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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3)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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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수지收支〉에 대한 서문
옛날에는 3년의 경작에 반드시 1년 식량의 저축이 있었으니, 30년을 통산한 식량의 저축으로 국가 경비의 예산을 제정하면 9년 식량의 저축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今者一歲之入 金以兩計者四千三百이요 而其出之不盡者二千七百이니이다
지금 1년의 수입은 으로 계산 것이 4,300냥이고, 지출하고 남은 것이 2,700냥입니다.
銀以兩計者五萬七千이요 而其出之多者六萬이니이다
으로 계산한 것이 5만 7천 냥이고, 지출의 초과분이 6만 냥입니다.
錢以千計者四千八百四十八萬이요 而其出之多者一百八十二萬이니이다
으로 계산한 것이 4,848만 천이고, 지출의 초과분이 182만 천입니다.
紬絹以匹計者一百五十一萬이요 而其出之多者十七萬이니이다
주견紬絹을 계산한 것이 151만 필이고, 지출의 초과분이 17만 필입니다.
穀以石計者二千四百四十五萬이요 而其出之不盡者七十四萬이니이다
곡식을 으로 계산한 것이 2,445만 석이고, 지출하고 남은 것이 74만 석입니다.
草以束計者七百九十九萬이요 而其出之多者八百一十一萬이니이다
으로 계산한 것이 799만 속이고, 지출의 초과분이 811만 속입니다.
然則一歲之入 不足以供夫一歲之出矣니이다
그렇다면 1년의 수입이 1년의 지출을 공급하기에 부족합니다.
凡國之經費 折長補短하되 常患不足하여 小有非常之用이나 有司輒求之朝廷하여 이리니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경비를 남는 것을 덜어다가 모자란 것을 보충하되, 항상 부족함을 걱정하므로 비상용을 조금 마련해두었으나 담당 관원이 항상 조정朝廷에 도움을 구하여 내장內藏미염米鹽을 가져다 써야만 족할 것입니다.
하니 以爲是媮歲月可也 數歲之後 將有不勝其憂者矣리니이다
은 몸소 국가의 재정회계를 맡았기 때문에 이처럼 구차하게 세월을 보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몇 년 뒤에는 장차 그 걱정을 이기지 못할 바가 있을 것입니다.
是以 輒嘗推原其故니이다
이러므로 그 원인을 추구한 것입니다.
方今禁中奉養有度하여 金玉錦繡不逾其舊하고 宮室不修하고 犬馬不玩하며 有司循守法制하고 謹視出入之節하여 未嘗有失也어늘 而其弊安在잇가
현재 금중禁中(宮中)에서는 봉양奉養에 절도가 있어, 금옥金玉금수錦繡는 예전의 치장 정도를 넘지 않고, 궁실宮室을 수축하지 않고, 견마犬馬 같은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으며, 유사有司법제法制를 지키고 신중하게 지출을 절제하여 잘못한 점이 있지 않았는데, 그 폐단이 어디 있습니까?
天下久安하여 物盛而用廣 亦理之常也 顧所以處之何如耳니이다
천하가 오랫동안 태평하기 때문에 사물이 성대하고 용도가 확대된 것은 또한 이치의 떳떳함이니, 처리를 어떻게 하는가를 볼 뿐입니다.
臣請歷擧其數리니이다
은 청컨대 그 숫자를 열거하겠습니다.
宗室之衆 皇祐三人 今爲九人矣 一人 今爲八人矣 觀察使一人 今爲十五人矣 防禦使四人 今爲四十二人矣 百官之富 景德大夫三十九人 今爲二百三十人矣 朝奉郎以上一百六十五人 今爲六百九十五人矣 承議郎一百二十七人 今爲三百六十九人矣 奉議郎一百四十八人 今爲四百二十一人矣 諸司使二十七人 今爲二百六十八人矣 副使六十一人 今爲一千一百一十人矣 供奉官一百九十三人 今爲一千三百二十二人矣 三百一十六人 今爲二千一百一十七人矣 之吏六十人 今爲一百七十二人矣니이다
종실宗室 관리의 많음은 황우皇祐 연간에 절도사節度使는 3이던 것이 지금은 9이고, 양사유후兩使留後는 1이던 것이 지금은 8이고, 관찰사觀察使는 1이던 것이 지금은 15이고, 방어사防禦使는 4이던 것이 지금은 42이며, 백관百官부성富盛함은 경덕대부景德大夫는 39이던 것이 지금은 230이고, 조봉랑朝奉郎 이상은 165이던 것이 지금은 695이고, 승의랑承議郎은 127이던 것이 지금은 369이고, 봉의랑奉議郎은 148이던 것이 지금은 421이고, 제사사諸司使는 27이던 것이 지금은 268이고, 부사副使는 61이던 것이 지금은 1,110이고, 공봉관供奉官은 193이던 것이 지금은 1,322이고, 시금侍禁은 316이던 것이 지금은 2,117이고, 삼성三省의 관리는 60이던 것이 지금은 172입니다.
其餘可以類推 臣不敢遍擧也리니이다
그 밖은 로 미루어볼 수 있으니, 은 감히 두루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昔者 하고 卿有定員이어늘 今之大夫朝議 皆無限法하고 하며 而今之正議銀青 合而爲一하고 官秩幷增하니 不知其義니이다
옛적에는 전행前行에만 제한되었고, 에는 정원定員이 있었거늘, 지금의 대부大夫조의朝議는 모두 한정된 법이 없고, 상서尙書시랑侍郎삼조三曹로 고쳤으며, 지금의 정의대부正議大夫은청광록대부銀青光祿大夫는 합하여 하나로 만들고 관질官秩을 아울러 증가하였으니, 그 의미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夫國之財賦 非天不生이요 非地不養이요 非民不長이니이다
국가의 재부財賦는 하늘이 아니면 생겨날 수 없고, 땅이 아니면 길러질 수 없고, 백성이 아니면 성장될 수 없습니다.
取之有法하고 收之有時 止於是矣니이다
그러므로 법도 있게 취해 쓰고 때에 따라 거두는 것이니 이렇게만 하면 될 것입니다.
而宗室官吏之衆 可以禮法節也니이다
종실宗室 관리가 많은 것은 예제禮制법규法規를 써서 절제해야 됩니다.
祖宗之世 士之始有 竢闕則補하고 否則而已 不妄授也니이다
조종祖宗의 세대에는 처음으로 상질常秩을 가진 관원은 궐원을 기다려서 보임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급資級을 따랐을 뿐이며, 함부로 관직을 제수하지 않았습니다.
仁宗末年 之法 自宰相以下 無不減損하고 英宗之初 三載考績 增以四歲하며 니이다
인종仁宗 말년에는 임자任子재상宰相 이하로 감손하지 않음이 없었고, 영종英宗 초년에는 3년마다 관리의 성적을 상고하던 것을 4년으로 〈연한을〉 늘려서 상고하였으며, 신종神宗 초년에는 종실宗室 단문袒免 밖의 원친遠親은 다시 추은推恩하지 않고 단문袒免 안의 근친近親시관試官을 거쳐서 정식으로 출사出仕하였습니다.
此四事者 使今世欲爲之 將以爲逆人心違舊法이니 不可言也 而況於行之乎잇가
이 네 가지 일을 가사 지금 하려고 한다면 장차 인심人心을 거역하고 구법舊法을 어기는 것이니 말을 해서도 안 될 일인데, 하물며 행해서야 될 일이겠습니까?
雖然이나 祖宗行之不疑하고 當世亦莫之非니이다
비록 그러나 조종祖宗께서는 의심 없이 행하셨고, 당세에도 그르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잇가 事勢旣極 不變則敗 衆人之所共知也니이다
왜냐하면 사세事勢가 이미 극에 달하였음에도 변개하지 않으면 패한다는 것은 뭇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今朝廷履至極之勢하고 獨持之而不敢議하니 臣實疑之니이다
지금 조정朝廷은 지극히 극단에 달한 사세事勢를 경험하면서도 홀로 견지하고 감히 논의하지 않으니, 은 실로 의아스럽습니다.
誠自今日而議之 因其勢循其理하여 微爲之節文하여 使見任者無損하고 而来者有限이리니 今雖未見其利 要之十年之後 事有間矣리니이다
진실로 지금부터 논의한다면 그 사세에 말미암고 그 이치에 따라 간단한 문자를 적어서 임자任子에겐 손해가 없고 몰려오는 자들에겐 한계가 있음을 보이도록 할 것이니, 지금은 비록 그 이익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요컨대 10년 후에는 일에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라하니 今臣亦云 茍能裁之 天下之幸也라하리니이다
가의賈誼제후諸侯들의 변란에 대해 말하기를 “지금 기회를 놓치고 다스리지 않으면 반드시 고질痼疾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지금 도 “진실로 능히 재제한다면 온 천하가 행복할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역주
역주1 收支敍 : 이것은 〈收支〉를 작성하고 나서 지은 서문인데, 〈收支敍〉의 저작연도는 〈元祐會計敍〉와 같다.
역주2 古者……可跂而待也 : 《禮記》 〈王制〉에서 “冢宰가 국가 경비의 예산을 제정하는 것은 반드시 前年의 연말에 五穀이 다 들어온 뒤에 결정한다. 땅의 작고 큰 것을 기초로 하고 풍년과 흉년을 참작하여 30년간의 수입을 통산하여 〈10년 분의 剩餘가 있을 수 있도록〉 국가 경비의 예산을 제정하고, 수입을 헤아려서 지출을 정한다.
나라에 9년의 저축이 없으면 부족하다고 말하고, 6년의 저축이 없으면 나라가 그 나라의 나라가 아니라고 한다. 3년의 경작에는 반드시 1년 식량의 저축이 있으며, 9년의 경작에 반드시 3년 식량의 저축이 있는 것이니, 30년을 통산한 식량의 저축이 있으면 비록 흉년이 들고 旱災와 홍수의 피해가 있을지라도 백성에게 부황빛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 뒤에는 天子는 날마다 희생을 잡아 성찬을 마련하고 음악을 연주시키며 음식을 먹는다.”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可跂而待’는 쉬운 것을 비유한 말이다.
역주3 待內藏米鹽而後足 : 《宋史》 〈食貨志〉에 의하면 “內藏은 곧 別藏이다. 정상 지출은 左藏庫에서 지출한다. 別藏은 軍旅 및 饑饉의 급변에 대비한 것이니, 左藏庫의 비축이 부족할 경우, 別藏의 비축으로 보충하였다.”고 한다.
역주4 臣身典大計 : 元祐 2년(1087) 蘇轍이 戶部侍郞을 맡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5 節度使 : 唐代에는 州郡의 軍民과 재정권을 총괄하고 강대한 지방 세력을 형성하였으나, 宋代에 병권을 회수한 뒤로는 절도사는 부임하지 않아 職掌이 없고 단지 宗室, 外戚, 將相의 榮銜으로만 활용되었을 뿐이다.
역주6 兩使留後 : 兩使는 招諭使와 撫諭使를 가리키고, 留後는 留守라고도 칭하였는데, 정상적으로 설치된 벼슬이 아니다. 여기서는 兩使가 留守를 겸함을 가리킨다.
역주7 侍禁 : 宮廷을 시위하는 禁軍을 가리킨다.
역주8 三省 : 中書省, 門下省, 尙書省을 가리킨다. 이는 隋‧唐을 거쳐 宋에 이른 국가 최고 행정기관이었다.
역주9 郎止前行 : 郎은 전국시대에 처음 설치된 벼슬 이름인데, 본래는 君王의 侍從官이었다. 秦漢時代에는 郎中令에 속하여 議郞, 中郞, 侍郞, 郎中 등이 있었다. 前行은 君王侍從을 가리킨다.
역주10 尙書侍郎 歷改三曹 : 元豐官制 이전에는 財賦가 三司에 귀속되었고, 元豐官制 이후에는 財賦가 모두 戶部에 귀속되었다. 三曹는 곧 三司이고, 尙書와 侍郎은 戶部의 장‧차관이다.
역주11 常秩 : 고정된 俸祿을 가리킨다.
역주12 循資 : 원래의 俸祿 級數에 적용한다는 말이다.
역주13 任子 : 門蔭으로 入仕하는 일이다.
역주14 神宗之始……以試出仕 : 神宗朝로부터 宗室 五服 밖의 遠親은 다시 推恩하여 任子하지 않고, 五服 안의 近親은 任子를 하되 반드시 試官의 단계를 거쳐서 정식 任職을 하였다. 袒免은 緦麻 이하의 服에서 두루마기의 오른쪽 소매를 벗고 머리에 四角巾을 쓰는 喪禮이다. 곧 五服 밖의 遠親에게는 喪服의 제도가 없기 때문에 袒免으로 哀儀를 표시하는 것이다.
역주15 : 저본과 四庫全書의 《唐宋八大家文鈔》에는 ‘向’으로, 《文獻通考》, 《大學衍義補》, 《圖書編》 등에는 ‘何’로 되어 있는데, 문의상 ‘何’가 적합하기에 ‘何’로 바꾸었다.
역주16 賈誼言諸侯之變……必爲痼疾 : 賈誼는 西漢의 文學家이다. 漢 文帝 때에 諸侯王이 비대해져서 참람하게 天子에게 비견하므로 賈誼는 상소를 통하여 諸侯를 깎을 것을 청하기를 “지금 기회를 잃고 다스리지 않으면 반드시 痼疾이 될 것이니, 후에 비록 扁鵲이 있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失今不治 必爲痼疾 後雖有扁鵲 不能爲已]”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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