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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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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8. 요숭姚崇에 대한
崇雖稱名相이나 而其順適玄宗之欲하여 以開末年驕侈之漸하여 幾致亡國 崇所不能辭니라
요숭姚崇은 비록 명상名相이라 칭하나 현종玄宗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순종하고 맞춰주어, 말년의 교만 사치의 조짐을 열어서 거의 나라를 망하게 한 것에 대해서는 요숭姚崇이 사피할 수 없는 잘못이다.
하여 以持天下之正이라하니 斯言固二人之所長也니라
나라 사관史官이 “요숭姚崇은 임기응변을 잘하여 천하天下의 일을 이루고, 송경宋璟은 법도 준수를 잘하여 천하天下의 정의를 유지했다.”라고 칭하였으니, 이 말은 참으로 두 사람의 장점을 적시한 것이다.
이나 應變者 要不失正而後可니라
그러나 임기응변을 하는 것은 필수적으로 정의를 잃지 않은 뒤에야 가능하다.
孟子有言하되 所惡於智者 爲其鑿也 如智者若禹之行水 則無惡於智矣리라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지자智者를 미워하는 까닭은 천착하기 때문이니, 만일 지자智者가 마치 우왕禹王이 물을 아래로 흘러가게 했듯이 한다면 지혜를 미워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우왕禹王이 물을 아래로 흘러가게 한 것은 힘들이지 않을 일을 행한 것이니, 만일 지자智者 또한 힘들이지 않을 일을 행한다면 지혜 또한 클 것이다.”라고 하였다.
唐玄宗 豪俊之君也어늘 而崇復以豪俊事之 方其君臣 天下事니라
현종玄宗호준豪俊한 임금인데, 요숭姚崇이 다시 호준豪俊으로써 섬겼으니,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남에 천하天下의 일이 쉽게 해결됨은 힘들임 없이 수월하게 될 것이다.
雖然이나 將有不可食者니라
비록 그러나 물에 물을 탄 뒤에는 장차 먹을 수 없는 것이 있을 터이다.
開元四年 天下大蝗하니 民祭且拜之하고 坐視食苗而不敢捕니라
개원開元 4년(716)에 천하天下황충蝗蟲의 재해가 크게 발생하니, 백성들은 제사나 지내고 절이나 하며 그저 앉아서 황충蝗蟲이 싹을 갉아먹는 것을 보고만 있고 감히 잡지를 못하였다.
崇奏遣御史爲捕蝗使하여 分道殺蝗하니 群臣多不以爲然이니라
요숭姚崇이 임금께 아뢰어 어사御史포황사捕蝗使로 삼아 보내 를 나누어 황충蝗蟲을 잡아 죽이게 하니, 뭇 신하들은 대부분 옳지 못한 일로 여겼다.
황제皇帝 또한 그 일을 의심하였으나 요숭姚崇은 더욱 힘써 행하였고, 황충蝗蟲 또한 멎었다.
捕蝗 雖古之遺法이나이나 니라
황충蝗蟲을 잡는 것은 비록 옛적의 유법遺法이나, 재해를 만나면 두려워하고 을 닦아 천변天變에 답하는 것이 옛날의 정도正道였다.
崇置之不言하고 而專以捕爲事하니 已可疑矣니라
그런데 요숭姚崇은 그 일은 놓아둔 채 말하지 않고서 오로지 황충蝗蟲을 잡는 것으로 일을 삼았으니, 일단은 의심을 살 만한 일이었다.
이윽고 요숭姚崇이 친하게 지내던 관리 조회趙誨가 뇌물수수죄로 사형을 받고 죽으니, 요숭姚崇은 두려워서 재상 자리를 내놓았다.
帝將幸東都하니 而太廟屋壞하니라
이때에 황제皇帝동도東都를 순행하려고 하였는데, 태묘太廟의 집이 무너졌다.
宰相宋璟蘇頲 皆言 이니 不可巡幸이요 壞壓之變 天戒也 請罷東巡하고 修德以答至譴하소서하니라
재상宰相 송경宋璟소정蘇頲이 모두 말하기를 “삼년상三年喪을 마치지 못하였으니, 순행巡幸할 수 없는 처지이고, 괴압壞壓은 하늘의 경고이니, 청컨대 동도東都의 순행을 취소하고 을 닦아 지극한 견책譴責에 회답하소서.”라고 하였다.
帝以問崇하니 崇曰 此苻堅故殿也니이다
황제皇帝가 그 까닭을 요숭姚崇에게 물으니, 요숭姚崇이 대답하기를 “이곳은 부견苻堅의 옛 궁전입니다.
山有朽壤而崩하고 木蠧而折하니 理無足怪니이다
에 썩은 토양土壤이 있어서 무너지고 나무는 좀이 먹어 꺾인 것이니, 이치상 괴상히 여길 것이 없습니다.
但壞與行會 非緣行而壞也니이다
다만 무너지는 일이 순행하시려는 때에 맞추어 일어났을 뿐이고, 순행으로 인하여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今關中無年하여 饋餉勞弊하니 出幸東都 所以爲人이요 非爲己也니이다
지금 관중關中에 흉년이 들어 노곤勞困하고 피폐疲弊한 사람들을 궤향饋餉하고 있으니, 동도東都출행出幸하시는 것은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고 자신을 위하는 일이 아닙니다.
百司已戒하고 供擬已具하니 請車駕卽東하여 而遷神主太極殿하고 更作新廟하소서
백관百官들이 이미 경계태세에 들어갔고 공급물자가 이미 준비되었으니, 청컨대 거가車駕동도東都로 가서 신주神主태극전太極殿으로 옮기고 다시 신묘新廟를 건립하소서.
此大孝也니이다하니 帝用其言하고 崇由此復相하니라
이렇게 하시는 것이 큰 효도입니다.”라고 하니, 황제皇帝는 그 말을 따랐고, 요숭姚崇은 이로 인하여 재상宰相에 복귀되었다.
開元末 帝在東都라가 欲還長安하니
개원開元 말기에 황제皇帝동도東都에 있다가 장안長安으로 돌아오려고 하니,
裴耀卿等 皆言 農人場圃未畢하니 須冬可還이니이다하고
배요경裴耀卿 등은 모두 말하기를 “농민農民장포場圃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겨울철을 기다려서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고,
李林甫獨曰 二都本東西宮耳 車駕往來 何用待時리오
이임보李林甫는 홀로 말하기를 “서도西都동도東都는 본래 서궁西宮일 뿐이니, 거가車駕의 왕래를 어찌 시기를 기다려서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假令妨農이면 獨赦所過租賦可也니이다하니 帝大悅하고 卽駕而西하니라
가령 농사에 피해를 준다면 통과하는 곳의 조부租賦만을 면제해주면 될 것입니다.”라고 하니, 황제皇帝가 크게 기뻐하고 곧 거가車駕서도西都로 향하였다.
崇建東幸之計하고 林甫獻西還之議하니 其意同耳니라
요숭姚崇동도東都로 순행할 계책을 제출하였고, 이임보李林甫서도西都로 돌아갈 의논을 드렸으니 그 뜻은 같을 뿐이다.
孰謂崇獨賢乎
그런데 누가 요숭姚崇만이 훌륭하다고 하겠는가?
從崇之議하여 使人君上不畏天戒하고 中不敬宗廟하고 下不䘏人言하니라
요숭姚崇의 의논에 따라 임금이 위로는 하늘의 경고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고, 그 다음으로는 종묘宗廟를 공경하지 않게 되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의논을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
三者 皆忠臣之所諱어늘 而崇居之不疑 何哉
이 세 가지는 모두 충신忠臣기휘忌諱할 바인데도, 요숭姚崇이 그런 일들을 의심 없이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其後崇璟旣歿하니 玄宗愈老愈輕蔑群臣이니라
그 뒤에 요숭姚崇송경宋璟이 이미 죽고 나니, 현종玄宗은 늙으면 늙을수록 더욱 신하들을 경멸하였다.
하고 方嬖楊國忠하고 而縱安祿山하니 則用輔璆琳하되 專以適己爲悅이니라
바야흐로 장구령張九齡을 임용하였다가 태자太子 을 폐하였으며, 우선객牛仙客을 등용한 것은 이임보李林甫의 말을 들어준 것이고, 양국충楊國忠을 총애하고 안녹산安祿山을 제멋대로 놀아먹게 하였으니, 인재를 써서 보상輔相으로 삼되 오로지 자기의 마음을 맞추는 사람을 좋아하였다.
類崇有以啓之也
이러한 문로門路요숭姚崇이 열어놓은 듯하다.
吾謂開元之治 雖出於崇이나 而天寶之亂 亦崇之所自致 此人臣之至戒也니라
그러므로 나는 “ ‘개원開元의 정치’가 비록 요숭姚崇에게서 나왔지만, ‘천보天寶’ 역시 요숭姚崇이 이르게 한 것이다.”라고 여기니, 이것은 남의 신하로서 깊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역주
역주1 姚崇論 : 姚崇(651~721)은 본명이 元崇인데, 元之로 개명하였다가 뒤에 唐 玄宗의 연호인 開元의 諱를 피하여 崇으로 개명하였다. 武后 때에는 鳳閣侍郞을 지내고 睿宗 때에는 정승이 되었다가 뒤에 폄직되었다. 玄宗이 즉위하자 다시 정승이 되어 權幸을 억제하고 節儉을 권장하였으며, 정승이 된 지 5년 만에 宋璟을 끌어 자기를 대신하게 하였는데, 舊史에서 그가 정치를 주관한 시기를 ‘開元之治’라고 칭하였다.
開元(713~741)은 唐 玄宗이 제2차 改元한 연호이다.
《欒城集》에서는 이 글의 標題를 〈姚崇〉이라고 하였다.
역주2 唐史官……以持天下之正 : 이 말은 《新唐書》 〈姚崇宋璟列傳〉의 贊이다.
역주3 宋璟善守文 : 宋璟은 법도를 잘 준수한다는 말이다. 宋璟은 武后 때에는 御史中丞이 되고, 睿宗 때에는 宰相을 맡았는데, 뒤에 폄직을 당했다가 玄宗 때에 다시 宰相을 맡았으며, 姚崇보다 더 굳세고 정직하였다. 史家가 “ ‘開元의 정치’는 姚崇과 宋璟의 공이 가장 많았다.”고 칭하였다. ‘開元의 정치’는 玄宗 開元 연간(713~741)의 정치를 가리킨다. 姚崇과 宋璟을 정승으로 삼으니, 武周 후기의 弊政을 정돈하고 생산을 발전시켜 戶口가 唐나라 초기에 비하여 4배나 늘었으므로 주위 각국 경제‧문화의 중심이 되었으니, 이를 史家가 ‘開元之治’라고 칭하였다.
역주4 所惡於智者……則智亦大矣 : 이 말은 《孟子》 〈離婁 下〉에 보인다.
역주5 遇合 : 서로 만나서 피차 의기투합함을 말한다.
역주6 迎刃而解 : 일이 극도로 쉽게 해결됨을 가리킨다.
역주7 無足爲者 : 힘들이지 않고 잘되는 것을 가리킨다.
역주8 以水濟水 : 물에 물을 탄다는 뜻이다. 곧 附和雷同하여 일에 補益되는 바가 없음을 비유한다. 《春秋左氏傳》 昭公 20년에 나오는 말로, 晏嬰이 齊 景公에게 和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和는 국을 끓이는 것과 같으니, 물과 불, 식초와 肉醬, 소금과 매실로 魚肉을 調理하여 불을 때어 익히고서 宰夫가 간을 맞추어[和] 〈짜고 신〉 맛을 알맞게[齊] 조절하여 모자라면 〈소금과 매실을〉 첨가하고 지나치면 〈물을 더 부어 짜고 신 맛을〉 줄이는데, 君子가 이 국을 먹고서 그 마음을 和平하게 합니다. 君臣 사이도 이와 같아서, 임금이 ‘可하다.’고 하더라도 그중에 ‘不可’한 점이 있으면 臣下는 그 不可한 점을 말하여 그 可한 것을 이루게 하고, 임금이 ‘不可하다.’고 하더라도 그중에 可한 점이 있으면 臣下는 그 可한 점을 말하여 그 不可한 것을 버리게 합니다.……
그런데 지금 梁丘據는 그렇지 못하여, 임금님께서 옳다고 하는 것은 梁丘據도 옳다고 하고, 임금님께서 그르다고 하는 것은 梁丘據도 그르다고 하여 마치 물로써 물을 調味한 것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먹으려 하겠으며[若以水濟水 誰能食之], 琴瑟이 오로지 한 소리만 내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들으려 하겠습니까? 雷同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역주9 開元四年……蝗亦爲息 : 당시에 의론이 떠들썩하여 “응당 덕을 닦아야 天災를 면할 수 있지, 인력으로 제재할 수 없다.”고 하고, 또 “蝗蟲을 잡는 것은 天地의 和氣를 상하게 하는 일이다.”고 하였는데, 姚崇은 “蝗蟲을 죽여 사람을 구제하면 재화가 저절로 멎는다.”고 하였다.
역주10 遇災而懼……古之正道也 : 옛날 사람은 “하늘과 사람은 감응한 것이므로 자연발생의 재해는 바로 하늘이 징계하여 통치에 천도를 어기는 일이 있음을 예시한 것이니, 덕을 닦아 하늘의 이변에 회답해야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역주11 旣而……崇懼還政 : 《新唐書》 〈姚崇傳〉에 의하면 “蝗蟲을 잡는 일이 지나간 뒤에 姚崇이 친하게 지내던 紫微史 趙誨가 오랑캐의 뇌물을 받은 일로 사형이 판결나자, 姚崇이 上奏하여 趙誨의 죄를 감해주기를 희망하였으나 玄宗이 따르지 않았다. 姚崇은 두려워서 재상의 자리를 내놓고 宋璟을 이끌어 자기를 대신하게 하였다.”고 한다.
역주12 三年喪未終 : 玄宗이 睿宗의 喪中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3 方任張九齡 而廢太子瑛 : 張九齡(673~740)은 開元 21년(733)에 中書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를 맡았다. 당시 武惠妃가 後宮 중에 총애를 으뜸으로 차지하여 太子 瑛을 폐하고 秦王 瑁를 세우기를 도모하니, 張九齡이 이를 자주 간하여 太子 瑛이 보전될 수 있었는데, 張九齡이 相職을 상실하니, 玄宗이 惠妃의 讒言을 듣고 太子 瑛에게 모반죄를 적용하여 庶人으로 삼았다가 賜死시켰다고 한다.
역주14 用牛仙客 則聽李林甫 : 李林甫의 청을 들어 牛仙客을 재상으로 삼았다. 牛仙客이 朔方行軍大總管을 맡았을 때에 농사를 잘 관리하여 저축을 늘리고 무기를 예리하게 수선한 공이 있어서 玄宗이 그를 尙書로 등용하려고 하였는데, 張九齡이 그를 막았다. 李林甫는 玄宗의 마음을 알아채고 牛仙客의 재주를 칭찬하였다. 張九齡이 相職을 상실한 뒤에 牛仙客을 재상으로 등용하였으나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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