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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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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경(詩經)》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詩歌) 총집이다. 옛날에는 《시(詩)》라고만 하였다. 주(周)나라 초기부터 춘추(春秋) 초기까지 황하 중류 지방의 시 305편을 수록하였다. 국풍(國風)·소아(小雅)·대아(大雅)·송(頌) 등 4부로 이루어져 있다. 국풍은 여러 나라의 민요, 아(雅)는 공식 연회에서 사용한 의식가(儀式歌), 송은 종묘의 제사에서 쓰던 악시(樂詩)이다. 원래 사가(四家)의 주(注)가 전하였으나, 정현(鄭玄)이 모씨(毛氏)의 텍스트에 주해를 붙인 뒤 ‘모전(毛傳)’만 남았으며, 그때부터 《시》를 ‘모시(毛詩)’라고도 불렀다. 시편의 제목은 시구 가운데 한 단어를 골라 매겼다. 유교의 기본 경전으로, 오경(五經) 혹은 십삼경(十三經)의 하나가 되었다. 각 시편(詩篇)은 한시(漢詩)의 조형(祖型)으로, 본래 무용이나 악곡을 수반한 가요(歌謠)였을 것이다.
2. 편저자
미상(未詳). 각 시편의 작가 가운데는 민간인도 있고, 국중의 귀족, 제관들도 있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아(雅)와 송(頌)의 작가로 궁정시인 윤길보(尹吉甫)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현재로서는 시편의 작가를 일일이 고증하기 어렵다. 편찬과 관련하여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서는 ‘시를 채집하는 관원’이 채집한 시를 모은 것이라고 하였으나, 진위는 알 수 없다. 또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는 공자가 《시》를 산정(刪定)했다고 하였는데, 당나라 때 공영달(孔穎達)은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위(衛)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후에 음악이 바르게 되었고 아(雅)와 송(頌)이 각각 제자리를 찾았다.’”라고 하였으므로, 공자가 《시》의 편집에 간여(干與)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3. 서지사항

한(漢)나라 초기에 《시》를 논한 사람으로 노(魯)나라에 신배공(申培公), 제(齊)나라에는 원고생(轅固生), 연(燕)나라에 한영(韓嬰)이 있어 모두 《시》로 학관의 박사가 되었다. 이들 3가가 전한 《시》를 ‘삼가시(三家詩)’라고 하였으며, 모두 금문(今文)으로 쓰여 있었다. 그런데 전한 말에 모공(毛公)이 자하(子夏)로부터 유래한다는 고문(古文)의 《시》를 조정에 올렸으나, 학과목으로 개설되지는 않았다. 동한 말에 금문과 고문을 아울러 익힌 ‘경학대사(經學大師)’ 정현(鄭玄)이 고문의 《모전(毛傳)》을 위주로 《시》를 주석한 이후, 모형(毛亨)의 고문 《모시(毛詩)》가 널리 퍼졌다. 당나라 정관(貞觀) 때 공영달이 칙명을 받아 《모시정의(毛詩正義)》를 편찬함으로써, 모시서(毛詩序), 모전(毛傳), 정현의 전(箋), 공영달의 소(疏)가 일체로 된 ‘모정지학(毛鄭之學)’이 국가공인의 시경학으로 발전하였다. ‘모정지학’은 《시》의 시편을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했다. 한편 3가설 가운데 한시(韓詩)의 설은 《한시외전(韓詩外傳)》의 형태로 상당부분 남았으나, 나머지는 일부만 각종 문헌 속에 흩어져 전하다가 청나라 왕선겸(王先謙)의 《시삼가의집소(詩三家義集疏)》에 수집·정리되었다.
현재의 《시경》 텍스트는 대개 모정지학의 텍스트를 사용한다. 이 《시경》은 각지의 민요를 모은 풍(風), 귀족이나 조정의 공사(公事)·연석(宴席)에서 연주된 음악의 가사인 아(雅), 조정의 제사에 사용된 묘가(廟歌)의 가사인 송(頌)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풍은 〈주남(周南)〉·〈소남(召南)〉 25편, 〈패(邶)〉·〈용(鄘)〉·〈위(衛)〉 39편, 〈왕풍(王風)〉 10편, 〈정풍(鄭風)〉 21편, 〈제풍(齊風)〉 11편, 〈위풍(魏風)〉 7편, 〈당풍(唐風)〉 12편, 〈진풍(秦風)〉 10편, 〈진풍(陳風)〉 10편, 〈회풍(檜風)〉 2편, 〈조풍(曹風)〉 4편, 〈빈풍(豳風)〉 7편이다. 〈주남〉·〈소남〉은 종래에는 은나라 말기, 주나라 초기의 작이라고 여겨 왔으나, 주나라 선왕 때부터 춘추 초까지의 작품인 듯하다. 〈패〉·〈용〉·〈위〉는 모두 동주 때 위(衛)나라의 시이다. 〈빈풍〉은 주공(周公)(단(旦)) 때의 시라고 여겨 왔으나, 주나라 이왕(夷王)(희섭(姬燮))·여왕(厲王)(희호(姬胡)) 때 작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소아는 74편이 남아 있다. 제목만 있는 것까지 합치면 80편이다. 대아는 모두 31편이다. 소아와 대아는 주나라 때 사대부들이 지은 것으로, 서주의 수도 호경(鎬京)(현재의 서안(西安))과 동주의 수도 낙읍(洛邑)(현재의 낙양(洛陽))에서 이루어졌다. 송은 〈주송(周頌)〉·〈노송(魯頌)〉·〈상송(商頌)〉의 3부인데, 각각 31편, 4편, 5편(이름만 남은 것까지 합하면 12편)이다.
《시경》의 각 편은 1구 4언을 기조로 한다. 또 표현수법으로 부(賦)·비(比)·흥(興)을 사용하는데, 그 셋을 풍(風)·아(雅)·송(頌)의 양식 개념과 합하여 ‘육의(六義)’라고 한다. ‘부’는 직서법, ‘비’는 비유법, ‘흥’은 상상이나 연상법을 뜻한다. 그리고 《시》는 인물이나 사물의 묘사가 매우 생동적이면서 섬세하며, 언어의 대비와 반복, 첩자(疊字)·쌍성(雙聲)·첩운(疊韻)을 잘 사용하였다.

4. 내용

《시경》의 국풍(國風)은 앞서 서술한 15국 혹은 지역의 단가나 민요를 수록하였다. 아(雅)는 다시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로 나뉘는데, 〈소아〉는 〈녹명(鹿鳴)〉·〈남유가어(南有嘉魚)〉·〈홍안(鴻鴈)〉·〈절남산(節南山)〉·〈곡풍(谷風)〉·〈보전(甫田)〉·〈어조(魚藻)〉의 7십(什), 〈대아〉는 〈문왕(文王)〉·〈생민(生民)〉·〈탕(蕩)〉의 3십(什)으로 구성되어 있다. 송(頌)은 〈주(周)〉·〈노(魯)〉·〈상(商)〉의 3십(什)으로 나뉘는데, 〈상송(商頌)〉은 은(殷) 왕실의 제사를 계승한 송(宋)의 묘가(廟歌)인 듯하다.
국풍의 첫 작품 〈관저(關雎)〉, 소아의 첫 작품 〈녹명(鹿鳴)〉, 대아의 첫 작품 〈문왕(文王)〉, 주송(周頌)의 첫 작품 〈청묘(淸廟)〉, 이 넷을 ‘사시(四始)’라고 한다. 첫째 것을 중요시하는 관념에서 나온 명명법이다.
시편의 내용과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그 중요한 것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지배계급의 수탈과 부패, 강제노동과 불합리한 정역(征役) 등을 묘사하고 풍자한 내용이 많아서, ‘사회시’의 전통을 열었다. 국풍의 〈벌단(伐檀)〉·〈석서(碩鼠)〉·〈척호(陟岵)〉(이상 〈위풍(魏風)〉), 〈식미(式微)·〈격고(擊鼓)〉(〈패풍(邶風)〉), 〈토원(兎爰)〉(〈왕풍(王風)〉), 〈보우(鴇羽)〉(〈당풍(唐風)〉), 소아의 〈황조(黃鳥)〉·〈하초불황(何草不黃)〉·〈채미(采薇)〉가 대표적이다.
② 어떤 시편은 청춘남녀의 사랑, 짝사랑, 신혼생활의 달콤함, 버림받은 여인의 원한 등을 토로하였다. 이 가운데 남녀 간 사랑노래는 군신 사이의 관계를 비유한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관저(關雎)〉·〈도요(桃夭)〉(이상 〈주남(周南)〉), 〈야유사균(野有死麕)〉(〈소남(召南)〉), 〈출기동문(出其東門)〉·〈장중자(將仲子)〉·〈준대로(遵大路)〉·〈여왈계명(女曰鷄鳴)〉·〈교동(狡童)〉·〈건상(褰裳)〉·〈풍우(風雨)〉·〈자금(子衿)〉·〈야유만초(野有蔓草)〉(이상 〈정풍(鄭風)〉), 〈곡풍(谷風)〉(패풍(邶風)), 〈백주(柏舟)〉·〈맹(氓)〉·〈백혜(伯兮)〉(〈용풍(鄘風)〉), 〈목과(木瓜)〉(〈위풍(衛風)〉), 〈대거(大車)〉(〈왕풍(王風)〉), 〈주무(綢繆)〉(〈당풍(唐風)〉) 등이 그 예이다.
③ 돌아가신 부모나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애도하는 내용도 있다. 〈갈생(葛生)〉(〈당풍(唐風)〉)과 〈요아(蓼莪)〉(〈소아(小雅)〉)가 대표적이다.
④ 〈칠월(七月)〉(〈빈풍〉)과 같은 달거리 형식의 농민생활시도 있다.
⑤ 주나라 민족의 기원과 발전을 읊은 서사시가 있다. 〈대아〉의 〈생민(生民)〉·〈공류(公劉)〉·〈면(緜)〉 등이 그것이다. 또한 문왕과 무왕의 전공(戰功)을 칭송한 〈황의(皇矣)〉·〈대명(大明)〉도 서사시이다. 한편 〈상송(商頌)〉의 〈현조(玄鳥)〉는 제비[玄鳥]가 은나라 조상을 낳았다는 전설을 기록하고 은나라의 발전 과정을 생동적으로 기술하였다.
⑥ 〈학명(鶴鳴)〉·〈무장대거(無將大車)〉(〈소아〉)는 상당히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 가치와 영향

《시경》은 백성들이 불렀던 민요, 군주와 신하의 잔치에서 연주했던 노래, 종묘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한 노래 등 300여 편을 모은 시집이다. 이 시집에 담긴 시들은 꾸밈없는 감정을 쏟기도 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이기도 하며, 신비스런 전설을 재미있게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시경》의 노래는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思無邪]”고 했고, 그 노래를 읊는 사람들까지도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고 했다. 《시경》을 읊을 때는, 한 번 노래할 때마다 세 번 감탄한다고 했다.
《시경》은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일상생활이나 사고방식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신라 유물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는 두 젊은이가 생활과 공부에 관해 맹세한 내용이 새겨져 있는데, 두 사람은 임신년보다 앞서 신미년에는 ‘시’ 곧 《시경》을 다른 경전과 함께 충분히 익히자고 약속했었다고 회고했다. 또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景福宮)의 ‘경복’이란 이름도 바로 《시경》에서 따온 것이다.
《시경》은 공자가 정리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쳤으므로 유학자들은 그것을 존엄한 경전으로 떠받들었다. 또 《시경》의 시들은 외교관이 자기의 뜻이나 자기 나라의 처지를 넌지시 알리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만 끊어다가 읊는 단장취의(斷章取義)의 방식으로 이용했다. 《춘추좌씨전》에 보면 춘추시대 외교가들은 《시경》 시편의 한 구절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여 자신이나 자국, 혹은 상대방이나 상대방 국가의 특수한 상황을 비유하고 논평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것을 ‘부시(賦詩)(《시경》 시편을 읊음)’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시대부터 국가의 교육기관에서 《시경》을 가르치고, 고려 때부터는 과거 시험을 볼 때 필수 과목의 하나로 꼽았다. 그렇기에 선조들은 어릴 적부터 《시경》을 공부하여야 했다. 조선의 외교가들도 《시경》을 외지 못하면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가기 어렵다고 느꼈다. 1763년(영조 39) 8월에 통신사로 일본에 가게 된 조엄(趙曮)은 “ 《시경》을 외는 공부가 없는데 어떻게 다른 나라에 가서 사신 노릇을 하겠는가?”라고 염려했다. 일본에 가서 《시경》의 노래를 읊을 필요가 반드시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외교 업무를 하려면 《시경》의 구절로 뜻을 넌지시 표현할 수 있어야 하거늘 나는 그렇지 못하다고 겸손하게 말한 것이다.
한편 《시경》은 오랫동안 유교 공부에서 정치적 해석이나 도덕적 풀이를 해왔다. 《모시(毛詩)》(모형의 시경 주해서)에서는 〈주남〉의 첫 편인 〈관저〉의 앞에 긴 서문을 붙여 풍(風)의 의미에 대하여 논했다. 이것을 ‘모시대서’, 줄여서 ‘대서’라고 한다. 그 글에 “위정자는 이로써 백성을 풍화(風化)하고 백성은 이로써 위정자를 풍자(諷刺)한다.”라고 했다. 또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草上之風 草必偃]”라고도 했다. 《시편(詩篇)》(《시》의 각편)은 위정자의 덕에 의해 백성들이 교화된 상태를 판정하는 수단이 되고, 또 백성들이 위정자를 비판하는 도구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구절 다음에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 풀이 다시 일어서고 있음을[誰知 風中草復立]”이라 했다. 그렇다면 백성들의 저항 의지를 인정한 셈이다.
송나라 학자들은 한·당의 ‘모정지학’에 대해 회의를 품었다. 이때 주희는 《시집전(詩集傳)》(8권)과 《시서변설(詩序辨說)》을 저술하여 〈시서(詩序)〉의 오류를 비판하고 《시》 본문에 의거하여 시인(詩人)(《시》 시편의 작자)의 본의(本意)를 탐구할 것을 주장했다. 한나라 때 〈모시서(毛詩序)〉는 《시》를 정치교화의 산물로 보아, 많은 시편에 대하여 그것이 당시의 군주와 정치를 찬미하거나 풍자한 것이라고 천착·부회하였으며, 남녀 애정을 노래한 시편도 정치적인 뜻을 함축한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주희는 국풍의 대부분이 ‘민속가요(民俗歌謠)의 시’라고 보고, 이른바 변풍(變風)(주나라의 왕도가 쇠퇴한 이후에 지어진 국풍)에 나오는 많은 연애시들은 음시(淫詩), 즉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고 풀이했다. 그리고 《논어》에서 공자가 《시》의 본질이라고 제시했던 ‘사무사(思無邪)’라는 말을 《시》의 효용적 측면[詩敎]에서 해석했다. 즉 독자가 시의 선한 내용을 보고 감발(感發)하거나 시의 나쁜 내용을 보고 징창(懲創)할 수 있으므로, 《시》를 읽음으로써 정을 다스려 삿됨이 없는 본원의 성(性)을 회복할 수 있다고 논했다.
주희의 시경론은 원나라 때 국가의 공인을 받았다. 원·명·청의 시경 학자들은 주희의 설을 따르느냐 반대하느냐로 논쟁을 반복했다. 그러한 해석과 풀이들은 《시경》의 노래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그런 해석과 풀이가 오늘날 《시경》을 즐겨 읽는데 큰 도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근대 이후 연구자들은 〈시서(詩序)〉의 작가, 공자 산정설의 진위, 육의의 개념 등을 논하는 한편, 《시》와 풍속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마셀 그라네Marcel Granet의 《중국고대의 제례와 가요》는 《시》 해석에 민속학적 방법론을 도입한 근대적 연구의 효시이다. 이후 문화사회학적 해석과 비평이론이 발달하면서 《시경》의 시편을 원래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그것이 전승되고 이용된 환경을 고증하는 업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쥐야 쥐야 큰 쥐야. 내 기장 먹지 마라. 오랫동안 너를 견뎌왔건만 너는 나를 돌봐줄 기색 없구나. 맹세코 너를 떠나 저 행복한 땅으로 가리라. 즐거운 땅 행복한 땅이여, 거기에 내가 살리라.[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誓將去女 適彼樂土 樂土樂土 爰得我所]” 〈위풍(魏風) 석서(碩鼠)〉
• “저 민둥산에 올라, 아버지 계신 곳을 바라보노라. 아버지는 말씀하시리, ‘아아, 우리 아들이 부역에 나가, 밤낮으로 쉬지를 못하는구나. 부디 조심해라. 살아 돌아와야지, 거기 머물지를 말아다오!’[陟彼岵兮 瞻望父兮 父曰嗟 予子行役 夙夜無已 上愼旃哉 猶來無止]” 〈위풍(魏風) 척호(陟岵)〉
• “무성하게 자란 다북쑥은 다북쑥이 아니라 큰 쑥이네. 슬프구나, 우리 부모님, 나를 낳고 고생하셨구나.[蓼蓼者莪 匪莪伊蒿 哀哀父母 生我劬勞]” 〈소아 요아(蓼莪)〉
(2)색인어:시(詩), 시경(詩經), 삼가시(三家詩), 모정지학(毛鄭之學), 국풍(國風), 소아(小雅), 대아(大雅), 송(頌), 주희(朱熹), 단장취의(斷章取義), 육의(六義).
(3)참고문헌
• 시경(김학주 역, 명문당)
• 현토완역 시경집전(성백효 역, 전통문화연구회)
• 시경(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중국고대문학사(김학주, 민음사).
• 조선시대의 한문학과 시경론(심경호, 일지사).
• 毛詩註疏(毛亨 傳, 鄭氏 箋, 孔頴達 疏, 十三經注疏 收錄)
• 詩集傳(四部叢刊 3編 經部, 商務印書館)
• 詩傳大全(胡廣等 撰, 四庫全書珍本(王雲五主持) 5集 017-020, 臺灣商務印書館)
• 詩三家義集疏(王先謙, 吳格 點校. 十三經清人注疏, 中華書局)
• 毛詩傳箋通釋(馬瑞辰, 陳金生 點校. 十三經清人注疏, 中華書局)
• 毛詩後箋(胡承珙, 莊大鈞, 石静 校點, 北京大學出版社)
• 詩經圖注(劉毓慶, 麗文文化公司)
• 毛詩(服部宇之吉‧星野恒 編, 漢文大系12, 富山房)
• 詩經(高田眞治, 漢詩選 第1~2卷, 集英社)
• 定本詩經譯注(目加田誠, 目加田誠著作集 2~3권, 龍溪書舍)
• 詩經國風‧詩經雅頌(白川静, 平凡社東洋文庫)
• 詩經(石川忠久, 新釋漢文大系, 明治書院)
【심경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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