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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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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08. 나라
文本三折이나 悉中規矩니라
문장은 세 번 변환하였으나 모두 법도法度에 맞았다.
之後니라
나라는 소공召公의 후손이 〈왕위를 계승하는〉 나라였다.
이나 國於蠻貊之間이니 禮樂微矣니라
그러나 나라가 만맥蠻貊의 사이에 처해 있으므로 예악禮樂이 미미하였다.
春秋之際 未嘗出與諸侯會盟하고 至於戰國에도 亦以耕戰自守하여 安樂無事하고 未嘗被兵이니라
춘추시대에는 한 번도 나가서 제후諸侯들과 회맹會盟하지 않았고, 전국시대에 와서도 농사를 짓고 전쟁을 함으로써 스스로 나라를 지키며 태평세월을 누렸고 한 번도 병란兵亂을 겪은 적이 없었다.
文公二十八年 蘇秦入燕하여 始以縱橫之事說之니라
문공文公 28년에 소진蘇秦나라에 들어가서 비로소 종횡縱橫의 일을 가지고 문공文公에게 유세를 하였다.
自是兵交中國하여 無復寧歲 六世而亡이니라
이로부터 중국中國(中原)에 전쟁이 일어나서 다시 편할 날이 없었고 나라는 6 만에 망하였다.
나라는 태백太伯으로부터 수몽壽夢에 이르기까지 17 동안 제후諸侯들과 통교通交하지 않았다가, 무신巫臣나라에 들어가서 나라에 전차 타는 법과 전진戰陣하는 법과 활 쏘는 법을 가르쳐준 이래로 나라, 나라와 더불어 힘을 겨뤄 다투다가 7대 만에 망하였다.
燕吳雖南北絶遠이나 而興亡之迹 大略相似니라
나라와 나라는 비록 남북南北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흥망興亡의 자취가 대략 서로 같았다.
彼說客策士 借人之國하여 以自快於一時 可矣 因而徇之하여 猖狂恣行하여 以速滅亡 何哉
세객說客책사策士가 남의 나라를 빌어서 일시적 통쾌함을 도모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그대로 따라 멋대로 자행하여 멸망滅亡을 부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여 而奮於諸侯之上 以德服人則可어니와 不然이면 皆禍也니라
벽루僻陋초야草野 속에서 우뚝 일어나 제후諸侯들 위에서 분발하기를 마치 나라와 나라의 선왕先王들처럼 으로써 사람을 심복시키는 것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두 재화災禍만 이룰 뿐이다.
하니 雖使荊軻 能害秦王이라도 亦何救秦之滅燕이온
태자太子 에 이르러서는 국무鞠武의 계책은 듣지 않고 전광田光의 계책을 써서 비수匕首 하나로 진왕秦王을 죽이려고 하였으니, 설사 형가荊軻가 능히 진왕秦王을 해쳤다 하더라도 또한 어떻게 나라가 나라를 멸하는 것을 구할 수 있었겠는가?
而況不能哉
더구나 〈진왕秦王을〉 능히 해치지 못하지를 않았던가?
此又蘇秦之所不取也니라
이것은 또한 소진蘇秦이 취하는 바가 아니었다.
燕僻北徼 其與中國相傾危者後耳 非以蘇秦入而後被兵也니라
나라는 궁벽하게 북쪽 변두리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공격대상이 된 것이 최후였을 뿐이고, 소진蘇秦이 들어간 뒤에 병란兵亂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역주
역주1 : 燕나라는 B.C. 11세기에 건국하여 한때 동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다가 B.C. 222년에 秦나라에 멸망되었다.
이 글은 《古史》 卷11 〈燕召公世家 제4〉에서 篇名으로 취하였다.
역주2 召公 : 周 文王의 庶子로 燕나라에 최초로 봉해져 그 시조가 되었다.
역주3 十七世 : 《史記》 〈吳太伯世家〉에는 ‘十九世’로 되어 있다.
역주4 自巫臣入吳……七世而亡 : 《春秋左氏傳》에 成公 2년에는 “巫臣이 鄭나라에게 夏姬를 아내로 맞아들이겠다고 했기 때문에 鄭伯이 그것을 허락하였다.……鄭나라에 이르자, 副使에게 명하여 齊나라에 바칠 예물을 楚나라로 도로 가지고 가도록 하고, 자신은 夏姬를 데리고 마침내 晉나라로 달아났다.[巫臣聘諸鄭 鄭伯許之……及鄭使介反幣 而以夏姬行 遂奔晉]”란 말이 보인다.
成公 7년에는 “子重이 申과 呂의 田地를 빼앗아 賞田으로 삼기를 청하니 莊王이 그것을 허락하였다가, 申公巫臣이 안 되는 일이라고 하자 허락을 취소하였다. 이 때문에 子重은 巫臣을 원망하였다. 子反이 夏姬를 취하려고 하자, 巫臣은 그것을 막고 마침내 자기가 취하여 晉나라로 달아났다. 이 때문에 子反 또한 巫臣을 원망하였다.
〈莊王이 죽고〉 共王이 즉위하자, 子重과 子反은 巫臣의 일족을 죽이고 그들의 가산을 나누어 가졌다. 巫臣은 〈晉나라에서〉 子重과 子反 두 사람에게 서신을 보내어 ‘나는 반드시 너희들이 임금님의 명령을 좇다가 지쳐서 죽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巫臣이 〈晉侯의 허락을 받아〉 吳나라에 사신으로 가니 吳子 壽夢은 기뻐하였다. 그래서 巫臣은 吳나라를 晉나라와 通交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吳나라에 전차를 타는 법을 가르치고 戰陣하는 법을 가르쳤으며, 楚나라를 배반하도록 가르쳤다. 또한 자기 아들 狐庸을 吳나라에 남겨두어 吳나라에서 行人이 되게 하였다. 그리하여 吳나라는 처음으로 楚나라를 치고 이어서 楚나라의 속국인 巢와 徐를 쳤다.
子重은 임금의 명령을 받들고 巢와 徐를 구원하려고 달려갔다. 또 馬陵의 회합 때에는 吳나라가 楚나라의 州來 고을에 침입하였으므로 子重은 鄭나라를 토벌하는 도중에 州來의 구원명령을 받들고 달려갔다. 그리하여 子重과 子反은 1년 동안에 일곱 번이나 임금의 명령을 받들고 돌아다녔다.[子重請取於申呂以爲賞田 王許之 申公巫臣曰不可 王乃止 子重是以怨巫臣 子反欲取夏姬 巫臣止之 遂取以行 子反亦怨之 及共王卽位 子重子反 殺巫臣之族 而分其室 巫臣遺二子書曰 余必使爾罷於奔命以死 巫臣使於吳 吳子壽夢悅之 乃通吳于晉 敎吳乘車 敎之戰陣 敎之叛楚 置其子狐庸焉 使爲行人於吳 吳始伐楚伐巢伐徐 子重奔命 馬陵之會 吳入州來 子重自鄭奔命 子重子反於是乎一歲七奔命]”란 말이 보인다.
역주5 爲國者 :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燕나라와 吳나라의 통치자를 가리킨다.
역주6 夫起於僻陋之中 : 僻陋는 荒僻하고 鄙陋함이니, 곧 草野의 民間에서 우뚝 일어남을 뜻한다.
역주7 商周先王 : 商 湯, 周 太王과 周 文王 같은 이를 가리킨다.
역주8 至太子丹……欲以一匕首斃秦 : 太子 丹은 燕王 喜의 아들로, 秦나라에 볼모로 가 있다가 도망쳐 왔다. 그는 몰래 壯士를 양성하여 荊軻로 하여금 督亢地圖와 燕나라에 도망해 와 있는 秦나라 장수 樊於期의 머리를 秦王에게 바치게 하고 그 틈을 타서 秦王을 찔러 죽이도록 하였는데, 秦王이 사전에 깨달아 荊軻를 죽이고 王翦으로 하여금 燕나라를 치게 하자, 燕王 喜는 도망해 遼東으로 옮겨가서 丹의 머리를 베어 秦나라에 바치고 어렵게 보전하였으나, 3년 후에 秦나라가 遼東마저 격파하고 마침내 燕나라를 멸망시켰다.
鞠武에 대해 《史記》 〈刺客列傳〉에 의하면 “齊나라 사람으로 燕 太子 丹의 太傅가 된 鞠武는 丹이 秦나라를 막을 대책을 묻자, 秦나라의 비위를 거스르지 말도록 권하였고, 燕나라로 도망해 온 秦나라 장수 樊於期를 잘 대우하려는 丹에게 대하여 秦王을 激怒하게 하지 말라고 충고하였으며, ‘燕나라에 田光先生이란 분이 있어 사람됨이 지혜가 깊고 용맹이 뛰어나니 더불어 모의할 만하다.’고 하며 그를 소개해주었다.”고 한다.
田光에 대해 《史記》 〈刺客列傳〉에 의하면 “太子 丹이 鞠武의 소개로 田光을 만나 秦王을 찔러 죽일 대책을 논의하자, 田光은 老衰하다는 핑계로 사양하고 荊軻를 추천해주었으며, 太子가 ‘선생께서는 이 일을 누설하지 마시오.’라고 하니, 田光은 응낙하고 나와서 탄식하기를 ‘행위가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하는 것은 節俠이 아니다.’라고 하며 자결함으로써 荊軻를 격려하였다.”고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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