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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1)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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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릴 일을 두 번째 논한 차자箚子
子由所論回河 已而一一皆驗이니라
자유子由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에 대해 논한 것들은 뒤에 낱낱이 모두 징험되었다.
이 요즘 듣자옵건대 “조정朝廷에서 의논하여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은 중지하였으나 내년에 응당 역병役兵을 써서 인공으로 감수하減水河입해하入海河를 개척하여 물을 분산시킬 것이다.”라고 합니다.
臣以爲天下財賦匱竭하고 河朔災傷之後 民力未復하니 未堪此役이리이다
은 생각하옵건대 전국의 재부財賦궤갈匱竭되고, 하삭河朔재상災傷을 입은 뒤에 민력民力이 아직 회복되지 못하였으니 이와 같은 역사役事를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고 旣而采察衆議하나이다
은 그 일의 온당치 못함에 대하여 주언奏言하였고, 따라서 여러 사람들의 의론도 수집하여 알아보았습니다.
聞 河北轉運使謝卿材到闕하여 倡言於朝曰
듣자옵건대, 하북전운사河北轉運使 사경재謝卿材대궐大闕에 이르러 조정朝廷에서 창언倡言하기를
黃河自 乘高注下하니 水勢奔快하고
황하黃河소오소小吳埽결구決口로부터 높은 곳을 타고 낮은 곳으로 쏟아지니 수세水勢분쾌奔快하고,
上流隄防하니 無復이요
상류上流제방隄防을 쌓았으니 다시는 하수河水제방隄防을 헐고 나가서 범람하는 재변이 없을 것이고,
而下流湍駛하여 行於地中하니 日益深浚이니이다
하류下流는 빠르게 내달려 땅속으로 흘러가니 날마다 더욱 땅속으로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朝廷若以河事付臣이면 臣請不役一夫하고 不費一金하고도 十年之間 保無河患이라하니
조정朝廷에서 만일 황하黃河를 다스리는 일을 에게 부여한다면 은 청컨대 인부 한 명도 부역시키지 않고 돈 한 푼도 허비하지 않고도 10년 동안 황하의 화환禍患이 발생하는 일이 없기를 보장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大臣以其 하고 而使王孝先兪瑾張景先三人으로 重畫回河之計한대
대신大臣은 그의 의견이 자기와 다르기 때문에 폄출貶黜하여 본래 맡았던 하북전운사河北轉運使의 위치로 돌려보내고, 왕효선王孝先유근兪瑾장경선張景先 세 사람으로 하여금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릴 계획을 다시 짜게 하였습니다.
三人 雖言其便이나 而亦知其難成이라
이 세 사람은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에 을 노릴 수 있는 이로운 점이 있는지라, 비록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것이 유리한 일이라고 주장은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을 성공시키기는 어려울 것임을 알았습니다.
於議狀之末 復言若將來河勢變移라도 乞免修河官吏責罰이라하니 都下洶洶하여 傳笑以爲口實이라하나이다
그러므로 의장議狀의 끝에 다시 말하기를 “만일 장래에 하세河勢변이變移하더라도 황하黃河수치修治관리官吏책벌責罰을 면해주십시오.”라고 적어서 면책조건을 못박아두니, 경성京城의 여론이 떠들썩하여 그것을 전파시키며 웃음거리로 삼는다고 합니다.
蓋回河之非 斷可知矣리이다
그러니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이 잘못이라는 것을 단연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나 近日復聞 三省 如云若河流不復故道 終爲河朔之患이라하니 하여 不知此說信否니이다
그러나 요즘 다시 듣자옵건대, 내비內批를 내려 삼성三省에 교부하기를 “만일 황하黃河가 옛 물길을 회복하지 못하면 끝내는 하삭河朔화환禍患이 된다.”고 하셨다 하온데, 외정外廷소원疏遠하므로 이 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이나 衆心憂懼어늘 深恐群臣하고 不敢이니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우구憂懼하고 있는데, 뭇 신하들이 내비內批로 말미암아 사태의 진전만 관망하고 감히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의 득실에 대해서는 바른말을 하지 않을까 깊이 염려하옵니다.
臣職在財賦하여 憂責至深하니 不敢畏避誅戮하고 願畢陳其說이리이다
재부財賦를 관장하는 직책에 있어 책임이 중대하므로 감히 주륙誅戮을 피하지 않고 말씀을 다 드리기를 원하옵니다.
方今回河之策 中外講之熟矣
지금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계책에 대해서는 중외中外에서 난숙하고 주밀하게 강구하였습니다.
雖大臣固執이라도 亦心知其非 無以藉口矣리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대신大臣이라 하더라도 역시 마음속으로는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것을 구실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獨有 事係安危하여 可以竦動上下 伸其이리이다
다만 변방邊防에 대한 일설一說은 그 일이 안위安危에 관계되어 상하上下송동竦動시킬 수 있으므로 상리常理에 맞지 않는 그 말에 대해 해명할 것입니다.
陛下深居九重하시니 群言不得盡達이라
폐하陛下께서는 깊숙이 구중궁궐九重宮闕에 계시므로 각종 의론이 모두 상달上達될 수 없습니다.
是以 遲遲不決耳니이다
이 때문에 일이 신속하게 결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시니 自是以來 河朔不見兵革 幾百年矣니이다
옛날 진종황제眞宗皇帝께서는 직접 전연澶淵에 가셔서 거란契丹을 격파하고 그들의 패망敗亡을 틈타 그들과 화친을 맺었으니, 이후로 하삭河朔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을 보지 못한 지 거의 1백 년이 되었습니다.
陛下試思之하시면 此豈獨黃河之功哉리잇가
폐하陛下께서 생각해보시면 이것이 어찌 유독 황하黃河 덕분이었겠습니까?
黃河非不在東이요以來 非獨河南無虜憂 河北亦自無兵患이니이다
옛날 석진石晉이 패할 때에는 황하黃河가 동쪽에 흐르고 있었지만 패하였고, 상부祥符 이래以來로는 하남河南에만 노우虜憂가 없을 뿐 아니라 하북河北에도 스스로 병환兵患이 없었습니다.
由此觀之컨대 夷狄 顧德政何如耳 未聞逆天地之性하고 引趨下之河하여 升積高之地하며 興莫大之役하여 冀不可成之功하고 以爲設險之計者也니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이적夷狄(契丹)과 결교結交한 것은 진종황제께서 베푼 인덕仁德의 정치의 영향임을 볼 수 있을 뿐이지, 천지天地 자연의 본성을 거역하고 낮은 지대로 흐르는 하수河水를 끌어서 높은 지대로 올리며, 막대한 역사를 일으켜 이룰 수 없는 공을 바라고 험지를 조성할 계책으로 삼았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昔李垂 號知河事어늘
옛날 이수李垂손민선孫民先 등은 황하黃河에 관한 일을 잘 알기로 이름이 났었는데,
嘗建言乞導河西行하여 復禹舊迹하고 以爲河水自西山北流하여 東赴海口 河北諸州 盡在河南이니
그들이 일찍이 건언建言하여 “황하黃河를 서쪽으로 흐르게 유도하여 구적舊迹을 회복함으로써 하수河水서산西山으로부터 북류北流하여 동쪽으로 해구海口에 치닫게 하면 하북河北제주諸州가 모두 하남河南에 있게 되니
平日契丹之憂 라하나이다
평소 거란契丹에 대한 걱정은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今者 天祚中國하여 不因人力하고 河自西行하니 正合이니이다
지금은 하늘이 중국中國에 복을 내리어 인력人力을 요하지 않고도 황하黃河가 스스로 서행西行하니 옛사람의 계책에 꼭 부합되었습니다.
自今以往으론 北岸決溢하여 漸及虜境이리이다
이후로는 북안北岸이 터져 넘쳐서 점점 노경虜境으로 황하가 옮겨갈 것입니다.
雖使異日河復北徙라도 則虜地日蹙하고 吾土日紓리니 其爲憂患 正在契丹耳언마는 而大臣過計 以爲中國之懼하고 遂欲罄竭民力하여 導河東流하니 其爲契丹謀則多 爲朝廷慮則疏矣니이다
비록 후일에 황하黃河를 다시 북쪽으로 옮겨가게 한다 하더라도 의 땅은 날마다 줄어들고 우리 토지는 날마다 늘어날 것이니, 그 우환憂患거리는 정작 거란契丹에 있을 뿐인데, 대신大臣의 잘못된 계책은 중국中國의 걱정거리로 삼고 드디어 민력民力을 총동원하여 황하黃河를 동쪽으로 흐르도록 유도하려고 하니, 거란契丹을 위한 모획謀劃 면에서는 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도 우리 조정朝廷을 위한 염려 면에서는 소홀하기 그지없습니다.
議者或謂河入虜境이면 彼或造舟爲梁하고 長驅南牧이리니 非國之利라하나 臣聞 契丹長技 在鞍馬 舟楫之利 固非所能이라하나이다
의논하는 자들은 더러 “황하黃河노경虜境에 들어가면 저들이 혹시 배를 만들어 다리를 놓고 말을 길이 휘몰아 남침南侵할 것이니 국가의 이익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은 듣건대 “거란契丹장기長技는 말의 안장을 얹는 일에 있고, 주즙舟楫을 만드는 것은 본디 그들의 장점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且跨河繫橋 當先兩岸이니 進築及伐木爲船 其功不細어늘 契丹物力寡弱하니 勢必不能이니이다
또한 하수河水를 넘어 다리를 놓는 것은 응당 먼저 양쪽 언덕에서 시작해야 하는 일이니, 들어가서 마두馬頭를 쌓고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드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거늘, 거란契丹물력物力과약寡弱하니 형편상 반드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就使能之라도 今兩界修築城柵 比舊小增이니 輒移文詰問하여 必毁而後已어늘 豈有坐視大役而不能出力止之乎잇가
가사 그 일을 한다손 치더라도 지금 양계兩界수축修築성책城柵이 예전에 비해 조금 증가되었으니, 즉시 이문移文하여 문책問責해서 반드시 헐어버리고야 말 일이거늘,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대역大役을 지켜만 보고 힘을 내어 중지시키지 못한단 말입니까?
假設虜中遂成此橋라도 黃河上流 盡在吾地하니 若沿河州郡 多作戰艦하고 養兵聚糧하여 順流而下 則長艘巨纜 可以一炬而盡이리이다
설령 노중虜中에서 드디어 이 다리를 놓는다 하더라도 황하黃河상류上流가 모두 우리 땅에 있으니, 만일 연하주군沿河州郡전함戰艦을 많이 제작함과 동시에 군사를 양성하고 군량을 모아서 하류河流를 따라 내려간다면 장소長艘 거람巨纜을 횃불 하나로 모조리 태워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彼將自止矣리이다
형세상 제한을 받고 있으니, 저들은 장차 스스로 중지할 것입니다.
臣竊怪 하되 而力陳此說하니 意其謀已出口 重於改過하고 而假此不測之憂하여 以取必於朝廷耳니이다
이 괴상히 여기는 것은, 원로대신元老大臣이 오랫동안 높은 관직을 맡아 수많은 일들을 겪었으면서도 이와 같은 말을 힘써 진술하니, 아마도 그들은 자기를 위해 내놓은 말이라, 허물을 고치는 일을 어렵게 여기고, 이와 같은 불측한 우환거리를 벌여서 반드시 조정에서 승인을 받으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不然이면 豈肯於天下困弊하고 河朔災傷之後 興數十萬夫하고 費數千萬하여 而爲萬無一成之功哉리잇가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천하가 곤폐困弊하고 하삭河朔재상災傷을 입은 뒤에 수십만의 인부를 동원하고 수천만의 물료物料를 허비하여 만에 하나도 성공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한단 말입니까?
旣興 勢不中止리이다
역사役事가 이미 일어났으니 형세상 중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有少無多 官不獨辦이요 必行리니 官出其一이면 民出數倍니이다
미리 산정된 물료物料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에서 단독으로 마련하지 못하고 반드시 정세正稅 외에 별도로 거두는 과배科配를 행할 것이니, 에서 1할을 내면 백성은 그 배수를 내게 될 것입니다.
公私費耗 必有不可勝言者矣니이다
그리하여 공사公私 간에 소비되는 수량이 반드시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입니다.
苟民力窮竭하니 事變之出 不可復知 饑餓相逼하니 必爲盜賊이리이다
민력民力궁갈窮竭하니 사변事變의 발생을 예측할 수 없고, 기아饑餓가 절박하니 반드시 도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昔秦築長城以備胡로되 城旣成而民叛이니이다
옛날 나라는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나 성이 이미 이루어지자 백성들이 이반하였습니다.
今欲回大河以設險하니 臣恐河不可回 而民勞變生이리니 니이다
지금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림으로써 험지險地를 조성하려고 하니, 황하黃河의 물길은 돌리지 못하고 백성이 노고를 견디지 못하여 변이 발생할까 두려우니, 황하黃河가 동쪽으로 흐르도록 유도함으로써 험지를 조성하려는 계책은 나라가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하려는 계책에 비하면 또한 하등을 차지할 것입니다.
異日雖欲悔之 不可得也니이다
후일에 비록 그것을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陛下數年以來 하되 如恐傷之시니이다
폐하陛下께서는 수년數年 이래로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되 행여 백성들이 불편하지나 않은가 늘 걱정하고 계십니다.
今河安流하고 契丹無變하니以擾之 非計之得也니이다
현재 황하黃河는 이미 순탄하게 흐르고 있고, 거란契丹은 변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으니, 억지로 화해禍害를 일으켜 시끄럽게 하는 것은 절대로 올바른 계책이 아닙니다.
臣願陛下斷之於心하여 罷此하고 留神察之하소서
그러므로 은 원하옵건대 폐하陛下께서는 마음으로부터 결단을 내리어 이와 같은 큰 역사役事를 파하고 유의해서 살피옵소서.
自河決小吳 於今九年이니 不爲不久矣니이다
황하黃河소오소小吳埽에서 터진 지 이제 9년이 흘렀으니 세월이 오래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란契丹공순恭順하여 조종祖宗을 섬기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陛下誠이면 姑復以三年觀之하소서
폐하陛下께서 참으로 대신大臣의 의견을 어기기가 곤란하시면 다시 3년 동안 지켜보시옵소서.
事久情見이니 大臣之言 與天下公議 可以坐而察也니이다
일은 오랜 시일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나는 법이니, 대신大臣의 말과 천하天下의 공론을 가만히 앉아서 살피실 수 있을 것입니다.
臣不勝區區憂國之誠하여 干犯斧鉞 死無所避니이다
은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금치 못하여 부월斧鉞을 범하는 일을 죽어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取進止하소서
소신의 건의에 대한 실행 여부를 결정하옵소서.
역주
역주1 再論回河箚子 : 본 차자는 元祐 3년(1088)에 쓴 것이다. 黃河가 宋朝에 자주 터졌다. 神宗 때에 와서 처음에는 大臣들이 黃河의 물길을 돌려 동쪽으로 흐르게 할 것을 전적으로 주장하다가, 뒤에는 神宗이 백성들의 노고를 안타깝게 여기어 물의 본성을 따라 北流하도록 놓아두었다. 哲宗이 즉위한 뒤에 黃河가 여전히 北流하고 있었으나 다만 孫村埽가 낮기 때문에 홍수가 이따금 동쪽으로 흐르자, 이에 黃河의 물길을 돌려서 동쪽으로 흐르게 하자는 의론이 재차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자 蘇轍은 백성들의 노고를 딱하게 생각하여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본성에 순응하여 서쪽으로 흐르는 대로 맡겨두자.”고 역설하고 있다.
역주2 朝廷議罷回河 : 元祐 3년(1088) 朝廷에서 일찍이 “黃河의 옛 물길을 회복하도록 하라.”는 詔書를 내렸다가 얼마 안 가서 그 詔書를 회수하였다.
역주3 來年當用役兵開河分水 : 《宋史》 〈河渠志 黃河〉에 의하면, 당시에 朝臣 王存‧胡宗愈 등은 비록 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은 주장하지 않았으나, 다만 “恩州‧魏州 이북으로부터 溏泊 이남 사이에서 별도로 黃河의 물길을 疏導하여 바다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을 찾아볼 것이지, 오로지 孫村만을 주장할 필요는 없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蘇轍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4 奏言不便 : 이에 앞서 上奏한 〈論開孫村河箚子〉를 가리킨다.
역주5 小吳決口 : 元祐 초년에 黃河가 小吳埽에서 터졌다.
역주6 決怒之患 : 河水가 堤岸을 衝破하고 크게 범람하는 水災를 가리킨다.
역주7 異己 : 謝卿材의 의견이 자기와 다른 것이다.
역주8 罷歸本任 : 貶黜하여 본래의 임무인 河北轉運使의 위치로 돌려보냄을 이른다.
역주9 利在回河 : 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에 功을 노릴 수 있는 유리한 점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10 內批 : 宮內로부터 전달된 聖旨를 이른다.
역주11 降付 : 聖旨를 내려 交付하는 것을 가리킨다.
역주12 外廷疏遠 : 官職이 낮아 皇帝와 떨어져 있는 신하를 가리킨다. 蘇轍이 이때 戶部右曹가 되어 財賦를 맡고 있었는데 자기 직책을 벗어나서 다른 정사를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外廷疏遠’이라고 칭한 것이다.
역주13 由此觀望 : 內批로 말미암아 猶豫未定한 마음으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는 것이다.
역주14 正言得失 : 바른말을 하여 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의 병폐를 밝혀냄을 이른다.
역주15 邊防一說 : 〈論開孫村河箚子〉 4단 註 5) 참조.
역주16 曲說 : 常理에 맞지 않는 말을 이른다.
역주17 昔眞宗皇帝……與結歡好 : 《宋史紀事本末》에 의하면 “景德 원년(1004) 9월에 契丹이 大軍을 이끌고 침입하니, 11월에 眞宗이 직접 가서 澶州에 주재하면서 黃河를 건너가 諸將을 慰撫하니 사기를 떨쳐 契丹을 크게 깨뜨렸다. 이에 契丹이 盟約을 청하여 兄禮로 眞宗을 섬겼다.”고 한다.
역주18 石晉之敗 : 石晉은 五代시대에 石敬塘이 세운 後晉(936~946). 후인들이 三國 후의 西晉‧東晉과 구별하기 위하여 ‘石晉’이라 칭하였다. 石晉은 여러 차례 澶州 일대에서 契丹과 交戰하였는데, 당시 黃河는 澶州를 따라 동쪽으로 京東 옛 물길로 흘렀다. 그러나 뒤에 石晉의 出帝는 契丹에게 패하여 나라가 망하였다.
역주19 祥符 : 宋 眞宗이 세 번째 고친 연호인 大中祥符(1008~1017)를 가리킨다.
역주20 交接 : 結交.
역주21 孫民先 : 저본에는 ‘孫民’으로 되어 있는데, 《欒城集》에 의하여 ‘孫民先’으로 바꾸었다.
역주22 昔李垂孫民先等……遂可無慮 : 《宋史紀事本末》에 의하면 “宋 眞宗 大中祥符 5년(1012) 著作郞 李垂가 〈導河勝形書〉 3편을 올렸는데, 그 대략에 ‘臣은 청컨대 汲郡 동쪽으로부터 禹의 故道(大禹가 治水한 黃河故道)를 찾아 御河를 끼고 그 水勢가 大伾山‧上陽山‧太行山 사이로 나아가 西河의 故瀆을 회복한 다음 북쪽으로 大名 서쪽, 館陶 남쪽으로 쏟아져서 동북으로 赤河와 합하여 바다에 이르게 하소서.’라고 했다.” 하고, 또 《宋史》 〈河渠志 黃河〉에 의하면 “黃河가 澶州에서 터질 때 北外監丞 陳祐甫가 말하기를 ‘商胡埽가 터진 지 30여 년이 되었으니, 흐르는 黃河의 물길이 점점 높이 메워져서 隄防이 해마다 증가되지만 범람을 면하지 못한다. 지금 修治해야 할 곳은 세 군데이니, 곧 商胡가 첫째, 橫隴이 둘째, 禹舊迹이 셋째이다. 그러나 商胡‧橫隴의 故道는 地勢가 高平하고 土性이 疏惡하니 모두 회복할 수 없고, 회복한다 하더라도 오래 지탱할 수 없다. 오직 禹故瀆은 아직도 大伾山‧太行山 사이에 남아 있어 지대가 낮고 지반이 견고하다. 그러므로 秘閣敎理 李垂와 深州知州 孫民先이 모두 修復하자는 의론을 주장하고 있으니, 바라건대 孫民先을 불러 河北漕臣 한 명과 함께 衛州 王供埽로부터 海口까지 살펴보게 하라.’고 했다.” 한다.
역주23 昔人之策 : 河北岸의 土地를 河南岸의 土地로 바꾸려는 李垂‧孫民先의 계책을 가리킨다.
역주24 馬頭 : 碼頭로 곧 水岸의 배를 정박하는 곳을 이른다.
역주25 形格勢禁 : 형세상 沮礙나 制限을 받는 것이다.
역주26 元老大臣 : 관직과 명망이 높은 大臣. 여기서는 응당 文彦博‧安燾‧呂大防 등을 가리킬 것이다.
역주27 久更事任 : 오랫동안 높은 관직을 맡으면서 수많은 일들을 겪음을 말한다.
역주28 物料 : 河水를 修治할 때 쓰일 물품과 재료를 이른다.
역주29 大役 : 저본에는 ‘人役’으로 되어 있는데, 《欒城集》에 의하여 ‘大役’으로 바꾸었다.
역주30 預約功料 : 미리 算定된 工程에 쓰일 物料를 이른다.
역주31 科配 : 正稅 외에 임시로 더 내게 하는 賦稅를 이른다.
역주32 其計又出秦下 : 黃河가 동쪽으로 흐르도록 유도함으로써 험지를 조성하려는 계책은 秦나라가 萬里長城을 쌓아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하려는 계책에 비하면 또한 하등을 차지할 것이란 말이다.
역주33 休養民力 :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켜서 경제력이 회복되고 발전될 수 있게 함을 이른다.
역주34 : 저본에는 ‘以’로 되어 있는데, 《欒城集》에 의하여 ‘已’로 바꾸었다.
역주35 强生瘡痏 : 억지로 禍患을 일으킴을 이른다.
역주36 大役 : 저본에는 ‘夫役’으로 되어 있는데, 《欒城集》에 의하여 ‘大役’으로 바꾸었다.
역주37 然虜恭順 與事祖宗無異 : 契丹이 恭順하여 眞宗‧仁宗‧神宗을 섬기는 것처럼 兄禮로 섬기는 것을 말한다.
역주38 重違大臣 : 大臣의 마음을 어기는 것을 어렵게 여김을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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