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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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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1. 유개劉愷정홍丁鴻은 누가 어진가
不如子瞻이나 而法度 却正當이니라
〈문장이〉 자첨子瞻(蘇軾)만은 못하지만, 법도法度는 정당하다.
天下之讓三 有不若之讓하며 有相援之讓하며 有無故之讓이니라
천하天下의 겸양 세 종류에 〈재덕才德이〉 남만 못해서 부리는 겸양이 있고, 서로 끌어주어야 할 처지에 부리는 겸양이 있고, 아무런 이유 없이 부리는 겸양이 있다.
天下之大功大善也니라
겸양의 명성은 천하의 대공大功이요 대선大善이다.
然而至於無故之讓 則聖人深疾而排之하여 以爲此姦人之所以盜名於暗世者也니라
그러나 아무런 이유 없이 부리는 겸양만은 성인聖人이 몹시 미워하고 〈아울러〉 배제하여 ‘이는 간사한 소인이 〈정치가〉 암흑한 세상에서 이름을 훔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昔者 宣子穆子中心誠有愧於彼二人者 是不若之讓也니라
옛날에 공족公族 목자穆子한기韓起에게 양보한 일과 범선자范宣子지백智伯에게 양보한 일은 선자宣子목자穆子의 마음속에 참으로 저 두 사람(韓起와 지백智伯)에게 부끄러움이 있었던 것이니, 이것은 ‘〈재덕才德이〉 남만 못해서 부리는 겸양’이다.
하니 夫皐陶之不能當禹之任하고 朱虎熊羆之不能辦益之事
임금이 에게 명하자 고요皐陶에게 양보하고, 에게 명하자 에게 양보하였으니, 고요皐陶의 임무를 감당할 수 없고, 의 일을 해낼 수 없는 것은 또한 분명한 일이다.
이나 猶讓焉者 是所謂相援之讓也니라
그러나 오히려 겸양을 부린 것은 바로 이른바 ‘서로 끌어주어야 할 처지에 부리는 겸양’이다.
夫使天下之人 皆讓其所不及이면 則賢材在位하여하고 皆能以相以類升하여 而小人不能間이니 此二者 天下之大善也 至於無故之讓 則天下之大不善也니라
가사 온 천하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 못한 사람에게 양보한다면 어진 인재가 직위에 있으므로 어질지 못한 사람이 다투지 않게 되고, 모두 잘 이끌어준다면 어진 사람들이 다같이 진출하므로 소인이 이간질할 수 없게 되니, 이 두 가지는 천하의 대선大善이고, 아무런 이유 없이 양보하는 것은 천하의 큰 불선不善이다.
동한東漢 말기에 정홍丁鴻등표鄧彪유개劉愷 이 세 사람은 부친의 관작을 당연히 이어받아야 할 것인데도 그 아우에게 양보하였으니, 선군先君(先親)의 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적서嫡庶의 구별이 있었던 것도 아닌 처지에서 한갓 양보만을 하여 스스로 세속에서 높은 체하였으니, 세상의 군자들이 따라서 기롱하였다.
이나 此三人者之中에도 猶有優劣焉이니라
그러나 이 세 사람 중에도 오히려 우열은 있다.
劉鄧 讓而不反하여 以遂其非하고 丁鴻 讓而不終하고 하니 此鴻之所以爲賢於劉鄧也니라
유개劉愷등표鄧彪는 끝까지 양보하여 그 잘못을 완수하였고, 정홍丁鴻은 양보하였지만 끝까지 하지 않고 그 친구인 포준鮑駿의 말을 듣고 결국은 봉지封地로 돌아왔으니, 이것이 바로 정홍丁鴻유개劉愷등표鄧彪보다 나은 이유이다.
且夫聞天下之讓하고 而欲竊取其名以自高其身하여 以邀望天下之大利者 劉愷之心也 聞天下之讓하고 而竊慕之하되 而不知其不同하여 以陷於不義者 丁鴻之心也니라
또한 천하의 겸양을 듣고 그 이름을 슬쩍 훔쳐서 몸을 높여서 천하의 큰 이익을 바라려고 한 것은 유개劉愷의 심성이었고, 천하의 겸양을 듣고 슬며시 사모하되 그와 동일하지 않은 것을 알지 못하여 불의에 빠진 것은 정홍丁鴻의 심성이었다.
而定其罪이니 此眞僞之辨也 賢愚可以見矣니라
이 두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그 죄를 정한다면 정홍丁鴻은 용서받을 만하고 유개劉愷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니, 이는 진실과 거짓의 분변이라, 어짊과 어리석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범엽范曄이 말하기를 “태백太伯(泰伯)과 백이伯夷는 애초에 겸양의 이름을 구한 적이 없었다.
이어늘 末世徇其名而昧其致하니 則詭激之行興矣니라
그러므로 태백太伯을 ‘지극한 덕성을 갖춘 사람’이라 칭찬하였고, 백이伯夷를 ‘현인賢人’이라 칭찬하였거늘, 말세(후대) 사람들은 그 이름만 흠모하려 하고 〈그 겸양의 깊은〉 정치情致에는 밝지 못하였으니, 궤격詭激한 행동이 생겼다.
등표鄧彪유개劉愷 같은 이는 그 아우에게 양보함으로써 의리를 취하여 아우는 봉작封爵이 아닌 땅을 받게 하고 자기들은 아름다운 이름을 받았으니, 너무 잘못한 것이 아닌가?
夫君子之立言 非以苟顯其理 將以啓天下之 立行 非以苟顯其身이라 將以敎天下之方動者 言行之所開塞 可無愼乎
군자君子가 〈저술 등을 통하여〉 말을 남기는 것은 구차하게 그 이치를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라 장차 천하에 깨우치지 못한 자들을 계발하기 위한 것이고, 양호한 행동을 수립하는 것은 구차하게 그 몸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차 천하에 행동할 일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니, 말과 행동에 영향이 미치게 하는 일을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丁鴻之心 忠愛
정홍丁鴻의 마음은 충애忠愛를 간직하였다.
하니 異乎之徇名者也니라
그러므로 마침내 깨달아 정의를 따를 수 있었으니, 두 사람(鄧彪와 유개劉愷)이 이름만을 따른 것과는 사뭇 달랐다.
아!
世之邪僻之人 苟冒天下之美名하고 하되 自以爲人莫吾察也 而不知君子之論 有以見之니라
세상에서 간사하고 편벽한 사람들은 천하의 아름다운 이름을 덮어쓰고 천하의 큰 이익을 탐하면서 ‘남들은 나의 마음속을 관찰하지 못한다.’고 여기지만, 군자君子이 그것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인댄 不可以不貴君子之論也니라
그러므로 천하를 다스리려고 한다면 군자君子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역주
역주1 : 〈劉愷丁鴻孰賢〉은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 권11에는 〈秘閣試論 五首〉의 하나인 〈劉愷丁鴻孰賢論〉으로 되어 있다.
역주2 讓之爲名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讓者’로 되어 있다.
역주3 公族穆子之讓韓起 : 公族은 公族大夫이고, 穆子는 춘추시대 晉나라 韓厥의 長子인 韓無忌의 시호이다. 《春秋左氏傳》 襄公 7년에 “晉나라 韓獻子(韓厥)가 은퇴를 요청하였는데, 〈그의 아들로〉 公族大夫인 穆子는 난치병에 걸려 있었으므로 그를 세워 〈부친 대신 卿으로 삼으려고 하자〉 사양하기를 ‘저(無忌)는 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아우 起를 세우십시오.……庚戌日에 宣子(韓起)가 임금을 뵙게 하고 韓獻子는 마침내 은퇴하였다. 晉侯는 韓無忌를 어진 사람이라 하여 公族大夫를 관장하게 하였다.[晉韓獻子告老 公族穆子有廢疾 將立之 辭曰 無忌不才 讓其可乎 請立起也……庚戌 使宣子朝 遂老 晉侯謂韓無忌仁 使掌公族大夫]”란 내용이 보인다.
역주4 范宣子之讓智伯 : 《晉書》 〈范宣傳〉에 의하면 “范宣은 晉나라 陳留 사람으로 자는 宣子이다. 소시에 隱遁을 숭상한데다가 많은 책들을 널리 섭렵하여 박식하였고, 그림도 잘 그렸다. 나라에서 太學博士와 散騎郞으로 불렀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집이 가난하여 식량이 자주 떨었으나 항상 誦讀을 業으로 삼았으므로 譙國의 戴逵 등이 그 풍문을 듣고 흠모하여 찾아오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智伯은 춘추시대 晉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瑤, 또는 荀瑤라고도 한다. 《國語》 〈晉語〉에 “智宣子가 장차 瑤를 後嗣로 삼으려고 하자, 智果가 말하기를 ‘宵만 못합니다.’ 하였다. 宣子가 말하기를 ‘宵는 포악하다.’고 하니, 智果가 대답하기를 ‘宵의 포악은 얼굴에 있고 瑤의 포악은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이 포악하면 나라를 패망시키고 얼굴이 포악하면 해치지 않습니다.……만일 瑤를 세운다면 智氏의 종족이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宣子는 듣지 않았다.[智宣子 將以瑤爲後 智果曰 不如宵也 宣子曰宵也狠 對曰 宵之狠在面 瑤之狠在心 心狠敗國 面狠不害……若果立瑤也 知宗必滅 弗聽]”고 하였는데, 과연 3년 만에 智氏가 망하였다고 한다.
智宣子는 晉나라 卿인 荀躒의 아들 甲이고, 瑤는 宣子의 아들인 襄子 智伯이며, 智果는 智氏의 종족이고 宵는 宣子의 庶子이다. 襄子는 智伯의 시호이다.
역주5 舜之命禹也……讓於朱虎熊羆 : 《書經》 〈虞書 舜典〉에 보인다.
역주6 亦明矣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亦已明矣’로 되어 있다.
역주7 不肖者不爭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賢不肖不爭’으로 되어 있다.
역주8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援’으로 되어 있다.
역주9 賢者 : 《欒城應詔集》에는 ‘君子’로 되어 있다.
역주10 東漢之衰……以自高於世俗 : 丁鴻(?~94)은 《後漢書》 〈丁鴻傳〉에 의하면 “綝의 아들이다. 전에 綝이 世祖를 따라 征伐할 때에 鴻은 아우 盛과 어렵게 살면서 그를 가엾게 여겼다. 부친이 죽자 鴻은 당연히 襲封해야 할 官爵을 아우 盛에게 양보하게 해달라고 나라에 글을 올렸으나 答報가 없자, 부친의 葬禮를 마치고 나서 곧 喪服을 廬幕에 걸어두고 도망하였고, 뒤에 侍中, 射聲校尉, 魯陽鄕侯, 長亭鄕侯, 太常, 司徒 등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鄧彪는 《後漢書》 〈鄧彪傳〉에 의하면 “자는 知伯이고, 太傅 鄧禹의 宗親이었다. 부친 鄧邯이 中興 초에 공훈으로 鄳侯에 봉해지고 벼슬은 渤海太守에 이르렀다.…… 부친이 죽자, 鄧彪는 부친의 官爵을 異母弟인 荊과 鳳에게 양보하니 顯宗은 그의 절의를 높이 평하고 조서를 내려 허락하였다.”고 한다.
劉愷는 《後漢書》 〈劉愷傳〉에 의하면 “劉般의 아들로 자는 伯豫이다. 그는 襲封해야 할 부친의 官爵을 아우 憲에게 양보하고 도망함으로써 襲封을 피하였고, 뒤에 侍中, 長水校尉, 司空, 司徒 등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역주11 聽其友人鮑駿之言而卒就國 : 《後漢書》 〈丁鴻傳〉에 “鴻은 전에 九江 사람 鮑駿과 함께 桓榮을 섬기며 매우 친하게 지냈었다. 鴻은 封爵을 도피할 때에 駿과 東海에서 만났으나 거짓으로 미친 체하며 駿을 모른 척하고 지나가니, 駿이 鴻을 멈추어 세우고 꾸짖기를 ‘옛날 伯夷와 吳札은 亂世에 權道로 행동했기 때문에 그 뜻을 펼 수 있었다. 春秋의 의리는 家事 때문에 王事를 폐지하지 않는다. 지금 자네는 형제의 사적인 은혜를 가지고 멸하지 못할 부친의 基業을 끊으니,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자, 鴻은 感悟하여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고 도로 封地로 와서 문을 열어 제자들을 가르쳤다.[鴻初與九江人鮑駿 同事桓榮 甚相友善 及鴻亡封 與駿遇於東海 陽狂不識駿 駿乃止而讓之曰 昔伯夷吳札 亂世權行 故得申其志耳 春秋之義 不以家事廢王事 今子以兄弟私恩而絶父不滅之基 可謂智乎 鴻感悟垂涕歎息 乃還就國 開門敎授]”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12 推其二心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推其心’으로 되어 있다.
역주13 鴻在可恕 而愷爲可戮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愷在可戮 而鴻爲可恕’로 되어 있다.
역주14 太伯伯夷 未始有其讓也 : 太伯[泰伯]과 伯夷는 천성이 淸潔하여 超然히 나라를 떠났고, 일찍이 일부러 겸양의 이름을 구한 적은 없었다는 말이다.
역주15 太伯伯夷……伯夷稱賢人 : 范曄은 《後漢書》 〈丁鴻傳〉의 論頭에서 孔子가 말씀한 “泰伯이야말로 지극한 덕성을 갖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 번이나 천하를 사양했어도 사람들이 그 덕을 찾아서 칭찬할 수 없게 하였구나![泰伯三以天下讓 民無德而稱焉]”(《論語》 〈泰伯〉)와, 맹자가 말씀한 “伯夷의 風度를 들을 경우, 완악한 사람은 청렴해지고, 나약한 사람은 뜻을 세우게 된다.[聞伯夷之風者 貪夫廉 懦夫有立志]”(《孟子》 〈萬章 下〉)를 인용하고 있다. ‘세 번[三]’이란 것에 대하여 鄭玄은 “泰伯은 周 太王의 長子요, 次子는 仲雍, 그 다음은 季歷이었는데, 太王이 季歷의 어짊을 지켜봤고, 그가 또 文王을 낳아 聖人의 儀表가 있기 때문에 季歷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하였지만 아직 임명하지 않았다. 太王의 병이 위중하자, 泰伯은 그 틈을 타서 吳越로 藥을 캐러 가버렸다. 太王이 죽었지만 돌아오지 않아 季歷이 喪主가 되었으니 이것이 첫 번째 사양이고, 季歷은 喪次에 달려갔으나 泰伯은 달려가지 않았으니 이것이 두 번째 사양이고, 탈상한 뒤에는 드디어 머리털을 자르고 문신을 하였으니 이것이 세 번째 사양이다. 세 번 사양한 미덕은 모두 가려져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덕을 칭찬할 수 없었다.[泰伯 周太王之長子 次子仲雍 次子季歷 太王見季歷賢 又生文王有聖人表 故欲立之而未有命 太王疾 泰伯因適吳越採藥 太王殁而不返 季歷爲喪主 一讓也 季歷赴之 不來奔喪 二讓也 免喪之後 遂斷髮文身 三讓也 三讓之美 皆蔽隱不著 故人無德而稱焉]”고 해석하고, 朱子(朱熹)는 “ ‘세 번 사양했다’는 것은 굳이 사양함을 말한 것이다.[三讓 謂固遜也]”라고 해석하였다.
역주16 若夫鄧彪劉愷……不已過乎 : 鄧彪는 異母弟인 荊과 鳳에게 관작을 양보하고, 劉愷는 아우 憲에게 관작을 양보하니 皇帝가 다 허락하였다. 아우가 襲爵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러므로 “아우로 하여금 封爵의 땅이 아닌 것을 받게 하여 鄧彪와 劉愷 그들만은 아름다운 이름을 받고 아우는 불의에 빠뜨렸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若夫’가 范曄의 論에는 ‘至夫’로 되어 있고, ‘已受其名 不已過乎’가 ‘已厚其名 於義不亦薄乎’로 되어 있다.
역주17 未悟者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方悟者’로 되어 있다.
역주18 存乎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主乎’로 되어 있다.
역주19 故能終悟而從義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何其終悟而從義也’로 되어 있다.
역주20 二子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數人’으로 되어 있다.
역주21 嗚呼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嗟夫’로 되어 있다.
역주22 以僥倖天下之大利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盜天下之大利’로 되어 있다.
역주23 爲天下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爲國者’로 되어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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