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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3)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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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노씨老氏하니 多儉故能廣四字니라
노자老子이니라
或曰 慈則安能勇 曰父母之於子也 愛之深이라
其爲之慮事也精이니라
以深愛而行精慮
其爲之避害也速而就利也果 此慈之所以能勇也니라
非父母之賢於人이요 勢有所必至矣니라
少而讀書 見父母之戒其子者 諄諄乎惟恐其不盡也하고 惻惻乎惟恐其不入也하고 曰 嗚呼
此父母之心也哉인저하노라
師之於弟子也 爲之規矩以授之하여 賢者引之하고 不賢者不彊也니라
君之於臣也 爲之號令以戒之하여 能者予之하고 不能者不取也니라
臣之於君也 可則諫하고 否則去니라
子之於父也 以幾諫不敢顯하니 皆有禮存焉이니라
父母則不然하니 子雖不肖 豈有棄子者哉
是以 盡其有以告之하여 無憾而後止니라
시경曰 泂酌彼行潦하여 挹彼注玆라도 可以饙饎로다
豈弟君子
로다하니 夫雖行潦之陋 而無所棄 猶父母之無棄子也니라
父母之於子 人倫之極也 雖其不賢이나 及其爲子言也 必忠且盡이어늘 而況其賢者乎
태상소경太常少卿장사長沙손공孫公경수景修 태상소경孤而敎於母니라
母賢하여 能就其業이니라
旣老而念현모록之心不忘하고현모록賢母錄하여 以致其意니라
旣又集고금가계古今家誡하여 得四十九人하고 以示고금가계有爲是書者 而其文不完하여 吾病焉이라
是以 爲合衆父母之心하여 以遺天下之人하니 庶幾有益乎인저하노라
讀之而歎曰 雖有悍子 忿鬪於市 莫之能止也 聞父之聲이면 則斂手而退하니 市人之過之者 亦莫不泣也니라
慈孝之心 人皆有之 特患無以發之耳니라
今是書也 要將以發之歟 雖廣之天下라도 可也니라
公又將益廣之未止也리라하니라


01. 《고금가계古今家誡》에 대한 서문
노씨老氏의 말을 인용하였는데, ‘검고능광儉故能廣’이란 네 글자가 대단하다.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자인慈忍하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 검약하기 때문에 넓게 펼 수 있다.”고 하였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자인慈忍하면 어떻게 용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기에,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는 자애하는 마음이 깊다.
그러므로 〈자식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정세하다.
깊이 자애하기 때문에 정세한 생각을 행한다.
그러므로 〈자식이〉 를 피하는 것이 빠르고 이로운 쪽으로 가는 것이 과감하니, 이것은 자애가 용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모가 남보다 어진 것이 아니고 정세상에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어려서 글을 읽을 때에 어떤 부모가 그 자식을 경계하되 행여 다 말해주지 못할까 염려하여 열심히 말해주고, 행여 받아들이지 않을까 염려하여 정성껏 들려주는 광경을 보고서 “아!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구나.”라고 하였다.
스승이 제자에 대해서는 규칙規則을 정해주고 나서 어진 자는 끌어주고 어질지 못한 자는 강요하지 않는다.
임금이 신하에 대해서는 호령하여 경계하고 나서 능한 자는 인정하고 능하지 못한 자는 취하지 않는다.
신하가 임금에 대해서는 받아들으면 간하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버린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는 넌지시 간하고 감히 나타나게 간하지 못하니, 모두 예법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그렇지 못하니, 자식이 비록 어질지 못하더라도 어찌 지식을 버리는 이가 있었던가?
이러므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다 알려주어서 마음에 걸릴 것이 없는 뒤에야 그만둔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멀리 저 길가의 빗물을 취하여, 저기에서 떠다가 여기에 붓더라도 고두밥과 서속밥을 지을 수 있도다.
화락한 군자여!
백성의 부모로다.”라고 하였으니, 비록 길가 빗물의 더러운 것이더라도 버리는 바가 없기를 마치 부모가 자식을 버리지 않는 것과 같이 하였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는 인륜의 지극한 것이라, 비록 어질지 못하더라도 자식을 위해 말할 때에는 반드시 충실하고도 극진하거늘, 하물며 어진 지식에게야 오죽하겠는가?
태상소경太常少卿 장사長沙 손공孫公 경수景修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 어머니가 현명하여 그의 학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손공孫公은 늙은 뒤에 어머니 생각하는 마음을 잊지 못하고 《현모록賢母錄》을 만들어 그 뜻을 다하였다.
또 《고금가계古今家誡》를 모아 49인의 것을 얻고서 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옛날에 이 책을 만든 자가 있었지만 그 글이 완전하지 못하여, 내가 불만스럽게 여겼다.
이러므로 여러 부모들의 마음을 합하여 천하 사람들에게 끼치니, 이익이 되는 점이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은 그것을 읽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비록 사나운 아들이 있어 시장판에서 싸움이 벌어짐에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으나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면 손을 거두고 물러갔으니, 지나가는 시장 사람 또한 흐느껴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자애하고 효도하는 마음은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으나 다만 발현할 수 없는 것이 병통이었다.
지금 이 책이 장차 발현시켜 줄 것 같으니, 비록 온 천하에 널리 배포되더라도 가하다.
주공周公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부계父戒가 45개고 모계母戒가 4개다.
이 또 앞으로 더욱 널리 수집해 마지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古今家誡敍 : ‘敍’가 저본에는 ‘序’로 되어 있는데, 《欒城集》에 의하여 ‘敍’로 바꾸었다. 蘇轍의 祖父 이름이 序이기 때문에 일부러 諱한 그 뜻을 존중해서이다. 본편은 孫汝聽의 《蘇潁濱年譜》에 의하면, 元豐 2년(1079)에 당시 太常寺少卿으로 있던 《古今家誡》에 쓴 서문이다.
孫景修는 그 어머니에게 가르침을 받고 咸平 연간에 進士가 되어 벼슬이 太常少卿에 이르렀으며, 그는 노경에 와서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을 잊지 못하여 《賢母錄》을 撰하고, 또 49人의 家訓을 수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古今家誡》이다.
본편의 主意는 부모가 자식을 慈愛함에 있으니, ‘慈’자로 안목을 한 것이다.
역주2 慈故能勇 儉故能廣 : 《老子》 제67장에 보이는데, 蘇轍은 그의 《老子解》에서 “세상에서는 勇決은 훌륭한 것으로 여기고 慈忍은 일을 못할 것으로 여기지만, 勇決은 쉽게 꺾을 수 있고 慈忍은 이길 수 없어 끝내는 반드시 勇決함에 이른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세상에서는 廣大한 것이 물건을 덮는 것으로 여기고 儉約은 고루한 것으로 여기지만, 광대한 것은 다하기 쉽고, 儉約은 족하기 쉬워서 끝내는 반드시 廣大함에 이른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世以勇決爲賢 而以慈忍爲不及事 不知勇決之易挫 而慈忍之不可勝 其終必至于勇也 世以廣大爲蓋物 而以儉約爲陋 不知廣大之易窮 而儉約之易足 其終必至于廣也]”라고 풀이하였다.
‘慈故能勇’에 대하여 韓非는 그의 《韓非子》 〈解老〉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자식을 慈愛하고, 생명을 중하게 여기는 자는 몸을 자애하고, 功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일을 자애한다.
慈母가 弱子에 대하여 福을 받도록 힘쓰고 福을 받도록 힘쓰면 禍를 제거할 것을 일삼고, 禍를 제거할 것을 일삼으면 思慮가 深熟하고, 思慮가 深熟하면 事理를 얻고, 事理를 얻으면 반드시 功을 이루고, 반드시 功을 이루면 그 행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니, 의심하지 않은 것을 ‘勇’이라 이른다.
聖人이 萬事에 대해서는 모두 慈母가 弱子에 대해서와 같이 생각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행할 道를 보고, 반드시 행할 道를 보면 밝아져서, 그 종사하는 것도 의심하지 않게 되니, 의심하지 않은 것을 ‘勇’이라 이르는데, 의심하지 않는 것은 慈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자애롭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愛子者慈於子 重生者慈於身 貴功者慈於事 慈母之於弱子也 務致其福 務致其福 則事除其禍 事除其禍 則思慮熟 思慮熟 則得事理 得事理 則必成功 必成功 則其行之也不疑 不疑之謂勇 聖人之於萬事也 盡如慈母之於弱子慮也 故見必行之道 見必行之道則明 其從事亦不疑 不疑之謂勇 不疑生於慈 故曰慈故能勇]”라고 풀이하였다.
‘慈故能勇’의 ‘慈’를 《老子》에서는 ‘慈忍’으로 보아서 ‘慈忍한 사람이 용감할 수 있다.’고 풀이하고, 여기서는 ‘慈愛’로 보아서 ‘부모가 자식을 慈愛하면 자식이 용감할 수 있다.’고 풀이한 것 같다.
역주3 泂酌彼行潦……民之父母 : 《詩經》 〈大雅 泂酌〉에 보이는데, 곧 召康公이 成王을 경계한 내용이다.
역주4 自周公以來至於今……母戒四 : 《書經》 〈周書〉에 실린 〈無逸〉은 周公이 周 成王의 叔父로서 成王을 경계한 것이니, 父誡의 시초요, 劉向의 《列女傳》에 〈鄒孟軻母〉란 제목으로 실린 孟子의 어머니가 맹자를 경계한 것이 母誡의 시초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역주5 <주석명/> : 孫琮은 《山曉閣選宋大家蘇潁濱全集》에서 “《家誡》 한 책은 본시 孫公이 그 어머니를 위해 지은 것인데, 지금 문득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1段을 가지고 정리를 간절하게 적었다. 대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독실하게 적으면 자식이 부모를 잊지 않은 것은 저절로 투철하게 드러나니, 이것은 바로 文章家의 진일보한 문법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적은 곳에 이르러서는 《詩經》 〈小雅〉의 〈蓼莪〉 1장과 같이 읽을 만하다.[家誡一書 本是孫公念母而作 今却將父母愛子一段 寫得情致凱切 蓋父母之愛 寫得篤執 則子之不忘父母 自出深透 此是文家先一步法 至寫父母愛子處 可與蓼莪一章同讀]”고 비평하였다. 張伯行은 《唐宋八家文鈔》에서 “부모의 지극한 정을 드러내어 반복해서 측은한 마음이 사람을 감동하게 하였다. 《詩經》에서 이르기를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자며 〈부지런히 일하여〉 너의 부모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하고, 《禮記》에서 ‘불선한 일을 하려고 하다가도 부모께 羞辱을 끼칠 것을 생각하면 반드시 하지 않게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이 글이 미처 다 말하지 못한 뜻이다. 남의 자식이 된 자는 이것을 생각할지어다.[揭出父母至情 反復詳盡 惻惻動人 詩曰 夙興夜寐 無忝爾所生 記曰 將爲不善 思貽父母羞辱 必不果 是此文言外未盡之意也 爲人子者 念之哉]”라고 비평하였다.
沈德潛은 《唐宋八家文讀本》에서 “孫景修가 그 어머니를 생각했기 때문에 이 《家誡》를 지었다. 글 가운데에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르지 않은 바가 없음을 적었다. 慈愛를 극도로 말함에 효도를 응당 다해야 됨을 대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글은 읽어도 〈蓼莪〉와 아울러 읽어야 되고, 폐지해도 〈蓼莪〉와 아울러 폐지해야 된다.[景修念母 故作家誡 文中寫父母愛子之心 無所不至 蓋極言慈 而孝之當盡 蓋可知也 此等文可與蓼莪之詩竝讀 卽可與蓼莪之詩竝廢]”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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