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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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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이사
斯恬竝亦無辭니라
이사李斯몽념蒙恬은 모두 또한 변명할 말이 없을 것이다.
始皇以詐力兼天下하고 志得意滿하여 諱聞過失이니라
시황始皇은 사기와 폭력으로 천하天下를 겸병하고 마음에 한껏 만족을 느껴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기의 과실을 듣는 것을 꺼렸다.
李斯燔詩書誦功德하여 以成其氣하니 至其晩節 不可告語니라
이사李斯는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불태우고 공덕功德을 칭송하여 시황始皇의 교만심를 양성하였으므로 만년晩年에 와서는 어떤 말도 고해줄 수가 없었다.
君老하여 履危亂之機니라
임금(始皇)은 늙고 태자太子는 밖에 있어 위란危亂의 시기를 겪었으나, 부자가 화합할 수 있게 감히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였다.
雖始皇之暴 非斯養之 不至此也니라
아무리 시황始皇이 포학무도했다 하더라도 이사李斯가 양성하지 않았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及其事 知趙高之姦하고 復偸合取容하여 使高勢已成하고 天下已亂하니 乃欲力諫이나 不亦晩乎
이세二世를 섬길 때에 와서는 조고趙高의 간사함을 알고 다시 아부로 영합迎合하여 조고趙高의 세력이 이미 이루어지게 하고 천하가 이미 어지럽게 하였으니, 힘써 하려고 하였으나 또한 때가 이미 늦지 않았는가?
至於國破家滅 非不幸也니라
나라가 파탄되고 가문이 멸망되기에 이른 것은 〈죗값에 응당 있을 일이고〉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역주
역주1 李斯 : 李斯(?~B.C. 208)는 秦나라의 저명한 정치가이다.
《史記》 〈李斯列傳〉에 의하면 “李斯는 원래 楚나라 上蔡 사람이었는데, 戰國 말엽에 秦나라로 들어갔고, 秦나라가 6國을 통일한 뒤에는 丞相을 맡았다. 秦 始皇이 그의 건의를 채택하여 分封制를 폐하고 郡縣制를 시행하였으며, 焚書令을 내리고 私學을 금하여 중앙집권통치를 공고히 하였다. 李斯는 籒文을 小篆으로 변환하여 중국의 문자를 통일시키는 데 공헌한 바가 컸다. 始皇이 죽은 뒤에 그는 趙高의 계략을 듣고 始皇의 長子 扶蘇를 압박하여 자살하게 하고, 少子 胡亥를 세워 二世皇帝로 삼았다. 李斯는 뒤에 趙高에게 무함을 받았고, 그 아들 李由도 도적과 내통한다고 무함받아 咸陽에서 허리를 베이는 등 三族이 몰살당했다.”고 한다.
이 글은 《古史》 卷56 〈李斯列傳 제33〉에서 篇目으로 취한 것이다.
역주2 太子在外 : 長子 扶蘇가 자주 始皇에게 直諫한 탓으로 始皇의 명에 의해 上郡에 가서 監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3 莫敢以一言合其父子之親者 : 이때 趙高가 始皇과 太子 扶蘇의 관계를 이간시켰는데, 李斯는 부자가 화합하도록 감히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역주4 二世 : 秦 二世 胡亥로, 곧 始皇의 少子이다. B.C. 210년에서 B.C. 207년까지 재위하였고, 뒤에 子嬰에게 살해되었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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