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何以言之
立國 僅千歲矣언만 無功於民而獲罪於天하니 니라
豈區區주영朱英所能爲哉
不然이면황헐黃歇之智주영朱英之言 獨無槪於中乎


15. 춘신군
황헐黃歇승상丞相으로 초왕楚王(考烈王)을 보필할 때에 에게 아들이 없는 것을 걱정하여 자기 아들을 몰래 그 후사後嗣로 삼았다.
설령 주영朱英의 말을 들어 이원李園을 죽이고 마침내 나라의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또한 장차 큰 재화災禍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나라와 나라는 나라를 세운 지 천 년이 되었지만 백성에게는 공이 없고 하늘에는 죄를 얻었으므로, 하늘이 여불위呂不韋황헐黃歇로써 몰래 그 후사後嗣를 어지럽혀 모두 망하게 하였다.
어찌 구구한 주영朱英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황헐黃歇의 지혜로써 주영朱英의 말이 유독 마음에 걸리지 않았겠는가?


역주
역주1 春申君 : 春申君은 곧 전국시대 楚나라 大臣이었던 黃歇(?~B.C. 238)이다. 頃襄王 때에 秦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昭王에게 글을 올려 秦나라의 군사를 퇴각시키도록 설득하였고, 또 秦나라에 들어가 기교한 계략을 써서 볼모로 잡혀 있던 楚나라 太子 完(考烈王)을 구해서 楚나라로 돌아오게 하였다. 太子 完이 즉위하자, 그는 정승에 임명되고 淮北 12縣에 봉해졌다가 다시 江東에 봉해져 吳 땅을 都邑으로 삼았다.
문하에 식객이 3천 명이나 되었고, 전국시대 ‘四公子’의 하나이다. 재임 중에는 군사를 발동하여 趙나라를 구원하여 秦나라 군사를 물리쳐서 邯鄲의 포위를 풀었고, 한 차례에 縱約長이 되니, 楚나라의 형세가 다시 떨쳤다. 뒤에 또 군사를 발동하여 魯나라를 멸하고, 荀卿을 蘇陵令으로 삼았다. 뒤에 考烈王이 죽자, 그는 內訌 중에 피살되었다.
이 글은 《古史》 卷48 〈春申君列傳 제25〉에서 篇目으로 취한 것이다.
역주2 黃歇相楚王 : 《史記》 〈春申君列傳〉에 “黃歇이 楚나라에 이른 지 석 달 만에 頃襄王이 죽고 太子 完이 즉위하니, 이가 바로 考烈王이다. 考烈王 원년에 黃歇을 丞相으로 삼고 春申君에 봉하여 淮北의 땅 12縣을 하사하였다.”란 내용이 보인다.
역주3 患王無子……盜爲其後 : 《史記》 〈春申君列傳〉에 “李園은 春申君을 섬기기를 요구하여 그 舍人이 되었다.……이에 李園이 자기 여동생을 春申君에게 바쳐 春申君에게 총애를 받았다.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고 春申君은 그녀를 내보내 楚王에게 가게 하니, 楚王이 그녀를 불러들여 총애하고 드디어 아들을 낳아 太子로 세웠다.……이가 바로 楚 幽王이다.”란 내용이 보이니, 이에 따르면 楚 考烈王의 아들 幽王은 실제 春申君과 李園의 여동생의 아들인 것이다.
역주4 雖使聽朱英殺李園……亦將不免大咎 : 《史記》 〈春申君列傳〉에 의하면, 朱英이 春申君에게 “李園을 죽이시오. 그렇지 않으면 李園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오.”라고 하였으나, 春申君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가 뒤에 과연 李園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역주5 天以不韋歇 陰亂其嗣而與之俱斃 : 《史記》 〈呂不韋列傳〉에 의하면, 呂不韋(?~B.C. 235)는 戰國 말기 秦나라 丞相으로 있을 때에 邯鄲의 여자를 소실로 삼아 임신하자, 秦 莊襄王에게 바쳐 아들 政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秦 始皇이었다고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