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東南利害之勢處는 雖未當이나 而行文有法度하고 變換處는 竝古人入彀處니라
하고 凌蔑
제齊진晉하고 結怨
초楚월越하여 再世而亡
하니 何者
오
월왕越王구천句踐은 旣克
부차夫差하고 雖號
월왕王이나 而實斂兵自守
하여 無大征伐
하고 分
오吳故土
하여 以畀
초楚송宋노魯하고 遂以保國傳世
하니 彼親見其害
하고 知所以自監矣哉
인저
히 皆國於
오吳월越之墟
하니 成敗之迹
이 無不然者
니라
雖
善用兵
도 或能一勝
이나 而民以罷弊
하여 訖於無成
이니라
至
은 蓋不足數也
어니와 如
之賢
도 猶勉强北征
이라가 失策而死
하니 亦眩於其名
하여 而未
사안安其實故耶
아
동쪽 지역과 남쪽 지역의 이해관계를 말한 부분은 비록 타당하지 못하나 행문行文에는 법도가 있고, 변환하는 곳은 바로 옛사람의 격식에 부합한다.
오吳나라는 만이蠻夷의 나라로서 중원中原의 제후국諸侯國과 더불어 맹주盟主를 다투었고,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능멸하고 초楚나라‧월越나라와 원수를 맺어 2대 만에 망하였으니,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역은 멀리 떨어져 있고 백성들은 피곤에 지쳐서 정세가 순조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이미 부차夫差를 쳐서 승리하고 비록 ‘패왕伯王’이란 호칭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군대를 모아서 스스로 지키고 정벌을 중시하는 일이 없었으며, 오吳나라의 고토故土를 나누어서 초楚나라‧송宋나라‧노魯나라에게 지급하고 마침내 나라를 보전하여 후세에 전하였으니, 저 구천句踐은 망국亡國의 피해를 직접 보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감독해야 할 것을 알았다.
월왕越王 무강無彊에 이르러서는 합려闔閭의 지혜는 없고 부차夫差의 어리석음은 있었으니, 그 나라를 쇠잔하게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옛날 초楚 장왕莊王은 진陳나라‧송宋나라‧정鄭나라를 쳐서 승리하였으니, 힘이 능히 그들을 취할 수 있었지만 점유하지 않았으니, 제후諸侯들이 안심하였고 초楚나라는 마침내 흥기하였다.
초楚 영왕靈王은 진陳나라의 도성都城인 완구宛丘와 채蔡나라의 도성都城인 신채新蔡와 서불갱西不羮의 고성古城에 성城을 확대해서 쌓고 중하中夏(中原)를 관리 통치하여 끝없이 탐욕을 부렸으니, 자신이 직접 그 재앙을 받았다.
대개 동쪽 지역과 남쪽 지역의 일상적인 정세를 여기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진東晉에서 진陳나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옛터에 나라를 세웠으므로 성패成敗의 자취가 같은 양상들이었다.
비록 환온桓溫과 유유劉裕처럼 용병用兵을 잘한 자도 혹 능히 한 번은 승리하였으나 백성들이 그로 인해 피폐疲弊해져서 성공 없이 끝났다.
은호殷浩와 유량庾亮 같은 이는 족히 헤아릴 것이 못 되거니와 사안謝安 같은 어진 이도 오히려 북정北征에 힘쓰다가 실책하여 죽었으니, 또한 명예에 눈이 멀어 실제 정황에 안주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국사에 대한 모책을 채모蔡謨와 같이 한다면 나는 그에게서 취할 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