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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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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2. 맹상군
評四君處 亦與太史公相跌宕하니라
네 임금을 평한 부분은 또한 태사공太史公(四馬遷)과 더불어 문장이 일정한 규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였다.
戰國以詐力相侵伐하니 二百餘年 이니라
전국시대에는 제후국들이 교사狡詐의 수단을 써서 상호 침벌侵伐하였으니 그 2백여 년 동안에는 한 번도 명분이 있는 출병出兵이 없었다.
諸侯熟視하고 無敢以一言問秦者니라
소왕昭王 회왕懷王을 속여 유인해 와서 가두어놓고 땅을 떼어주기를 요구하였으나 제후諸侯들은 쳐다만 보고 감히 나라에 대해 문책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는 자가 없었다.
오직 전문田文(孟嘗君)만이 나라에서 정승을 면하고 거의 벗어나지 못할 뻔하다가 나라로 돌아와서 소왕昭王을 원망하였다.
이에 〈맹상군孟嘗君은〉 나라를 친다는 것을 빌어 명분으로 삼고 나라‧나라와 더불어 나라를 쳤다.
兵至函谷하니 秦人震恐하여 割地以與韓魏하고 僅乃得免이니라
연합군이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니, 나라 사람들은 벌벌 떨며 땅을 떼어서 나라와 나라에 주고 근근이 망국의 화환禍患을 면할 수 있었다.
산동山東 육국六國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펼친 뒤로부터 이처럼 장렬壯烈한 적은 없었다.
하니 有名之兵 誰能禦之리오
무릇 군사란 정당하면 사기 왕성하고 부당하면 피로한 것이니, 명분이 있는 군사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使田文能奮其威 則是役也 齊可以伯니라
가사 전문田文이 그 위력을 잘 발휘하였더라면 이 전투에서 나라는 패주霸主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惜其聽하여 臨函谷而無攻하고 以求楚東國하니 而出師之名 索然以盡이니라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는 소대蘇代계략計略을 들어 함곡관函谷關에 다다라 공격하지 않고 나라 동국東國의 땅을 요구하였으니, 군사를 출동한 명분이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東國旣不可得이요 而懷王卒死於秦이니라
동국東國은 이미 얻지 못하고 회왕懷王은 마침내 나라에서 죽었다.
由此觀之 秦惟不遇桓文이라 是以 橫行而莫之制耳니라
이것으로 본다면 나라는 다만 환공桓公 문공文公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횡행橫行하여 〈천하에 패주霸主 노릇을 하여도〉 그것을 막을 자가 없었을 뿐이다.
豈有大義而屈於不義者哉
대의大義를 가지고 불의不義에 굴하는 자가 어찌 있겠는가?
역주
역주1 孟嘗君 : 孟嘗君은 곧 田文으로 전국시대 齊나라의 貴族이었다. 아버지 田嬰의 뒤를 이어 封爵되고 薛 땅에 봉해졌기 때문에 薛公이라 하고, 호를 ‘孟嘗君’이라 하였다.
門下에 食客이 수천 명이나 있었고, 任俠‧奸人들을 초치하였으므로 그들이 6만여 호나 薛 지방에 살았다. 한 차례 秦나라에 들어가서 정승 노릇을 하다가 오래지 않아 도망쳐 돌아왔고, 뒤에 齊 湣王의 相國이 되기도 하였다. 일찍이 韓나라‧魏나라와 연합하여 秦나라와 楚나라를 격파하였고, 齊 湣王 7년에는 貴族 田甲의 반란으로 인하여 魏나라로 도망가서 相國이 되어 秦나라와 연합하여 齊나라를 칠 것을 주장하였고, 뒤에 燕나라‧趙나라 등과 合縱하여 齊나라를 쳤다.
이 글은 《古史》 卷45 〈孟嘗君列傳 제22〉에서 篇目으로 취하였다.
역주2 兵出未嘗有名 : 전국시대 제후국간의 전쟁은 대부분 침략이나 겸병을 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3 秦昭王……要之以割地 : 본서 권11 〈楚〉 제1단 주 5) 참조.
역주4 惟田文免相於秦……歸而怨之 : 《史記》 〈孟嘗君傳〉에 “齊 湣王 25년에 다시 孟嘗君을 秦나라에 들어가게 하였더니, 昭王은 곧 孟嘗君을 秦나라 丞相으로 삼았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昭王에게 말하기를 ‘孟嘗君은 어질고, 또한 齊나라의 족속입니다. 지금 秦나라에서 정승 노릇을 하면 반드시 齊나라를 먼저 챙기고 秦나라는 뒷전에 둘 것이니, 秦나라는 위험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昭王은 정승을 그만두게 하고 孟嘗君을 가두어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孟嘗君은 昭王의 寵姬에게 狐白裘를 뇌물로 주어서 寵姬가 昭王에게 그를 위해 말하게 하니, 昭王이 孟嘗君을 석방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5 借楚爲名 與韓魏伐秦 : 孟嘗君은 楚나라를 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사실은 韓나라‧魏나라와 연합하여 秦나라를 攻伐한 것이다. 《史記》 〈孟嘗君傳〉에 “孟嘗君이 秦나라를 원망하여 장차 齊나라가 韓나라와 趙나라를 위하여 楚나라를 치려는 척하다가, 이내 韓나라‧魏나라와 더불어 秦나라를 쳤다.”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6 自山東難秦 未有若此其壯者也 : 秦漢時代에는 崤山 혹은 華山 동쪽을 ‘山東’이라 하였으니, 곧 關東이었다. 山東은 바로 전국시대에 秦나라 이외 6國의 영토였다. 山東六國은 蘇秦의 遊說下에 合縱하여 秦나라에 항거하였다.
역주7 夫兵直爲壯 曲爲老 :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晉나라의 子犯이 ‘군사란 정당하면 사기 왕성하고 부당하면 피로한 것이다.[師直爲壯 曲爲老]’라고 했다.” 하였는데, 곧 양쪽에서 交戰할 때 정의로운 쪽은 사기가 강성하고, 정의롭지 못한 쪽은 사기가 쇠퇴한다는 뜻이다.
역주8 蘇代之計 : 《史記》 〈孟嘗君列傳〉에 의하면 “蘇代가 孟嘗君에게 遊說하기를 ‘당신은 函谷關에 다다라 秦나라를 공격하지 말고, 西周를 시켜서 당신의 바람을 秦 昭王에게 전달하기를 「薛公(孟嘗君)은 반드시 秦나라를 격파하여 韓나라와 魏나라를 강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오. 그가 秦나라를 공격하려고 한 목적은 王(昭王)께서 楚王(懷王)으로 하여금 東國을 떼어 齊나라에게 주도록 하고, 秦나라에서 懷王을 내보내 화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게 하십시오. 당신은 西周로 하여금 이것으로 秦나라에 은혜를 베풀게 하고, 秦나라는 격파당하는 것 없이 東國만 내놓는 정도로 망국의 禍患을 면하게 하면, 秦나라는 반드시 그렇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楚王이 나오게 되면 반드시 齊나라를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齊나라는 東國을 얻어 더욱 강해지고 薛邑은 대대로 걱정거리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孟嘗君은 ‘좋은 계략이다.’라고 받아들여 그대로 실행했다.”고 한다.
東國은 徐나라를 가리킨다. 西周 초기에 東夷의 일부인 徐戎이 세운 나라인데, 춘추시대에 楚나라에 격파당하여, 이때에 이미 楚나라에 귀속되었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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