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진秦수隋處亦似나 而其言以術留天下爲名은 則卑矣니 漸開晩宋門戶니라
物之所以去人에 分裂四出而不可禁者는 物重而人輕也니라
古之
이 其取天下
는 非其
也
요 其守天下
는 非其
也
니라
使天下自附
하여 不得已而爲之
이면 吾不役天下之利
라도 而
니라
夫是以로 去就之權은 在君而不在民이니 是之謂人重而物輕이니라
且夫吾之於人에 已求而得之는 則不若使之求我而後從之요 已守而固之는 則不若使之不忍去我而後與之니라
故로 夫智者는 或可與取天下矣나 而不可與守天下니 守天下면 則必有大度者也니라
何者
오 非有大度之人
이면 則常恐天下之去我
하여 而以
留天下
니 以術留天下
에 而天下始去之矣
니라
自
주周失其政
으로 한대 而
진秦獨得
之地 不過千里
니라
한韓위魏壓其衝하고 초楚脅其肩하고 연燕조趙伺其北하고 而제齊掉其東이니라
진秦人
은 被甲持兵
을 而不得解
하고 라가 至
시황始皇然後
에 合而爲一
이니라
진秦見其取天下 若此其難也
하고 而以爲不
之
면 則後世且復割裂
하여 以爲敵國
이라하니라
是以
로 銷名城
하고 殺豪傑
하고 하여 以絶天下之望
이니라
其所以備慮而固守之者 甚密如此나 然而海內愁苦無聊하여 莫有不忍去之意니라
是以
로 이 因民之不服
하여 長呼起兵
하니 而
이니라
今夫수隋문제文之世에도 其亦見天下之久不定하고 而重失其定也니라
是以
로 旣得天下之衆
이나 而恐其失之
하고 享天下之樂
이나 而懼其不久
하고 立於萬民之上
이나 而常有猜防不安之心
하여 以爲擧世之人
이 皆有曩者英雄
라하고 制爲嚴法峻令
하여 以杜天下之變
하며 하고 而
하여 以及於
하며 니라
由此觀之면 則夫수隋之所以亡者는 無以異於진秦也니라
古之聖人은 修德以來天下니 天下之所爲去就者는 莫不在我니라
夫惟視失天下甚輕이라 是故로 其心舒緩하고 而其爲政也寬이니라
及觀
진秦수隋 唯不忍失之
나 而至於亡然後
에야 知聖人之爲是寬緩不速之行者
가 乃其所以深取天下者也
니라
진秦나라와 수隋나라를 논한 곳은 역시 비슷하나, 그 말이 ‘술책을 가지고 천하를 보유했다.[以術留天下]’는 것으로 명목을 삼는 것은 격이 낮으니, 점차로 만송晩宋의 문호門戶(文體)를 연 셈이다.
사람이 외물에 대하여 외물이 스스로 사람에게 와서 붙좇게 하고, 외물이 스스로 사람의 곁에서 떠나가게 한다면, 사람의 존재가치가 무거워지고 외물의 존재가치가 가벼워진다.
사람의 존재가치가 무거워지고 외물의 존재가치가 가벼워진다면 외물이 사람에게 붙좇는 강도가 견실해진다.
외물이 사람의 곁을 떠나갈 때 분열하여 사방으로 나가는 것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외물의 존재가치가 무겁고 사람의 존재가치가 가볍기 때문이다.
옛날 성인聖人이 천하天下를 취한 것은 휘몰아 온 것이 아니고, 천하天下를 지킨 것은 강제로 보유한 것이 아니었다.
천하天下가 스스로 와서 붙좇게 하여 부득이 군주君主가 된다면 내 자신이 천하天下의 이익을 취하지 않더라도 천하天下의 이익이 스스로 이른다.
이 때문에 거취去就(進退)하는 권한은 임금에게 있고 백성에게 있지 않으니, 이것을 두고 ‘사람의 존재가치가 무겁고 외물의 존재가치가 가볍다.’고 이른 것이다.
또 내가 사람에 대하여 내가 이미 구해서 얻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나에게 구한 뒤에 따르게 하는 것만 못하고, 내가 이미 지켜 굳건히 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차마 나를 버리지 않은 뒤에 함께하도록 하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자가 혹 사람과 함께 천하天下를 취할 수는 있지만, 사람과 함께 천하天下를 지킬 수는 없으니, 천하天下를 지킨다면 반드시 큰 도량이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큰 도량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늘 천하天下가 나를 버릴까 싶어서 술책을 가지고 천하天下를 보유하게 되니, 술책을 가지고 천하天下를 보유함에 천하天下가 비로소 나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옛날 삼대三代의 임금들은 나라를 장원長遠하게 누렸으니 후세後世에선 그 임금들에게 미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라를 갑자기 멸망시킨 일은 진秦나라와 수隋나라만큼 빠르게 한 나라는 없었으니, 2세世 만에 멸망한 나라들이다.
진秦나라와 수隋나라의 멸망은 그 폐단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주周나라가 실정失政함으로부터 제후諸侯들이 용사用事하였는데, 진秦나라만은 천 리에 불과한 산서山西의 땅을 취득하였다.
그런데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는 그 요충지대를 압박하고, 초楚나라는 그 어깨 부분을 누르고, 연燕나라와 조趙나라는 그 북쪽 방면을 엿보고, 제齊나라는 그 동쪽 방면을 요동시켰다.
진秦나라 사람은 갑옷을 입고 무기를 갖는 일을 7세世 동안 풀지 못하고 촌척寸尺의 땅을 양취攘取하다가 시황始皇에 이른 연후에야 7국國을 합하여 통일시켰다.
진秦나라는 천하天下를 취하기가 이처럼 어려운 일임을 알고 ‘단단히 가지지 않으면 후세에 또 분열하여 적국敵國이 될 것’이라 여겼다.
이 때문에 이름난 성城을 없애고 호걸豪傑을 죽이고 봉적鋒鏑을 녹여서 천하天下의 넘봄을 끊었다.
두루 고려하여 굳게 지키는 것이 이처럼 매우 주밀하였지만, 천하의 백성들이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차마 떠나지 않으려는 뜻이 없었다.
이 때문에 진승陳勝과 항적項籍은 백성들이 불복한 기회를 이용하여 큰 소리로 외쳐 군사를 일으키니, 각지에서 모두 〈진승陳勝과 항적項籍에게〉 호응하였다.
이것으로 보건대, 거듭 천하天下를 잃고 방어를 너무 과도하게 한 폐단이 어찌 아니겠는가?
지금 수隋 문제文帝의 세대 또한 천하天下가 오래 안정되지 못함을 보고서도 거듭 그 안정을 잃었다.
대개 동진東晉 이래로 유총劉聰, 석륵石勒, 모용수慕容垂, 부견苻堅, 요흥姚興, 혁련赫連과 같은 무리가 어지럽게 일어난 경우는 이루 다 셀 수가 없다.
원씨元氏에 이르러서 병탄幷呑하고 멸취滅取하여 천하를 이미 다 보유하였지만, 남쪽 지방은 복종시키지 못하였다.
원씨元氏는 스스로 나뉘어 주周나라와 제齊나라가 되었고, 주周나라는 제齊나라를 아울러 수隋나라에 넘겨주었고, 수隋 문제文帝는 양梁나라를 취하고 진陳나라를 멸하였으니, 그렇게 한 뒤에야 천하天下가 통일될 수 있었다.
수隋 문제文帝 또한 천하天下가 오래 안정되지 못함을 보았다.
그래서 이미 천하天下의 민중을 얻었으나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였고, 천하天下의 낙樂을 누렸으나 그것이 오래가지 못할까 두려워하였고, 만백성의 위에 군림하였으나 항상 의심하고 대비하느라 불안한 마음을 가져,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전 영웅들처럼 할거割據할 생각을 품는다고 여기고 준엄한 법령을 제정하여 천하天下의 변變을 막았으며, 모신謀臣과 구장舊將을 주멸誅滅하여 모두 없애고, 자신은 양소楊素의 손에서 죽어 큰 화환禍患이 이르게 하였으며, 끝내는 양제煬帝 때에 천하天下가 크게 혼란하여 여지없이 파괴되었는데도 구제하지 못하였다.
이것을 가지고 본다면 수隋나라가 망한 까닭도 진秦나라와 다를 것이 없었다.
옛적 성인聖人은 덕德을 닦아 천하天下 사람을 오게 하였으니, 천하天下 사람을 오게 하거나 가게 하는 요령은 모두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천하天下를 잃는 것을 보기를 매우 가볍게 여겼다.
천하를 잃는 것을 보기를 매우 가볍게 여겼는지라, 그 때문에 그 마음가짐이 느긋하고 그 정치를 하는 도량이 너그러웠다.
너그러운 마음은 걱정이 없는 데서 생기고, 조급한 마음은 열없는 데서 생긴다.
일찍이 듣건대, 주周나라가 흥기興起할 때에 태왕太王이 융적戎狄을 피하여 기산岐山으로 옮겨가니, 빈豳의 인민人民이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이를 이끌고서 따라가는 행렬이 기산岐山의 아래에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으니, 그 옛 나라는 상실했지만 마침내는 크게 흥기하였다고 한다.
진秦나라와 수隋나라가 차마 천하를 잃지 않고 싶었지만 결국은 망하게 된 것을 보고 나서야, 성인聖人이 이와 같이 마음을 느긋하게 하고 빨리 서두르지 않은 행동이 바로 천하를 깊이 취하게 된 까닭임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