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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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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 양후
與後論竝看이면 子由所不滿范蔡處如掌이니라
후론後論과 아울러 보면 자유子由범수范睢채택蔡澤에 대해 불만을 가진 부분이 마치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다.
하고 하니 君臣皆失之矣니라
나라 임금이 상군商君(商鞅)을 죽이고 양후穰侯을 쫓아내니 군신君臣 사이에 모두 화목을 잃었다.
彼二子者 知得而不知喪이니라
저 두 사람(商鞅과 양후穰侯)은 얻는 것만 알고 잃어버리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雖智能伯秦이나 而不能免其身 蓋無足言者하며 하니 甚矣其少恩也니라
그들의 지혜가 비록 나라를 패자霸者가 되게 하였지만 자신들은 재화災禍를 면할 수 없게 한 것에 대해서는 족히 말할 것이 없지만, 혜왕惠王은 원한으로 상앙商鞅을 죽이면서 반역叛逆으로 무함하기까지 하였고, 소왕昭王(昭襄王)은 위염魏冉을 핍박하여 〈도읍陶邑으로〉 내쫓았으며, 심지어 노모老母와 어린 동생들을 쫓아내고 전혀 돌아보지 않았으니, 너무나도 그는 은혜가 적었다.
彼公子䖍 方欲報怨하여 固不暇爲國慮矣 而范睢 欲毁人以自成하여 而至於是하니 可畏也哉인저
공자公子䖍은 개인의 원수를 갚으려고 국사를 모려謀慮할 겨를이 없었고, 범수范睢는 남을 훼방함으로써 자기를 보전하고자,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두려워할 만하다.
역주
역주1 穰侯 : 穰侯는 곧 魏冉으로, 전국시대 秦나라 大臣이며 秦 昭襄王의 외숙이자 宣太后의 異母弟이다. 惠王 때에 관직을 맡아 執政하였다. 昭襄王이 즉위하자, 그는 將軍이 되었으며, 食邑을 穰에 두었기 때문에 ‘穰侯’라 불렸다. B.C. 226년에 丞相에서 파직되었고, 뒤에 陶邑에서 죽었다.
《史記》 〈穰侯列傳〉에 의하면, 魏冉은 네 번이나 秦나라 丞相을 맡았고, 宣太后의 총애와 신임을 깊이 받아 많은 徒黨을 거느렸으며, 專橫과 獨斷으로 그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이 글은 《古史》 卷43 〈穣侯列傳 제20〉에서 篇目으로 취한 것이다.
역주2 誅商君 : 商君(?~B.C 338)은 전국시대 중기의 정치가이자 法家의 대표인물이다. 원명은 衛鞅, 성은 公孫으로, 公孫鞅이라고도 한다. 惠孝公 때에 秦나라의 丞相이 된 그는 變法을 제안하여 秦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고, 그 공으로 인하여 商 땅에 봉해졌으므로 ‘商君’이라 불렸는데, 惠文王 때에 車裂刑을 당하였다.
역주3 逐穰侯 : 《史記》 〈范睢蔡澤列傳〉에 “〈秦 昭王이〉 太后를 폐하고, 穰侯‧高陵君‧華陽君‧涇陽君을 關外로 쫓아냈다.”란 내용이 보인다.
역주4 惠王以怨誅鞅 至誣以叛逆 : 惠王은 곧 秦 惠文王이다. 《史記》 〈商君列傳〉에 “太子가 법을 범하자, 衛鞅이 말하기를 ‘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 법을 범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장차 太子를 처벌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太子는 嗣君이라 형벌에 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太傅인 公子虔을 처형하고 그 太師인 公孫賈를 墨刑에 처하였다.”란 내용이 보인다. ‘誣以叛逆’은 반역으로 무함한 것인데, 《史記》 〈商君列傳〉에 “公子虔의 무리가 ‘商君이 반역하려 한다.’고 고발하였다.”란 내용이 보인다.
역주5 昭王以逼遷冉 至出老母逐弱弟而不顧 : 昭王은 곧 昭襄王으로 秦 武王의 異母弟이다. 昭王은 范睢의 말을 듣고 公室을 증강하였다. 老母는 昭襄王의 모친인 宣太后를 가리키고, 弱弟는 昭襄王의 두 아우인 高陵君과 涇陽君을 가리킨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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