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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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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鼓中國之氣
하여 便於射獵하고 而習於馳騁이니라
生於斥鹵之地하고 長於霜雪之野하여 飮水食肉하니 風雨饑渴之所不能困이요 上下山坂하니 筋力百倍 輕死而樂戰이라
常以勇勝中國이니라
하고 休養生息하고 畜牛馬하고 長子孫하고 安居佚樂하여 而欲保其首領者 蓋無以異於華人也니라
而中國之士 常憚其勇하여 畏避而不敢犯이니라
亦以此恐喝中國而奪之利하니 此當今之所謂大患也니라
昔者무제之世 이니라
其後二十年之間 兵深入하되 不憚死亡捐命하고 絶幕之北하여 以決勝負하니흉노匈奴孕重墮하고 人畜疲弊하니 不敢言戰이니라
何者
勇士壯馬 非中國之所無有 而窮追遠逐하니흉노匈奴之衆이라도 亦終有所不安也니라
夫敵國之盛 非隣國之所深憂也니라
要在休兵養士而集其勇氣하여 使之不懾而已니라
方今天下之勢 中國之民 優游緩帶하여 不識兵革之勞하고 驕奢怠惰하여 勇氣消耗하고 又以百萬爲計하여 轉輸天下하며 甘言厚禮 以滿其不足之意하여 使天下之士 耳熟所聞하고 日習所見하여 以爲生民之命 寄於其手
俯首柔服하고 莫敢抗拒하니 凡中國勇健豪壯之氣 索然無復存者矣니라
夫戰勝之民 勇氣百倍 敗兵之卒 沒世不復이니라
蓋所以戰者 氣也 所以不戰者 氣之畜也 戰而後守者 氣之餘也니라
古之不戰者 養其氣而不傷이어늘 今之士 不戰而氣已盡矣 此天下之所大憂也니라
하여 小戰則殺將하고 大戰則割地하니 兵之所至 天下震慄이니라
이나 諸侯猶帥其罷散之兵하여 合從以擊하고 砥礪戰士하여 激發其氣니라
이나 염파廉頗收合餘燼하여 하고 西抗하여 振刷磨淬하고 不自屈服이니라
其民觀其上之所爲하여 日進而不挫하고 皆自奮怒하여 以爭死敵이니라
蓋天下之士 所爲奮不顧身하여 以抗强虎狼之 爲非其君也어늘
而使諸侯從而帝之하니 天下尙誰能出身하여非其君哉
노중련魯仲連 非徒惜夫帝之虛名이요 而惜夫天下之勢 有所不可也니라
今尊奉하여 交歡納幣하여 以爲兄弟之國하고 하여 不敢一觸其意하니 此適足以壞天下義士之氣하고豪橫之勢耳니라
而自重하여 卓然特立하고 不聽之妄求 以爲民望而全吾中國之氣니라
如此數十年之間이면 天下摧折之志復壯하리니之勇 非吾之所當畏也니라


07. 북적北狄에 대한
중국의 기풍을 고무시켰다.
북적北狄의 인민은 그 성품이 비유하자면 금수禽獸와 같아서 활쏘기와 사냥하는 일을 좋아하고 말 타고 달리는 일을 익힌다.
경작할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 태어나고 서리와 눈이 덮인 들판에서 자라면서 물을 마시고 날고기를 먹으니 풍우風雨기갈饑渴이 피곤하게 할 수 없는 존재요, 경사진 지대를 오르내리니 근력筋力이 여느 사람의 백 배나 되고,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싸움을 즐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항상 용맹으로 중국을 이긴다.
그들이 친척親戚을 옹호하고 〈민력民力을〉 보양保養하고 〈인구를〉 증식하고 우마牛馬를 기르고 자손子孫무육撫育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살면서 목숨을 보존하려고 하는 것은 아마 중국 사람과 다를 것이 없으리라.
그런데 중국의 인사들은 항상 그들의 용맹을 꺼려 무서워서 피하고 감히 침범하지 못한다.
털옷과 가죽옷을 입는 북방의 인민도 위력으로써 중국에 공갈을 쳐서 재물을 취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현재의 이른바 ‘큰 화환禍患거리’인 것이다.
옛날 무제武帝의 시대에 흉노匈奴화친和親을 끊고 통행하는 길에 있는 요새要塞를 공격하니 온 천하가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그 뒤 20년 동안을 나라 군대가 깊숙이 들어가되 죽음을 꺼리지 않고 목숨을 내놓고 곧장 사막을 건너 북쪽으로 가서 승부를 결판하니, 흉노匈奴는 〈장기간 도주하는 중에〉 회임한 부인이 유산을 하는가 하면 사람과 가축이 피로에 지쳐 있어서 감히 〈나라 군대와〉 교전할 것에 대해 말하지 못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용감한 군사와 힘센 말은 중국에 없는 바가 아니어서 끝까지 추적하여 멀리 쫓아가니, 아무리 흉노匈奴가 많은 인구를 가진 막강한 나라라 하더라도 또한 편안히 살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적국敵國의 강성함은 이웃 나라가 깊이 걱정할 바가 아니다.
중요한 관건은 군사를 휴양休養시켜 〈정예부대로 만들고〉 용기를 결집시켜서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데 있을 뿐이다.
지금 천하의 형세는 중국의 인민들이 한유하고 느슨하여 전쟁의 힘든 일을 알지 못하고, 교만하고 사치하고 나태하여 용기가 소모되고, 서융西戎북적北狄에게 보내는 물자가 또한 백만가량의 많은 수량으로 계산되어 온 천하에 수송하며, 달콤한 말과 후한 예물로 그들의 불만족한 마음을 만족시켜서, 천하의 인사들로 하여금 〈적에게 아부하는 말을〉 실컷 듣고 〈적에게 아첨 부리는 행위를〉 날마다 보고서 〈송나라〉 백성들의 목숨이 그들의 손에 붙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러므로 머리 숙여 순종하고 감히 항거하지 못하니, 중국의 용건勇健하고 호장豪壯한 기풍이 모두 사라지고 다시 존재한 것이 없다.
전승戰勝한 백성은 용기가 백 배나 나고, 패전敗戰한 군사는 평생토록 〈용기가〉 회복되지 않는다.
대개 전쟁을 하는 것은 용기가 있기 때문이고,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은 용기를 보존하기 위함이고, 전쟁을 한 뒤에 〈진지陣地를〉 지키는 것은 용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 전쟁을 하지 않을 때에는 병사들의 용기를 기르는 데 〈유의하여〉 그 용기를 상해傷害하지 않았거늘, 오늘날의 군사들은 전쟁도 하지 않는데 용기가 이미 다하였으니, 이것이 천하의 큰 걱정거리이다.
옛날 육국시대六國時代나라가 산동山東출병出兵하여 작게 싸웠을 때에는 〈상대국의〉 장수를 죽이고, 크게 싸웠을 때에는 〈상대국의〉 땅을 떼어갔기 때문에 나라 병사가 이르는 곳에는 천하가 벌벌 떨었다.
그러나 제후들은 오히려 〈피곤에 지쳐〉 흩어진 병사를 거느리고 합종合縱하여 나라를 공격하고 전사戰士를 단련해서 그 용기를 격발激發시켰다.
장평長平의 패전에서는 나라의 군사가 죽은 자가 40만 명이나 되었지만, 〈나라 장수〉 염파廉頗는 〈패전에서〉 살아남은 군대를 수합하여 북쪽으로는 율복栗腹을 죽이고 서쪽으로는 나라 군사에 항거하며 진작하고 단련하여 스스로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위에서 하는 행위를 보고는 날로 진취하고 좌절하지 않았으며, 모두 분노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대적하였다.
그 뒤에 나라 군대가 나라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양왕梁王(곧 안희왕安釐王)이 장군將軍 신원연新垣衍나라에 보내서 〈나라도〉 나라 〈소왕昭王을〉 제왕帝王으로 칭해주게 하였더니, 〈마침 나라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들은〉 노중련魯仲連은 비분강개하며 매우 불가한 일이라고 하였다.
대개 천하의 선비가 의분義奮하여 몸을 돌아보지 않고 강포한 호랑이와 이리같은 나라에 항거한 것은 그가 제왕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후諸侯들이 따라서 나라를 제왕帝王으로 칭하게 하였으니, 천하에 그 누가 출세하여 제왕감이 아닌 임금을 섬기겠는가?
그러므로 노중련魯仲連은 한갓 나라를 헛된 제왕의 이름으로 칭하는 것을 애석히 여길 뿐만 아니라, 천하의 형세상 옳지 않는 것을 하는 바가 있음을 애석히 여긴 것이다.
지금 무지한 이적夷狄을 높이 받들어 그들과 화친을 맺고 재물을 헌납함으로써 동등한 형제兄弟의 나라로 삼고 사랑하는 자식처럼 떠받들어 감히 그들의 뜻을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족히 〈이적夷狄에 항거하는〉 온 천하 의사義士들의 용기를 파괴하는 것이고, 이적夷狄호강豪强하고 횡포한 세력을 조장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하건대, 병사를 양성함으로써 국방을 튼튼히 하여 〈국가의 주권을〉 확고히 세우고 이적夷狄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 백성의 희망이요, 우리 중국의 기세를 완성하는 것이라 여긴다.
이와 같이 수십 년간을 해간다면 천하의 좌절된 뜻이 다시 강장强壯해질 것이니, 북적北狄의 용맹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바가 아니다.


역주
역주1 北狄論 : 〈北狄論〉이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 권5에는 〈防邊論 一〉로 되어 있다.
역주2 北狄之民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北方之國’으로, 《唐宋八大家文鈔》에는 ‘北邊之民’으로 되어 있다.
역주3 其性譬如禽獸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其人精明强悍’으로, 《唐宋八大家文鈔》에는 ‘其性驕蹇强悍’으로 되어 있다.
역주4 至於其所以擁護親戚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이 구절 앞에 ‘然’자가 있다.
역주5 氈裘之民 : 四庫全書의 《唐宋八大家文鈔》에는 ‘北方之民’으로 되어 있다.
역주6 匈奴絶和親……天下震恐 : 漢族이 王朝를 세우고 소수민족의 수령과 정략적으로 인척관계를 맺었는데, 이 책략은 漢 高祖 劉邦 때에 시작되고 文帝와 景帝가 그대로 따르다가 武帝 때에 비로소 끊었다. 武帝 元光 원년(B.C. 134)에 漢나라에서 馬邑城을 가지고 匈奴의 單于를 유인해 죽이려고 했다가 계략이 발각되어 성사되지 못했고, 이때부터 匈奴가 和親을 끊었다고 한다. 본서 권8 〈漢武帝論〉 제2문단 주 6) 참조.
역주7 : 《漢書》나 《資治通鑑》 등에는 ‘낙태’ 또는 ‘유산’의 뜻을 가진 ‘殰’자로 되어 있다.
역주8 戎狄之賂 : 宋代에는 매년 遼와 西夏에 絹紗 같은 물품을 보냈다고 한다.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隣國之賂’로, 四庫全書의 《唐宋八大家文鈔》에는 ‘歲幣之賂’로 되어 있다.
역주9 昔者……秦人出兵於山東 : 六國은 전국시대의 燕‧趙‧韓‧齊‧魏‧楚 등 6개의 제후국을 가리키는데, 전국시대에 6國이 모두 崤山과 函谷關의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山東諸侯’라고도 이른다.
역주10 長平之敗 趙卒死者四十萬人 : 본서 권11 〈平原君〉 주 3), 4)와 본서 권11 〈白起〉 주 3) 참조.
역주11 北摧栗腹 : 《史記》 〈廉頗藺相如列傳〉에 “邯鄲의 포위가 풀린 지 5년 만에 燕나라가 ‘趙나라의 장정들은 長平의 패전에서 모두 죽고 孤兒들은 아직 장성하지 못했으니, 〈趙나라를 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한 丞相 栗腹의 謀策을 받아들여 군사를 일으켜 趙나라를 치자, 趙나라가 廉頗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치게 하니, 廉頗는 燕나라 군사를 鄗 땅에서 크게 격파하여 栗腹을 죽이고 드디어 燕나라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燕나라가 城 다섯을 떼어 講和를 청하므로 이에 받아들였다.”란 내용이 보인다.
역주12 其後……深以爲不可 : 《戰國策》 〈趙策〉에 “魯仲連이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옛날 鮑焦(周代의 隱者)가 조용히 살지 않고 죽은 것이라 여기지만, 이는 잘못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그가 자살한 뜻을〉 모르고 그저 자신만을 위해 죽었다고 여긴다. 저 秦나라는 예의를 버리고 남의 목을 잘라 오는 것을 숭상하는 나라이며, 선비들에게 권모술수를 쓰도록 하고 있고, 백성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 그러한 그가 제멋대로 帝王이 되고, 불행하게도 더 나아가 천하를 다스린다면 나는 동해에 가서 죽어버리겠다. 나는 정말 차마 그런 임금의 백성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란 내용이 보인다.
역주13 : 저본에는 ‘拒’로 되어 있으나, 문의상 《群書會元截江網》‧《稗編》‧《宋文鑑》‧《唐宋八大家文鈔》‧《文章辨體彙選》 등에 의해 ‘事’로 바꾸었다. 明代 章漢이 撰한 《圖書編》에는 ‘以拒其君’으로 되어 있다.
역주14 夷狄無知之人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不通往來之人’으로, 《唐宋八大家文鈔》에는 ‘累世仇讎之人’으로 되어 있다.
역주15 奉之如驕子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奉之以慇懃’으로 되어 있다.
역주16 長夷狄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畏契丹’으로, 四庫全書의 《唐宋八大家文鈔》에는 ‘長敵人’으로 되어 있다.
역주17 愚以爲養兵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今誠養威’로 되어 있다.
역주18 夷狄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契丹’으로 되어 있다.
역주19 北狄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北敵’으로, 《唐宋八大家文鈔》에는 ‘北方’으로 되어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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