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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3)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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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入宋調하여 而其風旨自佳니라
장강하여 始得平地하니 其流奔放肆大하며 南合상수원수하고 北合한수면수하니 其勢益張하며 至於之下하여는 波流浸灌하여 與海相若이니라
卽其廬之西南爲亭하여 以覽觀江流之勝하니 而余兄자첨子瞻 名之曰 快哉라하니라
蓋亭之所見 南北百里 東西一舍어늘 濤瀾洶湧하고 風雲開闔하며 晝則舟楫出沒於其前하고 夜則魚龍悲嘯於其下니라
變化焂忽하여 動心駭目하니 不可久視니라
今乃得玩之几席之上하니 擧目而足이니라
西望무창武昌諸山하면 岡陵起伏하고 草木行列하며 烟消日出하면 漁夫樵父之舍 皆可指數니라
此其所以爲快哉者也니라
至於장주長洲之濱 其流風遺迹 亦足以稱快世俗이니라
양왕襄王송옥宋玉경차景差於蘭臺之宮하니 有風颯然至者니라
夫風無雄雌之異 而人有遇不遇之變이니라
초왕楚王之所以爲樂 與庶人之所以爲憂 此則人之變也어늘 而風何與焉이리오
士生於世하여 使其中不自得이면 將何往而非病이리오
使其中坦然하여 이면 將何適而非快리오
장군張君 不以謫爲患하고 하니 此其中宜有以過人者니라
將蓬戶甕牖 無所不快 而況乎濯長江之淸流하고서산西山之白雲하여 窮耳目之勝하여 以自適也哉
不然이면 連山絶壑 長林古木 振之以淸風하고 照之以明月 此皆騷人思士之所以悲傷憔悴而不能勝者 烏覩其爲快也哉


08. 황주黃州쾌재정快哉亭에 대한 기문
송대宋代문체文體에 돌입하여 그 풍지風旨가 스스로 아름답다.
장강長江서릉西陵을 나와서 비로소 평지를 만나니, 그 유파流波가 빠르고 넓어지며, 남쪽으로는 상수湘水원수沅水를 합치고, 북쪽으로는 한수漢水면수沔水를 합치니, 그 수세水勢가 더욱 확장되며, 적벽赤壁의 아래에 이르러서는 각처의 물이 많이 흘러들어서 마치 바다와 같아진다.
청하淸河장군張君 몽득夢得제안齊安에서 귀양살이할 때 그 집의 서남쪽에 정자를 지어 강류江流승경勝景을 구경하였는데, 나의 형님 자첨子瞻이 그 정자의 이름을 짓기를 ‘쾌재정快哉亭’이라 하였다.
대개 정자에서 보이는 곳은 남북南北이 1백 리, 동서東西가 3십 리인데, 물결이 치솟고 구름이 열렸다 닫혔다 하며, 낮에는 주즙舟楫이 그 앞에서 출몰하고, 밤에는 어룡魚龍이 그 밑에서 슬피 부르짖는다.
변화가 돌발하여 마음을 움직이고 눈을 놀라게 하므로 오래도록 볼 수가 없다.
이제 편안하게 앉아서 구경할 수 있는 안석安席 위를 얻었으니, 눈을 들어 보면 그것으로 족하였다.
서쪽으로 무창武昌의 여러 산을 바라보면 강릉岡陵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고 초목草木이 줄지어 서 있으며, 연하煙霞가 사라지고 해가 나오면 어부漁夫초부樵父의 집을 모두 손가락으로 셀 수가 있다.
이래서 정자 이름을 ‘쾌재정快哉亭’라 하게 된 것이다.
장주長洲의 물가와 옛 성터로 말하면 조맹덕曹孟德(曹操)과 손중모孫仲謀(孫權)가 세상을 흘겨보며 세력을 과시하던 곳이고, 주유周瑜육손陸遜이 말을 달려 전운戰雲을 일으키던 곳이니, 그 유풍流風유적遺迹 또한 세속世俗을 장쾌하게 한다고 칭하기에 족하다.
옛날 양왕襄王송옥宋玉경차景差를 따라 난대蘭臺에 이르렀더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양왕襄王은 옷깃을 헤치고 바람을 쐬면서 “상쾌하도다! 이 바람을 과인寡人이 서민들과 함께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송옥宋玉은 “이는 오로지 대왕大王웅풍雄風일 뿐인데, 서민들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송옥宋玉의 말에는 대개 풍자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무릇 바람에는 수컷과 암컷의 구별이 없지만, 사람에게는 때를 잘 만나고 못 만나는 변화가 있는 것이다.
초왕楚王이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과 서민이 걱정으로 여기는 것은 곧 사람의 변화이거늘, 바람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서, 그 마음이 자득하지 못하게 한다면 장차 어디를 간들 병환이 아니겠는가?
그 마음이 평탄하여 외물로 본성을 상해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디를 간들 상쾌하지 않겠는가?
지금 장군張君은 귀양살이를 근심으로 여기지 않고, 회계會計를 처리하는 여가에는 스스로 마음을 산수山水의 사이에 놓아두니, 이것은 그 마음의 마땅함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남이 있기 때문이었다.
쑥대를 엮어서 문을 만들고 깨진 오지그릇으로 들창을 만들고도 상쾌하게 여기지 않은 바가 없었거늘, 하물며 장강의 맑은 물에 씻고, 서산西山의 흰 구름을 잡아다가 이목耳目의 승경을 다 누림으로써 구애됨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즐김을 하는 그 상쾌함이야 말할 것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연달아 이어진 산과 깊고 험한 계곡, 길게 뻗은 수풀과 오래 묵은 나무를 맑은 바람으로 진동하고 밝은 달로 비추는 것은, 이 모두 소인騷人사사思士비상悲傷하고 초췌憔悴하여 견딜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쾌재’가 됨을 볼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黃州快哉亭記 : 이 기문은 《欒城集》의 말미에 ‘元豐六年(1083) 十一月朔日 趙郡蘇轍記’란 구절이 있으니, 바로 저작시기를 말해준 것이다. 이때 蘇轍은 謫地인 筠州에서 鹽酒稅를 감시하는 小吏가 되었고, 그 형 蘇軾과 형의 친구인 張夢得도 黃州에 貶居하고 있었다.
張夢得은 강가에 정자를 지었는데, 蘇軾은 ‘快哉亭’이라 명명하였고, 蘇轍은 이 기문을 지어 張夢得의 활달한 처세태도와 낙관정신을 잘 표현하였다.
역주2 西陵 : 西陵峽으로 長江 三峽의 하나이다. 서쪽 湖北省 巴東縣 官渡口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宜昌縣 南津關에 이르렀다.
역주3 赤壁 : 산 이름이다. 지금의 湖北省 武昌縣 서쪽에 있는 赤磯山인데, 紗帽山과 더불어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본다. 이곳은 바로 東漢 建安 13년(208) 孫權이 劉備와 군사를 연합하여 曹操의 군사를 크게 깨드린 곳이다. 산 모습이 절벽처럼 가파르고 붉은색을 띠었기 때문에 ‘赤壁’이라 명명한 것이다.
역주4 淸河張君夢得 謫居齊安 : 張夢得은 자가 懷民으로 淸河 사람인데, 元豐 6년(1083) 겨울에 黃州에 貶謫되었다. ‘謫居齊安’은 齊安에 流放된 것을 가리킨다. 齊安은 黃州의 옛 이름인데, 南朝의 齊나라가 설치하였다.
역주5 故城之墟 曹孟德孫仲謀之所睥睨 : ‘故城’은 孫權의 古都를 가리킨다. 曹操의 자가 孟德, 孫權의 자가 仲謀로, 赤壁大戰 때 魏‧吳 쌍방의 主帥였다. ‘睥睨’는 흘겨봄을 가리킨다.
역주6 周瑜陸遜之所馳騖 : 周瑜와 陸遜이 말을 달리던 지방이란 뜻이다. 周瑜와 陸遜은 다 같이 삼국시대 吳나라의 統帥였다.
역주7 昔楚襄王從宋玉景差於蘭臺之宮……蓋有諷焉 : 宋玉의 〈風賦〉에는 “楚 襄王이 蘭臺의 宮에서 놀 때 宋玉과 景差가 모시었다.[楚襄王游於蘭臺之宮 宋玉景差侍]”라고 되어 있고, ‘大王之雄風’은 ‘大王之風’으로 되어 있다.
역주8 不以物傷性 : 遭遇가 좋지 못함으로 인하여 자기의 본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物’은 外物 또는 環境을 뜻하니, 곧 개인의 遭遇를 비유한 것이다.
역주9 收會計之餘功 而自放山水之間 : 직무의 여가에 일심으로 山水를 즐긴다는 말이다. ‘會計’는 賦稅와 錢穀에 대한 사무를 주관하는 것이다. ‘收’가 《欒城集》에는 ‘竊’로 되어 있다.
역주10 <주석명/> : 孫琮은 《山曉閣選宋大家蘇潁濱全集》에서 “전편을 통하여 모두 ‘快’자를 가지고 발론하였다. 대개 張君이 齊安에서 귀양살이하는 것을 世俗에서는 不快한 것으로 여겼지만, 張君만은 정자를 가지고 勝景을 취하였으니, 不快한 속에 스스로 大快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度量이 남보다 뛰어난 점이다. 그러므로 篇中에서 대략 정자를 짓게 된 이유를 서술하였다.
아래의 1段에서는 오늘 본 ‘快哉’를 기록하고, 다른 1段에서는 지난날의 ‘快哉’를 적었다. 그런 다음 楚王과 宋玉의 말을 빌리고, 張公의 오늘 意中의 ‘快哉’를 이끌어서 騷人과 思士의 悲傷하고 憔悴하는 것에 비할 것이 아님을 역설하였다. 이와 같이 적어가며 문득 ‘快’로 하여금 전편에서 빛이 나게 하였다.[通篇俱就快字發論 蓋因張君謫居齊安 世俗以爲不快 而張君獨能亭攬勝 於不快中自有大快 此其度量有過人處 故篇中略敍作亭之由 下一段寫今日所見之快 一段寫往古遺之快 然後借楚王宋玉之言 引其張公今日意中之快 非復騷人思士之悲傷憔悴者比 如此寫來 便令快字通篇出色]”라고 비평하였다.
蔡鑄는 《古文詳注補正》에서 “이 글은 ‘快哉’ 두 글자에서 정감이 생겼으니, 그 兄(蘇軾)의 〈超然臺記〉와 함께 전할 만하다. ‘超然’ 두 글자는 《莊子》에 근거를 두었고, ‘快哉’ 두 글자는 〈楚詞〉에 근거를 두었는데 모두 만나는 처지에 따라서 편안하게 여긴다는 뜻이 담겨 있다.
‘超然’은 바로 子由가 命名하고 子瞻이 글을 지은 것이고, ‘快哉’는 바로 子瞻이 命名하고 子由가 글을 지은 것이니, 같게 하려고 하지 않았어도 우연히 같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문장 속에 풍기는 雄偉한 氣는 사람을 위협하니, 이는 《欒城集》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문장이다.[此文從快哉二字生情 可與乃兄超然臺記幷傳 超然二字本莊子 快哉二字本楚詞 皆有隨遇而安之意 超然乃子由命名而子瞻爲文 快哉乃子瞻命名而子由爲文 可謂不同而同也 文中雄偉之氣 咄咄逼人 此欒城集中之翹楚也]”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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