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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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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오대五代에 대한
有近利者 必有遠憂니라
눈에 보이는 가까운 이익을 탐하면 반드시 먼 훗날 걱정거리가 있게 된다.
豈獨帝王之取天下리오
어찌 제왕帝王천하天下를 취하는 일만 그렇겠는가?
하여 而至 凡數百年之間而後 得志於天下하니 其成功甚難이나 而享天下之利至緩也니라
옛날에 나라와 나라가 일어남은 에서 시작하여 수백 년을 내려와 에 이르러서야 천하天下에 뜻을 이루었으니, 그 공을 이루는 것은 매우 어려웠지만 천하天下의 이익을 누리는 기간은 지극히 오래갔다.
이나 桀紂旣滅 收天下朝諸侯하여 自處於天子之尊하니 而下無不服之志 而天下遂定이니 蓋其用力亦甚易而無勞也니라
그러나 하걸夏桀은주殷紂가 이미 멸망하자, 천하天下를 거두고 제후諸侯를 조회시키며 스스로 천자天子의 높은 지위에 처하니, 아래에서 복종하지 않을 뜻을 가진 자가 없었고, 한 명의 필부匹夫를 베자 천하天下가 드디어 안정되었으니, 아마 그 힘쓰는 일 또한 워낙 쉬워서 수고로움이 없었을 것이다.
至於秦漢之際하여는 其英雄豪傑之士 逐天下之利하되 唯恐不及하고 而開天下之하되 惟恐其後之也니라
나라와 나라의 교차 지점에 이르러서는 영웅호걸英雄豪傑의 인사들이 천하天下의 이익을 쫒아가되 행여 미치지 못할세라 염려하였고, 천하天下화란禍亂을 전개하되 행여 뒤질세라 두려워하였다.
대택향大澤鄕에서 나 보란 듯이 뽐내는 뜻으로 팔짓을 하니 천하天下의 인사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향응響應하였고, 하루 정도의 짧은 기간을 싸워서 천 리나 되는 땅을 개척하였으니, 천하天下를 취득한 것이 이처럼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天下가 일단 평정되자 군신君臣의 명분이 이미 밝혀졌고, 해내海內를 나누어 여러 장수들을 왕으로 앉혔으니, 장차 무궁하게 전하여 백세百世토록 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겼건만, 몇 해 사이에 공신功臣대국大國의 배반자가 고슴도치 털처럼 일어났으니, 어찌 그리도 천하를 취하기는 쉬웠고 천하를 지키기는 어려웠을까?
若夫五代 其事雖不足道이나 觀其帝王이면 起於하여 海內하고 戰勝攻取언만 天下하여 遠者不過數十歲니라
오대五代의 전란 시기와 같은 것은 그 일들을 비록 족히 말할 것이 못 되지만, 그 제왕帝王들을 살펴보면 필부匹夫에서 일어나서 해내海內를 매질하고 전승戰勝하여 천하를 취득하였건만, 후량後梁 이후로 채 백 년도 못 되어서 천하天下제왕帝王이 다섯 번이나 바뀌어 오래 천하를 가진 자도 수십 년을 넘지 못하였다.
其智慮曾不足以及其後世하니 此亦甚可怪也로다
지려智慮가 끝내는 후세後世에 미치기에 부족하였으니 이 또한 매우 괴상하게 여길 만한 일이로다.
蓋嘗聞之컨대 하여 虐用其民하니 而天下叛하고 이라하니 此二者 君子之所以不疑於其間也로되 皆以英武特異之姿 據天下太半之地하고 이나 終以敗亂而不可解 此其勢必有以自取之也니라
일찍이 듣건대, 후량後梁이 망함은 부자父子, 형제兄弟가 서로 도멸屠滅하여 그 백성들을 포학하게 이용하니 천하天下가 배반해서였고, 후주後周가 망함은 마침 성인聖人이 일어남을 만나서 자립할 수 없어서였다고 하니, 이 두 나라의 경우는 군자君子가 그 망한 점에 대해 의심할 나위가 없겠지만, 후당後唐장종莊宗명종明宗후진後晉후한後漢고조高祖는 모두 영무英武하고 특이特異한 자질로 천하天下태반太半 땅을 차지하였고, 그 자손子孫에 이르러서도 재력材力지용智勇 또한 모두 남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으나 끝내 패란敗亂으로 헤어날 수 없었으니, 이는 그 형세에 반드시 자초한 모종의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蓋唐漢之亂 始於功臣하고 而晉之亂 始於하니 皆以其易取天下之過也니라
대개 후당後唐후한後漢공신功臣에게서 시작되었고, 후진後晉융적戎狄에게서 시작되었으니, 모두 천하天下를 너무도 쉽게 취한 탓이었다.
이니라 之兵하고 而後 天下定於晉이니라 發南征之議하고 而後 天下定於漢이니라
장종莊宗후진後晉 고조高祖가 군사를 이끌고 이문夷門으로 달려가게 되고, 그 뒤에 천하天下명종明宗에게 정착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고, 후당後唐의 망함은 흉노匈奴장경달張敬達의 군사를 깨뜨리게 되고, 그 뒤에 천하天下후진後晉에 정착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으며, 흉노匈奴후주後周 고조高祖가 남쪽을 정벌할 대책을 발의하게 되고, 그 뒤에 천하天下후한後漢에 정착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唐滅於晉하고 晉亂於匈奴하고 而漢亡於周니라
그러므로 후당後唐후진後晉에게 멸망되었고, 후진後晉흉노匈奴에게 을 당하였고, 후한後漢후주後周에게 망하였다.
蓋功臣 負其創業之勳하고 而匈奴 恃其하여 以要天子하니 聽之則不可以久安이요 而誅之則足以召天下之亂이니라
대개 공신功臣창업創業의 공훈을 자부하고, 흉노匈奴후당後唐의 군대를 패배시킨 공로를 믿고서 천자天子를 협박하였으니, 그들의 청을 들어준다면 오래 편안함을 누릴 수 없고, 그들을 베어 죽인다면 족히 천하의 을 초래할 것이다.
戮一功臣하니 天下遂竝起而軋之矣니라
한 명의 공신功臣을 죽이니 천하天下가 모두 일어나서 반항하였다.
하고 하고 하니 而周人不服하여 以及於禍니라
그러므로 후당後唐후진後晉 고조高祖의 권한을 빼앗다가 망하였고, 후진後晉흉노匈奴화친和親을 끊었다가 멸망하였고, 후한後漢양빈楊邠사조史肇를 베어 죽이니 후주後周 사람들이 신복하지 않아 에 미쳤다.
彼其初 無功臣無匈奴 則不興이나 而功臣匈奴 卒起而滅之니라
저들이 처음에는 공신功臣흉노匈奴가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었지만, 결국은 공신功臣흉노匈奴가 일어나서 멸망시켰다.
古之聖人 有可以取天下之資而不用하고 有可以乘天下之勢而不顧하며 撫循其民하여 以待天下之自至하니 此非以爲苟仁而已矣 誠以爲天下之不可以易取也니라
그러므로 예전 성인聖人천하天下를 취할 수 있는 자질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고, 천하天下를 취할 수 있는 형세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서, 오직 백성들을 어루만져 천하의 인심이 자발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니, 이는 구차스럽게 을 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정말로 천하天下는 쉽게 취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欲求天下而求之於易
그런데 〈오대五代 적에는〉 천하天下를 구하려고 하면서 쉽게 얻는 방법으로 구하였다.
凡事之可以就天下者 無所不爲也니라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천하를 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하지 못할 바가 없었다.
無所不爲而就天下 天下旣安而不之改 則非長久之計也 改之而不顧 此必有以忤天下之心者矣니라
하지 못할 바가 없이 하여 천하를 취득하였으니, 천하天下가 이미 안정되었는데도 〈천하를 유지하는 일에 장애가 되는 것을〉 고치지 않는다면 천하를 장구長久히 유지하는 계책이 아니고, 고치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헌공獻公이 이미 죽고 공자公子 중이重耳 땅에 있었는데, 이극里克해제奚齊탁자卓子(悼子)를 죽이고 중이重耳를 불렀으나 중이重耳는 감히 들어오지 못했다.
하고 且告以晉國之亂 將有所立於公子라하니 重耳再拜而辭하고 亦不敢當也니라
진왕秦王공자公子 을 시켜 가서 백성을 위무慰撫하게 하고, 또 나라의 은 장차 공자公子를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고하니, 중이重耳재배再拜하여 사례하고 또한 감히 나서지 않았다.
至於夷吾하여는 聞召而起하되 以汾陽之田百萬으로 命里克하고 以負蔡之田七十萬으로 命丕鄭하고 而奉秦以河外列城五
이오夷吾의 경우에는 부름을 받고 일어서되, 〈자기가 나라로 들어가는 일을 잘 주선할 수 있도록〉 이극里克에게는 분양汾陽의 농지 백만百萬을 뇌물로 주겠다고 약속하고, 비정丕鄭에게는 부채負蔡의 농지 칠십만七十萬을 뇌물로 주겠다고 약속하고, 나라에게는 하외河外열성列城 다섯을 뇌물로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미 나라로 들어오고 나서는 국내외 사람에게 뇌물을 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가 하면, 이극里克비정丕鄭을 죽이고 군사를 보내 나라와 관계를 끊었다가 군사가 패하자 자신은 사로잡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였다.
뒤에 문공文公이 서서히 일어나서 수습하니, 대신大臣은 안에서 문공文公을 지원하고, 나라와 나라는 밖에서 문공文公을 추대하였으며, 문공文公이 이미 나라로 돌아와서는 제후諸侯에게 패자霸者가 되었다.
唯其不求入而人入之 無賂於內外하고 而其勢可以自入이니
입국을 구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입국하게 하였으니 국내외에 뇌물을 주지 않고도 그 형세상 스스로 입국할 수 있었다.
此所以反國而無後憂也니라
그래서 문공文公나라로 돌아와서 후환이 없었던 것이다.
其後 起於豐沛之間하여 從天下武勇之士入하여 以誅暴秦降하니라
그 뒤에 유계劉季풍패豐沛의 사이에서 일어나 천하天下무용武勇한 군사를 따라 함곡관函谷關에 들어가서 포악暴惡나라를 토벌하여 자영子嬰을 항복시켰다.
當此之時 功冠하니 其勢遂可以至於帝王이니라
이때에 제후諸侯 중에 으뜸이었으니, 그 형세는 결국 제왕帝王에 이를 수 있었다.
이것은 모두 패공沛公이 스스로 한 것이고, 여러 장수들은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적項籍(項羽)을 고릉固陵까지 추격했다가 군사가 패함에 여러 장수들이 이르지 않자 이에 수천 리의 땅을 떼어서 한신韓信팽월彭越에게 주었지만, 이 두 사람은 결국 그 공을 자부하고 배반하여 제어할 수 없었다.
夫取天下 不可以僥倖於一時之利니라
그러므로 천하天下를 취할 때는 일시의 이익을 요행히 바라서는 안 된다.
僥倖於一時之利 則必將有百歲不已之患이니 此所謂不及遠也니라
일시의 이익을 요행히 바란다면 반드시 장차 백세토록 그치지 않을 화환禍患이 있을 것이니, 이는 이른바 ‘멀리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雖然이나 古帝王之起自匹夫하여 而定天下也하고 及其身爲天子하여 能立綱陳紀하고 深謀曲慮하여 而垂萬世之業也이니라
비록 그러하나 옛적에 제왕帝王필부匹夫로부터 일어나서 천하天下를 평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고, 몸이 천자天子가 됨에 미쳐 능히 기강紀綱을 세우고 모려謀慮를 깊이 하여 만세萬世을 끼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역주
역주1 五代論 : 이 〈五代論〉 역시 소싯적 작품으로 보인다. 五代는 宋나라 이후 後梁‧後唐‧後晉‧後漢‧後周를 ‘五代’라고 칭한다.
역주2 昔者……得志於天下 : 商나라는 처음에 契에게서 일어나서 湯에 이르러 天下를 얻었고, 周나라는 처음에 稷에게서 일어나서 周 武王에 이르러 天下를 얻었다. 湯이 夏나라를 멸한 뒤에 나라를 세워 국호를 商이라 하고 도읍을 亳 땅에 세웠다. 뒤에 盤庚이 도읍을 殷 땅으로 옮겼기 때문에 또한 국호를 ‘殷’이라고도 한다. 武王이 商나라를 멸한 뒤에 나라를 세워 국호를 ‘周’라고 하고 도읍을 鎬京에 세웠으니, 역사에서 幽王에 이르기까지는 ‘西周’라고 칭하고, 平王이 동쪽으로 洛邑에 옮긴 뒤에는 ‘東周’라고 칭한다.
역주3 稷契 : 稷은 곧 后稷으로 舜의 農官이자 周나라의 先祖이다. 契은 전설상 商族의 始祖인 帝嚳의 아들이라 하며 禹를 도와 治水한 공이 있어서 商나라에 봉해졌다고 한다.
역주4 湯武 : 湯은 곧 成湯(武功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成湯이라 함)인데 성은 子, 이름은 履이다. 湯은 號, 또는 諡號라고도 한다. 武는 武王인데 文王의 아들로서 성은 姬, 이름은 發이다.
역주5 誅一匹夫 : 여기서는 獨夫 곧 殘賊無道하여 민중과 친척이 離反한 통치자를 가리킨다. 《孟子》 〈梁惠王 下〉에 “仁을 해치는 자를 ‘賊’이라 이르고, 義를 해치는 자를 ‘殘’이라 이르고, 殘賊한 사람을 ‘一夫’라 이르니, 一夫인 紂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고, 君主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란 말이 보인다.
역주6 : 禍亂을 가리킨다.
역주7 奮臂於大澤……而辟地千里 : 《史記》 〈陳涉世家〉에 의하면 “秦 二世 때에 陳涉과 吳廣이 大澤鄕에서 맨 처음 군사를 일으켜 大澤鄕 및 蘄‧符离‧銍‧酇‧苦‧柘‧譙‧陳 등의 땅을 공격해서 굴복시켰다. 이때에 여러 郡縣에서 秦나라 관리에게 고역을 당한 자들이 모두 그 長吏를 잡아 죽이고 陳涉에게 호응하였다.”고 한다.
역주8 然天下已定……如蝟毛而起 : 劉邦이 이미 天下를 얻어 君臣의 질서를 세우고 강토를 분할하여 功臣과 宗室을 分封한 다음, 무궁무진하게 王位를 계승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였으나 재위 기간에 배반자가 아홉이나 일어났음을 가리킨다.
역주9 干戈之際 : 전란 시기를 가리킨다.
역주10 匹夫 : 여기서는 범연하게 평민을 가리킨다.
역주11 鞭笞 : 여기서는 天下를 취득함을 가리킨다. 賈誼의 〈過秦論〉에 “始皇帝에 이르러서는 六代가 남긴 功烈을 떨쳐 긴 채찍을 휘둘러서 우주 안을 제어하여 二周(東周‧西周)를 倂呑하고 제후들을 멸망시키며, 至尊의 자리에 올라 六合(天下)을 제어하여 채찍을 가지고서 천하를 후려치니 위엄이 사해에 떨쳤다.[及至始皇 奮六世之餘烈 振長策而馭宇內 呑二周而亡諸侯 履至尊而制六合 執敲扑以鞭笞天下 威振四海]”란 말이 보인다.
역주12 自梁以來 不及百年 : 五代의 국가 보유 기간이 907년으로부터 960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54년이었던 것을 가리킨다.
역주13 五擅 : 다섯 차례 朝代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擅은 禪과 통하니 곧 禪讓을 뜻한다.
역주14 梁之亡……自相屠滅 : 後梁 때에 郢王 朱友珪가 그 아버지를 시해하고 自立하였으며, 均王 朱友貞이 또 友珪를 죽이고 자립하였으니 이가 바로 末帝인데, 末帝 때에 康王 友孜가 모의하여 末帝를 시해하고 惠王 友能이 배반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5 周之亡……而不能以自立 : 宋 太祖 趙匡胤이 일어나 周나라를 취하여 자립한 것을 가리킨다. 聖人은 여기서 宋代의 帝王을 존칭한 것이다. 周나라는 五代 때 郭威가 세운 後周를 가리킨다.
역주16 後唐之莊宗明宗 : 後唐(923~936)은 唐末에 李克用의 아들 李存勖(885~296)이 後梁을 멸하고 세운 나라이다. 莊宗은 곧 李存勖을 가리키고, 明宗은 곧 李亶을 가리킨다.
역주17 晉漢之高祖 : 晉은 後晉(936~946)으로 곧 石敬瑭(892~942)이 契丹兵을 이끌어 後唐을 멸하고 세운 나라이다. 漢은 後漢(947~950)으로 곧 劉知遠(895~948)이 契丹을 섬기다가 얼마 후에 세운 나라이다. 高祖는 後晉의 高祖인 石敬瑭과 後漢의 高祖인 劉知遠을 가리킨다. 石敬瑭은 後唐 明帝의 女婿로서 원래 後唐의 河東節度使가 되었었고, 劉知遠은 西突厥 沙陀部 사람으로 後晉 때에 河東節度使를 맡았었다.
역주18 及其子孫……亦皆有以過人者 : 後唐의 廢帝인 李從珂 같은 자는 재능이 출중한 제왕의 후손이었다.
역주19 戎狄 : 여기서는 契丹을 가리킨다. 四庫全書의 《唐宋八家文鈔》에는 ‘劉石’으로 되어 있다.
역주20 莊宗之亂……天下定於明宗 : 《舊五代史》 〈晉書 高祖紀〉에 의하면 “同光 4년(926) 2월에 趙在禮가 鄴을 점거하고 亂을 일으키자, 莊宗이 明宗을 統帥로 삼으니, 群臣들이 明宗을 임금으로 세울 모의를 하였다. 石敬瑭이 3백 명의 騎兵을 달라고 청하면서 ‘夷門은 천하에 없는 要害地이니, 그곳을 점거하면 설욕을 할 수 있다.’고 하므로 明宗이 날랜 騎兵 3백 명을 나누어주었더니, 石敬瑭이 城을 점거하였다. 莊宗이 군사를 따라갔다가 크게 패하여 明宗에게로 돌아왔고, 明宗은 결국 帝位에 올랐다.”고 한다.
趙在禮는 後唐 莊宗 때 指揮使가 되어 魏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瓦橋關에서 수자리하였는데, 이때 軍士 皇甫暉가 亂을 일으켜 趙在禮를 추대하니 趙在禮는 결국 배반하여 도리어 魏나라를 공격하고 자칭 ‘兵馬留後’라고 하였다.
역주21 後唐之亡……天下定於晉 : 《舊五代史》 〈唐書 末帝紀〉에 의하면 “後唐 末帝 때에 契丹이 침입하자, 石敬瑭은 河東節度使招討가 되었다가 얼마 후에 鄆州節度使가 되었더니, 결국은 배반하여 북쪽으로 契丹과 우호관계를 맺었다. 契丹이 後唐의 將領 張敬達과 太原에서 싸움을 벌였는데, 後唐의 王師가 패전하였다. 뒤에 楊光遠이 張敬達을 죽인 다음 군사를 거느리고 契丹에 투항하니, 契丹王이 漢軍과 아울러 石敬瑭에게 지급하고 그를 세워 大晉皇帝로 삼았다.”고 한다.
역주22 匈奴 : 여기서는 契丹을 가리키니, 契丹이 옛날 匈奴의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역주23 張達 : 後唐의 太原行營招討使였던 張敬達을 가리킨다.
역주24 匈奴之禍……天下定於漢 : 《舊五代史》 〈漢書 高帝紀〉에 의하면 “後晉 末帝 때에 契丹이 대군을 이끌고 남침하여 汴京에 들어와서 晉을 大遼로 고쳤으며, 後漢의 高祖(劉知遠)가 군사를 일으켜 汾‧汴‧洛 등을 병합하였다.”고 한다.
역주25 周高祖 : 곧 郭威인데, 後漢 때에 鄴都留守가 되어 隱帝(劉承祐)를 죽이고 湘陽公(劉贇)을 맞아 임금으로 앉혔으며, 契丹이 침입하자 太后가 郭威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적을 맞게 하였는데, 그는 澶州에 이르러서 곧 자립하여 帝가 되었다.
역주26 驅除之勞 : 匈奴가 길이 휘몰아 남침하여 後唐의 王師를 패배시킨 공로를 가리킨다.
역주27 唐奪晉高祖之權而亡 : 《舊五代史》 〈唐書 末帝紀〉에 의하면 “後唐의 末帝가 河東節度使 石敬瑭이 다른 뜻을 품은 것을 의심하고 그를 옮겨 鄆州節度使로 삼으려고 하였으나 石敬瑭이 詔令을 받들지 않자, 결국 詔旨를 내려 그의 官爵을 削奪하고 張敬達에게 명하여 晉陽을 포위하게 하였다. 그러자 石敬瑭이 북쪽으로 契丹과 우호관계를 맺으니, 後唐이 드디어 망하였다.”고 한다.
역주28 晉絶匈奴之和親而滅 : 石敬瑭이 大晉皇帝가 되어 契丹主를 父皇帝로 받들고 자기를 兒皇帝라 칭하였다. 少帝(五代 後晉의 出帝 石重貴)가 契丹의 승인 없이 마음대로 왕위를 계승하자(혹은 後晉의 大臣 景延이 契丹의 사신을 모욕하였기 때문에), 契丹이 怒하여 대군을 거느리고 남침하였으므로 少帝는 결국 契丹에게 사로잡혀 荒凉한 땅에서 늙었다고 한다.
역주29 漢誅楊邠史肇 而周人不服 : 《舊五代史》 〈周書 太祖紀〉에 의하면 “後漢 隱帝가 郭威의 배반을 의심하니 群小輩가 史弘肇와 楊邠을 죽였고, 아울러 密詔를 내려 郭威와 王殷을 죽였다. 그러자 郭威의 부하가 南下하여 원한을 씻을 것을 청하였으므로 隱帝가 劉子陂에 진을 치고 양쪽 군사가 對陣하였는데, 郭威의 北軍이 승리하였다. 뒤에 그 부하가 後周 太祖에게 굳이 청하였기 때문에 자립하여 帝가 되니, 後漢이 망하였다.”고 한다. 楊邠‧史弘肇 및 後周 太祖(郭威)는 다 같이 顧命大臣으로서 後漢에 治國과 戎戰의 공이 많이 있었다.
역주30 史肇 : 곧 史弘肇를 가리킨다.
역주31 昔者……重耳不敢入 : 《春秋左氏傳》 僖公 4년‧9년에 ‘晉 獻公이 驪姬를 後室로 삼아 그녀에게서 奚齊를 낳고, 그녀의 여동생에게서 卓子를 낳았다. 驪姬가 장차 奚齊를 太子로 세우려고 中大夫들과 모의했다. 그리고 驪姬는 獻公에게 참소하여 前室 齊姜의 소생인 太子 申生을 죽였고, 또 참소하여 전실 소생인 重耳‧夷吾 두 公子를 해치자, 重耳는 蒲 땅으로 도망가고 夷吾는 屈 땅으로 달아났는데, 獻公이 사람을 보내 蒲 땅을 쳤으므로 重耳는 다시 翟 땅으로 달아났다. 晉나라의 大夫 里克과 丕鄭은 重耳가 귀국하면 당연히 임금이 될 것이라 상각하여 申生‧重耳‧夷吾 세 公子에게 가담한 무리들을 선동해서 모반을 꾀하고 奚齊와 卓子를 죽였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32 : 여기서는 弔民伐罪의 뜻이다. 곧 백성을 慰撫하고 죄 있는 사람을 討伐함을 가리킨다.
역주33 秦伯使公子縶往弔……亦不敢當也 : 《國語》 〈晉語〉에 “〈重耳가 장기간 망명생활을 하다가 최후에 秦나라에 도착하자〉 秦 穆公이 은근히 重耳를 도와 귀국시켜 周 天子를 보좌하여 功業을 세우게 할 의사를 표시하니, 重耳는 머리를 조아리고 감격을 표시하였다. 그래서 秦 穆公은 派兵하여 重耳를 감싸서 晉나라로 돌려보냈고, 아울러 公子 縶을 晉나라에 파견하여 重耳의 입국을 지지한다는 표시를 하였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蘇轍의 말과는 약간의 출입이 있다.
역주34 至於夷吾……不復其國 : 《春秋左氏傳》 僖公 9년에는 대략 “里克이 卓子를 죽인 뒤에 晉 大夫 郤芮가 夷吾에게 秦나라에 후한 뇌물을 바치고 晉나라에 들어가서 君主가 되도록 권하니, 夷吾는 里克‧丕鄭‧秦나라‧齊나라의 도움을 받아 晉나라에 들어가 惠公이 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春秋左氏傳》 僖公 15년에는 “惠公은 국내의 大夫들에게 자기가 국내에 들어가면 뇌물을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그것을 모두 배반하고, 秦나라 임금에게는 자기가 晉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도와주면 河南의 다섯 城과 기타 동쪽으로는 虢나라의 국경에까지, 남쪽으로는 華山에까지, 河內‧河北으로는 解梁 지방까지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이것도 다 주지 않았다. 그리고 晉나라가 흉년이 들자 秦나라에서는 곡식을 보내주었는데, 반대로 秦나라가 흉년이 들었으나 晉나라에서는 곡식을 보내주지 않았다.”라고 하였고, 또한 “惠公은 즉위한 뒤에 먼저 里克을 협박하여 자살하게 하고, 뒤에 또 丕鄭을 죽였으며, 얼마 후에는 秦나라의 飢饉을 틈타서 군사를 내어 秦나라를 공격하였다.”고 한다.
역주35 文公徐起而收之……旣反而霸於諸侯 : 《春秋左氏傳》 僖公 23년에 대략 “重耳가 국외에서 19년간 망명생활을 할 때에는 狐偃‧趙衰‧顚頡‧魏武子‧司空季子 같은 賢臣이 따라다녔고, 重耳를 지지한 나라는 秦나라 외에 楚나라도 있었다.
楚王이 일찍이 重耳에게 묻기를 ‘귀국하여 군왕이 되면 무엇으로 楚나라에 보답하겠는가?’라고 하니, 重耳는 무슨 물건을 주겠다는 응답은 전연 하지 않고, 다만 ‘만약 임금의 은혜로 내가 晉나라로 들어가서 왕이 된 뒤에 불행하게도 우리 晉나라와 귀하의 楚나라가 군사를 거느리고 中原에서 싸우게 된다면 나는 임금님과 싸움을 피하여 90리를 후퇴하겠습니다. 그래도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경우는 왼손으로는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활통을 가지고 달리면서 결전할 각오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子玉(成得臣)이 重耳를 죽이자고 말했으나 楚王은 말하기를 ‘晉 公子는 도량이 넓고 검소하며 꾸밈은 있으나 예의가 분명하며, 그 從者들도 엄숙하고 관대하며 충성스럽고 능력이 있다. 이와 반대로 晉 惠公은 친한 자가 없고 국내외에서 모두 그를 미워하고 있다. 내가 듣건대, 姬姓을 가진 諸侯 중에 唐叔의 후손국인 晉나라가 최후까지 남는다고 했다. 이는 바야흐로 晉 公子 重耳에 의해서 晉나라가 흥기한다는 것이리라. 하늘이 重耳를 도와 晉나라를 일으키려고 하는데, 누가 그것을 망치겠는가? 하늘을 거스르면 반드시 큰 재앙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고서 重耳를 秦나라로 보냈고, 秦나라에서는 重耳를 감싸서 귀국시켰다.”라는 내용이 있다.
重耳가 바로 晉 文公인데, 그는 귀국한 뒤에 예의로 백성을 교화하여 晉나라가 크게 다스려졌고, 드디어 春秋五霸의 하나가 되었다.
역주36 劉季 : 漢 高祖 劉邦(B.C. 256~B.C. 195)이다. 그의 字가 季인데, 秦나라의 말기 沛縣 豐邑 사람이다.
역주37 : 여기서는 函谷關을 가리킨다. 秦나라의 도읍이 函谷關 안의 咸陽에 있었기 때문이다.
역주38 子嬰 : 秦 始皇의 맏아들인 扶蘇의 아들이다. 趙高가 二世를 죽이고 子嬰(?~B.C. 206)을 세운 다음 帝號를 제거하고 王이라 칭하였는데, 재위 기간은 46일이었다.
역주39 諸侯 : 여기서는 秦나라 말기에 起義한 群雄을 가리킨다. 諸侯는 범연하게 칭한 것이고 실제 意義는 없는 것이다.
역주40 其後……而諸將不與也 : 秦 二世 원년(B.C. 209)에 劉邦이 군사를 沛 땅에서 일으켰기 때문에 그를 沛公이라 부른다. 그는 楚 懷王 熊心(義帝)의 명을 받아 군사를 거느리고 函谷關에 들어가서 秦나라 장수 楊熊을 크게 깨뜨려 宛과 西部 여러 지방을 항복시키고 드디어 諸侯들보다 먼저 霸上에 이르니 “秦王이 素車에 白馬를 타고 목을 끈으로 묶은 채 皇帝의 옥새와 符節을 봉함해 가지고 軹道 곁에서 항복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義帝는 여러 장수들과 “먼저 咸陽에 들어간 자가 王이 된다.”고 약속하였다. 劉邦이 函谷關에 들어간 데에는 비록 張良과 酈食其 등의 계략이 작용하였으나 다만 여러 武將 중에 項羽와 韓信 등은 참여하지 않았다. 義帝의 약속대로라면 沛公이 응당 關中의 王일 것이다. 다만 項羽가 函谷關에 들어온 뒤에 劉邦을 봉하여 漢王으로 삼았을 뿐이다. 《史記》 〈高祖本紀〉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41 至追項籍於固陵……背叛而不可制 : 《史記》 〈高祖本紀〉에 의하면 “項羽가 軍陣을 풀고 동쪽으로 돌아가므로 漢王은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張良과 陳平의 계략을 써서 군사를 내어 項羽를 추격하여 陽河 남쪽에 이르러 군사를 멈추고 齊王 韓信, 建成侯 彭越과 모여서 楚나라 군사를 치기로 약속하였는데, 固陵에 이르렀으나 모이지 않았다. 이때 楚나라가 漢나라 군사를 쳐서 크게 깨뜨렸다.”고 한다.
또한 《史記》 〈項羽本紀〉에 의하면 “高祖가 使者를 보내 韓信과 彭越에게 알리기를 ‘힘을 합해 楚나라를 쳐서 楚나라가 파멸되면 陳나라 이동에서부터 바다까지는 齊王에게 주고, 淮陽 이북에서 각 城에 이르기까지는 彭相國에게 주겠다.’고 하였다. 使者가 이르니, 韓信과 彭越이 모두 보고하기를 ‘오늘 군사를 출발하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또한 《史記》의 〈淮陰侯列傳〉과 〈魏豹彭越列傳〉에 의하면 “項羽를 패멸시킨 뒤에 韓信은 楚王에 봉해졌는데, 모반한다고 고발한 사람이 있어서 淮陰侯로 강등되었다가 최후에 呂后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彭越은 梁王에 봉해졌으나 모반한다고 고발당하여 三族이 멸하였다.”고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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