春申君列傳〉에 의하면, 朱英이 春申君에게 “李園을 죽이시오. 그렇지 않으면 李園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오.”라고 하였으나, 春申君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가 뒤에 과연 李園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역주5 天以不韋歇 陰亂其嗣而與之俱斃 : 《史記》 〈呂不韋列傳〉에 의하면, 呂不韋(?~B.C. 235)는 戰國 말기 秦나라 丞相으로 있을 때에 邯鄲의 여자를 소실로 삼아 임신하자, 秦 莊襄王에게 바쳐 아들 政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秦 始皇이었다고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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