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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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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우경
游說之士 皆歷詆諸하여 以左右罔其利 獨虞卿 始終事趙하여 專持從說이니라
유세객游說客들은 모두 제후諸侯정치설政治說을 내리 비난하면서 좌우로 제후들을 조종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취하였지만, 우경虞卿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를 섬기며 오로지 합종설合從說만을 굳게 유지하였다.
其言前後可考 無翻覆之病이니라
그가 주장하던 말의 전후를 상고해보니, 번복한 병폐가 없었다.
此固義俠之士 非說客也哉인저
그가 위제魏齊의 위급을 구하러 달려갔을 때 승상丞相의 인장을 팽개치고 만호후萬戶侯의 지위를 버리되 조금도 연연하지 않은 것을 보면, 우경虞卿은 본래 의협사義俠士이지, 일반 유세객遊說客은 아니었다.
이나 太史公記虞卿與趙謀事 而卿爲魏齊하여 棄相印走大梁 則前此矣니라
그러나 태사공太史公이 기재한 ‘우경虞卿나라와 모사한 것’은 모두 나라가 장평長平에서 〈나라를〉 격파한 뒤의 일이고, 우경虞卿위제魏齊를 위하여 승상丞相의 인장을 버리고 대량大梁으로 도주한 것은 장평長平의 전쟁이 있기 전 일이다.
意者컨대 魏齊死 卿自梁還하여 復相趙언만 而太史公失不言之耳니라
생각건대, 위제魏齊가 죽은 뒤에 우경虞卿대량大梁에서 돌아와서 다시 나라의 승상이 되었는데, 태사공太史公이 그 일을 빼고 말하지 않았을 뿐인 듯하다.
역주
역주1 虞卿 : 虞卿은 虞慶이라고도 하는데, 《史記》 〈平原君虞卿列傳〉에 “虞卿은 遊說하는 사람이다. 趙 孝成王에게 유세를 펼칠 때에, 한 번 만나자 黃金 100鎰과 白璧 1雙을 하사받고, 두 번 만나자 趙나라 上卿이 되었다. 그러므로 ‘虞卿’이라 불렸다.”고 하였다.
그는 사정을 잘 헤아려서 趙나라를 主壁(盟主)으로 삼고 合縱하여 秦나라에 항거할 것을 주장하였다. 長平의 戰爭이 있기 전에는 楚나라‧魏나라를 연합해서 秦나라를 압박하여 강화하게 하였고, 邯鄲의 포위가 풀린 뒤에는 땅을 떼어 秦나라에 주는 것을 반대하였다. 뒤에 魏齊와 함께 趙나라에 가서 大梁에 갇히는 곤욕을 겪었다. 저서로는 《虞卿春秋》를 남겼는데 지금 실전되었다.
이 글은 《古史》 卷54 〈虞卿魯仲連列傳 제31〉에서 篇目으로 취한 것이다.
역주2 : 四庫全書의 《唐宋八大家文鈔》에는 ‘說’로 되어 있다.
역주3 觀其赴魏齊之急 捐相印棄萬戶侯而不顧 : 《史記》 〈范睢列傳〉에 의하면 “魏齊가 魏나라 丞相으로 있을 때에 范睢에게 심하게 매를 때려 거의 죽게 하였다. 뒤에 范睢는 秦나라의 丞相이 되고 應侯에 봉해졌는데, 秦나라의 강대한 세력을 믿고 魏나라에게 ‘魏齊의 목을 베어 보내라.’고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魏齊는 趙나라로 도망하여 平原君(趙勝)의 집에 숨어 있었다.
秦王이 또 趙王에게 ‘魏齊를 찾아 보내라.’고 하니, 趙王은 겁이 나서 魏齊를 체포하려고 하였다. 魏齊는 밤새도록 도망쳐 虞卿을 찾아갔다. 虞卿은 趙王을 설득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고는 丞相의 인장과 萬戶侯의 지위를 버리고 魏齊와 샛길로 도주하여 信陵君(無忌)을 찾아갔으나 信陵君이 만나주지 않으려고 하자, 魏齊는 부끄럽고 분해서 자살하였다. 虞卿은 이로 인하여 大梁에서 곤욕을 당했다.”고 한다.
역주4 秦破長平 : B.C. 260년에 秦나라 장수 白起가 趙나라 장수 趙括을 대파하고 趙나라의 降卒 40만 명을 長平에서 묻어 죽인 일을 가리킨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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