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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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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0권 50편으로 이루어진 중국 시문詩文 평론서이다. 유협劉勰이 남조南朝 양梁나라 말엽 499∼501년에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로 저술하였다. 37,000자에 이른다. 이 책의 〈서지序志〉편에서 유협은 ‘문심조룡’의 의미를 풀이하였는데, ‘문심文心’은 문자언어 예술을 창작하거나 감상하는 인간의 정신을 뜻하고, ‘조룡雕龍’은 예술가가 용을 조각하듯 문학을 구상하고 창작하는 기교를 뜻한다. 유협은 이 책의 전반 25편에서 33종의 범주로 문학의 원리와 문학의 각 문체에 관하여 논술하고, 후반 25편에서 창작, 수사, 문학 환경, 작가론 등을 논술하였다. 같은 시대 종영鍾嶸의 《시품詩品》, 소명태자昭明太子의 《문선文選》과 함께 중국문학론 및 동양고전문학론 연구에 주요한 원전이다.

2. 저자

(1)성명:유협劉勰(465~?). 범문란范文瀾의 《문심조룡주文心雕龍注》는 유협이 어려서 의탁하였던 정림사定林寺의 승려 승우僧祐의 졸년에 의거하여 유엽의 생년을 남북조南北朝시대 송宋나라 명제明帝 태시泰始 원년(465)으로 비정하였다. 하지만 왕갱생王更生은 송나라 효무제孝武帝 대명大明 8년(464)으로 비정하였다. 유협의 졸년은 설이 분분하다. 이를테면 왕금릉王金凌의 《유협연보劉勰年譜》는 양나라 무제武帝 보통普通 3년(522)으로 보았으나, 화중華仲의 〈유언화간보劉彥和簡譜〉는 양나라 무제 보통 원년(520), 주소항周紹恒의 〈유협졸년신고劉勰卒年新考〉는 보통 4,5년(523,524), 이경갑李庆甲의 〈유협졸년고〉는 대통大通 4년(532), 이왈강李曰剛의 〈양유협세계연보梁劉勰世系年譜〉는 대동 5년(539)으로 보았다.
(2)자字·별호別號:자는 언화彦和.
(3)출생지역:원적지는 동완군東莞郡 거현莒縣(현 중국 산동성山東省 거현莒縣)이며, 대대로 경구京口(현 중국 강소성江蘇省 진강鎭江)에 거주하였다.
(4)주요활동과 생애
유협은 제齊나라 도혜왕悼惠王 유비劉肥의 후손으로, 6세조 유무劉撫는 팽성내사彭城内史를 지냈고, 5세조 유상劉爽은 산음현령山陰縣令을 지냈으며, 4세조 유중도劉仲道는 여요현령余姚縣令을 지냈다. 영가永嘉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의 선조는 양자강을 건너 경구京口에 정착하였다. 부친 유상劉尙은 월기교위越騎校尉를 지냈는데, 원휘元徽 2년(474년)에 건강建康에서 발생한 반역을 토벌하는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죽었다. 유협은 어려서 부친을 잃고 집이 가난하여, 정림사定林寺 승려 승우僧祐에게 의지하여 글을 읽었다. 10여 년이 지나 불교의 경론에 정통하게 되었다. 이 무렵 유가의 경전도 함께 연찬硏鑽한 듯하다. 30여 세에 3만 7천 글자의 《문심조룡》을 엮었다. 심약沈約은 이를 두고, 문리文理를 깊이 얻었다고 칭찬하였다. 징소되어 봉조청奉朝請에 임명되었다. 뒤에 임천왕臨川王의 기실記室을 지냈고, 다시 태자기실太子記室이 되었다. 대동大同 4년(538년) 소명태자 소통蕭統이 서거하자 출가할 것을 청하였으나, 양나라 무제가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머리를 불태워 뜻을 분명히 밝혀, 마침내 윤허를 받아 승려가 되었다. 법호는 혜지慧地이다. 승려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졸하였다.
(5)주요저작:유협은 《문심조룡》 이외에 〈멸혹론滅惑論〉과 〈양건안왕조섬산석성사석상비梁建安王造剡山石城寺石像碑〉 등을 남겼다. 일설에 의하면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과 《유자劉子》도 그의 저술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3. 서지사항

《문심조룡》의 판본으로는 1907년 돈황에서 발견된 당나라 때 사본의 잔권殘卷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1907년 스타인.M.오렐(斯坦因.M.奥雷尔 Stein.M.Aurel)이 돈황에서 발견한 사본 잔권으로,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스타인장권제5478斯坦因藏卷第5478의 유물이다. 제1편(원도原道) 말단부터 제15편(해은諧隱) 수단首段까지만 있으며, 혁지革紙에 행서 수초手钞된 판본이다. 이후 원나라 지정至正 15년(1355) 가흥지부嘉興知府 유정劉貞이 《문심조룡》 10권을 판각하였는데, 이것이 현전하는 판본 가운데 가장 초기의 각본이다.
명나라에 들어와 목판본이 많이 나왔다. 우선 명나라 홍치弘治 17년(1504) 풍윤정馮允中이 오중吳中에서 판각한 것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활자본도 나와, 황비열黄丕烈 《요포장서제발蕘圃藏書題跋》에 저록되어 있다. 또한 명나라 가정嘉靖 19년(1540)에는 왕일원汪一元이 주석한 《文心雕龙》 10권이 신안新安에서 판각되었다. 가정嘉靖 22년(1543) 사회佘誨 각본이 있고, 만력萬曆 7년(1579) 장지상張之象 서본序本이 함분루涵芬楼 《사부총간四部叢刊》에 영인 수록하였다. 장지상본張之象本의 이본 장을본張乙本도 있다. 만력 10년(1582)에는 《양경유편兩京遺編》본이 나왔는데, 호유신胡维新‧원일괴原一魁 서序가 있다. 만력 20년(1592) 하윤중何允中의 《한위총서漢魏叢書》에 수록된 책은 사본佘本에서 유래하여, 권수에 사회佘誨 서가 있다.
만력 37년(1609) 길안吉安 유운劉雲이 남경에서 판각한 매경생梅慶生(자유子庾) 음주본音注本이 있다. ‘금릉金陵의 선본善本’이라 일컬어진다. 권수에 허연조許延祖가 해서로 쓴 고기원顧起元 서序가 있고, 권말에 주모朱謀의 발跋이 있고, 양신楊愼의 비점批點을 가져오되 5색을 5종 부호로 표시하였다. 천계 2년(1612) 제6차 교정개각본校定改刻本이 나왔다. 서문 다음에 도목都穆의 발跋 한 장이 더 있다. 매경생 만력본을 기초로 금릉金陵 취금당판聚錦堂板 《합갑오가언合刻五家言》본이 나왔다. 시기는 매경생 천계본보다는 빠르다. 양신楊愼‧조학전曹學佺‧매경생梅慶生‧종성鍾惺 등 4가四家의 평어評語를 각 편 미단眉端에 배열하였다. 이후 이것을 기초로 양걸梁杰(건옥廷玉) 정정본訂正本이 나왔다. 또 매경생 만력본을 저본으로 종성鍾惺 평어의 비서십팔종본秘書十八種本이 나왔는데, 권수에 조학전曹學佺의 만력 40년(1612) 서문이 있고, 종성의 평어를 미단眉端에 배열하였다. 숭정崇禎 7년(1634) 진인석陳仁錫이 판각한 기상회편본奇賞匯編本이 나왔는데, 매경생 만력본을 저본으로 하되 약간 다른 곳이 있다.
만력 39년(1611) 왕유검王惟儉의 《문심조룡훈고文心雕龍訓故》가 판각되었다. 만력 40년(1612) 이후 명나라 능운凌雲이 간행한 오색투인본五色套印本이 간행되었는데, 조학전曹學佺‧민승閔繩의 서序를 붙였고, 교점批點과 교어校語에 오색묵五色墨을 사용하였다. 천계 7년(1627) 사항謝恒 초본鈔本이 나왔는데, 권말에 풍서馮舒의 주필朱筆 발문이 있다. 숭정崇禎 11년(1638) 황주黄澍 섭소태葉紹泰 평선評選의 한위별해본漢魏别解本이 나왔다. 숭정 15년(1642) 증정별해본增定别解本이 판각되었다. 또한 장용張墉 홍길신洪吉臣 참주参注의 《양승암선생비점문심조룡楊升庵先生批点文心雕龍》이 있는데, 이 판본은 청나라 강희康熙 34년 중전본重鐫本이 무림武林 포청각抱靑閣에서 간행되었다.
청나라 때도 많은 판본이 나왔다. 건륭乾隆 6년(1741) 양소당養素堂에서 황숙림黄叔琳 집주본輯注本이 판각되었는데, 청나라 중엽 이후 가장 통행하였다.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된 황씨 집주 문진각본文津閣本이 바로 이것이다. 건륭 56년(1791)에 왕모王謨의 《광한위총서廣漢魏叢書》본이 나왔는데, 하윤중 《한위총서》본과는 약간 다르다. 건륭 56년(1791) 장송손張松孫 집주본(輯注本)이 판각되었다. 《사고전서》 문진각본文津閣本과 《사고전서》 문소각본文溯閣本과는 약간 다르다. 도광道光 13년(1833) 노곤盧坤(양광절서兩廣節署) 판각본이 나왔는데, 운향당주묵투인본芸香堂朱墨套印本과 한묵원복각본翰墨園覆刻本의 두 종이 있다. 황주기黄注紀 평評, 황숙림黄叔琳 집주輯注, 기윤紀昀 비批가 있다. 범문란范文瀾 주석본은 이 텍스트이거나 《사부비요四部備要》본을 사용하였다. 광서光緖 원년(1875)에 호북湖北 숭문서국崇文書局에서 《삼십삼종총서三十三種叢書》본이 판각되기 시작하여 광서 3년(1877)에 이루어졌다.
일본에서는 오카 핫구(岡白駒, 1692-1767) 교정구두본校正句讀本이 향보享保 16년(1731)에 출판되었다. 《한위총서》본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이후 상고당尙古堂에서 다시 출판되었다.

4. 내용

이 책의 〈서지序志〉편에서 유협은 ‘문심조룡’의 의미를 풀이하고 있다. ‘문심文心’은 문자언어 예술을 창작하거나 감상하는 인간의 정신을 뜻하고, ‘조룡雕龍’은 예술가가 용을 조각하듯 문학을 구상하고 창작하는 기교를 뜻한다.
전체 10권 50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반 25편은 문장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하여 각 문체의 완성을 논하였다. 전반 25편의 앞부분에 놓여 있는 〈원도原道〉·〈징성徵聖〉·〈종경宗經〉·〈정위正緯〉·〈변소辨騷〉 등 5편은 책 전체의 강요綱要로, 문학은 경도經道를 선양하고 풍화風化에 비익裨益함이 있어야 한다는 도리를 천명하였다. 후반 25편은 문학의 본체 및 작용, 문체의 특질·형식·풍격을 서술하고 문학의 원리에 근거하여 비평의 원칙과 방법을 논하였다.
전체 10권의 권별 목록은 다음과 같다. 권1은 〈원도原道〉·〈징성徵聖〉·〈종경宗經〉·〈정위正緯〉·〈변소辨騷〉, 권2는 〈명시明詩〉·〈악부樂府〉·〈전부詮賦〉·〈송찬訟讚〉·〈축맹祝盟〉, 권3은 〈명잠銘箴〉·〈뇌비誄碑〉·〈애조哀弔〉·〈잡문雜文〉·〈해은諧隱〉, 권4는 〈사전史傳〉·〈제자諸子〉·〈논설論說〉·〈조책詔策〉·〈격이檄移〉, 권5는 〈봉선封禪〉·〈장표章表〉·〈주계奏啓〉·〈의대議對〉·〈서기書記〉, 권6은 〈신사神思〉·〈체성體性〉·〈풍골風骨〉·〈통변通變〉·〈정세定勢〉, 권7은 〈정채情采〉·〈용재鎔裁〉·〈성률聲律〉·〈장구章句〉·〈여사麗辭〉, 권8은 〈비흥比興〉·〈과식夸飾〉·〈사류事類〉·〈연자練字〉·〈은수隱秀〉, 권9는 〈지하指瑕〉·〈양기養氣〉·〈부회附會〉·〈총술總術〉·〈시서時序〉, 권10은 〈물색物色〉·〈재략才略〉·〈지음知音〉·〈정기程器〉·〈서지序志〉 등이다.
각 장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러하다. 제1장 〈원도原道〉는 자연의 도와 인문의 도를 통일적으로 파악하고 문장은 그 양자를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제2장 〈징성徵聖〉은 경전의 작가를 성인의 반열에 두었고, 제3장 〈종경宗經〉은 불변의 진리를 담지하는 것이 경전이라고 하였다. 제4장 〈정위正緯〉는 정경正經과 위서緯書를 가려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제5장 〈변소辨騷〉는 《이소離騷》를 경전에 준하는 것으로 위치지었다. 제6장 〈명시明詩〉, 제7장 〈악부樂府〉, 제8장 〈전부詮賦〉, 제9장 〈송찬頌讚〉, 제10장 〈축맹祝盟〉, 제11장 〈명잠銘箴〉, 제12장 〈뇌비誄碑〉, 제13장 〈애조哀弔〉는 운문韻文의 각 양식에 대하여 논하였다. 제14장 〈잡문雜文〉과 제15장 〈해은諧讔〉은 운문과 산문의 중간 양식에 대하여 논하였다. 이후 제16장 〈사전史傳〉, 제17장 〈제자諸子〉, 제18장 〈논설論說〉, 제19장 〈조책詔策〉, 제20장 〈격이檄移〉, 제21장 〈봉선封禪〉, 제22장 〈장표章表〉, 제23장 〈주계奏啓〉, 제24장 〈의대議對〉, 제25장 〈서기書記〉는 산문의 여러 양식과 기능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제26장 〈신사神思〉, 제27장 〈체성體性〉, 제28장 〈풍골風骨〉, 제29장 〈통변通變〉, 제30장 〈정세定勢〉, 제31장 〈정채情采〉, 제32장 〈용재鎔裁〉, 제33장 〈성률聲律〉, 제34장 〈장구章句〉, 제35장 〈여사麗辭〉, 제36장 〈비흥比興〉, 제37장 〈과식夸飾〉, 제38장 〈사류事類〉, 제39장 〈연자練字〉, 제40장 〈은수隱秀〉, 제41장 〈지하指瑕〉, 제42장 〈양기養氣〉, 제43장 〈부회附會〉, 제44장 〈총술總術〉은 창작론과 수사법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논하였다. 제45장 〈시서時序〉, 제46장 〈물색物色〉, 제47장 〈재략才略〉, 제48장 〈지음知音〉, 제49장 〈정기程器〉는 비평이론을 전개하였다. 이 가운데 〈정기程器〉는 외장과 내면을 조화시켜 작품의 심층의미를 파악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마지막 제50장 〈서지序志〉는 전체의 총괄이다.

5. 가치와 영향

《문심조룡》은 당나라 유지기劉知幾의 《사통史通》, 청나라 장학성章學誠의 《문사통의文史通義》와 함께 중국 문사비평文史批評의 3대 명저로 손꼽힌다. 《사통》과 《문사통의》는 역사비평인데 비하여 《문심조룡》은 시문비평·문학비평이다. 《문심조룡》은 문학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서적으로서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저술이다. 후세에 나온 시화詩話나 사화詞話 등이 문학작품의 인상비평에 치우친 데 비하여 문학의 본질, 양식, 효용 등 광범한 내용을 체계 있게 정리하였다. 또한 육조六朝 문학의 변천과 문학 관념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육조시대는 문학이 문학으로서 자립한 시대인데, 이 책은 그 기념비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학이론만이 아니라 육조시대의 문화적 현실을 전반적으로 반영하고 있어서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도 중요하다.
한漢나라 말기부터 육조에 이르는 시기는 정치적·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하였지만 현학玄學과 불학佛學이 번성하고 문화예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육조의 지식인들은 정신생명의 불후를 추구하여 저작을 중시하였고 문학의 역할에 큰 기대를 하였다. 특히 육조의 문인들은 문학은 감정으로 인해 탄생한다는 ‘연정緣情’ 관념을 인식하여 순수문예이론을 탄생시켰다. 공정한 평가를 지향하는 ‘절충’은 유협이 문학을 논하면서 일관되게 유지한 기본방법이자 태도이다. 이와 같은 그의 태도는 문학에 관련된 수많은 문제에 있어서 비교적 전면적이며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유협은 성인의 사상을 밝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가의 경전에 주를 달고 해석하는 것이겠지만, 한나라 때 이미 경전 연구자들이 상세하게 그 작업을 행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치도治道와 관련이 깊은 문장을 연구하고자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문학을 교조적敎條的인 관점에서 파악하기보다는 인간 감정과 정신의 발로로서 파악하고, 창작과정과 수사법, 비평법을 깊이 연찬하였다.
한국에서 《문심조룡》이 주목받은 것은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재위 875~886) 때이다. 최치원崔致遠의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郞慧和尙白月葆光塔碑〉에 의하면 헌강왕은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문심조룡》의 구절을 전고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881년 당나라 희종僖宗이 황소黃巢의 난으로 파천하게 되자, 낭혜화상을 위문사慰問使로 파견하면서 송별연을 열어 ‘육의六義’를 연마한 사람들을 모아 송별가를 짓게 하였다고 한다(〈유당신라국고양조국사교시대랑혜화상백월보광지탑비명병서有唐新羅國故兩朝國師敎諡大朗慧和尙白月葆光之塔碑銘幷序〉). 당시 중국 한시풍의 운어韻語를 지을 줄 아는 지식인-문인층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문심조룡》이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신라 지식인-문인층 사이에 널리 읽혔음을 짐작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문의 덕은 크나니, 천지와 더불어서 함께 태어났다. 어째서인가? 검은 것(하늘)과 누런 것(대지)이 색이 섞이고 모난 것과 둥근 것이 형체가 나뉘어져서, 해와 달이 옥을 중첩하듯 겹쳐져서 하늘에 붙은 상을 드리우고, 산과 강이 찬란하게 장식하여 땅이 다스려진 형을 깔게 되니, 이것이 대개 도의 문채이다. 빛을 토하는 것을 올려다보고 무늬를 품고 있는 것을 굽어 살펴보아, 높고 낮은 것이 위치를 정하였으므로, 양의(음양)가 이미 생겨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이 참여하여 성령이 모이니, 이것들을 삼재라고 하며, 오행의 빼어난 것으로 실로 천지의 마음이다. 마음이 생기면 말이 서게 되고, 말이 서면 문이 밝아지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도이다.[文之爲德也大矣 與天地並生者 何哉 夫玄黃色雜 方圓體分 日月疊璧 以垂麗天之象 山川煥綺 以鋪理地之形 此蓋道之文也 仰觀吐曜 俯察含章 高卑定位 故兩儀旣生矣 惟人參之 性靈所鍾 是謂三才 爲五行之秀[人] 實天地之心 心生而言立 言立而文明 自然之道也]” 〈원도原道〉
• “무릇 문심이라는 것은 문을 지을 때 마음을 사용함이다. 옛날에 연자涓子는 ‘금심琴心’이라하고 왕손王孫은 ‘교심巧心’이라 하였으니, 마음이란 아름답기에, 따라서 그 말을 쓴 것이다. 예로부터 문장이란 무늬를 새겨서 체제를 이루었으니, 어찌 추석騶奭의 무리가 말한 ‘조룡雕龍’에서 그 뜻을 가져왔겠는가! 우주는 아득히 이어지고 많은 것들이 거칠게 섞여 있기에, 특출나기 위해서는 지혜와 술법이 있을 뿐이다. 세월은 홀연히 지나가고 성령은 머무는 곳이 없기에, 명성을 튀어나게 하고 진실을 드날리기 위해서는 만들어내고 지어낼 뿐이다. 무릇 〈사람은〉 천지의 모양을 닮았고 오재오행의 성품을 부여받아, 귀와 눈은 해와 달을 본뜨고 목소리와 기운은 바람과 우레에 나란하게 하기에, 만물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이미 신령이 있을 따름이다. 형체는 비록 초목과 같이 약하지만 명성은 황금과 돌보다 견고하다. 그러므로 군자는 세상에 처함에 있어서 덕을 수립하고 말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지, 어찌 변론을 좋아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그러할 따름이다.[夫文心者 言爲文之用心也 昔涓子琴心 王孫巧心 心哉美矣 故用之焉 古來文章 以雕縟成體 豈取騶奭之群言雕龍也 夫宇宙綿邈 黎獻紛雜 拔萃出類 智術而已 歲月飄忽 性靈不居 騰聲飛實 制作而已 夫有肖貌天地 稟性五才 擬耳目於日月 方聲氣乎風雷 其超出萬物 亦已靈矣 形同草木之脆 名踰金石之堅 是以君子處世 樹德建言 豈好辯哉 不得已也]” 〈서지序志〉
(2)색인어:유협劉勰, 문심조룡文心雕龍, 승우僧祐, 비평批評, 신사神思, 체성體性, 풍골風骨, 통변通變, 정세定勢, 정채情采
(3)참고문헌
• 文心雕龍(廣漢魏叢書)
• 文心雕龍(四部叢刊)
• 文心雕龍校注 上·下(黄叔琳(淸), 臺灣開明書店)
• 文心雕龍注(范文瀾 注, 人民文學出版社)
• 文心雕龍注譯(郭晉稀 注, 甘肅人民出版社)
• 文心雕龍校証(王利器, 上海古籍出版社)
• 文心雕龍譯注(周振甫, 人民文學出版社)
• 文心雕龍辭典(周振甫 主編, .中華書局出版)
• 文心雕龍譯注(陸侃如‧牟世金 譯注, 齊魯書社)
• 文心雕龍講疏(王元化 著·岡村繁 主編, 汲古書院)
• 文心雕龍校注通譯(戚良德, 上海古籍出版社)
• The Literary Mind and the Carving of Dragons(Vincent Yu-chung Shih 英訳本 ; Hong Kong:Chinese University Press)
• 文心雕龍(興膳宏 譯注, 《世界古典文學全集》25 筑摩書房)
• 中國古典文學大系 54 中國藝術論集(目加田誠 譯注, 平凡社)
• 新釋漢文大系 64·65 文心雕龍 上·下(戸田浩暁 譯注, 明治書院)
• 文心雕龍の研究(門脇廣文, 創文社東洋学叢書)
• 新版 中國の文學理論(興膳宏, 清文堂出版, 《中國文學理論研究集成》1)
• 中國文學理論の展開(興膳宏, 清文堂出版, 《中國文學理論研究集成》2)
• 문심조룡 :동양 문예학의 집대성(김민나, 살림)
• 문심조룡(김관웅‧김정은 역, 올재)
【심경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18.05.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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