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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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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몽염
蒙氏爲秦呑滅諸侯하니 其所殘暴多矣니라
몽씨蒙氏나라를 위하여 제후諸侯탄멸呑滅하였으니, 잔포殘暴한 일을 너무도 많이 저질렀다.
子孫以無罪戮死하니 此天意也니라
자손子孫들이 죄 없이 죽었으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었다.
몽념蒙恬장성長城을 쌓는 일로 민력民力을 고갈시키고 지맥地脈을 끊었으니 응당 죽을 것을 스스로 알았고, 몽의蒙毅충신忠信으로 임금을 섬기어 죄가 없이 죽어도 유감이 없을 것이라 스스로 다짐하였고, 아부로 영합迎合한 그 허물이 이사李斯에 버금갔다.
此其所以不免者哉인저
이 때문에 그가 죽음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나 하니 使毅尙從이면 則趙高李斯廢適之謀 殆不能發이니라
그러나 시황始皇낭야瑯琊에서 병이 났을 때 몽의蒙毅로 하여금 돌아가 산천山川에 기도하게 하고, 사구沙丘에 이르러서 서거하였으니, 가사 몽의蒙毅가 계속 시황始皇을 따랐더라면 조고趙高이사李斯적자適子를 폐지할 음모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嗚呼
아!
天之所廢 人謀固無所復施耶
하늘이 폐지한 바에 사람의 모책이 본래 다시 베풀어질 수 없었던 것일까?
역주
역주1 蒙恬 : 蒙恬(?~B.C. 210)의 조상은 본래 齊나라 사람이었는데, 그의 조부 蒙驁가 비로소 秦 昭王을 섬겨 벼슬이 上卿에 이르렀고, 뒤에 장수가 되어 여러 번 韓나라‧趙나라‧魏나라를 쳐서 전공을 세웠다.
蒙恬은 처음에 獄官이 되었다가 뒤에 장수가 되었다. 始皇 26년에 齊나라를 쳐서 크게 격파하였고, 秦나라가 6國을 통일한 뒤에는 匈奴族을 격퇴하여 河南을 수복하였으며, 아울러 長城을 쌓았다. 뒤에 趙高가 二世를 세우고 詔書를 위조해 蒙恬을 핍박하여 자살하게 하였다.
이 글은 《古史》 卷57 〈蒙恬列傳 제34〉에서 篇目으로 취한 것이다.
역주2 恬以長城之役……自知當死 : 《史記》 〈蒙恬列傳〉에 “〈二世皇帝가 보낸 使者가 이르자〉 蒙恬은 크게 한숨을 쉬며 말하기를 ‘나는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과실 없이 죽어야 하는가?’라고 하고, 조금 후에 서서히 말하기를 ‘나의 죄는 죽을죄에 해당한다. 城塹이 臨洮에서 시작하여 遼東까지 뻗어 1만여 리나 되니, 그중에는 地脈을 끊은 곳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바로 나의 죄다.’라고 하고 이에 약을 먹고 자살하였다.”란 내용이 보인다.
역주3 毅以忠信事上 自許無罪死而不厭 : 蒙毅는 蒙恬의 아우로, 형과 함께 秦 始皇이 총애하고 신임하는 重臣이 되었다. 《史記》 〈蒙恬列傳〉에 “이때에 蒙恬의 위엄이 匈奴에 떨쳐졌다. 始皇은 蒙氏를 매우 존중하고 총애하며, 신임하고 어질게 여겼으며, 蒙毅를 친근히 하여 직위가 上卿에 이르렀다. 나갈 때에는 그들은 始皇을 모시고 수레를 타고, 들어오면 始皇을 앞에서 모셨다. 蒙恬은 바깥일을 맡고 蒙毅는 항상 안에서 모사를 하여 忠信하기로 이름이 났다. 그러므로 아무리 장수나 재상이라 하더라도 감히 그들과 다투지 못했다.”란 내용이 보인다.
역주4 始皇病於瑯琊……至於沙丘而崩 : 《史記》 〈蒙恬列傳〉에 “始皇 37년 겨울에 〈始皇이〉 會稽에 나가 놀고 해상을 거쳐 북쪽의 瑯琊로 향하다가 도중에 병이 나서 蒙毅로 하여금 돌아가 山川에 기도하게 하였는데 아직 돌아오지 못했고, 始皇은 沙丘에 이르러 서거하였는데 비밀에 붙여서 여러 신하들은 〈始皇이 서거한 것을〉 알지 못하였다.”란 내용이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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