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中之士爲兵하고 鄙野之民爲農하니 農不知戰하고 而士不知稼하여 各治其事而食其力이니이다
發兵征行하여 暴露戰鬪나 而農夫不知其勤하고 深耕疾耨하고 霑體塗足이나 而士卒不知其勞니이다
當是之時
에 하며 北伐
산융山戎하여 영지零(令)
영지支斬
고죽孤竹하며 西攘
백적白狄하고 逾
태항산太行하고 渡
벽이산辟耳之溪
하여 九合諸侯
하며 築
이의夷儀하고 방성城초구楚丘하고 徜徉四
방성方하니 國無罷弊之民
하고 而天下諸侯 往來應接之不暇
니이다
及진秦효공孝公하여 欲幷海內하니 상앙商鞅爲之倡謀니이다
使진秦人莫不執兵以事戰伐하여 而不得反顧而爲農하고 陰誘六國之民하여 使專力以耕관중關中之田하고 而無戰攻守禦之役이니이다
何者잇가 我能累累出兵不息이나 而彼不能應하고 我能外戰而內不乏食이나 而彼必不戰而後에 食可足이니이다
自관중管仲死로 其遺謀舊策을 後世無復能用하고 而獨其分兵與民之法은 遂至於今不廢니이다
今夫使農夫竭力以闢天下之地하고 醵其所得以衣食天下之武士하여 而免其死亡戰鬪之患이면 此人之情이어늘 誰不可者리잇가
然이나 當今天下之事는 與관중管仲상앙商鞅之時면 則已大異矣니이다
古者엔 霸王在上하여 倉廩豐實하고 百姓富足하니 地利已盡이나 而民未乏困이라 當此之時엔 謂之人有餘니이다
今天下之田은 疾耕不能徧하여 而蓬蒿藜莠 實盡其利니 人不得以爲食이요 而禽獸之所蕃息이라 當是之時엔 謂之地有餘니이다
是以로 天下之地 雖其甚寬이나 而擧無遺力이니이다
今也海內之田이 病於有餘어늘 而上之人이 務在於使人하니 不已過哉잇가
臣觀경사京師之兵은 不下數十百萬이요 沿邊大郡은 不下數萬人이요 天下郡縣은 千人爲輩요 而강회江淮漕運之卒은 不可勝計니 此亦已侈於使人矣니이다
且夫人不足이나 而使人之制는 不爲少減하니 是謂逆天而違人이니이다
方今天下之地
에 所當厚兵之處
는 不過
경사京師與
耳
니이다
昔者태조太祖태종太宗이 旣平天下에 四方遠國은 或數千里니 以爲遠人險詖하여 未可以盡知其情也라하나이다
故로 使관중關中之士로 往而屯焉하여 以鎭服其亂心이니이다
及天下旣安엔 四海一家언만 而因循久遠하여 遂莫之變이니이다
夫天下之兵은 莫如各居其鄕하여 安其水土하고 而習其險易나 而特病其不知戰이니이다
故로 今世之患은 患在不敎鄕兵이언만 而專任屯戍之士하여 爲抗賊之備니이다
且天下治平은 非沿邊之郡이면 則山林匹夫之盜니 及其未集而誅之면 可以無事於大兵이니이다
苟其有大盜면 則其爲變故는 亦非戍兵數百千人之所能制니이다
若其要塞之地는 不可無備之處니 乃當厚其土兵以代之耳니이다
聞之컨대 古者良將之用兵은 不求其多요 而求其樂戰이라하나이다
或者饑饉困躓不能以自存이요 而或者年少無賴 旣入而不能以自脱이니
雖使去者太半이라도 臣以爲處者 猶可以足於事也니이다
蓋古者有餘면 則使之以寬하고 而不足이면 則使之以約이니이다
苟必待其有餘而後
에 能辦天下之事
면 則無爲貴智矣
니이다
당형천唐荊川曰 首尾俱是戍兵하고 中間咤出土兵一段하니 甚是跌宕이니라
若使他人爲之면 則必說了罷戍兵而後에 言土兵之可用이니 則便成格眼套子矣니라
04. 백성을 위하는 정치에 대한 책문策文 4
병兵과 민民의 구분을 상세하게 하고, 둔수屯戍하는 병졸을 없애거나 감축할 것을 주장하였다.
관자管子(管仲)가 제齊나라를 다스릴 때에 비로소 주周나라의 법法을 변경하여 군사와 농민이 따로 살게 하였고, 국도國都의 행정구역을 제정하여 21향鄕으로 만드니, 공工‧상商의 향鄕이 6개요, 사士의 향鄕이 15개였습니다.
지방의 행정구역을 제정하여 5속屬으로 만들고 5명의 대부大夫를 세워서 각각 1속屬의 정사를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국중國中의 사士는 병兵이 되고, 비야鄙野의 민民은 농부農夫가 되었으니, 농부는 전쟁이란 것을 모르고 군사는 농사라는 것을 모르고서 각각 맡은 일에 힘을 기울여 먹고살았습니다.
군사는 농부를 보호하고 농부는 군사를 도왔습니다.
군사는 출정하여 한데서 몸을 드러내 전투를 하지만 농부는 군사의 노고를 알지 못하였고, 농부는 밭을 갈고 김을 매느라 전신이 땀에 젖고 발이 흙투성이지만 군사는 농부의 노고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때에 환공桓公은 남쪽 정벌에 나서 초楚나라를 치고는 여수汝水를 건너고 방성方城을 넘어서 문산汶山에 망제望祭를 지냈으며, 북쪽으로 산융山戎을 정벌하여 영지零支를 격퇴하고 고죽孤竹을 쳤으며, 서쪽으로 백적白狄의 땅을 빼앗은 다음 태항산太行山을 넘고 벽이산辟耳山의 시내를 건너서 제후들을 규합하였으며, 이의夷儀에 성을 쌓고 초구楚丘에 성을 쌓는 등 사방을 자유자재로 경영하니, 나라에는 파폐罷弊된 백성이 없고, 천하의 제후들은 왕래하고 응접하기 바빴습니다.
진秦 효공孝公 대에 와서 해내海內를 겸병하려고 하니 상앙商鞅이 그것을 위하여 모책謀策을 창출하였습니다.
진秦나라 사람들은 모두 무기를 가지고 전벌戰伐을 일삼음으로써 본업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을 수 없게 하였고, 6국國의 백성들을 몰래 끌어들여 관중關中의 전지田地 경작에만 전력하게 하고 전공戰攻과 수어守禦하는 일은 시키지 않았습니다.
두 가지 경우는 서로 이용을 당하였으나 천하 사람들은 끝내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주 출병하느라 쉬지 못하지만 저들은 응전하지 않았고, 우리는 밖에서 싸워야 안에서 식량이 부족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저들은 반드시 싸우지 않아야 식량이 풍족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관중管仲과 상앙商鞅이 깊이 연구해낸 모책謀策입니다.
관중管仲이 죽은 뒤로 그가 남긴 예전의 모책謀策을 후세에서 다시 사용하지 않았지만, 군사와 농민을 구분하는 법만은 지금까지 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이 참으로 천하에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농부로 하여금 힘을 다하여 천하의 땅을 개간하게 하고, 그들의 소득에서 세금을 거두어 천하의 무사武士에게 옷을 입히고 밥을 먹여서 전투에서 사망할 걱정을 면하게 한다면, 이것은 인지상정이거늘 누가 불가한 일이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현재 천하의 일은 관중管仲과 상앙商鞅의 시대에 비하면 이미 크게 다릅니다.
옛날에는 패왕霸王이 위에서 정치를 잘하여 창름倉廩이 풍실豐實하고 백성百姓이 부족富足하였으므로 지기地氣가 이미 다했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핍곤乏困하지 않았으니, 이때에는 인력이 남아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천하의 토지를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하더라도 토지 전체를 갈 수 없어 잡초가 지기地氣를 다 빼먹으니, 사람은 〈곡식을 거두어〉 먹을 수 없고 날짐승과 길짐승의 번식장소가 되어버렸으니, 이때에는 땅이 남아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성인聖人의 경우는 인력이 남아돌면 사람을 부리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러므로 천하의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 인력을 모두 써서 그 공을 폐기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땅이 남아돌면 땅을 개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러므로 천하의 땅이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그 땅을 모두 개간하여 그 힘을 버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해내海內의 전토田土가 남아도는 것이 걱정인데, 윗사람은 오직 사람을 부리는 일에만 힘을 쓰고 있으니, 너무 잘못하는 일이 아닙니까?
신臣이 살펴보건대, 경사京師의 군사는 수십만 명이나 수백만 명이 안 되지 않고, 연변沿邊 대군大郡의 군사는 수만 명이 안 되지 않고, 천하 군현郡縣의 군사는 으레 천 명이 되고, 강회江淮 일대에서 조운漕運하는 군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이 또한 사람을 부리는 일이 이미 정도를 넘어선 것입니다.
인력은 부족한데 사람을 부리는 제도는 조금도 감소되지 않았으니, 이는 하늘을 거역하고 사람을 어기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제齊 환공桓公의 세대에는 인력이 남아돈다고 할 수 있겠으나, 15향鄕의 군사는 3만 명에 불과하고 병거兵車는 8백 대에 불과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적었는가 하면, 오래 유지할 수 없을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천하의 국토 중에 마땅히 군사를 많이 배치해야 할 곳은 경사京師 및 서변西邊과 북변北邊의 군현郡縣일 뿐입니다.
옛날 태조太祖와 태종太宗께서 이미 천하를 평정함에 사방의 먼 나라는 혹은 수천 리가 되었기 때문에, ‘먼 나라 사람은 음험陰險하고 사악邪惡하여 그 정상을 다 알 수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관중關中의 군사로 하여금 가서 주둔하여 반란을 일으키려는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복종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는 사해四海가 모두 한 집안이 되었건만, 오래도록 구습舊習을 지키고 변경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천하의 군사로 말하면 각각 그 고향에 살면서 수토水土에 안정되어 있고 험한 곳과 평탄한 곳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만 같은 자가 없는데, 다만 그들이 전술을 모르는 것이 병통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세상의 걱정거리는 바로 향병鄕兵을 교련시키지 않는 데 있는데도, 〈향병을 교련시키지 않고〉 오로지 둔수屯戍하는 군사에게 맡겨서 적을 막는 대비책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천하에서 다스려야 할 대상은 연변沿邊의 군현郡縣이 아니면 곧 산림山林 필부匹夫의 소소한 도적이니, 그들이 아직 집단을 이루기 전에 베어버린다면 큰 병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큰 도적이 발생한다면 그 변고는 수병戍兵 수백 명이나 수천 명으로는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 요새지要塞地와 같은 경우는 방비가 없어서는 안 될 곳이니, 마땅히 그 토병土兵을 증원하여 수병戍兵을 대신해야 할 것입니다.
듣건대 “옛날 훌륭한 장수의 용병술은 많은 숫자를 요구하지 않고 전쟁을 즐기는 병사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지금 병사가 된 사람은 어찌 모두 병사가 된 것을 즐기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기근饑饉에 시달려 스스로 보존할 수 없는 형편이고, 어떤 사람은 연소하고 무뢰한인데 일단 군대에 들어와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입장입니다.
아마 그 사이에는 항상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臣은 돌아가기를 생각하는 그 군사를 돌려보냄으로써 둔수屯戍하는 군사를 감축시키고자 합니다.
비록 떠나가는 자가 태반이라 하더라도 신臣은 ‘남아 있는 자만 가지고도 오히려 일을 하는 데 족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개 옛날에는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부리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부렸습니다.
만약 반드시 넉넉해지기를 기다린 뒤에 천하의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지혜는 귀중한 가치를 잃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당형천唐荊川이 말하기를 “수미首尾에서는 모두 수병戍兵 문제를 다루고, 중간에서는 토병土兵 문제 1단段을 끄집어냈으니, 문장이 몹시 질탕跌宕하다.
만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 문제를 다루게 했다면 반드시 수병戍兵을 없애는 문제를 말하고 나서 토병土兵을 쓸 수 있는 문제를 말했을 것이니, 이렇게 한다면 상투적인 문장 격식을 이루는 데 불과할 뿐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