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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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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수(陳壽)의 《삼국지》는 정확한 편찬연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진(晉)나라에서 활동했을 때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기전체(紀傳體) 양식의 사서(史書)로 총 65권으로 이루어졌다. 그가 많은 사서를 참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후대 배송지(裴松之)가 주석을 달았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모체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고대사(古代史)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2. 저자

(1)성명:진수(陳壽)(233~297)
(2)자(字)·별호(別號):자는 승조(承祚)
(3)출생지역:중국 파서군(巴西郡) 안한현(安漢縣)
(4)주요활동과 생애
진수는 위(魏), 촉(蜀), 오(吳)가 삼국(三國)으로 정립된 시기부터 진(晉)나라가 통일한 이후까지 격동기를 경험하였으며, 문벌(門閥)과 가격(家格)이 중시된 귀족 문화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부친이 촉장(蜀將) 진식(陳式)이라는 설이 있지만 근거가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마속(馬謖)의 참군을 지냈고 제갈량이 마속을 벨 때 머리를 깎이는 형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는 일찍이 촉한(蜀漢)의 관리이자 학자였던 초주(譙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출사한 이후 관각영사(觀閣令史)라는 벼슬을 지냈지만, 환관 황호(黃皓)에게 핍박을 받아 벼슬에서 쫓겨나기도 했었다. 그의 나이 31세에 촉한은 위(魏)나라에게 망한다. 진(晉)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사공(司空) 장화(張華)에 의해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저작랑(著作郞)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진 무제(晉武帝)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익주(益州)의 역사인 《익부기구전(益部耆舊傳)》과 촉한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의 문집(文集)인 《제갈량집(諸葛亮集)》을 편찬하였다. 나중에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의 직위까지 올랐다. 모친이 별세할 때 낙양에 시신을 묻으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이를 따랐다. 그러나 부모의 시신을 고향에 묻어야 한다는 예를 어겼다는 이유로 향당의 비난을 받았다. 이에 그는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다시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다. 《진서(晉書)》 〈진수전(陳壽傳)〉의 사평(史評)에 반고(班固)와 사마천(司馬遷)을 이을 자는 오직 진수뿐이라고 평하였다.
(5)주요저작:《고국지(古國志)》 50편, 《익도기구전(益都耆舊傳)》, 《관사론(官司論)》, 《광국론(廣國論)》, 《제갈량집(蜀相諸葛亮集)》 등.

3. 서지사항

《삼국지》는 진수가 후한(後漢) 말기(184)부터 진(晉)나라 사마염(司馬炎)이 천하를 통일하기까지(280)의 역사를 담고 있다. 위(魏)나라를 정통(正統)으로 삼아 본서를 서술하였다. 하지만 위를 정통으로 한 다른 사서(史書)들이 《위서(魏書)》 등의 제목 아래 촉한과 오(呉)의 역사를 다루었지만, 진수는 제목을 《삼국지》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본문도 〈위서(魏書)〉, 〈촉서(蜀書)〉, 〈오서(呉書)〉로 나누어 삼국(三國)을 상대적으로 대등하게 서술하였다. 총 6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원래 〈위지(魏志)〉, 〈촉지(蜀志)〉, 〈오지(吳志)〉라는 표제로 구성되었는데, 송(宋)나라 이후 바뀌어 더 많이 사용해왔다. 《삼국지》는 기전체(紀傳體) 사서이나 인물전기 위주로, 연표인 표(表)나 경제·문화·제도를 기록한 지(志) 혹은 서(書)가 없다.
문헌의 정확한 성립 연대를 알 수 없으나 그가 진(晉)나라에서 활동할 때 쓰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당시 관찬서(官撰書)인 왕침(王沈)의 《위서(魏書)》, 위소(韋昭)의 《오서(吳書)》, 사찬(私撰)인 어환(魚豢)의 《위략(魏略)》을 참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촉한에는 국사(國史)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자료를 수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4. 내용

진수는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고 본기(本紀)를 위나라의 황제들로 엮었으며 촉한과 오의 황제는 열전(列傳)에 편입시켰다. 제호(帝號)를 붙인 것은 위나라뿐이며 촉의 유비(劉備)와 유선(劉禪)은 각기 선주(先主)와 후주(後主)로 기술하였고, 오의 제왕들은 주(主)를 붙이거나 이름을 그대로 적기도 하였다. 이러한 체계는 후대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에 의해 비판을 당하였다.
진수가 참고한 자료가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에 누락된 곳이 많다. 이에 남조(南朝) 송(宋)나라 문제(文帝)가 배송지(裴松之)에게 명하여 주(注)를 달게 하였다. 이 배주(裴注)는 누락된 사료를 보완하는 데 초점을 두어 약 200여 권이 넘는 사서를 인용하였다. 배송지는 인용한 자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인물의 평을 넣기도 하였다. 배주는 현재 실전된 자료들을 많이 인용하였기 때문에 사료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사사(四史)로 불리며 중국 정사인 24사(史)의 하나이다. 이 책은 편찬시기가 남조(南朝) 송(宋)나라 범엽(范曄)의 《후한서》보다 앞선다. 당대(當代)에 명문장가였던 하후담(夏侯湛)이나 장화(張華)의 격찬을 받았으며, 결국 《삼국지》는 진수 개인이 편찬한 사서였지만 혜제(恵帝) 때에 삼국시대의 정사(正史)로 인정되었다.

5. 가치와 영향

이 책은 서술이 간결하고 분명하여 명저로 일컬어져 왔다. 동양 최고 고전소설의 하나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모체로 현재도 이와 비교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또한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는 고구려(高句麗), 옥저(沃沮), 읍루(揖婁), 예(濊), 한(韓), 왜(倭) 등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어 한국 고대사 연구의 필독서로 여겨지고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호랑이를 잡을 때에는 재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縛虎不得不急]” 〈위서(魏書) 여포전(呂布傳)〉
• “일곱 번 풀어 주었다가 일곱 번 사로잡고는 제갈량(諸葛亮)이 오히려 맹획(孟獲)을 보내주다.[七縱七禽 而亮猶遣獲]” 〈촉서(蜀書) 제강량(諸葛亮傳)〉
• “천하의 영웅은 오직 유비 그대와 나 조조뿐이다.[天下英雄 惟使君與操耳]” 〈촉지(蜀志)〉
(2)색인어: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배송지(裴松之), 사사(四史),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
(3)참고문헌
• 三國志 標點校勘本(中華書局)
• 三國志集解(盧弼, 上海古籍)
• 三國志今注今譯(蘇淵雷, 湖南師範大)
• 고본완역 삼국지(정소문 역, 전통문화연구회)
• 삼국지(김원중, 민음사)
【이효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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