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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1)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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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蘇氏兄弟 論罷侯置守處 竝祖柳宗元之論而附益之 而子由此論 却亦跌宕하니 可以補柳子之不足이니라
至始皇滅六國이나三代之諸侯 掃地無復遺者 非秦能滅諸侯 而勢之隆汚 極於此矣니라
傳商及周文武之間 止千七百餘國이니라
夫人之必爭이요 强弱之必相吞滅 此勢之必至者也니라
彼非諸侯獨能自存이요 聖賢之君 時出而齊之니라 是以 强者不敢肆하고 弱者有以自立이니라
蓋自禹五世而得하고 自少康十二世而得湯하고 自湯八世而得하고 自太戊十三世而得하고 自武丁八世而得周文武하니하여 雖有强暴諸侯 不得이니라
이나 諸侯亡者 已十八九矣니라
自文武以來 三十有三世 獨一 能紀綱諸夏니라
以後 諸侯放恣하니라
春秋之際 存者百七十餘國而已니라 雖齊桓晉文迭興하여 以會盟征伐持之라도 而道德不足하여 니라
陵遲至於六國하여 니라
地大兵强 皆務以詐力相傾이니라
雖使桓文復生이라도 號令將有所不行이니 非有盛德之君이면 不足以懷之矣니라
是以 至於蕩滅無餘而後止 秦雖欲復立諸侯 豈可得哉
而議者 乃追咎李斯不師古라가 始使秦孤立無援하여 二世而亡하니
夫商周之初功臣子弟諸侯 棊布天下하여 니라
是以 하여 하니 數世之後 皆爲하여 不可復動이니라
今秦已削平諸侯하여 蕩然無復立錐之國하니 雖使竝建子弟 而君民不親이니라
譬如措舟滄海之上하여 大風一作이면 漂巻而去 與秦之郡縣何異리오
割裂海內以封諸子하니 大者 連城數十이니라 舉無根之人하여 寄之萬民之上하니 之間 隨即散滅하여 이니라
豈非而未察其勢也哉
古之聖人 立法以御天下 必觀其勢하고 勢之所去 不可以이니라
今秦之郡縣 豈非也歟
이나 秦得其勢하고 而不免於滅亡이니 蓋治天下 在徳不在勢니라
誠能因勢以立法하고 務徳以扶勢 未有不安且治者也니라
使秦旣一天下 與民休息하고 寬徭賦하고 省刑罰하고 黜奢淫하고 崇儉約하고 選任忠良하고 放遠法吏하고 而以郡縣治之 雖與三代比隆이라도 可也


07. 진시황秦始皇에 대한
소씨蘇氏 형제兄弟제후諸侯를 없애고 군수郡守를 둔 것을 논한 부분은 모두 유종원柳宗元조종祖宗으로 하여 덧붙인 것인데, 자유子由의 이 〈시황론始皇論〉은 또한 문장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니, 유자柳子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만하다.
제후諸侯 제도가 생긴 것은 인류사회가 탄생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시황始皇에 와서 육국六國을 멸하였으나 오제五帝삼대三代제후諸侯가 땅을 쓸어버린 듯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은 나라가 제후諸侯를 멸한 것이 아니고 형세의 성쇠盛衰가 여기에서 극에 달한 것이다.
옛날 제후諸侯들을 도산塗山에 집합시키니 옥백玉帛을 가진 자가 만국萬國이나 되었다.
그런데 문왕文王무왕武王으로 전해지는 사이에 제후諸侯가 줄어서 1천 7백여 에 불과하였다.
무릇 사람은 반드시 다투기 마련이고, 은 반드시 서로 삼켜 없애기 마련이니, 이것은 형세상 반드시 닥치는 일이다.
제후諸侯들이 독자적인 역량에 의하여 보전되는 것이 아니고, 성현聖賢한 임금이 때에 따라 나와서 정비를 하니, 이러므로 강자强者는 감히 방사放肆하지 못하고 약자弱者자립自立할 수 있게 되었다.
로부터 5를 내려와 소강少康을 만나고, 소강少康으로부터 12를 내려와 을 만나고, 으로부터 8를 내려와 태무太戊를 만나고, 태무太戊로부터 13를 내려와 무정武丁을 만나고, 무정武丁으로부터 8를 내려와 문왕文王무왕武王을 만났으니, 이때에는 비록 강폭强暴제후諸侯가 있다 하더라도 무력武力으로 약소국弱小國을 정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제후諸侯로서 멸망한 자가 이미 10에 8, 9나 되었다.
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강왕康王 이후로 33를 내려와서는 오직 선왕宣王만이 중원中原제후諸侯들을 잘 다스렸다.
유왕幽王평왕平王 이후로는 제후諸侯들이 방자放恣하였다.
춘추春秋시대에는 남아 있는 나라가 170여 뿐이었으니, 비록 환공桓公 문공文公이 번갈아 일어나 회맹會盟정벌征伐로써 유지시켰다 하더라도 도덕道德부족不足하여 환공桓公 문공文公이 몸소 공멸攻滅제후국諸侯國이 이미 많았다.
점점 쇠퇴하여 육국六國에 이르러서는 중산中山사상제후泗上諸侯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땅이 크고 군사가 강한 제후諸侯는 모두 힘을 다해 사기詐欺무력武力을 써서 서로 경알傾軋하였다.
비록 환공桓公 문공文公이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호령號令이 장차 행해지지 않는 바가 있을 것이니, 성대한 미덕美德을 가진 임금이 아니고는 족히 회유懷柔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남김없이 멸망하고야 말았으니, 이 비록 다시 제후諸侯를 세우려고 한들 어찌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이 일을 평론하는 사람은 “이사李斯고대古代제후諸侯분봉分封하던 제도를 본받지 않았다가 비로소 으로 하여금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겨우 2를 전하고 망하게 하였다.”고 나무랐으니, 대개 제후諸侯가 이미 다한 정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의 초기에 비록 공신功臣자제子弟봉건封建하였으나, 상고上古시대의 제후諸侯들이 천하天下에 바둑처럼 펼쳐져 있어서 이미 박힌 뿌리가 깊고 견고하였다.
이 때문에 새로 봉해진 제후諸侯와 원래 봉해진 제후諸侯가 서로 유지하여 그 형세가 마치 견아犬牙와 같았으니, 몇 뒤에는 모두 고국故國이 되어 다시 움직일 수 없었다.
이제 이 이미 제후諸侯를 평정하여 다시 송곳을 꽂을 만한 나라도 없었으니, 비록 자제子弟봉건封建한다 하더라도 이 서로 친숙하지 못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선박을 창해滄海 위에 두어 대풍大風이 한번 일어나면 휩쓸어 가는 것과 같은 격이니, 군현郡縣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고조髙祖 무제武帝의 일을 보지 못하였는가?
해내海內의 땅을 분할하여 여러 자제를 봉하니, 큰 것은 수십 개의 을 연하였으나, 근본 없는 사람을 들어다가 만백성의 위에 앉혔기 때문에, 몇십 년 뒤에는 곧 소멸하여 작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어찌 그 명의名義에 미혹되어 그 형세를 살피지 못한 탓이 아니겠는가?
옛날 성인聖人을 세워 천하天下를 통치할 때에는 반드시 그 를 관찰하였고, 가 떠나는 마당에는 억지로 인력을 가지고 회복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 군현郡縣은 어찌 가 스스로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은 그 를 얻고도 멸망滅亡을 면치 못하였으니, 대개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법은 에 달려 있고 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형세를 살펴 법령을 제정하고 덕을 함양하여 대세를 부지한다면 천하를 안정시키고 또 다스리지 못할 자가 없다.
가사 이 이미 천하天下를 통일하였으면 백성과 함께 휴식休息을 취하고, 요부徭賦를 너그럽게 하고, 형벌刑罰을 경감하고, 사음奢淫을 퇴출하고, 검약儉約을 숭상하고, 충량忠良한 사람을 선임하고, 법을 무겁게 쓰는 혹리酷吏를 멀리 추방하고, 군현郡縣의 제도로 다스렸다면 비록 삼대三代융성隆盛을 비교하더라도 괜찮았을 것이다.


역주
역주1 始皇論 : 이 〈始皇論〉도 응당 소싯적 작품일 것이다. 秦나라가 六國을 멸하고 郡縣을 설치한 것은 바로 대세의 흐름이었고, 秦나라가 멸망한 이유는 세력을 얻고 德을 닦지 않은 데에 있다는 것이 본문의 요지이다.
역주2 諸侯之興 自生民始矣 : 인류사회가 있은 이후로 諸侯의 제도가 있었다는 말이다.
역주3 五帝 : 皇帝 軒轅‧顓頊 高陽‧帝嚳 高辛‧唐堯‧虞舜을 가리킨다.
역주4 昔禹會諸侯於塗山 執玉帛者萬國 : 《淮南子》 〈原道訓〉에 “禹는 천하가 배반할 것을 알고, 이에 城을 헐고 隍池를 메우고 財物을 분산하고 武器를 불태우고 나서 德을 베푸니, 해외에서 찾아오고 四夷가 공물을 바쳤다. 그래서 諸侯를 塗山에 집합시키니 玉帛을 가진 자가 萬國이었다.”고 하였다.
역주5 少康 : 夏王 相의 아들이자 禹의 7대손이다. 相이 寒浞의 庶子인 澆에게 피살되었는데, 少康이 舊臣 靡와 합력하여 寒浞을 멸하고 夏王朝를 회복시켰다.
역주6 太戊 : 太庚의 아들. 당시 商이 衰微하여 諸侯가 더러 조회하러 오지 않았는데, 太戊가 왕위에 올라 伊陟과 巫咸 등을 등용하니 商이 다시 일어났다.
역주7 武丁 : 盤庚의 아우인 小乙의 아들. 殷(商)은 盤庚이 죽은 뒤로 國勢가 衰落하였다. 武丁이 왕위에 올라 傅說을 정승으로 앉히고 열심히 政事를 돌보니 殷이 다시 强盛하였다. 죽은 뒤에 高宗이라 칭하였다.
역주8 是時 : 聖王이 代마다 세상에 나오던 때를 가리킨다.
역주9 以力加小弱 : 武力으로 弱小國을 정벌하는 일을 가리킨다.
역주10 虞夏 : 有虞氏의 세대와 夏禹氏의 세대를 가리킨다.
역주11 成康 : 周의 成王과 康王. 史家는 成王과 康王에 대하여 “成康의 시대에는 범죄가 없어서 40여 년 동안 형벌을 사용하지 않으니, ‘成康之治’라 칭했다.”라고 적고 있다.
역주12 宣王 : 周 厲王의 아들. 그가 在位했을 때에 북쪽으로는 玁狁을 정벌하고 남쪽으로는 荊蠻‧淮夷‧西戎을 정벌하였으니, 周의 中興主로 일컬어졌다.
역주13 幽平 : 幽王과 平王. 幽王은 周 宣王의 아들. 그는 애첩 褒姒를 총애하고 본처인 申后와 太子인 宜臼를 폐하였다. 이에 申侯가 원한을 품고 犬戎과 연합하여 周를 쳐서 幽王을 죽이니, 이른바 ‘西周’가 망하였다. 平王은 幽王의 아들인 宜臼로서 왕위에 오른 뒤에 犬戎을 피하기 위하여 도읍을 동쪽 洛邑으로 옮겼으니 이를 史家들이 ‘東周’라고 칭하였다.
역주14 其身所攻滅 蓋已多矣 : 齊 桓公과 晉 文公이 몸소 攻滅한 諸侯國이 이미 많았다는 말이다.
역주15 獨有宋衛中山泗上諸侯在耳 : 宋은 춘추시대 諸侯國의 하나였는데 전국시대에 와서 齊에게 멸망되고, 衛는 周 武王의 아우인 康叔의 封地였는데 秦에게 멸망되고, 中山은 周 諸侯國의 이름으로 전국시대에 中山國이었는데 趙 武靈王에게 멸망되었다. 泗上은 泗水 가를 가리킨다. 泗上諸侯는 宋‧魯‧邾‧莒 등 나라를 가리킨다.
역주16 蓋未之思 : 대개 諸侯의 勢가 이미 다한 정황을 고려하지 않은 점을 가리킨다.
역주17 封建 : 封地建國의 약칭. 封建制度는 黃帝 때 시작되고 周代에 와서 구비되었다고 한다.
역주18 上古 : 여기서는 五帝의 시기를 가리킨다.
역주19 植根深固 : 分封制度의 유래가 이미 오래되어서 견고하여 쪼갤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역주20 新故相維 : 원래 봉해진 諸侯와 새로 봉해진 諸侯가 서로 유지함을 가리킨다.
역주21 勢如犬牙 : 형세가 마치 개 이빨처럼 엇물려서 서로 견제함을 비유한 말이다.
역주22 故國 : 비교적 역사가 오래된 나라를 이른다.
역주23 且獨不見漢髙晉武之事乎 : 《史記》 〈漢興以來諸侯王年表〉에 의하면 “漢 高祖의 同姓 子弟가 봉해진 나라는 곧 楚‧齊‧荊‧淮南‧燕‧趙‧梁‧淮陽‧代 등 9개국이고, 長沙王만이 他姓이었다. 封地가 큰 경우는 5, 6郡에 수십 개의 城을 연하였다. 景帝 때에 와서 諸侯王이 세력을 割據하여 점점 강대해지자, 景帝가 晁錯의 계책을 써서 諸侯王의 封地를 깎았다. 뒤에 吳王 劉濞가 楚‧趙‧淄川‧濟南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였다. 《晉書》 〈武帝紀〉에 의하면 “武帝 즉위 초에 宗室을 27개국에 크게 봉하였다.”고 하였고, 《晉書》 〈惠帝紀〉와 〈懷帝紀〉에 의하면 “惠帝가 즉위하자, 汝南王 司馬亮이 太宰가 되어 권력을 휘둘렀고, 그 뒤 楚王 瑋‧趙王 倫‧齊王 囧‧河間王 顒‧成都王 穎‧長沙王 義‧東海王 越이 전후로 군사를 일으켜 권력을 쟁탈하였다.”고 하였다.
역주24 十數年 : 수십 년과 같은 말로, 漢 高祖와 晉 武帝가 分封한 宗室은 모두 몇십 년 후에 반란을 일으켰다.
역주25 不獲其用 : 宗室을 分封한 목적은 王室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작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역주26 惑於其名 : 宗室을 分封하여 王室을 강화한다는 名義에 迷惑되었다는 말이다.
역주27 强反 : 강제로 인력을 써서 회복하는 것이다.
역주28 勢之自至 : 반드시 郡縣을 건립해야 할 형세가 자연히 도달함을 이른다.
역주29 古之聖人………니라 : 呂留良의 《晩村先生八家古文精選》에는 “柳州(柳宗元)의 〈封建論〉과 서로 表裏가 된다. 다같이 ‘勢’ 한 자에 주안점을 두었으나 潁濱은 ‘後世에는 封建制度를 두려고 해도 둘 수 없다.’고 하였고, 柳州는 ‘先王은 封建制度를 폐지하려고 해도 폐지할 수 없었다.’고 하였으니, 純과 駁이 크게 서로 엇갈렸다.[與柳州封建論 相表裏 同主一勢字 然潁濱謂後世欲存封建而不得 柳州謂先王欲廢封建而不能 則純駁大相徑庭矣]”라고 비평하였고, 孫琮의 《山曉閣選宋大家蘇潁濱全集》에는 “篇中에 ‘勢’자로 立論하였으니 역시 卓見이다. 중간에 賢君이 있고 賢君이 없는 것으로 두 가지 뜻을 暢發하였으니, 또한 깊이 꿰뚫어본 것이다.[篇中以勢字立論 亦是卓見 中以有賢君無賢君 暢發二義 又爲深透]”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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