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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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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소제昭帝에 대한
觀欒城此等文字컨대 其識見甚近裏하니 當勝於曾鞏이니라
난성欒城의 이와 같은 문자文字를 보건대, 그 식견識見이 매우 깊고 투철하니 응당 증공曾鞏보다 낫다.
성왕成王관숙管叔채숙蔡叔참언讒言 때문에 주공周公을 의심하였다가 풍뢰風雷을 만나 금등金縢의 글을 열어본 뒤에야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환히 알았다.
漢昭帝 聞燕王之譖하니 霍光懼不敢入이니라
소제昭帝연왕燕王참언讒言을 들으니, 곽광霍光은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다.
帝召見光하고 謂之曰 燕王言將軍出都肄郞 道上稱蹕하고 又擅調益幕府校尉라하니
소제昭帝곽광霍光을 불러 보고 이르기를 “연왕燕王이 ‘장군將軍도이랑都肄郞에 나감에 도상道上에서 전령傳令하여 계엄戒嚴을 펼치고, 또한 마음대로 막부교위幕府校尉를 더 뽑았다.’고 말하였다.
二事屬耳어늘 燕王何自知之
두 가지 일은 최근의 것이거늘, 연왕燕王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장군將軍이 반역을 하려고 했다면 교위校尉를 더 뽑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니, 좌우에서 이 말을 들은 자들이 모두 그 명철함에 굴복하였으므로 곽광霍光은 이로 말미암아 안정을 얻었고, 연왕燕王상관上官은 모두 실패하였다.
議者以爲昭帝之賢 過於成王이라하니라
그러므로 의논하는 자는 소제昭帝의 어짊이 성왕成王보다 낫다고 여긴다.
이나 成王享國四十餘年 治致刑措니라
그러나 성왕成王향국享國 40여 년에 치국治國을 잘하여 형법刑法이 쓰이지 않았다.
그가 장차 서거하려 함에 소공召公필공畢公에게 명하여 강왕康王을 돕게 하였으니, 사생死生의 갈림길에서 그 말이 분명하여 어지럽지 않았다.
昭帝享國十三年 年甫及冠하여 功未見於天下하니 其不及成王者 亦遠矣니라
소제昭帝향국享國 13년에 나이 겨우 20세여서 천하天下에 나타나지 않았으니, 성왕成王에 미치지 못한 점 또한 매우 크다.
夭壽雖出於天이나이나 人事常參焉이니라
단명短命장수長壽가 비록 천명天命에서 나온 것이나 인위적인 작용도 있는 것이다.
吾以爲成王之壽考 周公之功也 昭帝之短折 霍光之過也라하니라
그러므로 나는 성왕成王수고壽考주공周公이요, 소제昭帝단절短折곽광霍光과실過失이라고 생각한다.
昔晉平公有蠱疾 醫和視之曰 是謂近女室하여 疾如蠱 非鬼非食이요 惑以喪志니이다
옛날 평공平公에게 고질蠱疾이 있을 때 의원醫員 가 보고 말하기를 “이 병은 여자를 가까이해서 생긴 고질蠱疾과 같은 병이니, 귀신 때문도 아니고 음식 때문도 아니며, 〈여색女色에〉 홀려서 의지를 잃은 것입니다.
良臣將死 天命不祐리이다
그리고 훌륭한 신하가 장차 죽을 것이고 하늘이 돕지 않을 것입니다.
國之大臣 榮其寵祿하고 任其大節하여 有災禍興而無改焉이면 必受其咎리이다하니라
나라의 대신으로서 임금의 은총 어린 복록을 받는 영화를 누리며 중책을 맡고 있으면서 재앙이 생겼는데도 구휼하지 않으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어늘 而霍光何逃焉이리오
이것으로 조맹趙孟을 기롱하니 조맹趙孟은 그것을 달게 받고 회피하지 않았거늘, 곽광霍光은 어떻게 그 과실을 회피할 수 있겠는가?
成王之幼也 周公爲師하고 召公爲保하니 左右前後 皆賢臣也
성왕成王이 어릴 때에 주공周公가 되고 소공召公가 되었으니, 전후좌우前後左右가 모두 현신賢臣이었다.
雖以中人之資로도 而起居飮食 日與之接이면 逮其壯且老也 志氣定矣리니 其能安富貴易生死리오
비록 중등 가는 사람의 자질資質이라 할지라도 기거음식起居飮食을 날마다 함께 하면 장년기와 노년기에 이르러서는 지기志氣가 굳게 정해질 것이니, 어찌 부귀富貴를 편안히 여기고 생사生死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蓋無足怪者니라
족히 괴이하게 여길 게 없는 일이다.
今昭帝所親信 惟一霍光이니라
지금 소제昭帝친신親信한 이는 오직 곽광霍光 한 사람뿐이었다.
光雖忠信篤實이나 而不學無術이니라
곽광霍光이 비록 충신忠信하고 독실篤實하였으나 배우지 않아 경술經術이 없었다.
그가 더불어 국사國事를 함께한 이는 오직 장안세張安世 한 사람뿐이고, 더불어 기밀의 일을 결단한 이는 오직 전연년田延年 한 사람뿐이었다.
士之通經術하고 識義理者 光不識也니라
선비로서 경술經術에 능통하고 의리義理를 아는 이를 곽광霍光은 알아주지 않았다.
그 뒤에 비록 ‘〈하늘이〉 오래도록 구름만 드리우고 비를 내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서 하후승夏侯勝을 귀중히 여기고, 괴외蒯聵의 일에 감동하여 준불의雋不疑를 어질게 여겼으나 끝내 또한 임용하지 않았다.
使昭帝居深宮하고이면 雖天資明斷이라도 而無以養之하여 朝夕害之者衆矣 而安能
가사 소제昭帝로 하여금 깊고 그윽한 궁중에 거하여 폐행嬖倖을 가까이하게 하였다면 비록 천자天資영명英明하고 과단果斷하다 하더라도 함양하는 바가 없어 조석으로 해치는 자가 많을 것인데, 어떻게 멀리 미칠 수 있었겠는가?
人主不幸하여 未嘗更事而履大位하니 當得篤學深識之士하여 日與之居니라
군주君主는 불행하여 일찍이 세상일을 경험하지 못한 채 제위帝位에 오르기 마련이니, 마땅히 독실하게 배워 깊은 지식을 가진 선비를 얻어 그와 함께 날마다 지내야 한다.
示之以邪正하고 曉之以是非하고 觀之以治亂하여
〈선비가 군주에게〉 에 관한 일을 보여주고, 에 대한 것을 깨우쳐주고, 에 관한 것을 살펴보게 한다.
使之久而安之 이리라
이런 일을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하여 편안히 자리 잡히게 하면 사물의 유사관계를 알아서 도리에 통달하고, 우뚝 자립하여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然後 聽其自用而無害리니 此大臣之職也니라
그런 연후에 스스로 응용하도록 맡겨두면 해로울 일이 없을 것이니, 이는 대신大臣이 할 직분이다.
不然이면 小人先之하여 悅之以聲色犬馬하고 縱之以馳騁田獵하고 侈之以宮室器服이니라
그렇지 않으면 소인小人이 먼저 나서서 성색聲色견마犬馬를 가지고 즐겁게 하고, 치빙馳騁전렵田獵을 가지고 방종하게 하고, 궁실宮室기복器服을 가지고 사치하게 한다.
志氣已亂然後 入之以讒說하여 變亂是非하고 移易白黑하여 紛然無所不至니라
그리하여 지기志氣가 이미 어지러워진 연후에 참설讒說을 들이밀어 변란變亂하고 을 바꾸는 등 어지럽게 이르지 못할 바가 없다.
小足以害其身하고 而大足以亂天下니라
작게는 족히 제 몸을 해치고 크게는 족히 천하를 어지럽힌다.
大臣雖欲有言이나 不可及矣니라
그렇게 되면 대신大臣이 비록 말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語曰 君子學道則愛人하고 小人學道則易使라하니라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이르기를 “군자가 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를 배우면 온순해져서 부리기 쉽다.”고 하였다.
故人必知道而後 知愛身하고 知愛身而後 知愛人하고 知愛人而後 知保天下니라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를 안 뒤에 제 몸을 사랑할 줄 알고, 제 몸을 사랑할 줄 안 뒤에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안 뒤에 천하天下를 보호할 줄 안다.
吾論三宗享國長久 皆學道之力이라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삼종三宗향국享國장구長久함은 모두 를 배운 힘’이라고 논하였다.
至漢昭帝하여는 惜其有過人之明이나 而莫能導之以學이니라
소제昭帝로 말하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영명英明은 있으나, 능히 그를 학문으로 인도하지 못했던 점이 애석하다.
重論之하여 以爲此霍光之過也라하니라
그러므로 거듭 논하여 이는 곽광霍光의 과실이라고 한 것이다.
昭帝之享國日淺하니 不知其禍由近女室否
소제昭帝향국享國 연한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가 여자를 가까이한 데서 연유했는지 모르겠다.
假如伊尹相湯以及其子하니 而太丁外丙仲壬 竝不三四年死 豈皆女室興而皆伊尹之罪歟
가령 이윤伊尹 같은 경우, 을 도와 그 아들에까지 미쳤으니, 태정太丁외병外丙중임仲壬이 아울러 3, 4년을 못 넘기고 죽은 것도 어찌 모두 여자가 일으킨 것이며 모두 이윤伊尹의 죄이겠는가?
特 目爲大臣이니 有托孤寄國之責者 不可不知此議니라
다만 대신大臣을 지목한 것일 뿐이니, 어린 임금을 받들고 나라의 정사를 맡는 책임을 가진 자는 이 의논을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역주
역주1 漢昭帝論 : 漢 昭帝는 劉弗陵으로 곧 武帝의 아들이다.
《欒城集》에는 本文의 標題가 〈漢昭帝〉로 되어 있다.
역주2 周成王……釋然知其非也 : 《書經》 〈周書 金縢〉에 의하면 “武王이 병이 위중하자, 周公이 武王 대신 죽기를 원하고 禱祝한 뒤에 그 祝冊을 쇠사슬로 묶어 봉함한 궤 안에 넣으니, 이튿날 武王의 병이 나았다.
오래지 않아 武王이 서거하자, 管叔과 蔡叔은 여러 아우들과 함께 국내에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를 ‘公(周公)은 장차 孺子(成王)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다(周公의 攝政이 幼主인 成王에게 불리하다는 뜻).’라고 하였다.
周公은 洛邑으로 2년 동안 피해 가 있었다. 곡식을 미처 수확하지 않은 늦가을에 하루는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바람이 부니, 벼가 모두 쓰러지고 큰 나무들이 뽑히는 재변이 생겼으므로, 成王이 대신들과 함께 朝服을 갖추고 궤를 열어 周公의 祝冊文을 발견하였다. 成王은 悔恨하고 국가의 典禮에 의하여 郊外로 달려가서 周公을 영접하였다.”고 한다.
역주3 漢昭帝……皆敗 : 《漢書》 〈霍光傳〉에 의하면 “盖長公主‧上官桀‧上官安‧桑弘羊이 燕王 旦과 모의하여 거짓으로 사람을 시켜서 燕王을 위해 上言하기를 ‘霍光이 都肄郞과 羽林에 나감에 道上에서 傳令하여 戒嚴을 펼칩니다.’라고 하고, 또 燕王이 上奏하기를 ‘霍光이 또한 마음대로 幕府校尉를 더 뽑았습니다. 霍光이 권력을 휘둘러 방자하게 구니, 비상사태가 있을까 의심됩니다. 臣 旦은 원컨대 符璽를 반납하고 宿衛에 들어가서 奸臣의 變을 살피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昭帝가 ‘大將軍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左將軍 上官桀이 대답하기를 ‘燕王이 그의 죄를 고했기 때문에 감히 들어오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昭帝가 명하여 大將軍을 부르니, 霍光이 들어와서 冠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다. 昭帝가 ‘將軍은 冠을 쓰라. 朕은 上書가 거짓임을 알았으니, 將軍은 죄가 없다.’라고 하자, 霍光이 ‘陛下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라고 하니, 昭帝는 ‘將軍이 廣明亭과 都肄郞에 간 것은 최근의 일이고, 校尉를 뽑은 지는 10일도 채 못 되는데, 燕王이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또 將軍이 반역을 하려고 했다면 校尉를 더 뽑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때 昭帝의 나이 14세였는데, 尙書 左右가 모두 놀랐고, 上書한 자가 과연 도망하였으므로 그들의 捕縛을 급하게 서둘렀다.……
뒤에 昭帝의 누이 盖長公主 등이 모의하여 燕王 旦을 왕으로 세우려고 하다가 일이 실패되자, 霍光이 盖長公主‧燕王 旦‧上官桀‧上官安‧桑弘羊 등을 모두 誅殺하였다.”라고 한다.
역주4 成王享國四十餘年……其言琅然不亂 : 《史記》 〈周本紀〉에 의하면 “成王이 서거할 즈음 太子 釗가 국가 중임을 잘 맡지 못할까 염려하여, 召公과 畢公을 불러 諸侯들을 거느리고 太子를 도와 세우게 했다.”라고 한다.
역주5 昔晉平公有蠱疾……趙孟受之不辭 : 《春秋左氏傳》 昭公 元年에 의하면 “晉 平公이 秦나라에 의원을 요청했다. 秦王이 의원 和로 하여금 가서 보게 하였더니, 和가 말하기를 ‘이 병은 낫지 않습니다. 이 병은 여자를 가까이해서 생긴 蠱疾과 같은 병이니, 귀신 때문도 아니고 음식 때문도 아니며, 〈女色에〉 홀려서 의지를 잃은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신하가 장차 죽을 것이고 하늘이 돕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和가 나와서 趙孟에게 보고하니, 趙孟이 말하기를 ‘훌륭한 신하가 장차 죽는다고 하였는데, 그 훌륭한 신하는 누구요?’라고 하자, 和가 대답하기를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이오. 당신이 晉나라를 도운 지 8년이나 되었는데, 晉나라에 난리는 없었고 諸侯들도 缺禮하는 일이 없으니, 훌륭한 신하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듣건대, 나라의 대신으로서 임금의 은총 어린 복록을 받는 영화를 누리며 중책을 맡고 있으면서 재앙이 생겼는데도 구휼하지 않으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됩니다. 지금 임금께서 여색에 과도하게 빠져 병이 생기게 되었는데도 나라를 구휼하지 않는다면 화가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당신은 그것을 막지 못하였으므로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했다.”라고 한다.
역주6 光雖忠信篤實……惟一田延年 : 昭帝가 서거하자, 霍光이 昌邑王 賀를 皇帝로 세웠더니 淫亂을 행하였다. 霍光이 이를 우려한 끝에 친구인 大司農 田延年과 騎車將軍 張安世에게 물어서 昌邑王을 폐하고 宣帝를 皇帝로 세웠다.
역주7 士之通經術……而貴夏侯勝 : 《漢書》 〈夏侯勝傳〉에 의하면 “마침 昭帝가 서거하고 昌邑王이 嗣立하였는데, 자주 놀러 나갔다. 夏侯勝이 수레 앞으로 다가가서 간하기를 ‘하늘이 오래도록 구름만 드리우고 비를 내리지 않으니, 신하 중에 윗사람을 도모할 자가 있을 것인데, 폐하께서는 나아가 어디로 가려고 하십니까?’라고 하니, 王은 노하여 夏侯勝더러 요망한 말을 한다고 하여 捕縛해서 刑吏에게 맡겼다. 刑吏가 大將軍 霍光에게 아뢰니 霍光은 법을 거행하지 않았다.
그 무렵 霍光은 騎車將軍 張安世와 꾀를 써서 昌邑王을 폐하려고 하였다. 霍光은 張安世가 〈그 일을〉 누설했다고 꾸짖었는데, 사실 張安世가 사실 누설한 것이 아니었다. 이에 夏侯勝을 불러서 물었더니, 夏侯勝이 답하기를 ‘《洪範傳》에 「皇帝가 표준을 세우지 못하면 그에 대한 벌칙은 항상 구름을 드리워 그늘지게 하는데, 이때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치는 병폐가 있게 된다.」란 말이 있는데, 감히 분명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신하 중에 도모할 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霍光과 張安世는 크게 놀라고 이로써 經術士를 더욱 존중하였다.”라고 한다.
역주8 感蒯聵之事而賢雋不疑 : 《漢書》 〈雋不疑傳〉에 의하면 “西漢 昭帝 始元 5년에 한 남자가 나타나서 ‘武帝의 이미 죽은 아들 戾太子다.’라고 하니 京師가 크게 어지러웠는데, 雋不疑가 말하기를 ‘蒯聵가 그 아버지 靈公에게 죄를 짓고 晉나라로 出奔하였는데, 뒤에 靈公이 죽고 蒯聵의 아들 輒이 卽位하여 蒯聵가 衛나라로 들어오는 것을 거절하였다. 戾太子가 武帝에게 죄를 짓고 도망하여 죽지 않았으니 곧 죄인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를 詔獄으로 송치하였다. 天子와 大將軍 霍光이 雋不疑를 극찬하며 상을 주고 霍光은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였으나 雋不疑는 굳이 사양하였다.”라고 한다.
역주9 嬖倖 : 여기서는 姬妾‧宦官‧奸臣 등을 가리킨다.
역주10 及遠 : 여기서는 나라를 오래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
역주11 知類通達 强立而不反 : 《禮記》 〈學記〉에 있는 말이다. 대의는 사물의 유사관계를 얻어 그로 말미암아 다른 것을 깨달으면 일을 만나서 의심 없이 밝게 변별한다는 것이다.
역주12 : 《御選古文淵鑑》에 의하면, 王志堅은 “次公(蘇轍)의 이 論은 매우 正論이니, 헤아리건대, 이 저작은 필시 哲宗 초년에 이루진 것으로 國事에 느낌이 있어서 발표했을 것이다.[次公此論甚正 計其作必在哲宗初年 有感國事而發也]”라고 비평하고, 高士奇는 “ ‘道를 안 뒤에 제 몸을 사랑할 줄 알고, 제 몸을 사랑할 줄 안 뒤에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名論이어서 영원히 없앨 수 없는 것이다.[知道而後 知愛身 知愛身而後 知愛人 名論不刊]”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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