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한東漢之亡以宦官이요 而충제沖질제質以後엔 由여후女后稱制라
자유子由以之咎광무光武不任大臣所致는 似亦太過나 然이나 其論亦正하니 姑錄而識之니라
고제高帝擧天下後世之重하여 屬之大臣하고 大臣亦盡其心力하여 以報之니라
當是時
에 大臣權任之盛
은 하고 하니 則
고제高帝之用人
이 其重如此
니라
무제武帝之老也에 將立少主어늘 知非大臣不可하고 乃委任곽광霍光하니 곽광霍光之權이 在諸臣右니라
至於선제宣帝하여는 雖明察有餘나 而性本忌刻하니 非장안세張安世之謹畏와 진만년陳萬年之順從이면 鮮有能容者니라
惡양운楊惲합관요蓋寬饒하고 害조광한趙廣漢한연수韓延壽하며 悍然無惻怛之意하니 高才之士 側足而履其朝니라
故
로 왕망莽以
로 濟之以欺罔
이나 而世無一人 敢指其非者
니라
광무제光武之興엔 雖문무文武之略이 足以鼓舞一世나 而不知用人之長하여 以濟其所不足이니라
두헌竇憲兄弟恣橫하여 殺도향후都鄕侯유창暢於조중朝하고 事發에 請擊흉노匈奴以自贖이니라
及其成功하여는 又欲立북선우北單于하여 以植恩固位하니라
及其末流
하여는 양기梁冀之害重
하니 天下不能容
하여 하고 하니라
外兵旣入에 而동한東漢之祚盡矣니 蓋광무제光武不任大臣之禍 勢極於此니라
夫人君은 不能皆賢이니 君有不能而屬之大臣이 朝廷之正也니라
歷觀古今컨대 大臣任事而禍至於不測者는 必有故也니라
今畏忌大臣하여 而使他人得乘其隙하니 不在外戚이면 必在宦官이니라
外戚宦官更相屠滅하여 至以外兵繼之하니 嗚呼殆哉로다
동한東漢의 멸망은 환관宦官 때문이었고, 충제沖帝‧질제質帝 이후에는 여후女后가 천자天子의 일을 대행한 데서 연유하였다.
그러므로 화禍를 쌓고 난亂을 기른 것이 이에 이르렀다.
자유子由가 ‘광무光武가 대신大臣에게 맡기지 않은 소치’라고 나무란 것은 너무 과도한 것 같지만, 그 논論 또한 올바르니, 우선 기록해둔다.
고제高帝는 천하天下 후세後世의 중책을 모두 대신大臣에게 맡겼고, 대신大臣 또한 심력心力을 다하여 보답하였다.
그러므로 여씨呂氏의 난亂에는 진평陳平과 주발周勃이 힘을 써서 여산呂産과 여록呂祿을 주살誅殺하고 문제文帝를 세우기를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이 쉽게 하였다.
이때에 대신大臣이 마냥 권한을 부리는 것은 그 유풍遺風이 서로 전하였고, 신도가申屠嘉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등통鄧通을 불러다가 욕을 보이고 조조鼂錯를 참수하자고 의논하였으나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는 뜻을 거역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으니, 고제高帝의 사람 씀이 그 중요도가 이와 같았던 것이다.
경제景帝와 무제武帝 이후에는 그와 같은 풍조가 쇠퇴하였다.
대신大臣이 임면권任免權을 행사하는 대상은 겨우 노예奴隷 같은 정도였다.
무제武帝가 늙음에 장차 어린 임금을 세워야 되겠거늘, 대신大臣이 아니면 불가不可할 줄 알고 이에 곽광霍光에게 위임하니 곽광霍光의 권세가 여러 신하의 위에 놓였다.
그러므로 능히 소제昭帝를 보필하고 선제宣帝를 세우니, 천하天下에서 감히 이의異議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선제宣帝로 말하면 비록 명찰력明察力은 남아났지만 성질이 본래 투기妬忌하고 각박刻薄하였으니, 장안세張安世처럼 근외謹畏한 사람과 진만년陳萬年처럼 순종順從한 사람이 아니라면 용납될 수 있는 자가 적었다.
양운楊惲과 합관요蓋寬饒를 미워하고 조광한趙廣漢과 한연수韓延壽를 살해하는 등 워낙 사나워서 측은해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니, 높은 재주를 가진 선비들이 두려워서 감히 바로 서지 못한 채 조정에 있는 형편이었다.
점점 쇠미衰微해져 원제元帝와 성제成帝 때에 와서는 조정에 중신重臣이 없어 왕씨王氏의 화禍를 양성하였다.
그러므로 왕망王莽이 하찮은 재식才識을 가지고 기망欺罔으로 다스렸지만, 세상에서 한 사람도 감히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 없었다.
광무제光武帝가 일어남엔 비록 문무文武의 지략智略이 족히 한 세상을 고무鼓舞하였지만, 남의 장점을 써서 자기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줄을 몰랐다.
다행히 자손子孫들이 모두 어질어서 권한이 군주君主에게 있었다.
화제和帝에 와서는 아직 유소幼少하여 두태후竇太后가 국정國政을 천단하였다.
두헌竇憲 형제가 마음대로 횡포를 부려 도향후都鄕侯 유창劉暢을 조중朝中에서 죽이고 일이 발각되자 흉노匈奴를 쳐서 스스로 속사贖死하기를 청하였다.
그 일이 성공함에 미쳐서는 또 북선우北單于를 세워서 은혜를 심어 지위를 굳게 하려고 하였다.
원안袁安과 임외任隗는 다 삼공三公으로서 정의를 지키고 힘써 간쟁諫諍하였으나 뜻을 이룰 수 없었는데, 다행히도 두헌竇憲이 역모逆謀로써 패하였다.
대개 광무제光武帝가 대신大臣에게 맡기지 않은 누적된 병폐가 여기서 나타난 것이다.
그 뒤 한漢나라는 날마다 쇠衰하여 급기야 염현閻顯을 주살誅殺하고 순제順帝를 황제로 세움은 그 공功이 환관宦官에게서 나왔고, 청하왕淸河王을 내쫓고 이고李固를 죽임은 그 일이 외척外戚에게서 이루어졌으며, 대신大臣은 모두 참여한 바가 없었다.
그 말류末流에 미쳐서는 양기梁冀의 해害가 심중하자, 천하天下가 수용할 수 없어서 다시 환관宦官의 힘을 빌어서 제거하였고, 환관宦官의 해害가 극심하자 천하天下가 견딜 수 없어서 외병外兵을 불러서 제거하기까지 하였다.
외병外兵이 이미 들어옴에 동한東漢의 운수가 다하였으니, 대개 광무제光武帝가 대신大臣에게 맡기지 않은 화禍의 위험한 세태勢態가 여기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 것이다.
대개 군주君主들은 다 어질 수는 없으니, 군주君主에게 유능한 점이 없으면 대신大臣에게 맡기는 것이 조정朝廷의 정도正道이다.
일이 정도正道에서 나오면 성공은 많고 실패는 적다.
고금古今을 내리 보건대, 대신大臣이 일을 맡아 화禍가 예상치 못한 지경에 이른 경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지금 대신大臣을 두려워하고 꺼려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틈을 타게 하니, 외척外戚에 있지 않으면 반드시 환관宦官에게 있다.
외척外戚과 환관宦官이 번갈아 서로 도멸屠滅하기 때문에 외병外兵을 가지고 잇따르기까지 하니, 아! 위태롭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