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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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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0권 50편으로 이루어진 중국 시문(詩文) 평론서이다. 유협(劉勰)이 남조(南朝) 양(梁)나라 말엽 499∼501년에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로 저술하였다. 37,000자에 이른다. 이 책의 〈서지(序志)〉편에서 유협은 ‘문심조룡’의 의미를 풀이하였는데, ‘문심(文心)’은 문자언어 예술을 창작하거나 감상하는 인간의 정신을 뜻하고, ‘조룡(雕龍)’은 예술가가 용을 조각하듯 문학을 구상하고 창작하는 기교를 뜻한다. 유협은 이 책의 전반 25편에서 33종의 범주로 문학의 원리와 문학의 각 문체에 관하여 논술하고, 후반 25편에서 창작, 수사, 문학 환경, 작가론 등을 논술하였다. 같은 시대 종영(鍾嶸)의 《시품(詩品)》, 소명태자(昭明太子)의 《문선(文選)》과 함께 중국문학론 및 동양고전문학론 연구에 주요한 원전이다.

2. 저자

(1)성명:유협(劉勰)(465~?). 범문란(范文瀾)의 《문심조룡주(文心雕龍注)》는 유협이 어려서 의탁하였던 정림사(定林寺)의 승려 승우(僧祐)의 졸년에 의거하여 유엽의 생년을 남북조(南北朝)시대 송(宋)나라 명제(明帝) 태시(泰始) 원년(465)으로 비정하였다. 하지만 왕갱생(王更生)은 송나라 효무제(孝武帝) 대명(大明) 8년(464)으로 비정하였다. 유협의 졸년은 설이 분분하다. 이를테면 왕금릉(王金凌)의 《유협연보(劉勰年譜)》는 양나라 무제(武帝) 보통(普通) 3년(522)으로 보았으나, 화중(華仲)의 〈유언화간보(劉彥和簡譜)〉는 양나라 무제 보통 원년(520), 주소항(周紹恒)의 〈유협졸년신고(劉勰卒年新考)〉는 보통 4,5년(523,524), 이경갑(李庆甲)의 〈유협졸년고〉는 대통(大通) 4년(532), 이왈강(李曰剛)의 〈양유협세계연보(梁劉勰世系年譜)〉는 대동 5년(539)으로 보았다.
(2)자(字)·별호(別號):자는 언화(彦和).
(3)출생지역:원적지는 동완군(東莞郡) 거현(莒縣)(현 중국 산동성(山東省) 거현(莒縣))이며, 대대로 경구(京口)(현 중국 강소성(江蘇省) 진강(鎭江))에 거주하였다.
(4)주요활동과 생애
유협은 제(齊)나라 도혜왕(悼惠王) 유비(劉肥)의 후손으로, 6세조 유무(劉撫)는 팽성내사(彭城内史)를 지냈고, 5세조 유상(劉爽)은 산음현령(山陰縣令)을 지냈으며, 4세조 유중도(劉仲道)는 여요현령(余姚縣令)을 지냈다. 영가(永嘉)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의 선조는 양자강을 건너 경구(京口)에 정착하였다. 부친 유상(劉尙)은 월기교위(越騎校尉)를 지냈는데, 원휘(元徽) 2년(474년)에 건강(建康)에서 발생한 반역을 토벌하는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죽었다. 유협은 어려서 부친을 잃고 집이 가난하여, 정림사(定林寺) 승려 승우(僧祐)에게 의지하여 글을 읽었다. 10여 년이 지나 불교의 경론에 정통하게 되었다. 이 무렵 유가의 경전도 함께 연찬(硏鑽)한 듯하다. 30여 세에 3만 7천 글자의 《문심조룡》을 엮었다. 심약(沈約)은 이를 두고, 문리(文理)를 깊이 얻었다고 칭찬하였다. 징소되어 봉조청(奉朝請)에 임명되었다. 뒤에 임천왕(臨川王)의 기실(記室)을 지냈고, 다시 태자기실(太子記室)이 되었다. 대동(大同) 4년(538년) 소명태자 소통(蕭統)이 서거하자 출가할 것을 청하였으나, 양나라 무제가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머리를 불태워 뜻을 분명히 밝혀, 마침내 윤허를 받아 승려가 되었다. 법호는 혜지(慧地)이다. 승려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졸하였다.
(5)주요저작:유협은 《문심조룡》 이외에 〈멸혹론(滅惑論)〉과 〈양건안왕조섬산석성사석상비(梁建安王造剡山石城寺石像碑)〉 등을 남겼다. 일설에 의하면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과 《유자(劉子)》도 그의 저술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3. 서지사항

《문심조룡》의 판본으로는 1907년 돈황에서 발견된 당나라 때 사본의 잔권(殘卷)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1907년 스타인.M.오렐(斯坦因.M.奥雷尔 Stein.M.Aurel)이 돈황에서 발견한 사본 잔권으로,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스타인장권제5478斯坦因藏卷第5478의 유물이다. 제1편(원도(原道)) 말단부터 제15편(해은(諧隱)) 수단(首段)까지만 있으며, 혁지(革紙)에 행서 수초(手钞)된 판본이다. 이후 원나라 지정(至正) 15년(1355) 가흥지부(嘉興知府) 유정(劉貞)이 《문심조룡》 10권을 판각하였는데, 이것이 현전하는 판본 가운데 가장 초기의 각본이다.
명나라에 들어와 목판본이 많이 나왔다. 우선 명나라 홍치(弘治) 17년(1504) 풍윤정(馮允中)이 오중(吳中)에서 판각한 것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활자본도 나와, 황비열(黄丕烈) 《요포장서제발(蕘圃藏書題跋)》에 저록되어 있다. 또한 명나라 가정(嘉靖) 19년(1540)에는 왕일원(汪一元)이 주석한 《文心雕龙》 10권이 신안(新安)에서 판각되었다. 가정(嘉靖) 22년(1543) 사회(佘誨) 각본이 있고, 만력(萬曆) 7년(1579) 장지상(張之象) 서본(序本)이 함분루(涵芬楼) 《사부총간(四部叢刊)》에 영인 수록하였다. 장지상본(張之象本)의 이본 장을본(張乙本)도 있다. 만력 10년(1582)에는 《양경유편(兩京遺編)》본이 나왔는데, 호유신(胡维新)‧원일괴(原一魁) 서(序)가 있다. 만력 20년(1592) 하윤중(何允中)의 《한위총서(漢魏叢書)》에 수록된 책은 사본(佘本)에서 유래하여, 권수에 사회(佘誨) 서가 있다.
만력 37년(1609) 길안(吉安) 유운(劉雲)이 남경에서 판각한 매경생(梅慶生)(자유(子庾)) 음주본(音注本)이 있다. ‘금릉(金陵)의 선본(善本)’이라 일컬어진다. 권수에 허연조(許延祖)가 해서로 쓴 고기원(顧起元) 서(序)가 있고, 권말에 주모(朱謀)의 발(跋)이 있고, 양신(楊愼)의 비점(批點)을 가져오되 5색을 5종 부호로 표시하였다. 천계 2년(1612) 제6차 교정개각본(校定改刻本)이 나왔다. 서문 다음에 도목(都穆)의 발(跋) 한 장이 더 있다. 매경생 만력본을 기초로 금릉(金陵) 취금당판(聚錦堂板) 《합갑오가언(合刻五家言)》본이 나왔다. 시기는 매경생 천계본보다는 빠르다. 양신(楊愼)‧조학전(曹學佺)‧매경생(梅慶生)‧종성(鍾惺) 등 4가(四家)의 평어(評語)를 각 편 미단(眉端)에 배열하였다. 이후 이것을 기초로 양걸(梁杰)(건옥(廷玉)) 정정본(訂正本)이 나왔다. 또 매경생 만력본을 저본으로 종성(鍾惺) 평어의 비서십팔종본(秘書十八種本)이 나왔는데, 권수에 조학전(曹學佺)의 만력 40년(1612) 서문이 있고, 종성의 평어를 미단(眉端)에 배열하였다. 숭정(崇禎) 7년(1634) 진인석(陳仁錫)이 판각한 기상회편본(奇賞匯編本)이 나왔는데, 매경생 만력본을 저본으로 하되 약간 다른 곳이 있다.
만력 39년(1611) 왕유검(王惟儉)의 《문심조룡훈고(文心雕龍訓故)》가 판각되었다. 만력 40년(1612) 이후 명나라 능운(凌雲)이 간행한 오색투인본(五色套印本)이 간행되었는데, 조학전(曹學佺)‧민승(閔繩)의 서(序)를 붙였고, 교점(批點)과 교어(校語)에 오색묵(五色墨)을 사용하였다. 천계 7년(1627) 사항(謝恒) 초본(鈔本)이 나왔는데, 권말에 풍서(馮舒)의 주필(朱筆) 발문이 있다. 숭정(崇禎) 11년(1638) 황주(黄澍) 섭소태(葉紹泰) 평선(評選)의 한위별해본(漢魏别解本)이 나왔다. 숭정 15년(1642) 증정별해본(增定别解本)이 판각되었다. 또한 장용(張墉) 홍길신(洪吉臣) 참주(参注)의 《양승암선생비점문심조룡(楊升庵先生批点文心雕龍)》이 있는데, 이 판본은 청나라 강희(康熙) 34년 중전본(重鐫本)이 무림(武林) 포청각(抱靑閣)에서 간행되었다.
청나라 때도 많은 판본이 나왔다. 건륭(乾隆) 6년(1741) 양소당(養素堂)에서 황숙림(黄叔琳) 집주본(輯注本)이 판각되었는데, 청나라 중엽 이후 가장 통행하였다.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된 황씨 집주 문진각본(文津閣本)이 바로 이것이다. 건륭 56년(1791)에 왕모(王謨)의 《광한위총서(廣漢魏叢書)》본이 나왔는데, 하윤중 《한위총서》본과는 약간 다르다. 건륭 56년(1791) 장송손(張松孫) 집주본(輯注本)이 판각되었다. 《사고전서》 문진각본(文津閣本)과 《사고전서》 문소각본(文溯閣本)과는 약간 다르다. 도광(道光) 13년(1833) 노곤(盧坤)(양광절서(兩廣節署)) 판각본이 나왔는데, 운향당주묵투인본(芸香堂朱墨套印本)과 한묵원복각본(翰墨園覆刻本)의 두 종이 있다. 황주기(黄注紀) 평(評), 황숙림(黄叔琳) 집주(輯注), 기윤(紀昀) 비(批)가 있다. 범문란(范文瀾) 주석본은 이 텍스트이거나 《사부비요(四部備要)》본을 사용하였다. 광서(光緖) 원년(1875)에 호북(湖北) 숭문서국(崇文書局)에서 《삼십삼종총서(三十三種叢書)》본이 판각되기 시작하여 광서 3년(1877)에 이루어졌다.
일본에서는 오카 핫구(岡白駒, 1692-1767) 교정구두본(校正句讀本)이 향보(享保) 16년(1731)에 출판되었다. 《한위총서》본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이후 상고당(尙古堂)에서 다시 출판되었다.

4. 내용

이 책의 〈서지(序志)〉편에서 유협은 ‘문심조룡’의 의미를 풀이하고 있다. ‘문심(文心)’은 문자언어 예술을 창작하거나 감상하는 인간의 정신을 뜻하고, ‘조룡(雕龍)’은 예술가가 용을 조각하듯 문학을 구상하고 창작하는 기교를 뜻한다.
전체 10권 50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반 25편은 문장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하여 각 문체의 완성을 논하였다. 전반 25편의 앞부분에 놓여 있는 〈원도(原道)〉·〈징성(徵聖)〉·〈종경(宗經)〉·〈정위(正緯)〉·〈변소(辨騷)〉 등 5편은 책 전체의 강요(綱要)로, 문학은 경도(經道)를 선양하고 풍화(風化)에 비익(裨益)함이 있어야 한다는 도리를 천명하였다. 후반 25편은 문학의 본체 및 작용, 문체의 특질·형식·풍격을 서술하고 문학의 원리에 근거하여 비평의 원칙과 방법을 논하였다.
전체 10권의 권별 목록은 다음과 같다. 권1은 〈원도(原道)〉·〈징성(徵聖)〉·〈종경(宗經)〉·〈정위(正緯)〉·〈변소(辨騷)〉, 권2는 〈명시(明詩)〉·〈악부(樂府)〉·〈전부(詮賦)〉·〈송찬(訟讚)〉·〈축맹(祝盟)〉, 권3은 〈명잠(銘箴)〉·〈뇌비(誄碑)〉·〈애조(哀弔)〉·〈잡문(雜文)〉·〈해은(諧隱)〉, 권4는 〈사전(史傳)〉·〈제자(諸子)〉·〈논설(論說)〉·〈조책(詔策)〉·〈격이(檄移)〉, 권5는 〈봉선(封禪)〉·〈장표(章表)〉·〈주계(奏啓)〉·〈의대(議對)〉·〈서기(書記)〉, 권6은 〈신사(神思)〉·〈체성(體性)〉·〈풍골(風骨)〉·〈통변(通變)〉·〈정세(定勢)〉, 권7은 〈정채(情采)〉·〈용재(鎔裁)〉·〈성률(聲律)〉·〈장구(章句)〉·〈여사(麗辭)〉, 권8은 〈비흥(比興)〉·〈과식(夸飾)〉·〈사류(事類)〉·〈연자(練字)〉·〈은수(隱秀)〉, 권9는 〈지하(指瑕)〉·〈양기(養氣)〉·〈부회(附會)〉·〈총술(總術)〉·〈시서(時序)〉, 권10은 〈물색(物色)〉·〈재략(才略)〉·〈지음(知音)〉·〈정기(程器)〉·〈서지(序志)〉 등이다.
각 장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러하다. 제1장 〈원도(原道)〉는 자연의 도와 인문의 도를 통일적으로 파악하고 문장은 그 양자를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제2장 〈징성(徵聖)〉은 경전의 작가를 성인의 반열에 두었고, 제3장 〈종경(宗經)〉은 불변의 진리를 담지하는 것이 경전이라고 하였다. 제4장 〈정위(正緯)〉는 정경(正經)과 위서(緯書)를 가려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제5장 〈변소(辨騷)〉는 《이소(離騷)》를 경전에 준하는 것으로 위치지었다. 제6장 〈명시(明詩)〉, 제7장 〈악부(樂府)〉, 제8장 〈전부(詮賦)〉, 제9장 〈송찬(頌讚)〉, 제10장 〈축맹(祝盟)〉, 제11장 〈명잠(銘箴)〉, 제12장 〈뇌비(誄碑)〉, 제13장 〈애조(哀弔)〉는 운문(韻文)의 각 양식에 대하여 논하였다. 제14장 〈잡문(雜文)〉과 제15장 〈해은(諧讔)〉은 운문과 산문의 중간 양식에 대하여 논하였다. 이후 제16장 〈사전(史傳)〉, 제17장 〈제자(諸子)〉, 제18장 〈논설(論說)〉, 제19장 〈조책(詔策)〉, 제20장 〈격이(檄移)〉, 제21장 〈봉선(封禪)〉, 제22장 〈장표(章表)〉, 제23장 〈주계(奏啓)〉, 제24장 〈의대(議對)〉, 제25장 〈서기(書記)〉는 산문의 여러 양식과 기능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제26장 〈신사(神思)〉, 제27장 〈체성(體性)〉, 제28장 〈풍골(風骨)〉, 제29장 〈통변(通變)〉, 제30장 〈정세(定勢)〉, 제31장 〈정채(情采)〉, 제32장 〈용재(鎔裁)〉, 제33장 〈성률(聲律)〉, 제34장 〈장구(章句)〉, 제35장 〈여사(麗辭)〉, 제36장 〈비흥(比興)〉, 제37장 〈과식(夸飾)〉, 제38장 〈사류(事類)〉, 제39장 〈연자(練字)〉, 제40장 〈은수(隱秀)〉, 제41장 〈지하(指瑕)〉, 제42장 〈양기(養氣)〉, 제43장 〈부회(附會)〉, 제44장 〈총술(總術)〉은 창작론과 수사법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논하였다. 제45장 〈시서(時序)〉, 제46장 〈물색(物色)〉, 제47장 〈재략(才略)〉, 제48장 〈지음(知音)〉, 제49장 〈정기(程器)〉는 비평이론을 전개하였다. 이 가운데 〈정기(程器)〉는 외장과 내면을 조화시켜 작품의 심층의미를 파악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마지막 제50장 〈서지(序志)〉는 전체의 총괄이다.

5. 가치와 영향

《문심조룡》은 당나라 유지기(劉知幾)의 《사통(史通)》, 청나라 장학성(章學誠)의 《문사통의(文史通義)》와 함께 중국 문사비평(文史批評)의 3대 명저로 손꼽힌다. 《사통》과 《문사통의》는 역사비평인데 비하여 《문심조룡》은 시문비평·문학비평이다. 《문심조룡》은 문학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서적으로서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저술이다. 후세에 나온 시화(詩話)나 사화(詞話) 등이 문학작품의 인상비평에 치우친 데 비하여 문학의 본질, 양식, 효용 등 광범한 내용을 체계 있게 정리하였다. 또한 육조(六朝) 문학의 변천과 문학 관념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육조시대는 문학이 문학으로서 자립한 시대인데, 이 책은 그 기념비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학이론만이 아니라 육조시대의 문화적 현실을 전반적으로 반영하고 있어서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도 중요하다.
한(漢)나라 말기부터 육조에 이르는 시기는 정치적·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하였지만 현학(玄學)과 불학(佛學)이 번성하고 문화예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육조의 지식인들은 정신생명의 불후를 추구하여 저작을 중시하였고 문학의 역할에 큰 기대를 하였다. 특히 육조의 문인들은 문학은 감정으로 인해 탄생한다는 ‘연정(緣情)’ 관념을 인식하여 순수문예이론을 탄생시켰다. 공정한 평가를 지향하는 ‘절충’은 유협이 문학을 논하면서 일관되게 유지한 기본방법이자 태도이다. 이와 같은 그의 태도는 문학에 관련된 수많은 문제에 있어서 비교적 전면적이며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유협은 성인의 사상을 밝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가의 경전에 주를 달고 해석하는 것이겠지만, 한나라 때 이미 경전 연구자들이 상세하게 그 작업을 행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치도(治道)와 관련이 깊은 문장을 연구하고자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문학을 교조적(敎條的)인 관점에서 파악하기보다는 인간 감정과 정신의 발로로서 파악하고, 창작과정과 수사법, 비평법을 깊이 연찬하였다.
한국에서 《문심조룡》이 주목받은 것은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재위 875~886) 때이다. 최치원(崔致遠)의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郞慧和尙白月葆光塔碑)〉에 의하면 헌강왕은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문심조룡》의 구절을 전고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881년 당나라 희종(僖宗)이 황소(黃巢)의 난으로 파천하게 되자, 낭혜화상을 위문사(慰問使)로 파견하면서 송별연을 열어 ‘육의(六義)’를 연마한 사람들을 모아 송별가를 짓게 하였다고 한다(〈유당신라국고양조국사교시대랑혜화상백월보광지탑비명병서(有唐新羅國故兩朝國師敎諡大朗慧和尙白月葆光之塔碑銘幷序)〉). 당시 중국 한시풍의 운어(韻語)를 지을 줄 아는 지식인-문인층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문심조룡》이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신라 지식인-문인층 사이에 널리 읽혔음을 짐작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문의 덕은 크나니, 천지와 더불어서 함께 태어났다. 어째서인가? 검은 것(하늘)과 누런 것(대지)이 색이 섞이고 모난 것과 둥근 것이 형체가 나뉘어져서, 해와 달이 옥을 중첩하듯 겹쳐져서 하늘에 붙은 상을 드리우고, 산과 강이 찬란하게 장식하여 땅이 다스려진 형을 깔게 되니, 이것이 대개 도의 문채이다. 빛을 토하는 것을 올려다보고 무늬를 품고 있는 것을 굽어 살펴보아, 높고 낮은 것이 위치를 정하였으므로, 양의(음양)가 이미 생겨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이 참여하여 성령이 모이니, 이것들을 삼재라고 하며, 오행의 빼어난 것으로 실로 천지의 마음이다. 마음이 생기면 말이 서게 되고, 말이 서면 문이 밝아지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도이다.[文之爲德也大矣 與天地並生者 何哉 夫玄黃色雜 方圓體分 日月疊璧 以垂麗天之象 山川煥綺 以鋪理地之形 此蓋道之文也 仰觀吐曜 俯察含章 高卑定位 故兩儀旣生矣 惟人參之 性靈所鍾 是謂三才 爲五行之秀[人] 實天地之心 心生而言立 言立而文明 自然之道也]” 〈원도(原道)〉
• “무릇 문심이라는 것은 문을 지을 때 마음을 사용함이다. 옛날에 연자(涓子)는 ‘금심(琴心)’이라하고 왕손(王孫)은 ‘교심(巧心)’이라 하였으니, 마음이란 아름답기에, 따라서 그 말을 쓴 것이다. 예로부터 문장이란 무늬를 새겨서 체제를 이루었으니, 어찌 추석(騶奭)의 무리가 말한 ‘조룡(雕龍)’에서 그 뜻을 가져왔겠는가! 우주는 아득히 이어지고 많은 것들이 거칠게 섞여 있기에, 특출나기 위해서는 지혜와 술법이 있을 뿐이다. 세월은 홀연히 지나가고 성령은 머무는 곳이 없기에, 명성을 튀어나게 하고 진실을 드날리기 위해서는 만들어내고 지어낼 뿐이다. 무릇 〈사람은〉 천지의 모양을 닮았고 오재오행의 성품을 부여받아, 귀와 눈은 해와 달을 본뜨고 목소리와 기운은 바람과 우레에 나란하게 하기에, 만물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이미 신령이 있을 따름이다. 형체는 비록 초목과 같이 약하지만 명성은 황금과 돌보다 견고하다. 그러므로 군자는 세상에 처함에 있어서 덕을 수립하고 말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지, 어찌 변론을 좋아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그러할 따름이다.[夫文心者 言爲文之用心也 昔涓子琴心 王孫巧心 心哉美矣 故用之焉 古來文章 以雕縟成體 豈取騶奭之群言雕龍也 夫宇宙綿邈 黎獻紛雜 拔萃出類 智術而已 歲月飄忽 性靈不居 騰聲飛實 制作而已 夫有肖貌天地 稟性五才 擬耳目於日月 方聲氣乎風雷 其超出萬物 亦已靈矣 形同草木之脆 名踰金石之堅 是以君子處世 樹德建言 豈好辯哉 不得已也]” 〈서지(序志)〉
(2)색인어:유협(劉勰), 문심조룡(文心雕龍), 승우(僧祐), 비평(批評), 신사(神思), 체성(體性), 풍골(風骨), 통변(通變), 정세(定勢), 정채(情采)
(3)참고문헌
• 文心雕龍(廣漢魏叢書)
• 文心雕龍(四部叢刊)
• 文心雕龍校注 上·下(黄叔琳(淸), 臺灣開明書店)
• 文心雕龍注(范文瀾 注, 人民文學出版社)
• 文心雕龍注譯(郭晉稀 注, 甘肅人民出版社)
• 文心雕龍校証(王利器, 上海古籍出版社)
• 文心雕龍譯注(周振甫, 人民文學出版社)
• 文心雕龍辭典(周振甫 主編, .中華書局出版)
• 文心雕龍譯注(陸侃如‧牟世金 譯注, 齊魯書社)
• 文心雕龍講疏(王元化 著·岡村繁 主編, 汲古書院)
• 文心雕龍校注通譯(戚良德, 上海古籍出版社)
• The Literary Mind and the Carving of Dragons(Vincent Yu-chung Shih 英訳本 ; Hong Kong:Chinese University Press)
• 文心雕龍(興膳宏 譯注, 《世界古典文學全集》25 筑摩書房)
• 中國古典文學大系 54 中國藝術論集(目加田誠 譯注, 平凡社)
• 新釋漢文大系 64·65 文心雕龍 上·下(戸田浩暁 譯注, 明治書院)
• 文心雕龍の研究(門脇廣文, 創文社東洋学叢書)
• 新版 中國の文學理論(興膳宏, 清文堂出版, 《中國文學理論研究集成》1)
• 中國文學理論の展開(興膳宏, 清文堂出版, 《中國文學理論研究集成》2)
• 문심조룡 :동양 문예학의 집대성(김민나, 살림)
• 문심조룡(김관웅‧김정은 역, 올재)
【심경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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