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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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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한(東漢)의 상흠(桑欽)이 편찬한 《수경(水經)》을 기초로 북위(北魏)의 역도원(酈道元)이 여기에 주(注)를 붙인 것이 《수경주(水經注)》이다. 《수경》에 기록된 137개 하천의 수원(水源)·유로(流路)·하구(河口) 등에 대한 상세한 주뿐만 아니라, 《수경》의 10배에 가까운 1,252개 하천에 대해 서술했으며, 실제의 견문과 문헌에 근거하여 각 하천 유역의 자연지리·도읍·고적·명승·물산·수리(水利)·인물·사실(史實)·전설·방언 등 여러 분야를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2. 저자

(1) 성명:《수경》의 저자 상흠(桑欽)(?~?), 《수경주》의 저자 역도원(酈道元)(446 또는 472~527)
(2) 자(字)·별호(別號):상흠의 자는 군장(君長), 역도원의 자는 선장(善長)
(3) 출생지역:상흠은 하남(河南) 낙양(洛陽)(현 중국 하남성(河南省)), 역도원은 범양(范陽) 탁주(涿州)(현 중국 하북성(河北省))
(4) 주요활동과 생애
상흠은 동한시대 학자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힘썼으며, 《고문상서(古文尙書)》에 정통했다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역도원은 북위 효문제(孝文帝) 태화(太和) 17년(493), 북위의 낙양 천도 무렵 상서랑(尙書郎)을 지냈다. 이듬해 어사중위(御史中尉) 이표(李彪)의 추천으로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에 임명되어 효문제의 북방 순행을 따랐다. 후에 이표가 탄핵되자 역도원 역시 면직되었다가, 경명년간(景明年間)(500~503) 기주진동부장사(冀州鎭東府長史)가 되어 3년간 민정에 힘썼다. 이후 노양군태수(魯陽郡太守)에 임명되어 조정에 학교 건립을 건의하고 이를 시행에 옮겼으며 백성들의 교화에 힘써 향촌사회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엄격하고 강직한 성품은 호강(豪强)과 황족들의 원망을 사게 되어 죽음으로까지 연결되었다. 황친(皇親) 원미(元微)가 숙부 원연(元淵)을 무고한 사건에서 역도원이 진상을 밝혀 원연의 누명을 벗기자 원미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이다. 이후 효창(孝昌) 3년(527) 옹주자사(雍州刺史) 소보인(蕭寶夤)이 장안에서 반란을 일으키려 하자, 원미는 역도원을 제거할 기회로 삼고 당시 섭정자 호태후(胡太后)를 종용하여 그를 관우대사(關右大使)로 파견해서 소보인을 감시하도록 했다. 소보인은 역도원을 함정에 빠뜨려 그를 포함한 동생과 두 명의 아들까지 모두 몰살시켰다. 난이 평정된 후, 역도원은 이부상서(吏部尚書) 기주자사(冀州刺史) 안정현남(安定縣男)으로 추증되었다.
그는 지리현상이란 항상 변화한다고 여기고, 특히 당시 북위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부족(部族)의 천사(遷徙), 도시의 성쇠가 있었을 뿐 아니라, 하도(河道)의 변천, 명칭의 변경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정황을 고려하여 수도(水道)를 중심으로 지리정황을 묘사하기로 결심하였다. 더욱이 당시 남북조라는 분열 상황에서 당시 사람들의 정치적 경계에 대한 제한 의식을 없애고, 북위에 의한 중국 전체 통일을 위해서도 〈우공(禹貢)〉과 같은 지리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본서를 저술한 것이다.
(5) 주요저작: 《본지(本志)》 13편, 《칠빙(七聘)》이 있으나 모두 전해지지 않는다.

3. 서지사항

《수경》은 2권, 《수경주》는 40권이다. 청대(淸代) 고증학자(考證學者)들에 따르면 《수경》의 저자는 삼국시대 사람으로 추정된다. 《수경주》는 북송초 5권이 산일되어 40권으로 편성한 것으로 《수경》과 주(注)가 섞이고 체재가 혼란스러워졌다. 그로 인해 역학(酈學)이라고 불리는 문헌학 연구가 성행하게 되었다. 유전되어 지금까지 전해진 간본(刊本)으로는 명(明)나라 가정(嘉靖) 13년(1534)의 황성증(黄省曾) 간본과 만력(萬曆) 13년(1585) 오관(吳琯)이 북송 원우(元祐) 2년본을 저본으로 한 것이 있다. 가장 저명한 간본은 만력 43년(1615) 주모위(朱謀瑋)가 교감한 《수경주전(水經注箋)》이다. 이를 기본으로 하여 청초 역학가(酈學家)들의 교감을 거친 우수한 간본이 출현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건륭(乾隆) 19년(1754) 전조망(全祖望)의 《수경주석(水經注釋)》이 있다. 이후 왕선겸(王先謙)이 주모위의 《수경주전》과 조일청(趙一淸)의 《수경주석(水經注釋)》 및 손성연(孫星衍) 등의 교본을 수록한 《합교본수경주(合校本水經注)》를 편찬하였다. 이외 《사부총간(四部叢刊)》, 영락대전본(永樂大全本)의 영인본(고적문학사(古籍文學社), 1955), 대진교본(戴震校本)(세계서국(世界書局), 1969), 왕국유교본(王國維校本)(상해인민출판사(上海人民出版社), 1984) 등이 있다.

4. 내용

《수경》은 하천의 발원과 경유과정, 합류 또는 입해(入海) 등에 대한 간단한 기록인데 비해, 《수경주》는 이에 대한 주석에 그치지 않고 하천수계(河川水系)를 기준으로 한 독특한 체례의 지리서로 재탄생한 서적이다. 권1부터 권5까지 하수(河水), 권6은 분수(汾水)·회수(浍水)·속수(涑水)·문수(文水)·원공수(原公水)·동과수(洞過水)·진수(晋水)·담수(湛水)를 비롯하여 권40의 점강수(漸江水)·근강수(斤江水)에 이르기까지 하천을 중심으로 권수를 나누되 수계를 포함하여 다양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우선 자연지리 분야에서 하천 1,252개에 대해 하류의 발원지로부터 입해에 이르기까지, 간류(干流), 지류(支流), 하곡(河谷)의 폭, 하상(河床)의 깊이, 수량과 수위의 계절에 따른 변화, 물이 어는 시기, 함사량(含沙量), 폭포, 급류, 호수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를테면 호수와 연못 500여 곳, 샘물과 우물 등 지하수 300곳, 폭포 60여 곳을 포함하고 있다. 각종 지형의 모습, 고지대는 산(山)·악(岳)·봉(峰)·령(嶺)·판(坂)·강(岡)·구(丘)·부(阜)·고(崓)·장(障)·봉(峰)·기(碕)·원(原)으로, 저지대는 천(川)·야(野)·옥야(沃野)·평천(平川)·평원(平原)·원습(原隰) 등으로 나누어 기술했다. 식물의 품종에 대한 기록이 140여 종에 달하며, 동물의 종류도 100종이 넘고, 자연재해도 수재(水灾)·한재(旱灾)·풍재(風灾)·황재(蝗灾)·지진(地震)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인문지리 분야로는 현(縣)과 기타 성읍(城邑) 2,800개, 고도(古都) 180개를 비롯하여 진(鎭)·향(鄕)·정(亭)·리(里)·취(聚)·촌(村)·허(墟)·수(戍)·오(塢)·보(堡) 등을 기록하였다. 심지어 파라내성(波罗奈城)·파련불읍(巴連弗邑)·왕사신성(王舍新城)·섬파국성(瞻婆國城)과 같은 인도 지역 및 현재의 베트남인 임읍(林邑)의 군사요충지에 대한 기록도 있다. 수운과 육로의 교통지리로는 교량 100여 개, 진도(津渡) 100여 개에 대한 기술이 있다. 경제지리적인 측면으로는 농전수리(農田水利)에 대한 정보로서 파호(坡湖)·제(堤)·당(塘)·언(堰)·알(堨)·도(覩)·타(坨)·수문(水門)·석두(石逗) 등을 포함하고 있다. 수공업 방면에서는 채광·야금·기기·방직·조폐 등을, 금속광물로는 금·은·동·철·주석·수은 등을, 비금속광물로는 웅황(雄黄)·유황(硫黄)·염(鹽)·흑연(黑鉛)·운모(雲母)·석영(石英)·옥(玉)·석재(石材) 등도 기록하였다. 이외 매탄(煤炭)과 석유(石油)에 대한 기록도 있다.

5. 가치와 영향

총 30여만 자로 구성된 지리학 대작으로 명칭상 《수경》의 주(注)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수경》을 기초로 한 재창작이라 할 만하다. 중국 지리학사에 있어 사실지리학을 개창한 것으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서적이다. 이전의 지리학 서적인 《산해경(山海經)》, 《목천자전(穆天子傳)》, 《우공(禹貢)》 등이 다분히 허구적인데 비해 실제 답사와 고찰을 통해 편찬한 지리서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행정구획에 의한 지리적 기록에 비해 체례가 이색적인 것뿐만 아니라 기술내용이 풍부하고 다채로워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수경주》에 인용된 서적 437종과, 비각(碑刻) 350여 개는 대부분 산일되었기 때문에 본서는 더욱 귀중한 자료인 셈이다. 또한 그가 비각을 참고·연구했다는 점에서 송대 금석학(金石學)의 선구로도 평가된다. 다만 남쪽의 수계에 대한 기록이 소략하거나 착오도 적지 않은 점은 남북조시대라는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한계라 할 것이다. 당대(唐代) 두우(杜佑)의 《통전(通典)》에서는 《수경주》의 황하 하원(河源)에 관한 오류가 지적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경주》가 지닌 전체적인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풍부한 지리적 내용 외에도 탑 30여 개, 궁전 120여 개, 능묘 260여 개, 사원 26개에 대한 기록도 있어 역사·고고학·종교·예술 방면에서도 참고할 수 있다. 특히 저자가 소리와 색을 묘사한 언어 사용은 중국 어문학 연구에도 주목할 만하다. 이를테면 폭포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농(瀧)·홍(洪)·현류(懸流)·현수(懸水)·현도(懸濤)·현천(懸泉)·현간(懸澗)·현파(懸波)·퇴파(頹波)·비청(飛清) 등과 같은 것이다. 또한 민간의 가요와 방언, 전설 등도 수록하고 있어 중국 고전문학사 분야에도 참고할 가치가 있다. 배송지(裴松之)의 《삼국지주(三國志注)》, 유효표(劉孝標)의 《세설신어주(世說新語注)》, 이선(李善)의 《문선주(文選注)》와 더불어 ‘사대명주(四大名注)’로 불린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만약 패수가 동쪽으로 흐른다면 패수를 건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 땅은 지금 고구려의 도읍이라 내가 고구려 사신을 방문하여 물었더니 성은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말하였다.[若浿水東流 無渡浿之理 其地今髙句麗之國治 余訪蕃使言 城在浿水之陽]” 〈권14 패수(浿水)〉
• “바람 불고 샘이 흐르는 소리는 푸른 숲 아래로 전해 울리고, 바위에 매달린 원숭이의 울음소리는 하얀 구름 위로 퍼지는데, 유람하는 자들이 항상 주위의 경치를 다 볼 수 없어서 마음속으로 충분히 감상하지 못한 것처럼 여겼다.[風泉傳響於青林之下 岩猿流聲于白雲之上 游者常若目不周翫 情不給賞]” 〈권16 저수(沮水)〉
• “양안은 산으로 이어져 있고 돌샘이 작은 폭포처럼 흐르는지라 지나던 자들은 번번이 왔다 갔다 하면서 떠나길 아쉬워하는 마음이 그치질 않는다.[兩岸連山 石泉懸溜 行者輒徘徊留念 情不極已也]” 〈권39 뢰수(耒水)〉
(2) 색인어:수경(水經), 수경주(水經注), 상흠(桑欽), 역도원(酈道元), 하천(河川), 산해경(山海經), 우공(禹貢), 역학(酈學)
(3) 참고문헌
• 水經注硏究(陳橋驛, 天津古籍出版社)
• 胡適與《水經注》案探源(桑兵, 中國社會科學出版社)
• 水經注(森鹿三·日比野丈夫 譯, 平凡社)
• 〈最近に於ける水經注硏究〉(森鹿三, 《東洋學研究》 歷史地理篇, 1970)
• 〈胡適の『水経注』研究-酈道元と『水経注』について〉(山口栄, 《中国水利史研究》 30, 2002)
【김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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