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時에 赤眉方入장안長安하니 諸將豪傑이 皆勸등우禹徑乘其亂이니라
등우禹曰 吾衆雖多나 能戰者少며 前無可仰之積이요 後無轉饋之資니라
群居
하여 無終日之計
요 財穀雖多
나 變故萬端
이니 非能堅守者也
니라
상군上郡북지北地安定三상군郡은 土廣人稀하니 饒穀多畜이니라
吾且休兵北道하고 就糧養士하여 以觀其變이면 乃可圖也라하고 於是에 引兵北屯순읍栒邑하니라
광무제光武聞之하고 勅등우禹以時進討하니 등우禹固執前意하고 盤桓不進하니라
明年
에 赤眉西走
부풍扶風한대 등우禹乃入
장안長安하여 謁祠
고조高廟
하고 收十一帝神主
나 然
이나 하니라
蓋赤眉之亂을 광무제光武欲急攻之하고 등우禹欲緩取之니라
議者見등우禹之敗하고 因以등우禹爲失計나 吾以爲不然이니라
逮其自敗하여 西走부풍扶風에 而등우禹乘之언만 猶能還兵敗등우禹온 而況其未走也哉아
如광무제光武之計는 蓋不知赤眉方彊하고 而등우禹兵力不足이니라
若審知如此하여 聽등우禹堅守北道하되 時出撓之하고 而使別將挾持其東하여 東西蹙之하되 磨以歲月이면 而赤眉成擒矣리니라
등우禹之敗而西歸也에 與풍이馮異相遇하여 要풍이異共攻赤眉한대
풍이異曰 풍이異與賊相遇하며 且數十日에 雖屢獲雄將이나 餘衆尙多하니 可稍以恩信傾誘요 難卒用兵破也니라
上今使諸將屯민지澠池하여 要其東하고 而異擊其西하니 一擧取之니라
由此觀之컨대 등우禹本計不失이언만 而광무제帝不能用하고 등우禹亦迫於君命하여 不能自固耳니라
혹자가 말하기를 “전쟁은 빨리 결말지어야 한다는 것은 들었어도 교묘한 술책으로 오래 끈다는 것은 보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등우鄧禹는 적미赤眉와 오랫동안 서로 버티며 결말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 문제를 풍이馮異에게 넘겨주어 대신 장수를 시키니 공이 이루어졌다.
등우鄧禹가 처음에 군사를 이끌고 관중關中에 들어가 승전의 기세를 타고 홀로 승리해가니 관중關中과 삼보三輔에 명성이 크게 떨쳤다.
이때에 적미군赤眉軍이 막 장안長安에 쳐들어오니, 여러 장수와 호걸豪傑들은 모두 등우鄧禹에게 장안長安의 난亂을 제압하도록 권하였다.
그러자 등우鄧禹가 말하기를 “우리 군사가 비록 많으나 싸움 잘하는 군사는 적으며, 앞에는 믿을 만한 축적蓄積이 없고 뒤에는 운송할 수 있는 군량이 없다.
적미군赤眉軍은 갓 장안長安을 탈취하였으므로 재물의 풍부함과 군사의 예리함을 쉽게 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도적盜賊은 떼를 지어 살 뿐 장구한 계책이 없고, 재곡財穀은 비록 많지만 변고變故가 각양각색이니, 굳게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군上郡‧북지北地‧안정安定 세 군郡은 땅은 넓고 사람은 적으니 곡식이 많이 저축되어 있다.
나는 장차 북도北道에서 군사를 휴식시키고 식량이 있는 곳으로 가서 군사를 양성하며 그 변고를 관망할 것이니, 그러면 그들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하고는 이에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순읍栒邑에 진을 쳤다.
광무제光武帝가 이 소식을 듣고 등우鄧禹에게 명하여 즉시 진군進軍하여 적미赤眉를 치게 하니, 등우鄧禹는 앞에서 주장한 뜻을 고집하고 머뭇거리며 진군하지 않았다.
이듬해에 적미赤眉가 서쪽을 향하여 부풍扶風으로 달아나니, 등우鄧禹는 곧 장안長安에 들어가서 한漢 고조高祖의 사당에 배알하고 11제帝의 신주神主를 거두었으나 끝내 관중關中을 평정하지 못하고 공이 없이 돌아왔다.
대개 적미군赤眉軍의 난亂을 광무제光武帝는 급하게 공격하려 하였고, 등우鄧禹는 느슨하게 취하려고 하였다.
의논하는 자는 등우鄧禹의 패배를 보고 이내 등우鄧禹의 모획謀劃이 잘못된 것으로 여겼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적미군赤眉軍이 바야흐로 강성하니, 급하게 공격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고, 느슨하게 대처하는 것이 득이 되는 일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패하여 서쪽을 향해 부풍扶風으로 달아날 때에 등우鄧禹가 그 기회를 타서 공격하였는데도 그들은 오히려 군사를 돌이켜 등우鄧禹를 패퇴시킬 수 있었거늘, 하물며 그들이 달아나지 않고 있을 때야 오죽하였겠는가?
광무제光武帝의 계략으로 말하면 아마 적미군赤眉軍이 바야흐로 강성하고 등우鄧禹의 병력兵力이 부족하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만약 이와 같은 상황을 확실히 알아서, 등우鄧禹는 북도北道를 굳게 지키면서 수시로 나아가 적미군赤眉軍을 교란케 하고, 별장別將은 그 동쪽을 공략하게 해서 동쪽과 서쪽에서 압박해가며 일정 시간을 기다렸더라면 적미군赤眉軍은 사로잡혔을 것이다.
등우鄧禹가 패하여 서쪽으로 돌아올 때에 풍이馮異를 만나서 풍이馮異더러 함께 적미군赤眉軍을 치자고 요구하니,
풍이馮異가 말하기를 “나는 적賊을 만나 수십 일 동안 비록 여러 번 웅장雄將(勇將)을 노획하였지만 남은 적이 아직도 많으니 점차 은혜와 신의로 순복順服시켜야 되지, 갑자기 군사를 써서 깨뜨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상감께서 지금 여러 장수들은 민지澠池에 주둔하여 그 동쪽을 요격하게 하고, 나는 그 서쪽을 치게 하셨으니, 일거一擧에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만전萬全의 계책입니다.”라고 하였지만, 등우鄧禹는 또 그 말을 따르지 않고 〈적미군赤眉軍과 싸우다가〉 패하였다.
이것으로 본다면 등우鄧禹의 본래 계획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지만 광무제光武帝가 써주지 않았고, 등우鄧禹 또한 광무제光武帝의 명령에 핍박되어 자기의 지위를 확고하게 다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