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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1)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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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古今來 以蠻夷 攻蠻夷 爲最 以附近土兵으로 攻蠻夷 次之 若調他中國强兵이면 則非計矣니라
臣近再論處置邊事乖方하여 하니
乞早黜義問하여 以正邦憲하고 更選練事老將하여 付以疆場이언마는
經今多日 不蒙施行이니이다
執政 止以臨敵易將 兵家所忌爲說하고 雖知義問處置顚錯이나 至覆軍殺將하여는 而猶復隱忍하고 不卽遣代라하나이다
比雖遣衡規往視이나 規凡人으로 未曾經練戎事어늘 何益於算이리잇가
徒引歲月하고 坐視邊人肝腦塗地하니 臣甚惑之니이다
謹按義問所爲컨대 蓋全不曉事 留在邊上一日이면 卽有一日之害니이다
盖臨敵易將 顧代者何人耳니이다
今執政 乃以虛文藉口 終欲庇之하니 遠人何辜 日被塗炭이니잇가
若非陛下哀矜四方하여 亟命賢將往代 則臣恐陷害生靈 未有已也니이다
兼臣 訪聞 蟠踞山洞하여 道路險絶하니 之兵 入踐其地 不得其便이라하나이다
知邵州 困於하고 自沅州入 過界卽敗니이다
이나이나 竝有敗無成者 地形不便也니이다
今聞 朝廷 已指揮하여 發兵數目不少이나 將非其人이라하나이다
臣恐旣不知戰하고 又不知守하니 費財하여 漸致 深可慮也니이다
이나이나 其中兵民 不下數千이니 義無棄之虜中하여 俾爲魚肉이니이다
要須略行하여 使之畏憚이요 肯出渠陽兵民이라야 然後爲可니이다
臣訪聞 士大夫皆言 群蠻 難以力爭이요 可以이라하니 欲遣間諜招誘인댄 必用이요 欲行窺伺攻討인댄 必用이니이다
捨此而欲以中國强兵敵之 雖多無益이니이다
이나 此可使智者臨事制置 難以니이다
前者 嘗以衆人言屢經蠻事 頗有라하여 乞行委任이언마는 朝廷置而不用하니
蓋必有賢於麟者어든 惟乞速遣하여 以紓邊鄙之患하노이다
至於義問하여는 決無可望이니 幸陛下無疑也하소서
臣又聞 渠陽諸夷相接하고 宜蠻部族衆多하니 若與渠陽諸夷하여 勢益昌熾 猝難翦滅이리이다
亦乞指揮하여 預行招撫하면
雖不得其用이나 이니 亦不爲無益矣리이다
取進止하소서


05. 거양변경渠陽邊境의 일을 세 번째 논한 차자箚子
고금을 막론하고 만이蠻夷를 이용해서 만이蠻夷를 치는 것은 최선의 전술이고, 부근에 있는 토병土兵을 이용해서 만이蠻夷를 치는 것은 차선의 전술이며, 중국의 강한 군사를 이용해서 만이蠻夷를 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다.
이 최근에 두 번째로 “당의문唐義問이 변경의 전쟁에 관한 일을 법도에 어긋나게 잘못 처리함으로써 거양渠陽이 쳐들어와서 장리將吏를 살해하게 만들었으니,
일찌감치 당의문唐義問을 내쫓음으로써 국가대법國家大法을 바로 세우고, 다시 세상일에 숙련된 노련한 장수를 택하여 변방의 임무를 부여하자.”고 논하였건만,
지금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듣건대 “집정執政은 ‘에 임하여 장수를 바꾸는 것은 병가兵家에서 꺼리는 바’라고만 말할 뿐이고, 비록 당의문唐義問이 처리한 일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군사를 패멸시키고 장수를 살해한 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꾹 참고 즉시 대신을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근에 비록 형규衡規를 보내 가서 살펴보게 하였지만 형규衡規재능才能이 보통인 사람으로서 일찍이 군사軍事를 익힌 경험이 없으니 상황을 파악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한갓 세월만 끌면서 가만히 앉아서 변경 백성이 전란에 죽어 가 땅바닥에 으깨어지는 처참한 모습을 보고만 있을 뿐이니, 은 몹시 의혹스럽습니다.
당의문唐義問이 하는 일을 살펴보건대 전연 일을 이해하지 못하니, 그가 변상邊上에 하루 머물러 있으면 곧 하루의 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나라는 염파廉頗에게 장수를 맡겼다가 조괄趙括로 대신하자 패하였고, 나라는 왕흘王齕에게 장수를 맡겼다가 백기白起로 대신하자 승리하였습니다.
대개 적진敵陣에 임하여 장수를 바꾸는 것은 대신할 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볼 뿐입니다.
지금 집정執政은 실속 없는 말로 핑계를 대어 끝내 감싸려고 하니, 변경 백성은 무슨 죄로 날마다 몹시 괴로운 처지를 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만일 폐하陛下께서 사방四方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 빨리 어진 장수에게 명하여 가서 대신하게 하지 않으신다면, 백성을 함해陷害하는 일이 멈추지 않을까 은 염려됩니다.
또한 이 듣건대 “거양渠陽제이諸夷산동山洞에 웅거하고 있어 도로道路험절險絶하므로 중국中國의 군사가 그 땅에 침입하면 반 걸음도 편히 걸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옛날 곽규郭逵소주지주邵州知州로 있을 때에 양광참楊光僭에게 곤욕을 당하고, 이호李浩장돈章惇을 따라 원주沅州에서 들어갈 때에 이 지계地界를 지나다가 곧 패하였습니다.
곽규郭逵이호李浩는 모두 서북전장西北戰將이었으나 실패만 있고 성공이 없었던 것은 지리적 조건이 편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들으니 “조정朝廷이 이미 제도諸道를 지휘하여 발동한 군사는 그 수효가 적지 않으나 장수에 그 적절한 사람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두렵게 생각하는 것은, 이미 싸우는 방법도 모르고 또 지키는 방법도 알지 못하니, 군사만 괴롭히고 재물만 허비하여 점점 심각한 화환禍患을 불러올까 깊이 염려스럽습니다.
지금 조정朝廷에서 거양渠陽을 버리려고 하지만, 그 땅에 주둔駐屯병민兵民이 수천 명이 밑돌지 않으니, 의리상 그들을 노중虜中에 버리어 어육魚肉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이적夷狄을 토벌, 평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외탄畏憚하게 하고 거양渠陽병민兵民을 기꺼이 내놓게 하여야만 합니다.
이 듣건대 호남湖南호북湖北사대부士大夫들이 모두 말하기를 “군만群蠻은 힘으로 다투기 어렵고 지략으로 복종시킬 수 있다.”고 하니, 간첩間諜을 파견해서 초유招誘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본토인을 이용해야 되고, 엿보아서 공토攻討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본토의 토병土兵을 이용해야 됩니다.
이런 방법을 제쳐두고 중국中國강병强兵으로 대적한다면 아무리 많은 싸움을 한다 하더라도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략이 있는 자가 일에 임하여 처리할 수 있는 것이고, 먼 곳에서 규획規畫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 전에 여러 사람들이 “사린謝麟은 누차 만이蠻夷에 관한 일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매우 공적功績이 있다.”고 한 말을 들었기에 그에게 위임委任하도록 청하였건만 조정朝廷에서는 그를 놓아두고 쓰지 않았으니,
반드시 사린謝麟보다 나은 자가 있거든 속히 보내서 변경의 화환禍患을 해소하기 바랍니다.
당의문唐義問으로 말하면 결코 가망이 없는 사람이니, 폐하陛下께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마옵소서.
은 또 듣건대 “거양渠陽제이諸夷의주宜州군만群蠻과 서로 인접해 있고, 의주宜州군만群蠻부족部族중다衆多하니 만일 거양渠陽제이諸夷와 공동 모의하여 변경을 침범하는 일을 저질러서 그 세력이 더욱 창성하면 갑자기 전멸翦滅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니 또한 광서廣西 지방의 관원官員들을 지휘하여 미리 의주宜州군만群蠻을 불러 위무慰撫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비록 그들을 조정朝廷에서 이용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이 거양渠陽만이蠻夷동심협력同心協力하는 일은 금지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소신의 건의에 대한 실행 여부를 결정하옵소서.


역주
역주1 三論渠陽邊事箚子 : 본 箚子에서는 渠陽邊臣 唐義問의 貶黜을 청하였고, ‘전쟁에 임하여 장수를 바꾸는 것은 兵家에서 꺼리는 바’라고 주장하는 설을 반박하였고, 어진 장수를 골라 보낼 것을 요구하였고, 渠陽을 완전히 버리자는 논설을 반대하였고, 지혜로써 洞蠻을 굴복시킬 것을 주장하였고, 아울러 廣西路에 詔勅하여 미리 招撫해서 群蠻이 合謀하여 난을 일으키지 못하게 할 것 등 여러 가지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渠陽은 地名으로, 唐나라에서는 溪洞州라고 칭하였고, 宋나라에서는 荊湖北路에 소속시켰는데, 지금의 湖南 靖縣, 會同 일대이다. 熙寧 9년(1076)에는 그 땅을 수복하였고, 元豐 5년(1082)에는 渠陽縣으로 명명하였고, 元祐 초년에는 폐하여 城砦를 만들었고, 元祐 5년(1090)에는 다시 渠陽砦를 誠州로 삼았다.
역주2 唐義問 : 일찍이 齊州知州 등을 역임하고, 文彦博의 추천으로 荊南節度使로 있을 때에는 渠陽의 모든 城砦를 폐지하자고 청하였으며, 蠻의 楊晟秀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는 湖北轉運使로 나가서 楊晟秀를 토벌해서 항복시켰다.
역주3 致渠陽蠻寇賊殺將吏 : 唐義問이 叛酋 楊晟秀를 토벌하여 항복시킨 일을 가리킨다.
역주4 訪聞 : 찾아다니면서 듣는 것이다.
역주5 昔趙任廉頗 以趙括代之則敗 : 《史記》 〈廉頗藺相如列傳〉에 의하면 “秦나라가 反間計를 써서 趙나라로 하여금 趙括을 장수로 삼아 廉頗를 대신하게 하였다. 그리고 秦나라 장수 白起가 꾀를 써서 趙나라 군사 45만 명을 죽이고 秦나라 군사가 趙括을 사살한 다음 드디어 邯鄲을 포위하니, 趙나라가 거의 망하게 되었다. 廉頗는 戰國時代의 將領. 그는 齊나라를 격파하여 晉陽을 취하고 上卿이 되었다. 秦나라가 長平을 공격할 때 廉頗가 3년 동안 굳게 지키자 秦나라 군사는 지쳐서 전공을 세우지 못하였다. 長平에서 패한 뒤에 趙나라는 다시 廉頗를 써서 군사를 거느리고 燕나라 군사를 깨뜨렸고, 廉頗는 뒤에 信平君에 봉해지고 相國을 맡았다. 趙括은 趙나라 명장인 趙奢의 아들. 趙奢가 ‘趙나라 군사를 패망시킬 자는 반드시 括일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趙括이 장수가 된 뒤에 군사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니, 군사들이 감히 趙括을 우러러보지 못하였다. 그의 어머니도 ‘趙括은 장수를 시킬 수 없다.’란 말을 했다.”고 한다.
역주6 秦任王齕 以白起代之則勝 : 《史記》 〈白起王翦列傳〉에 의하면 “秦나라가 反間計를 쓴 뒤에 몰래 白起를 上將軍으로 삼고 王齕을 副將으로 삼아 趙나라 군대를 잘라 두 토막을 내고 군량을 조달하는 길을 끊었다. 秦나라가 長平을 포위하니 趙나라의 군량 보급로가 이어지지 못하고 구원병이 이르지 않았으며, 趙나라 군사 40만 명이 秦나라에 투항하니 白起가 모두 죽였는데, 전후를 통하여 죽인 趙나라 군사가 45만 명이나 되었다. 白起는 전국시대 秦나라 장수로서 秦나라 昭王 때에 승전하여 70여 城을 취한 공으로 武安侯에 봉해졌다. 王齕은 左庶長에서 발탁된 뒤에 王陵을 대신하여 장수가 되었다가 諸侯의 군사에게 패하였다.”고 한다.
역주7 渠陽諸夷 : 여기서는 특별히 西南溪洞의 모든 蠻夷를 가리키니, 이를테면 梅山峒蠻夷‧誠徽州蠻夷‧南丹州蠻夷와 같은 部族이다.
역주8 中國 : 中原 지구를 범연하게 칭한 말이다.
역주9 跬步 : 跬는 한 발 내딛는 거리로, 半步를 이르는 말이다.
역주10 郭逵 : 宋代 仁宗‧英宗‧神宗 때의 名將. 邵州知州로 있을 때에 武岡의 蠻夷가 배반하자 토벌해서 평정시켰다. 일생 동안 많은 전공을 세웠고, 벼슬이 檢校太保同簽書樞密院에 이르렀다. 《宋史》에 〈郭逵傳〉이 있으나 “楊光僭에게 곤욕을 당했다.”는 기사만은 없다.
역주11 楊光僭 : 誠州‧徽州 蠻夷首領의 한 사람. 당시 楊氏姓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歸附하였으나 楊光僭만은 자부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다가 얼마 안 가서 역시 항복하였다.
역주12 李浩 : 神宗 때 章惇을 江南에서 따라다니며 蠻夷를 크게 깨뜨리고, 懿州와 黔江을 회복시켰다.
역주13 章惇 : 일찍이 湖南‧湖北의 察訪使를 역임하였고, 南‧北江의 群蠻을 攻討할 때에 章惇은 三路兵으로 懿州‧洽州‧鼎州 등을 평정시켰다.
역주14 逵浩 皆西北戰將 : 郭逵와 李浩가 일찍이 陝西 일대의 戰將이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5 諸道 : 곧 諸路. 宋代에는 行政區劃을 ‘路’로 칭하고, 唐代에는 ‘道’로 칭하였는데, 蘇轍은 예전 것을 칭하였다.
역주16 老兵 : 여기서는 군사를 피곤하게 하는 것이다.
역주17 腹心之患 : 복부와 심장은 신체의 중요한 기관이니, 여기서는 곧 심각한 禍患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18 今朝廷欲棄渠陽 : 元祐 초년에 조정에서 일을 줄일 목적으로 堡砦를 폐지하고 戍守를 철수함으로써 渠陽을 蠻夷에게 넘겨주려고 논의하던 일을 가리킨다.
역주19 屯戍 : 옛날 屯田에 농사를 지으며 邊境을 戍守하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屯戍는 흔히 駐屯 또는 駐札‧駐箚하는 일을 가리킨다.
역주20 討定 : 저본에는 ‘定計’로 되어 있는데, 《欒城集》에 의하여 ‘討定’으로 바꾸었다.
역주21 湖南北 : 荊湖南路와 荊湖北路를 가리킨다.
역주22 智伏 : 智略을 써서 복종하게 함을 이른다.
역주23 土人 : 대대로 거주해오는 본토 사람을 말한다.
역주24 土兵 : 本土兵丁.
역주25 遙度 : 먼 곳에서 規畫하는 일. 宋代에 戰爭을 지휘할 때에는 항상 帝王이 친히 方略을 하달하는 일이 있었다.
역주26 謝麟 : 관직에서 많은 政績을 쌓았으며, 章惇의 추천에 의하여 沅州太守가 되었다. 猺族이 辰溪를 침범할 때에는 그들을 잡아들이기도 하고 招撫하기도 하였다. 宜州의 獠族을 제압하니 항복해온 자들이 매우 많았으며, 특히 潭州知州로 있을 때에는 融江에 제압하기 어려운 夷變이 있었으나 그것을 무난히 討平하는 등 蠻夷를 다루는 경험이 많았다.
역주27 勞效 : 功效. 功績.
역주28 宜州群蠻 : 宜州 일대의 南丹州의 蠻, 撫水州의 蠻 등을 가리킨다.
역주29 合謀作過 : 群蠻이 공동 모의하여 변경을 침범함을 말한다.
역주30 廣西 : 地名. 宋代에는 廣南西路를 칭하였는데, 그 지역의 融州‧黔州‧宜州 같은 곳에 蠻夷部落이 많았다.
역주31 亦乞指揮廣西……但勿與協力 : 이 대문은 ‘朝廷에서 廣西南路의 官員들에게 詔勅하여 미리 宜州의 群蠻을 불러 위안하여 歸附하게 하면 그들을 朝廷에서 이용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이 渠陽의 蠻夷와 同心協力하는 일은 금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한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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