冒釁以伐人이면 敵無釁則己受其災하고 敵有釁則我與敵皆斃니라
之可攻
하고 而忘
제齊國之旣病
하니 연燕師乘之
하여 遂以失國
이니라
은 勇而善戰
하여 與
후량梁人夾
황하河相攻
하되 十戰九勝
하여 涉
황하河取
운주鄆하고 不十日而克
후량梁하니 威震諸國
이니라
然
이나 其克敵之後
에 하여 하고 府庫之積
은 罄於耳目之奉
이니라
惟추밀사樞密使곽숭도郭崇韜 智勇兼人하여 知其不可하고 力言而不見聽이요 求去而不見許니라
兵不逾時
하여 而克
성도成都하고 降
하니 料敵制勝之功
이 可謂盛矣
니라
然이나 곽숭도崇韜知촉蜀之易與하고 而不知후당唐之已亂이니라
挈其良將勁兵
하고 西行數千里
하여 雖立大功
이나 而
이니라
向使西경사師不出이면 촉蜀雖未下나 而경사京師有重兵하고 곽숭도崇韜不死하며 하삭河朔叛臣이 心有所畏하여 不敢妄動이면 則장종莊宗不亡하고 곽숭도崇韜不死리니 禍福未可知也니라
곽숭도崇韜冒釁以伐人하되 蹈제齊민왕湣之禍하여 而以爲安하니 惜其有智而未始學也니라
본국本國에 화란禍亂이 없은 연후에 남의 나라를 칠 수 있다.
본국의 화란禍亂을 무릅쓰고 남의 나라를 치면, 적敵에게 화란禍亂이 없을 경우는 우리가 그 재앙을 받고, 적敵에게 화란禍亂이 있을 경우는 우리와 적이 다 죽는다.
초楚 영왕靈王은 백성들을 괴롭혀 자기 욕심을 채우고, 난亂을 일으킬 생각을 품은 백성들을 동원해서 오吳나라를 정벌하였으나, 오吳나라를 요동시킬 수 없었고 기질棄疾이 〈초楚나라를〉 공격하기를 마치 무인지경을 들어가듯이 하였으니, 영왕靈王은 결국 밖에서 죽었다.
제齊 민왕湣王은 탐욕이 많고 승리하기를 좋아하여 걸송桀宋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제齊나라가 이미 피폐한 것은 잊었으니, 연燕나라 군사가 그 틈을 타서 결국 나라를 잃었다.
예부터 화란禍亂을 무릅쓰고 남의 나라를 치는 경우는 그 화禍가 이와 같았던 것이다.
후당後唐 장종莊宗은 용맹스럽고 싸움을 잘하여 후량後梁 사람과 황하黃河를 끼고 서로 공격하되 열 번 싸우면 아홉 번은 이겨 황하黃河를 건너가 운주鄆州를 취하였고, 채 10일이 안 되어서 후량後梁을 이기니 위엄이 여러 나라에 떨쳤다.
오대五代의 용병用兵에 이처럼 신속神速한 자가 없었다.
그러나 적敵을 이긴 뒤에 짧은 안녕을 누리기 위하여 음악과 여색의 우환 속에 빠졌으니, 환관宦官과 영인伶人은 번갈아 정사를 어지럽히고, 부고府庫의 저축은 이목耳目의 공양供養에 다 없어졌다.
백성은 원망하고 군사는 노怒하여 나라에 토붕土崩의 형세가 있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한때의 공신功臣들은 모두 돌연히 흥기興起한 군인이었으므로 안위安危의 조짐을 아는 자가 없었다.
오직 추밀사樞密使 곽숭도郭崇韜만이 지혜와 용맹이 남보다 뛰어나서 그 일이 옳지 못함을 알고 극력 말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고, 떠나기를 요구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였다.
안팎에 있는 영행佞倖들이 곽숭도郭崇韜를 보고 곁눈질을 하므로 곽숭도郭崇韜는 그것을 몹시 걱정하였다.
이때 바야흐로 촉蜀 땅을 치려고 하니, 곽숭도郭崇韜는 큰 공을 세워 스스로를 보전할 계획으로 삼으려고, 건의해서 위왕魏王 계급繼岌(莊宗의 장자長子)을 원수元帥로 삼고 자기는 부장副將이 되어 군사 6만 명을 거느리고 나갔다.
후당後唐의 군사는 단시일에 성도成都를 빼앗고 왕연王衍을 항복시켰으니, 적정敵情을 헤아려 전승戰勝한 공이 성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곽숭도郭崇韜는 촉蜀 땅은 용이하게 접수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후당後唐은 이미 어지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어진 장수와 씩씩한 병졸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수천 리를 가서 비록 큰 공은 세웠으나, 참소로 촉蜀 땅에서 죽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다.
촉蜀 땅을 정벌하러 간 군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적에 조재례趙在禮가 하삭河朔에서 반란을 일으키니, 명종明宗이 북정北征하였다가 결국은 조재례趙在禮와 함께 반란을 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향하여 변주汴州를 빼앗고 낙양洛陽에 들어오니, 끝내 한 사람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지난번에 가사 서쪽으로 군사가 나가지 않았더라면 촉蜀 땅은 비록 항복받지 못했더라도 경사京師에는 중병重兵이 있고 곽숭도郭崇韜는 죽지 않았을 것이며, 하삭河朔의 반신叛臣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 감히 망동妄動하지 않았다면 장종莊宗은 망하지 않고 곽숭도郭崇韜은 죽지 않았을 것이니, 그 화복禍福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곽숭도郭崇韜는 화란禍亂을 무릅쓰고 남을 치되 제齊 민왕湣王의 화禍를 답습하여 〈스스로를〉 보전하려고 하였으니, 지혜는 있으나 당초에 배우지 못한 것이 애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