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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1)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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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문태사文太師치사致仕를 축하하는 계주啓奏
文有典刑하고 且多風致니라
문장은 전형典刑이 있고 또 풍치風致가 많다.
하나이다
계주啓奏를 올리옵니다.
伏審得謝하고 歸老西洛이니이다
삼가 살피옵건대, 중조中朝에서 사직辭職하고 서락西洛으로 돌아가 노년을 보내십니다.
位極師保하고 望隆古今이니이다 所嘆이니이다
관위官位사보師保에 이르고 명망名望고금古今에 높으셨으며 지족止足풍도風度중외中外가 찬탄한 바입니다.
伏惟太師하니之偉業하고니이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태사太師로서 치사致仕하시니 고요皐陶의 위대한 업적을 몸소 이루고 방숙方叔소호召虎의 방대한 모략謀略을 겸하셨습니다.
하되 始終一節이니이다
세 조정을 보좌하되 시종여일 절조節操를 지키셨습니다.
百辟共傳於遺事하고 이니이다
백벽百辟(百官)은 남긴 공업功業을 함께 전송傳誦하고, 사이四夷명성名聲을 우러러 사모하였습니다.
民恃以安하고 士思爲用이니이다
백성들은 을 의지해 안심하게 되었고, 선비들은 을 사모하여 힘을 바쳤습니다.
雖老未衰하고 猛虎在山이나 而藜藿不採니이다
상보尙父는 비록 늙었지만 무용武勇은 쇠하지 않았고, 맹호猛虎에 있지만 여곽藜藿을 캐먹지 않는 지조를 가졌습니다.
況復 本無黃髮之嫌하고 出以濟時 何負이리잇가
더구나 임금을 모시고 앉아 정사를 의논하는 자리에선 노인임을 아랑곳하지 않았고, 나아가 세상을 구제하고 나서는 적송자赤松子를 따라가 놀려는 약속을 어찌 저버리겠습니까?
而能去如脫屣하여 名重太山이니 近世以來 一人而已니이다
벼슬을 헌신짝 버리듯이 하여, 이름이 태산보다 무거웠으니, 근세近世 이래로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方將翶翔之下하고 泝回之間이니이다
장차 숭산嵩山소실산少室山의 아래에서 한가히 노닐고, 이수伊水낙수洛水의 사이에서 마냥 오르내리실 것입니다.
身寄白雲하고 니이다
몸은 백운白雲처럼 떠다니고, 녹야綠野을 개설하실 것입니다.
정종鼎鍾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죽백竹帛(史冊)의 남은 빛을 거두실 것입니다.
雖使이나 衆之所願이어늘 誰復間然이리잇가
비록 단청丹靑에 그려지고 시축尸祝으로 받들게 하더라도, 민중이 원하는 바거늘 누가 흠잡을 수 있겠습니까?
는 일찍이 공소空疏한 자질로 그릇되게 추장推獎을 받았습니다.
嘗欲하고 庶幾自效於錙銖니이다
일찍이 하해河海 같은 힘을 빌려 조금이나마 국가에 공헌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而蹇拙多艱하여 漂流歷歲니이다
그런데 어려운 일들이 많아 몇 년을 표류漂流하였습니다.
誓將하여 絶意功名이니이다
장차 고향으로 돌아가 조상의 분묘墳墓를 보살피며 공명功名을 단념하려고 맹세하였습니다.
罪籍得除하니 或成過洛之幸이요 舊恩未棄하니 尙許登門之遊리이다
죄적罪籍에서 이름이 제거되었으니 혹 낙양洛陽을 들러 배알拜謁하고픈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요, 예전에 입은 은혜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으니 문하門下에 찾아가는 것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一聽話言이면 永畢微願이니이다
한 번 의 말씀을 듣는다면 오래 끌어온 소원을 마칠 것입니다.
猶能作爲歌頌하여 傳示無窮이니이다
이에 가송歌頌을 지어서 무궁히 전해 보일 것입니다.
俯慰平生하고 仰答恩遇니이다
굽어 평생을 위로하고 우러러 은우恩遇에 답하옵니다.
瞻望台屛하니 不勝區區니이다
태병台屛을 바라보니 설레는 마음 견딜 수가 없습니다.
謹奉啓하여 陳賀
삼가 계주啓奏를 올려 축하하옵니다.
역주
역주1 賀文太師致仕啓 : 본 啓奏는 元豐 7년(1084)에 쓴 것이다. 文太師는 文彦博(1006~1097)을 가리킨다. 이때 文彦博은 年老하여 太師로 致仕하였다. 致仕는 나이가 많아서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을 말한다. 文彦博은 자는 寬夫, 벼슬은 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고, 潞國公에 봉해졌다.
역주2 右某 : 오른쪽에 관직과 성명을 적으니 ‘오른쪽에 적힌 아무개’란 뜻이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翰林學士 蘇轍’이라 적었으면 ‘오른쪽에 적힌 蘇轍’이라고 하는 식이다. 여기서는 ‘某’라고 적었지만 실제로는 ‘右蘇轍’ 또는 ‘右轍’이라고 적는다.
역주3 中朝 : 漢代에서 武帝 이후에 朝官을 中朝와 外朝로 나누었으니, 中朝는 곧 內朝로서 官位와 品級이 비교적 높았다.
역주4 止足之風 : 그칠 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風度를 이른다.
역주5 中外 : 여기서는 중앙과 지방을 가리킨다.
역주6 致政 : 致仕와 같은 말로, 벼슬을 임금에 되돌려줌을 가리킨다.
역주7 虁皐 : 虁는 舜帝 때의 樂官이고, 皐는 皐陶인데 舜帝 때의 刑官이다. 이 두 사람은 벼슬에 있을 때 政績이 있었으므로 후세에 그들을 빌어 賢明하게 보필한 大臣을 가리킨다.
역주8 方召 : 方叔과 召虎로, 이 두 사람은 西周 때 宣王을 도와 中興시킨 賢臣이다.
역주9 躬虁皐之偉業 兼方召之壯猷 : 이를 빌어 文彦博의 文武兼全를 가리킨다.
역주10 翼亮三朝 : 文彦博이 仁宗‧英宗‧神宗의 세 조정을 내리 보좌한 일을 가리킨다.
역주11 四夷想聞於風聲 : 《宋史》 〈文彦博傳〉에 의하면, 元祐 연간에 契丹의 耶律永昌과 劉霄가 宋나라에 사신으로 왔을 때 蘇軾이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들은 황제를 뵈러 대궐로 들어가다가 殿門 밖에서 文彦博을 보더니 그 자리에 서서 엄숙한 태도를 지으며 ‘이분이 바로 潞公이시오?’라고 묻는 등 문언박을 깍듯이 대하였고, 文彦博이 洛陽으로 돌아온 뒤에는 西羌首領 溫溪心이 名馬를 문언박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 하는 등 문언박을 무척 사모했다고 한다.
역주12 尙父 : 周나라 초기의 정치가 太公望을 가리킨다. 俗稱은 姜太公. 武王을 도와 殷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평정한 공으로 齊나라에 봉해졌고, 兵書 《六韜》는 그의 저서라고 전한다.
역주13 鷹揚 : 武勇을 떨침을 가리킨다.
역주14 坐而論道 : 大臣이 帝王을 모시고 앉아서 정사를 의론하는 일을 가리킨다.
역주15 赤松之約 : 벼슬을 내놓고 돌아가 林泉에서 노닐 것을 기약함을 말한다. 《史記》 〈留侯世家〉에, 張良이 말하기를 “인간의 일을 버리고 赤松子를 따라 놀려고 한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인용한 것이다.
역주16 嵩少 : 嵩山과 少室山. 洛陽 부근에 있다.
역주17 伊洛 : 伊水와 洛水. 두 물은 洛陽을 경유한다.
역주18 堂開綠野 : 唐나라 裴度의 綠野堂이란 별장이 洛陽에 있었다. 裴度는 바로 唐 憲宗 때의 宰相. 그는 藩鎭의 叛亂을 평정하여 공을 세우고 만년에 벼슬을 내놓고 洛陽으로 물러가 살았다. 이 대문에서는 裴度의 綠野堂에 대한 典故를 인용해서 은연히 문언박을 배도에 비유하였다.
역주19 釋鼎鍾之重負 收竹帛之餘光 : 功勳이 鼎鍾에 새겨지고 竹帛에 쓰이어 오래 전해지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역주20 圖之丹靑 奉以尸祝 : 초상화가 그려지고 神主로 모셔져서 사람들의 崇拜 대상이 되리라는 뜻이다.
역주21 某蚤以空疏 誤辱知獎 : 熙寧 원년(1073)에 文彦博이 蘇轍을 불러 學官으로 삼은 일을 가리킨다.
역주22 借潤於河海 : 河海에서 물을 빌려 사물을 윤택하게 한다는 말. 곧 文彦博의 힘을 입어 국가에 공헌하였다는 뜻이다.
역주23 歸掃墳墓 : 고향에 돌아가 조상의 묘소를 보살피겠다는 말. 곧 고향에 돌아가 은거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역주24 右某는 啓하나이다………하노이다 : 張伯行의 《唐宋八家文鈔》에서 “‘尙父는 비록 늙었지만 武勇은 쇠하지 않았고, 猛虎는 山에 있지만 藜藿을 캐먹지 않았다.’고 한 것은 확실히 이 文潞公(文彦博)의 氣槪이다. 疏宕한 중에 蘊藉한 맛이 넉넉히 있으니, 짤막한 啓奏 중에 매우 아름다운 것이다.[尙父雖老而鷹揚未衰猛虎在山 而藜藿不採 確是文潞公氣槪 疏宕之中 饒有蘊藉 小啓之絶佳者]”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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