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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3)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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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2. 항주杭州 용정원龍井院 눌재訥齋에 대한 기문
近禪旨니라
선지禪旨에 가깝다.
錢塘 有大法師曰 初住하여 하니 吳越人 歸之如佛出世하고 事之如養父母하며 金帛之施 不求而至니라
전당錢塘에 있는 대법사大法師변재辯才’란 이가 처음에 상천축산上天竺山에 머물러서 천태법天台法으로 오월吳越 지역을 교화敎化하니, 오월吳越 지역 사람(신도)들이 그에게 몰려가기를 마치 진불眞佛이 출현한 것처럼 하고, 그를 섬기기를 마치 부모를 봉양하듯이 하였으며, 금백金帛의 시주는 요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폭주하였다.
居天竺十四年 有利其富者 迫而逐之하니 師忻然捨去하되 不以爲恨이니라
그가 천축산天竺山에 거처한 지 14년 만에 그의 부유한 재산을 탐하는 자가 있어 핍박하여 내쫓으니, 선사禪師는 흔연히 버리고 가되 조금도 한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吳越之人 涕泣而從之者 如歸市하니 天竺之衆 分散四去니라
오월吳越 지역 사람 중에 흐느껴 울면서 따르는 자가 마치 저자로 몰려가듯이 하였으니, 천축산天竺山의 신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事聞於朝 明年俾復其舊한대 師黽俛而還 如不得已하니라
그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그 이듬해에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게 하니, 선사禪師는 마지못해서 억지로 돌아왔다.
吳越之人 爭出其力하여 以成就廢缺하니 衆復大集하니라
그러자 오월吳越 지역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힘을 내어 폐해진 절을 복원하니, 신도들이 다시 크게 모여들었다.
無幾何 師告其衆曰 吾雖未嘗爭也 不幸而立於爭地니라
얼마 후에 선사禪師가 신도들에게 고하기를 “나는 비록 다투려고 하지 않았으나 불행하게도 다투는 땅에 섰노라.
久居而不去하여 使人以己是非彼니라
오래 거하고 떠나지 않아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옳은 점을 가지고 남을 비난하게 하는 것은 사문沙門이 할 도리가 아니니라.
天竺之南山 山深而木茂하고 泉甘而石峻이니라
천축天竺남산南山은 산이 깊고 나무가 무성하며, 샘물이 달고 바위가 준엄하니라.
汝舍我 我將老於是리라하고 言已 策杖而往하여 以茅竹自覆하니라
너희가 나를 놓아주면 나는 장차 거기서 늙을 것이니라.”고 하고, 말이 끝나자 곧 지팡이를 짚고 그곳으로 가서 풀과 대나무로 위를 덮어서 집을 만들었다.
聲動吳越하니 人復致其所有하여 鑱嶮堙圮하고 築室而奉之하니 不期年 而荒榛巖石之間 臺觀飛湧하고 丹堊炳煥하여 如天帝釋宮이니라
그 소문이 오월吳越 지역에 알려지자, 신도들이 다시 그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어서 험한 곳을 깎고 끊어진 곳을 메워서 집을 지어 받드니, 1년이 채 안 되어서 우거진 숲과 바위 사이에 대관臺觀이 치솟고 단악丹堊이 선명하게 빛나 마치 천제天帝석궁釋宮과 같았다.
師自是謝事하고 不復出入이니라
선사禪師는 이때부터 세상일을 끊고 다시는 출입하지 않았다.
名其所居曰 訥齋라하니 道潛師 告予爲記니라
고우高郵 사람 진관秦觀 태허太虛선사禪師의 거처를 명명하기를 ‘눌재訥齋’라고 하니, 도잠선사道潛禪師 참료參寥가 나에게 고하여 기문을 짓게 하였다.
予聞之하니 師始以法敎人 叩之必鳴 如千石鐘하고 來不失時 如滄海潮 人以辯名之라하고
나는 들으니 “선사禪師가 처음 사람을 가르침에 두드리면 반드시 울림은 마치 천석千石이 울리는 것과 같고, 신도들이 몰려옴에 때를 잃지 않음은 마치 창해滄海의 조수가 몰려오듯이 하였는지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及其退居此山 閉門燕坐하여 寂嘿終日하니 葉落根榮 如冬枯木이요 風止波定 如古澗水 人以訥名之라하니라
그리고 “그가 이 산으로 물러와 삶에 문을 닫고 한가히 앉아 종일 묵묵히 있었으니, 마치 잎은 떨어지고 뿌리는 싱싱한 겨울철 마른 나무와 같고, 바람은 그치고 파도는 안정된 옛 간수澗水와 같은지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雖然이나 此非師之大全也니라
비록 그렇지만 이것은 선사禪師의 전부가 아니다.
彼其全者 不大不小 不長不短이요 不垢不淨이요 不辯不訥이니 而又何以名之리오
그 전부인 것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달변도 아니고 눌변도 아니니, 또한 무엇으로 이름을 지을 수 있겠는가?
雖然이나 樂其出而高其退하고 喜其辯而貴其訥 此衆人意也 則其以名齋也亦宜니라
비록 그러하나 그의 나감을 즐거워하고 그의 물러감을 훌륭히 여기며, 그의 달변을 기뻐하고 그의 눌변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여러 사람들의 뜻이니, 그것을 재실의 이름으로 삼는 것도 마땅하다.
系之以詞曰
다음과 같이 를 붙인다.
以辯見我 旣非見我 以訥見我 亦幾於妄이니라
“달변으로 나를 봄은 이미 나를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눌변으로 나를 보는 것도 망령스러움에 가깝다.
有叩而應이요 時止而止니라
두드리면 응하고 때로 그치면 지식된다.
非辯非訥이요 이니라
달변도 아니고 눌변도 아니며, 법성法性과 같이 하여 동하지 않는다.
諸佛旣然하니 我亦如是니라
제불諸佛이 이미 그러하니 나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역주
역주1 杭州龍井院訥齋記 : 본 기문은 宋代의 저명한 禪師인 道潛의 請에 의하여 지은 것인데 저작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역주2 辯才 : 성은 徐, 이름은 元淨, 자는 無象이며, 杭州 於潛 사람인데, 10세에 출가하고 25세에 紫衣와 ‘辯才’란 칭호를 받았다. 蘇轍은 〈辯才法師塔銘〉을 지었는데, 그 글에 辯才의 사적을 자세히 기술하였다.
역주3 上天竺山 : 天竺山은 杭州 靈隱寺 남쪽에 있다. 그 산에는 上天竺寺와 下天竺寺가 있는데, 이곳은 上天竺寺를 가리킨다.
역주4 以天台法 化吳越 : 天台는 天台宗을 가리키니, 중국 불교종파의 하나이다. 창시한 사람은 陳‧隋 때의 高僧인 智顗인데 그가 항상 天台山에 머물렀기 때문에 ‘天台宗’이라 명명한 것이다. 또는 《法華經》을 주요 敎義로 삼았기 때문에 ‘法華宗’이라고도 한다.
역주5 沙門 : 佛敎와 僧侶를 가리킨다.
역주6 高郵秦觀太虛 : 秦觀은 北宋의 詞人으로 자는 太虛, 또는 少游이다.
역주7 參寥 : 道潛禪師의 號이다.
역주8 如如不動 : 佛家의 말로 說法하는 사람은 마땅히 法性과 같이 하여 動心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金剛經》에 “어떻게 해야 사람을 위해 演說할 것인가? 相에서 취하지 않고 法性과 같이 하여 동하지 않는다.[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라고 하였는데, 《吉藏疏》에서 “지금 보이는 ‘說法하는 방법은 마땅히 如如하게 말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아래 ‘如’자는 바로 ‘法性과 같이 한다.’는 ‘如’이니, ‘善行을 권하는 사람은 마땅히 法性과 같이 하여 딴마음이 생기게 하거나 잡념이 동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今示說法之方 當如如而說 下如字 是如法性之如 勸行者 當如法性而說 勿生心動念也]”라고 풀이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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