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江出
하여 始得平地
하니 其流奔放肆大
하며 南合
상수湘원수沅하고 北合
한수漢면수沔하니 其勢益張
하며 至於
之下
하여는 波流浸灌
하여 與海相若
이니라
에 卽其廬之西南爲亭
하여 以覽觀江流之勝
하니 而余兄
자첨子瞻이 名之曰 快哉
라하니라
蓋亭之所見은 南北百里요 東西一舍어늘 濤瀾洶湧하고 風雲開闔하며 晝則舟楫出沒於其前하고 夜則魚龍悲嘯於其下니라
西望무창武昌諸山하면 岡陵起伏하고 草木行列하며 烟消日出하면 漁夫樵父之舍를 皆可指數니라
至於
장주長洲之濱
과 요 니 其流風遺迹
이 亦足以稱快世俗
이니라
昔초楚양왕襄王從송옥宋玉경차景差於蘭臺之宮하니 有風颯然至者니라
초왕楚王之所以爲樂과 與庶人之所以爲憂는 此則人之變也어늘 而風何與焉이리오
士生於世하여 使其中不自得이면 將何往而非病이리오
今
장군張君은 不以謫爲患
하고 하니 此其中宜有以過人者
니라
將蓬戶甕牖도 無所不快온 而況乎濯長江之淸流하고 挹서산西山之白雲하여 窮耳目之勝하여 以自適也哉아
不然
이면 連山絶壑
과 長林古木
을 振之以淸風
하고 照之以明月
은 此皆騷人思士之所以悲傷憔悴而不能勝者
니 烏覩其爲快也哉
아
송대宋代의 문체文體에 돌입하여 그 풍지風旨가 스스로 아름답다.
장강長江은 서릉西陵을 나와서 비로소 평지를 만나니, 그 유파流波가 빠르고 넓어지며, 남쪽으로는 상수湘水와 원수沅水를 합치고, 북쪽으로는 한수漢水와 면수沔水를 합치니, 그 수세水勢가 더욱 확장되며, 적벽赤壁의 아래에 이르러서는 각처의 물이 많이 흘러들어서 마치 바다와 같아진다.
청하淸河의 장군張君 몽득夢得이 제안齊安에서 귀양살이할 때 그 집의 서남쪽에 정자를 지어 강류江流의 승경勝景을 구경하였는데, 나의 형님 자첨子瞻이 그 정자의 이름을 짓기를 ‘쾌재정快哉亭’이라 하였다.
대개 정자에서 보이는 곳은 남북南北이 1백 리, 동서東西가 3십 리인데, 물결이 치솟고 구름이 열렸다 닫혔다 하며, 낮에는 주즙舟楫이 그 앞에서 출몰하고, 밤에는 어룡魚龍이 그 밑에서 슬피 부르짖는다.
변화가 돌발하여 마음을 움직이고 눈을 놀라게 하므로 오래도록 볼 수가 없다.
이제 편안하게 앉아서 구경할 수 있는 안석安席 위를 얻었으니, 눈을 들어 보면 그것으로 족하였다.
서쪽으로 무창武昌의 여러 산을 바라보면 강릉岡陵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고 초목草木이 줄지어 서 있으며, 연하煙霞가 사라지고 해가 나오면 어부漁夫와 초부樵父의 집을 모두 손가락으로 셀 수가 있다.
이래서 정자 이름을 ‘쾌재정快哉亭’라 하게 된 것이다.
장주長洲의 물가와 옛 성터로 말하면 조맹덕曹孟德(曹操)과 손중모孫仲謀(孫權)가 세상을 흘겨보며 세력을 과시하던 곳이고, 주유周瑜와 육손陸遜이 말을 달려 전운戰雲을 일으키던 곳이니, 그 유풍流風과 유적遺迹 또한 세속世俗을 장쾌하게 한다고 칭하기에 족하다.
옛날 초楚 양왕襄王이 송옥宋玉과 경차景差를 따라 난대蘭臺의 궁宮에 이르렀더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양왕襄王은 옷깃을 헤치고 바람을 쐬면서 “상쾌하도다! 이 바람을 과인寡人이 서민들과 함께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송옥宋玉은 “이는 오로지 대왕大王의 웅풍雄風일 뿐인데, 서민들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송옥宋玉의 말에는 대개 풍자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무릇 바람에는 수컷과 암컷의 구별이 없지만, 사람에게는 때를 잘 만나고 못 만나는 변화가 있는 것이다.
초왕楚王이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과 서민이 걱정으로 여기는 것은 곧 사람의 변화이거늘, 바람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서, 그 마음이 자득하지 못하게 한다면 장차 어디를 간들 병환이 아니겠는가?
그 마음이 평탄하여 외물로 본성을 상해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디를 간들 상쾌하지 않겠는가?
지금 장군張君은 귀양살이를 근심으로 여기지 않고, 회계會計를 처리하는 여가에는 스스로 마음을 산수山水의 사이에 놓아두니, 이것은 그 마음의 마땅함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남이 있기 때문이었다.
쑥대를 엮어서 문을 만들고 깨진 오지그릇으로 들창을 만들고도 상쾌하게 여기지 않은 바가 없었거늘, 하물며 장강의 맑은 물에 씻고, 서산西山의 흰 구름을 잡아다가 이목耳目의 승경을 다 누림으로써 구애됨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즐김을 하는 그 상쾌함이야 말할 것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연달아 이어진 산과 깊고 험한 계곡, 길게 뻗은 수풀과 오래 묵은 나무를 맑은 바람으로 진동하고 밝은 달로 비추는 것은, 이 모두 소인騷人과 사사思士가 비상悲傷하고 초췌憔悴하여 견딜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쾌재’가 됨을 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