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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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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02. 나라
其思深하고 其議亦確이니라
사려가 깊고 의론 또한 확실하였다.
分有其民而竊咻之하니 民知有大夫而不知有君이니라
나라는 선공宣公세자世子을 죽이고 자립自立함으로부터 공실公室의 위상이 드디어 낮아져서, 삼환三桓이 백성을 나누어 사적私的으로 분부하니, 백성들은 대부大夫(三桓)의 존재만을 알고 임금(魯公)의 존재는 알지 못하였다.
양공襄公 29년에 계무자季武子 지방을 점령하니, 양공襄公나라로부터 돌아와 감히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귀국해서도 감히 따져 묻지도 못하였으니, 대개 나라의 군주君主가 나라를 잃은 지 이미 오래였다.
소공昭公(襄公의 아들)에 이르러서는 〈삼환三桓의〉 핍박을 참지 못하여 민심을 수습하지 못한 채 군대를 동원하여 〈삼환三桓을〉 치다가 결국 나라를 잃었다.
애공哀公세력勢力이 고단하고 약함은 소공昭公보다 심하였건만 또 나라 사람의 힘으로써 삼환三桓을 치려고 하였다가 끝내는 또한 나라로 나가서 죽었다.
嗟夫
아!
棄民而欲一朝收之하니 宜其難哉로다
5 동안 백성을 버려두었다가 하루아침에 민심을 수습하려고 하였으니, 어려운 일이었도다.
昔齊晏子 嘗告景公以田氏之禍한대 公問所以救之者하니
옛날 나라 안자晏子(晏嬰)가 일찍이 경공景公에게 전씨田氏를 고하였더니, 경공景公은 구제할 방법을 물었다.
晏子曰 唯禮可以已之니이다
안자晏子가 “만이 그런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에 있어서는 대부大夫시혜施惠국인國人에게 미치지 않고, 대부大夫는 나라의 이익을 제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라고 하자, 경공은 ‘참으로 좋은 말이구나.’라고 칭찬하면서도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가 나라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논어論語》 〈팔일八佾〉에 “애공哀公를 세운 내력에 대해 재아宰我에게 물으니, 재아宰我가 대답하기를 ‘하후씨夏后氏는 소나무를 심어 신주로 삼았고, 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를 심어 신주로 삼았으며, 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심어 신주로 삼았는데, 밤나무를 사용한 이유는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하려고 해서였습니다.’라고 하였는데, 공자孔子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재아宰我를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이미 저지른 일이라 말하지 않겠으며, 이미 끝난 일이라 책망하지 않겠으며, 이미 지나간 일이라 탓하지 않겠노라.’ 했다.”고 하였다.
予嘗考之컨대 以爲哀公 將去三桓하되 而不敢正言이니라
나는 일찍이 상고해보건대, 애공哀公은 장차 삼환三桓을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감히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였다.
古者戮人於社하니 其託於社者 有意於誅也니라
옛적에는 에서 사람을 죽였으니, 에 의탁한 까닭은 주륙誅戮에 뜻을 둔 것이다.
宰我知其意하고 而亦以隱答焉이니 其曰 使民戰栗 以誅告也니라
재아宰我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또한 은어隱語로 답한 것이니, 그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하려고 해서였다.’는 것은 주륙誅戮할 일을 고한 것이다.
孔子知其不可하고 曰 此先君之所爲 植根固矣 不可以誅戮齊也니라하시니 蓋亦有意於禮乎
공자孔子께서는 그것이 옳지 못함을 알고, ‘이것은 선군先君이 하신 바라, 심어진 뿌리가 견고하니, 주륙誅戮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하셨으니, 또한 에 뜻을 두신 듯하다.
不然이면 何咎予之深也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재여宰予(宰我)를 호되게 나무랐겠는가?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예악과 정벌이 제후諸侯로부터 나오면 10 안에 그 제후의 권력을 자기 신하에게 잃지 않는 예가 드물고, 대부大夫로부터 나오면 5 안에 그 대부의 권력을 가신家臣에게 잃지 않는 예가 드물고, 가신이 국권을 잡으면 3 안에 나라가 망하지 않는 예가 드물다.”라고 하였다.
自隱至昭而逐於季氏하니 凡十世 自宣至定而制於陽虎하니 凡五世 니라
은공隱公으로부터 소공昭公에 이르러서 계씨季氏에게 쫓겨났으니 대체로 10가 되고, 선공宣公으로부터 정공定公에 이르러서 양호陽虎에게 제재를 당하였는데 대체로 5가 되며, 양호陽虎는 1를 넘지 못하고 패하였다.
自是三桓微하여 散沒不復見하고 而魯公室雖微不絶하여 遂與戰國相終始니라
이때부터 삼환三桓은 미약해져서 산몰散沒하여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나라의 공실公室은 비록 미약하나 끊어지지 아니하여 드디어 전국戰國과 더불어 서로 운명을 같이하였다.
蓋以臣僭君하여 不義而得民이면 要以其力自斃니라
대개 신하로서 임금을 참월하여 불의하게 백성을 얻으면 결국은 그 힘으로써 스스로 패망한다.
君雖失衆이나 而其實無罪 久則民將哀之 其勢固多然哉인저
임금은 비록 민중을 잃더라도 기실은 죄가 없는지라, 오랜 시일이 흐르면 백성들이 슬퍼하게 되니, 그 형세상 진실로 당연한 일이다.
역주
역주1 : 周 武王이 紂王을 쳐서 殷나라를 멸하고 아우 周公 旦을 魯나라에 봉하였는데, 周公은 魯나라에 취임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서 武王을 돕고, 뒤에 또 成王을 도왔다. 周公이 죽자 아들 伯禽이 魯公에 봉해졌다. 춘추시대에 와서 쇠미해지고, 전국시대에 와서 楚나라에 멸망하였다.
이 글은 《古史》 卷10 〈魯周公世家 제3〉에서 篇名으로 취하였다.
역주2 魯自宣公……而竊咻之 : 《史記》 〈魯周公世家〉에 “文公에게 두 妃가 있어 長妃는 齊의 여자로 哀姜인데, 아들 惡와 視를 낳았고, 次妃는 敬嬴으로 총애받아 아들 俀를 낳았다. 俀가 사적으로 襄仲을 섬기니, 襄仲이 그를 세우려고 하자, 叔仲이 ‘불가하다.’고 하였다. 襄仲이 齊 惠公에게 청하니, 惠公은 갓 즉위하여 魯나라와 친해지려 하였기 때문에 허락하였다. 그해 10월에 襄仲이 惡와 視를 죽이고 俀를 세우니 이가 바로 宣公이다. 哀姜이 齊나라로 돌아와서 哭하고 저자를 지나가면서 ‘하느님이시여! 襄仲이 무도하여 嫡子를 죽이고 庶子를 세웠나이다.’라고 하니, 저자 사람들이 모두 哭하였으며, 魯나라 사람들이 그를 ‘哀姜’이라 하였고, 魯나라가 이로부터 公室의 위상이 낮아지고 三桓의 세력이 강해졌다.”고 하였다.
역주3 三桓 : 魯 桓公의 족속인 仲孫‧叔孫‧季孫을 가리킨다.
역주4 襄公二十九年……歸而不敢問 : 《春秋左氏傳》 襄公 29년에 의하면 “魯 襄公이 楚나라에 가서 康王의 장례에 참례하였는데, 이때에 季武子가 卞 지방을 점령하였다. 襄公이 楚로부터 돌아와 方城山에 이르렀으나 감히 魯나라로 들어가지 못하였고, 5월에 비로소 귀국하였으나 또한 감히 季武子가 卞 지방을 점령한 일을 따져 물어보지도 못하였다.”고 한다.
역주5 至昭公……遂以失國 : 《春秋左氏傳》 昭公 29년과 《史記》 〈魯周公世家〉에 의하면 “季氏가 魯의 宗室인 郈氏‧臧氏와 다투다가 臧氏의 家臣을 가두었다. 郈氏와 臧氏가 그 사실을 昭公에게 고하니, 昭公은 노하여 季氏를 쳤다. 季孫‧仲孫‧叔孫 三家가 또 합세하여 昭公을 치자 昭公은 出奔하였다.”고 한다.
역주6 哀公孤弱……終亦出死於越 : 《春秋左氏傳》 哀公 27년에는 “哀公은 三桓의 사치를 병통으로 여겨 제후들의 힘을 빌어서 이들을 제거하려 하였다. 반면에 三桓은 또한 哀公의 망령을 병통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군신간에 틈이 벌어졌다.……哀公은 越나라의 힘으로 魯나라를 쳐서 三桓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8월 甲戌日에 公孫 有陘氏(有山氏)에게로 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邾나라로 도망갔으며, 드디어는 越나라로 갔다.”고 적었다.
역주7 五世 : 魯 宣公으로부터 成公, 襄公, 昭公, 定公을 거쳐 哀公에 이르기까지를 가리킨다.
역주8 昔齊晏子……齊卒以亡 : 《春秋左氏傳》 昭公 26년에 “齊 景公이 晏子와 함께 正殿에 앉아 있을 때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름다운 이 집이 장차 누구의 소유가 될 것인가?’ 晏子가 말하였다. ‘감히 묻겠습니다만, 지금 하신 말씀은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景公이 말하였다. ‘나는 이 방을 장차 德이 있는 사람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晏子가 대답하였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이것은 장차 陳氏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陳氏는 큰 덕은 없지만,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받을 때에는 박하게 받고, 백성에게 줄 때에는 후하게 주고 있습니다. 公께서는 후하게 거두시고, 陳氏는 후하게 베푸니 백성들이 歸附합니다.……후세에 만일 정사를 게을리했을 때, 그때까지 陳氏가 망하지 않고 있다면, 나라는 틀림없이 陳氏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景公이 말했다. ‘참으로 그렇겠구나. 그러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晏子가 대답했다. ‘오직 禮만이 그런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禮에 있어서 大夫의 施惠는 國人에게 미치지 않고, 백성은 사는 곳을 변경하지 않으며, 農夫는 고장을 떠나지 않고, 工人과 商人은 직업을 변경하지 않고, 선비는 직책을 잃지 않고, 관리는 태만하지 않고, 大夫는 나라의 이익을 제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景公이 말했다. ‘참으로 그렇겠구나. 나는 예를 행할 수 없지만 지금에야 비로소 禮가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晏子가 대답했다. ‘禮가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옛날부터 그러했습니다. 禮란 천지와 함께 일어난 것입니다.’ ”란 내용이 보인다.
역주9 語稱哀公問社於宰我……旣往不咎 : 이 구절에 대하여 《十三經注疏》에서 邢昺은 “무릇 나라를 세우고 社를 세울 때에는 각각 그 나라의 토질에 알맞은 나무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哀公은 그 禮를 몰랐기 때문에 社를 세운 내력을 孔子의 제자 宰我에게 물었다. 三代에 社를 세울 때에 각각 그 나라의 토질에 알맞은 나무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宰我는 그것을 들어서 哀公에게 대답하였던 것이다. 다만 宰我가 그 나라 토질에 알맞은 나무를 사용한 뜻을 근거로 하지 않고 周나라가 밤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인하여 망령스럽게 말하기를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하려고 해서였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공자께서 宰我가 哀公에게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하려고 해서였다.’고 대답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虛妄함은 알았으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미 저지른 일이라 말하지 않겠으며, 이미 끝난 일이라 책망하지 않겠으며, 이미 지나간 일이라 탓하지 않겠노라.’ 하신 것은 宰我로 하여금 이후로는 삼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라고 풀이하였다.
朱子의 集註에서 尹焞은 “옛날에는 각각 토질에 알맞은 나무로써 社에 이름을 붙였을 뿐이고, 나무에서 뜻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宰我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대답하였기 때문에 夫子(孔子)께서 꾸짖은 것이다.”라고 풀이하였다.
그런데 蘇轍은 이와 다르게 보고 있다.
역주10 禮樂征伐……三世希不失矣 : 《論語》 〈季氏〉에 “天下에 기강이 서 있을 때는 예악과 정벌이 天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기강이 서 있지 않을 때는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오니, 제후로부터 나오면 대체로 10世 안에 그 제후의 권력을 자기 신하에게 잃지 않는 예가 드물고, 대부로부터 나오면 5世 안에 그 대부의 권력을 家臣에게 잃지 않는 예가 드물고, 가신이 국권을 잡으면 3世 안에 나라가 망하지 않는 예가 드물다.
천하에 기강이 서 있으면 정권이 대부에게 있지 않고, 천하에 기강이 서 있으면 백성이 국정에 대하여 시비를 의논할 까닭이 없다.[天下有道 則禮樂征伐 自天子出 天下無道 則禮樂征伐 自諸侯出 自諸侯出 蓋十世希不失矣 自大夫出 五世希不失矣 陪臣執國命 三世希不失矣 天下有道 則政不在大夫 天下有道 則庶人不議]”란 내용이 보인다.
역주11 虎不逾世而敗 : 陽虎는 三桓을 제거하고 定公을 제재하려고 하다가 실패하여 晉나라로 도망갔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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