通篇
이 指神宗悔心處感諷開悟
니 得易之
之意
요 而始末處
에 有針線法度
니라
伏以 中外臣庶 各有
하니 越職而言
이면 國有
이니이다 臣守土陳州
하니 非有言責
이어늘 而輒言之
하니 計其狂愚
면 玆實有罪
니이다
然
이나 臣伏念頃以老疾
로 不任吏事
하니 陛下未忍廢棄
하고 親擇
하여 以遂安養
이시니이다
將
之日
에 面承德音
하고 以爲大臣之義
는 皆當爲國謀慮
요 不宜以中外爲嫌
하여 有所不盡
이니이다
伏惟聖德廣大하여 無所不容이어늘 而臣自到任以來 于今一歲에 心目昏眩이 有加無瘳니이다
陛下視臣志氣之衰至此
어늘 豈復有意
是非而與世俗爭議也哉
리잇가
今者에 竊有所懷하여 上爲陛下參之官吏하고 下爲陛下驗之百姓하니 而安危之機가 實在於此니이다
自惟
하여 邦之休戚
을 身實同之
하니 志力雖衰
나 於義不可嘿已
니이다
然
이나 臣之所欲言者
는 非敢遠引前古
하고 하여 以惑陛下之聰明也
니이다
臣伏見 陛下卽位之始
에는 計慮深遠
하여 凡有所建
이면 動合
이니이다
其後一年之間
에 誕布
하여 하고 勉勵州郡先農桑之政
하며 復
以廣言路
하고 議徭役以寬民力
하시니 盛德之事
를 不可具記
니이다
是時
는 天下雖
之後
나 而無不翹然想聞德音
하고 以忘其憂
니이다
歡欣
하고 九族親睦
하며 群臣萬民
이 蒙福而安
이니이다
紛紜之議
가 不至於朝廷
하고 謗讟之聲
이 不聞於
니이다
陛下自今視之시면 當日之政은 其爲可悔恨者 凡有幾잇가
以臣視之면 非獨陛下無所悔恨이요 雖天下之人이라도 亦未有以爲失當者也니이다
向使陛下推行此道하여 終始不變하시면 則臣以爲可久可大之功을 可得而致矣리이다
其後求治太切
하고 過當
하시니 하여 하니 於是
에 하고 하니이다
陛下饒之以金帛
하고 假之以干戈
하시니 小人貪功
하여 慮害不遠
하고 輕發深入
하여 結怨
하며 攘奪尺寸無用之土
하고 空竭
累世之積
이니이다
大者
는 疲弊
하고 小者
는 身死寇讐
하며 騷然不寧
하니 而陛下始一悔矣
시니이다
然而陛下는 天姿英果하여 有漢武宏達之量이시니 雖復兵吏失律이라도 而立功之意는 未嘗少衰시니이다
是以
로 左右大臣
이 測知此心
하고 하니 陛下樂聞其利
하여 而未暇深究其害
하고 於是
에 擧而從之
하사 置
하여 而講求天下之
시니이다
之秋
에 新政始出
하여 自是以來
로 凡所變革
은 不可悉數
니이다
其最大者
는 一出而爲
요 再出而爲
이요 三出而爲
이요 四出而爲
이니이다
四者倂行於世
하니 官吏疑惑
하고 兵民憤怨
하며 諫爭者
는 章交於朝
하고 誹謗者
는 聲播於市
하니 陛下不勝其煩
하사 爲之
太息
하여 日昃而不食矣
시니이다
然이나 猶幸其成功하여 力排衆人之議하고 而固守之하시니 天下方共厭苦하되 而不知其所止也니이다
而揀兵倂營之策이 其害先見하니 武夫凶悍하여 爲怨最深이요 爲患最急이니이다
陛下知其不可
하고 於是
에 多支
하며 復收退卒
하여 以順適其意
시니 而陛下旣再悔矣
시니이다
陛下雖推恩撫之하시나 而終不以爲惠하고 反謂陛下畏之耳니이다
하여 付以疆事
하고 多出金幣
하며 豫書誥勅
하여 以成其深入之計
니이다
當此之時에 天下之心이 知其必敗矣언마는 而陛下는 與一二臣者로 方以爲萬擧而萬全이라하시니다
旣而出兵無人之境
하고 하며 하여 以求無益之功
하며 使秦晉之民
으로 父子流離
하고 니이다
戎人徼倦受屈
하니 已築之城
이 隨卽傾覆
하고 하여 四方震動
이니이다
君臣
而後
에 下罪己之詔
하고 投竄
하여 以謝
하니 而陛下旣三悔矣
시니이다
夫此三者는 方其未悔也에 陛下亦以爲是邪非邪언마는 陛下犯逆衆心하고 力行而不顧하시니 其必以爲是요 不以爲非也시니이다
臣聞 衆而不可欺者는 民也요 勇而不可犯者는 兵也요 險而不可侮者는 隣國也라하나이다
夫犯兵侮隣은 變速而禍小하고 至於欺民하얀 則變遲而禍大하니이다
變速而禍小者도 瓦解之憂也요 變遲而禍大者는 土崩之患也니이다
今瓦解之憂는 陛下旣知悔矣시고 土崩之患은 陛下未以爲意시니 此臣之所以寒心也니이다
事之未敗也엔 陛下不悟其非하고 必俟其敗而後悔하시니 如向三者는 則陛下之復已遠이요 而悔亦大矣니이다
且臣觀之
컨대 方今陛下之所是而未悔者
에 亦有三而已
니 靑苗
保甲
이니이다
何者
오 言事者 論其不可
가 非一人也
니이다 이 非一家也
니이다
陛下其亦知之矣로되 徘徊而不改하사 使民無所告訴시니이다
加之以水旱하고 繼之以饑饉하니 積憾之民이 奮爲群盜하여 侵淫蔓延하며 滅而復起하니 英雄乘間而作하여 振臂一呼에 而千人之衆을 可得而聚也니이다
故로 臣願陛下取卽位之政과 與今日之事하여 而試觀之하소서
陛下誠以此較之시면 則不待臣言之終하고 而得失을 可以自決矣리이다
且夫卽位之政은 陛下之本心也요 今日之事는 臣下之過計也니이다
陛下棄卽位之本心하고 而徇臣下之過計하시니 臣竊以爲過也니이다
雖然
이나 臣竊聽之道路
하면 方今陛下則亦悔之矣
라하니 悔之而不變
은 非陛下之意也
요 迫於
耳
니이다
夫人臣進謀於其君하고 苟事之不遂하여 而變以從衆하면 則人主有以測其深淺이리이다
人主有以測其深淺
이면 則其
이 在於人主
니 此人臣之所以不便也
니이다
陛下爲社稷之計는 欲改過以安天下하시나 而怙權固位之臣이 持之而不釋하나이다
陛下聰明睿知하고 廢置自我하되 而獨爲此鬱鬱也시니이다
漢宣帝
가 與趙充國
으로 擊匈奴
하니 魏相非之
하여 以爲當與
及有識者
와 詳議乃可
라하니이다
然而與國同憂樂하고 無僥倖功名之心與希望爵賞之意는 則過於充國遠甚이니이다
陛下將安民保國
하되 而與喜
好權利者謀之
하시니 臣不知其可也
니이다
臣不勝區區忘身憂國之誠
하여 是以
로 而言切
하오니 惟陛下察之
02. 진주교수陳州敎授가 장안도張安道를 위하여 시사時事를 논한 글
전편全篇이 신종神宗이 뉘우친 곳에서 풍간諷諫으로 감명을 주어서 깨닫게 하였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으니, 《역경易經》의 ‘납약자유納約自牖’란 뜻을 얻은 것이며, 문장이 시작한 곳과 마무리한 곳에서 곱게 재단해서 바느질하는 솜씨를 보였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중앙과 지방에 있는 모든 신하와 서민들에게는 각각 맡은 직무가 있으니, 직무 밖의 일을 말한다면 나라에 상법常法이 있어 〈처벌을 합니다.〉 소신小臣은 진주陳州의 땅을 지키는 직무를 맡았으므로 언책言責을 갖지 않았는데 문득 말을 하게 되었으니, 그 광우狂愚를 헤아리면 이에 실제로 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신小臣이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번에 노질老疾로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니, 폐하陛下께서 차마 폐기하지 못하고 친히 편리한 곳을 택해서 편안히 지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소신小臣은 임지任地에 부임하기 위하여 폐하陛下께 하직인사를 드리려고 하던 날 면전에서 덕음德音을 받자옵고, ‘대신大臣의 의무는 응당 나라를 위하여 모려謀慮를 해야 되지, 중앙과 지방이란 것을 혐의로 삼아 충성을 다하지 않는 바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옛사람이 “비록 너희들의 몸은 밖에 있으나 너희들의 마음은 왕실에 두도록 하라.”고 한 말이 있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성덕聖德은 광대廣大하여 용납하지 않은 바가 없으시거늘, 소신小臣은 도임한 지 지금 1년이 되었는데 심목心目의 혼현증昏眩症이 더해만 가고 낫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폐하陛下께 여생餘生을 돌려받아 시골집으로 돌아갈 것을 청구하였으나 미성微誠이 오래도록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폐하陛下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소신小臣은 지기志氣의 쇠퇴衰頹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사온데, 어찌 다시 시비를 분별하여 세속과 쟁의爭議할 생각을 가지겠습니까?
이 때문에 〈신법新法의〉 득실得失에 대하여 오래도록 관여한 바가 없었습니다.
지금 남몰래 품은 회포가 있사와 위로는 폐하陛下를 위하여 〈신법을〉 관리에게서 참고해보고 아래로는 폐하陛下를 위하여 〈신법을〉 백성에게서 징험해보건대, 국가를 편하게 만드느냐 위태롭게 만드느냐 하는 기회는 바로 이때에 달려 있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옵건대 소신은 여러 성군聖君의 은총을 받아 나라의 휴척休戚을 이 몸이 실로 같이하고 있으니, 지력志力은 비록 쇠퇴하였지만 의리에 있어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소신이 말하고 싶은 것은 감히 멀리 전고前古의 일을 끌어대고 미래를 추측함으로써 폐하의 총명을 의혹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두 폐하께서 아시는 바요, 어리석은 소신이 참여해서 들은 일들입니다.
소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폐하陛下께서 즉위하신 초기에는 계려計慮가 심원深遠하셔서 무릇 세우시는 바가 있으면 으레 천의天意에 부합되었습니다.
당초 산릉山陵에 대해 의논할 적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것을 깊이 염려하시고 선제先帝(英宗)께서 박장薄葬하라 하신 유명遺命을 밝혀서 담당관에게 조서詔書를 내리시니, 사방에서 이 소식을 듣고 감읍感泣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뒤 1년 동안에는 호령號令을 널리 선포하여 종족宗族을 거느리고 효제孝悌의 행실을 돈독히 지킬 것을 권하시고, 주군州郡에게 농상農桑에 관한 정사를 우선적으로 하도록 면려勉勵하시고, 전대轉對의 제도를 회복시킴으로써 언로言路를 넓히시고, 요역徭役에 대한 것을 의논하여 백성의 힘이 펴지게 하셨으니, 이와 같은 성덕盛德의 일을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는 천하가 비록 큰 변고를 당한 뒤였지만, 폐하陛下의 덕음德音을 듣고 큰 변고에 대한 걱정을 잊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양궁兩宮이 환흔歡欣하고 구족九族이 친목親睦하며 군신群臣과 만민萬民이 복을 흠뻑 받아 편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지러운 의론이 조정에 이르지 않고, 비방하고 원망하는 소리가 여리閭里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폐하께서 한가롭게 지내시고 작위作爲하는 일이 없으셨지만 천하는 이미 다스려졌습니다.
나라가 이처럼 다스려졌거늘, 어찌 즐겁지 않았겠습니까?
폐하께서 지금 보시면 당시 시행했던 정사 중에 회한悔恨할 만한 것이 얼마나 있었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소신이 볼 때에는 폐하께서 회한悔恨하는 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록 천하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또한 온당함을 잃었다고 생각할 자가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령政令이 간략하고 쉬워서 인민이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쉬우면 알기 쉽고 간략하면 따르기 쉬우며, 알기 쉬우면 친함이 있고 따르기 쉬우면 공功이 있으며, 친함이 있으면 오래갈 수 있다.”고 하였으니,
전일에 만일 폐하께서 이 도리를 미루어 행하여 시종 변하지 않게 하였더라면, 소신은 오래갈 수 있고 크게 할 수 있는 공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뒤에 치도治道를 구하심이 너무 급박하고 마음을 쓰심이 정도에 넘치니, 간신姦臣이 그 틈을 타서 사설邪說을 진달進達하게 되어, 비로소 강토를 확장할 것을 의논해와 성상聖上의 뜻에 영합하였으니, 이에 연안延安에서는 횡산橫山을 점거하는 모의가 있었고, 보안保安에서는 장수들을 유인하는 음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금백金帛 같은 예산을 넉넉히 대주시고 간과干戈 같은 무기를 공급하시니, 소인들은 공을 탐하여 해독을 염려하는 일을 멀리 내다보지 않고 경솔하게 발동하여 깊숙이 들어가서 서융西戎과 원수를 맺으면서 척촌尺寸만 한 쓸모없는 땅을 약탈하느라 여러 세대에 걸쳐 쌓아온 내부內府의 재물을 탕진하였습니다.
크게는 진옹秦雍을 피폐疲弊시키고 작게는 구수寇讐에게 신명身命이 죽는 등 서북변경이 평온하지 못하였으니, 폐하께서 비로소 첫 번째 후회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자질資質이 영명英明하고 과단성果斷性이 있어서 한漢 무제武帝처럼 굉달宏達한 국량局量을 가지셨으므로, 비록 다시 군사와 관리가 규율規律을 잃었더라도 공을 세울 뜻은 일찍이 조금도 쇠퇴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때문에 좌우 대신들이 이와 같은 폐하의 마음을 헤아려 알고 다시 재리財利에 대한 설說을 진달하니, 폐하께서는 그 재리財利에 대한 설說을 반갑게 들으시어 그 해독에 대한 것은 깊이 구명하지 않으시고, 이에 그 요청에 따라 조례사條例司를 설치하여 천하에 다 쓰이지 못하고 있는 이익을 강구하셨습니다.
기유년己酉年 가을에 신정新政이 비로소 출현하였는데, 이후로 변혁變革된 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만을 말한다면 첫 번째 출현하여 ‘상평청묘常平靑苗’라는 것이 되었고, 두 번째 출현하여 ‘간병병영揀兵倂營’이란 것이 되었고, 세 번째 출현하여 ‘출전고역出錢雇役’이란 것이 되었고, 네 번째 출현하여 ‘보갑교열保甲敎閱’이란 것이 되었습니다.
이 네 가지가 아울러 세상에 실행되니 관리官吏들은 의혹疑惑하고 군민軍民들은 분원憤怨해하며, 간쟁諫諍하는 자의 장주章奏가 조정에 어지럽게 전해지고 비방誹謗하는 자의 목소리가 저자에 시끄럽게 퍼지니, 폐하께서는 그 번거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집무실執務室에서 크게 탄식하여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도 수라를 들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요행히 성공할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뭇사람의 의논을 힘써 배제하고 신법新法을 굳게 지키시니, 천하가 다 함께 신법新法을 싫어하고 괴롭게 여겼으나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간병병영책揀兵倂營策이 먼저 그 해독害毒을 드러내자, 무부武夫는 흉한凶悍한 존재라서 가장 깊이 원망하고 가장 급한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폐하께서 그 불가함을 아시고 이에 월량月糧을 많이 지급하셨으며, 물러간 군사들을 다시 거두어서 그들의 뜻을 잘 맞추어주셨으니, 폐하께서 이미 두 번째 후회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군중軍中의 원성이 오히려 다시 세차게 일어나서 조용하지 못하였습니다.
폐하께서 비록 은혜를 베풀어 어루만지셨지만 그들은 끝내 은혜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폐하께서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불행하게도 변경을 수비하는 신하가 세운 계획이 잘못되어서 재차 마음을 놓지 못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유악帷幄의 중신重臣은 좋은 계획을 세우지 못하여 안정시키는 일은 힘쓰지 않고 소란스러운 일만 힘씁니다.
그래서 헌함軒檻에 임臨하여 집정執政을 파견하여 강역疆域에 관한 일을 맡기고 금폐金幣를 많이 내주었으며, 미리 고칙誥勅을 써서 깊이 들어갈 계획을 완성하였습니다.
이때에 천하의 인심은 그 일이 반드시 실패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폐하께서는 한두 신하와 함께 바야흐로 무슨 일이든 거행하면 만전을 기할 것이라 여기셨습니다.
이윽고 무인지경無人之境에 군사를 내보내고 지키지 못할 곳에 성을 쌓았으며, 복심腹心을 곤폐困弊시켜 무익無益한 공을 구하였으며, 진진秦晉의 백성들로 하여금 부자父子가 유리流離하고 참살慘殺을 당하여 간과 뇌가 땅바닥에 으깨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융인戎人이 피곤한 틈을 엿보아 핍박을 가함으로써 굴욕을 받았으니, 이미 쌓은 성이 따라서 곧 경복傾覆되고, 구원하러 온 군사들이 서로 이어서 무너지기도 하고 배반하기도 하여 사방이 진동震動하였습니다.
군신君臣이 소의간식宵衣旰食한 뒤에야 자기를 죄책罪責하는 조서詔書를 내리고 원재元宰를 방축放逐하여 서북양변西北兩邊에 사죄하셨으니, 폐하께서 이미 세 번째 후회하신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후회하시기 전에 일단 폐하께서도 역시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를 생각해보셨어야 했을 것인데, 폐하께서는 민중의 마음을 거역하고 힘써 행하되 뒤도 돌아보지 않으셨으니, 그것은 필시 옳다고 여기고 그르다고 여기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끝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폐하께서 옳다고 여기고 후회하지 않으신 것 역시 이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신은 듣자옵건대, 대중적 존재라서 속일 수 없는 것은 백성이고, 용맹스런 존재라서 범할 수 없는 것은 군사이고, 위험한 존재라서 업신여길 수 없는 것은 이웃 나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이미 백성을 속였고 군사를 범했고 이웃 나라를 업신여기셨습니다.
군사를 범하고 이웃 나라를 업신여기는 경우는 변變이 빨리 나타나지만 화禍가 작고, 백성을 속이는 경우는 변變이 더디게 나타나지만 화禍가 큽니다.
변變이 빨리 나타나지만 화禍가 작은 것은 와해瓦解 정도에 해당하는 걱정이고, 변變이 더디게 나타나지만 화禍가 큰 것은 토붕土崩 정도에 해당하는 걱정입니다.
지금 와해瓦解 정도에 해당하는 걱정은 폐하께서 이미 후회할 줄 아시고, 토붕土崩 정도에 해당하는 걱정은 폐하께서 생각지 못하시니, 이것이 바로 소신이 한심해하는 것입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머지않아 돌아오는지라 뉘우침에 이름이 없으니, 크게 길吉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일이 실패하기 전에는 폐하께서 그것이 그른 것인 줄을 깨닫지 못하시고 반드시 그것이 실패한 뒤에 가서야 후회하시니, 앞에서 열거한 세 가지와 같은 것은 폐하께서 〈원위치로〉 돌아오신 기일이 이미 멀었고 후회 또한 컸습니다.
또 소신이 살펴보건대, 지금 폐하께서 옳은 것으로 여기고 후회하지 않으시는 것에는 또한 세 가지가 있을 뿐이니, 청묘靑苗‧조역助役‧보갑保甲입니다.
이 세 가지의 폐단에 대해서는 소신이 다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나랏일을 말하는 자 중에 그 신법新法의 옳지 못한 점을 논한 사람이 한 사람뿐이 아니고, 백성 중에 지체肢體를 훼괴毁壞하고 이목耳目을 훈작燻灼하며 모친母親을 시집보내 분가해서 살고 전택田宅을 헐값으로 팔아서 역役을 탈면脫免하는 가정이 한 가정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는 그것을 또한 아시면서도 이리저리 피하고 고치지 않으셔서 백성들로 하여금 하소연할 바가 없게 하십니다.
게다가 수재水災와 한발旱魃까지 더해지고, 곡식과 채소가 익지 않는 흉년이 계속되니, 감정이 쌓인 백성들이 분기奮起하여 군도群盜가 되어 점차로 뻗어나가며 없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니, 영웅英雄이 그 틈을 타서 일어나 팔을 휘두르며 한번 불러대면 천 명의 대중을 금방 모을 수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형세가 이루어졌으니, 이것이 이른바 ‘토붕土崩’의 형세입니다.
소신은 두려워하옵건대, 폐하께서 이런 지경에 이르시면 비록 다시 후회하려고 하셔도 미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신은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즉위 당시의 정사와 오늘날의 일을 가지고 시험해보소서.
천하가 시끄러워 불안한 것이 오늘날보다 심한 적이 있었습니까?
뭇 신하들이 한 목소리로 쟁변爭辯하는 것이 오늘날과 같이 많은 적이 있었습니까?
폐하께서 듣고 보는 데에 피곤하심이 오늘과 같이 많은 적이 있었습니까?
회한悔恨하고 자책自責하는 것이 오늘날과 같이 절박한 적이 있었습니까?
폐하께서 진실로 이것으로 비교하신다면 소신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득실得失을 스스로 결정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즉위 당시의 정사는 폐하의 본심이요, 오늘날의 일은 신하의 잘못된 계획입니다.
폐하께서 즉위 당시의 본심을 버리고 신하의 잘못된 계획을 따르시니, 소신은 속으로 잘못으로 여깁니다.
비록 그러나 소신이 도로에서 들어보면, 현재 폐하께서는 또한 후회하신다고 하는데, 후회하면서도 변경하지 않으시는 것은 폐하의 뜻이 아니라, 건의建議하는 신하에게 핍박을 당한 것일 뿐입니다.
신하가 임금에게 계책을 진달하고 나서 그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변경하여 대중을 따른다면, 임금은 그 계획의 천심淺深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임금이 그 계획의 천심淺深을 헤아릴 수 있으면 그 사람을 승진시키거나 퇴출시키는 권한이 임금에게 있으니, 이것이 신하가 불편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사직社稷을 위하는 계책을 하여 허물을 고쳐서 천하를 편안하게 하려고 하시나, 권세를 믿고 지위를 굳힌 신하가 그것을 견지하여 놓아주지 않습니다.
폐하께서는 총명聰明스럽고 예지睿智스러우며 폐치廢置하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으시면서도 홀로 이처럼 울울해하십니다.
한漢 선제宣帝가 조충국趙充國과 함께 흉노匈奴를 칠 것을 의논하자, 위상魏相은 그것을 잘못으로 여겨서 “마땅히 평창후平昌侯‧낙창후樂昌侯‧평은후平恩侯 및 유식자有識者와 더불어 자세히 의논하여야 옳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 사람은 조충국趙充國보다 어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라와 더불어 우락憂樂을 함께하고 공명功名을 바라는 마음과 작상爵賞을 희망하는 뜻이 없는 것은 조충국趙充國보다 아주 월등하였습니다.
조충국趙充國도 오히려 들어줄 수 없었는데, 하물며 조충국만 못한 사람이야 말할 것 있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장차 안민보국安民保國하려고 하시면서 공훈功勳을 즐기고 권리權利를 좋아하는 자와 더불어 모책謀策을 하시니, 소신은 그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신은 구구하게 몸을 잊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을 이기지 못하여 이 때문에 형세는 소원하지만 말은 간절하오니, 폐하께서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노신老臣을 대신한 건언建言은 한 조항 한 조항이 모두 전형典型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