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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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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난성집(欒城集)》은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소철(蘇轍)이 지은 시문별집(詩文別集)이다. 《소문정공문집(蘇文定公文集)》·《소문정공문(蘇文定公集)》·《소문정공난성집(蘇文定公欒城集)》·《소철집(蘇轍集)》이라고도 한다. 난성(欒城)은 하북(河北) 난성현(欒城縣)으로, 자신의 선조인 소미도(蘇味道)가 살았던 곳이어서 소철(蘇轍)이 옛 선조의 고향을 생각하며 자신의 호(號)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 저자

(1) 성명:소철(蘇轍)(1039~1112)
(2) 자(字)·별호(別號):자는 자유(子由) 또는 동숙(同叔). 호는 난성(欒城) 또는 영빈유로(潁濱遺老).
(3) 출생지역:미주(眉州) 미산(眉山)(현 사천성(四川省) 미산(眉山))
(4) 주요활동과 생애
북송 때의 이름난 정치가이며 문학가요 학자이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며, 아버지 소순(蘇洵) 형 소식(蘇軾)과 함께 삼소(三蘇)로 부르기도 하고, 또 소식(蘇軾)을 대소(大蘇) 소철(蘇轍)을 소소(小蘇)로 부르기도 한다. 인종(仁宗) 가우(嘉祐) 2년(1057) 19살 때 상경하여 당시 문단의 영수였던 구양수(歐陽修) 등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이 해에 형 소식과 함께 과거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상주군사추관(商州軍事推官)을 거쳐 제치삼사조례사검상문자(制置三司條例司檢詳文字)을 지내다가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여 하남추관(河南推官)으로 좌천되고 그 후 응천부첨서판관(應天府簽書判官) 등을 지냈다. 원풍(元豊) 연간에는 다시 감균주염주세(監筠州鹽酒稅)로 폄적되었다가 철종(哲宗) 때에 구법당(舊法黨)이 정권을 잡자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郎), 상서우승(尚書右丞), 문하시랑(門下侍郎) 등을 지냈으며, 소성(紹聖) 연간에 다시 신법당에 의해 뇌주(雷州)로 좌천되었다. 휘종(徽宗) 숭녕(崇寧) 년간에 조청대부(朝請大夫)로 강등된 뒤에 복직되어 대중대부(大中大夫)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관직에서 물러나 허주(許州)에 살면서 영빈유로(潁濱遺老)라는 호를 지어 10여 년 동안 저작에만 몰두하였다. 휘종(徽宗) 정화(政和) 2년 74세의 나이로 죽었다. 죽은 뒤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로 추증되고, 문정(文定)이란 시호를 받았다.
(5) 주요저작:《난성집(欒城集)》 84권 혹은 96권, 《시집전(詩集傳)》 20권, 《춘추집해(春秋集解)》 12권, 《고사(古史)》 60권, 《맹자해(孟子解)》 1권, 《노자해(老子解)》 2권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소철의 《난성집(欒城集)》은 송대에는 여러 판본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응조집(應詔集)》 12권을 《난성집(欒城集)》에 포함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84권의 《난성집(欒城集)》과 96권의 《난성집(欒城集)》으로 나뉜다. 최초의 판본은 송각본(宋刻本)인 《소문정공문집(蘇文定公文集)》으로, 《전집(前集)》 50권, 《후집(後集)》 24권, 《삼집(三集)》 10권, 《응조집(應詔集)》 12권 모두 96권으로 이루어졌으며, 지금은 46권만 남아 있다. 이 외에 명청몽헌각본(明清梦軒刻本)인 《소문정공난성집(蘇文定公欒城集)》도 있는데, 송각본(宋刻本)인 《소문정공문집(蘇文定公文集)》과 구성은 대체로 동일하다. 또 청(清) 도광(道光) 인진(壬辰)년(1832)에 판각된 미주(眉州) 삼소사각본(三蘇祠刻本)도 있지만, 책의 권수나 문자 등은 몽헌각본(梦軒刻本)과 차이가 있다. 또 《응조집(應詔集)》 12권이 포함되지 않은 송각(宋刻) 체수본(遞修本)인 《소문정공집(蘇文定公集)》과 《난성집(欒城集)》이 있는데, 10권과 21권이 각각 남아 있다. 이 외에 명(明) 가정(嘉靖) 20년 촉왕(蜀王) 주양허(朱讓栩) 판본의 《난성집(欒城集)》이 있는데, 《전집(前集)》 50권, 《후집(後集)》 24권, 《삼집(三集)》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4. 내용

《난성집(欒城集)》은 《전집(前集)》 50권, 《후집(後集)》 24권, 《삼집(三集)》 10권으로 된 84권의 《난성집(欒城集)》과 《응조집(應詔集)》 12권이 포함된 96권의 《난성집(欒城集)》이 있다. 더러는 《전집(前集)》 50권만을 《난성집(欒城集)》이라고도 한다. 《전집(前集)》 50권은 상서좌승(尙書左丞)에 있을 때 원우(元祐)년간(1086~1094) 이전의 시문저작들을 모아 편찬한 것이고, 《후집(後集)》 24권은 소철의 나이 68세 때인 숭령(崇寧)4년(1105)에 만년에 지은 문장을 24권으로 묶어 《난성후집(欒城後集)》이라 하였다. 《삼집(三集)》 10권은 5년 뒤 정화(政和) 원년(元年) 다시 유고(遺稿)를 정리하여 부류별로 묶어 《난성제삼집(欒城第三集)》이라고 하였다. 《응조집(應詔集)》 12권은 논책(論策)과 응시(應試)할 때의 저작(著作)을 모은 것이다.

5. 가치와 영향

소철(蘇轍)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구양수(歐陽修)·소식(蘇軾) 만큼 큰 호응은 받지 못하였지만, 그의 독특한 풍격의 작품들이 당송고문(唐宋古文)의 선집(選集)에 수록되어 꾸준한 관심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종(中宗) 때에 여러 차례 간행된 《당송사대가문초(唐宋四家文抄)》·《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등을 통해 그의 작품들이 널리 읽혔으며, 조선(朝鮮)의 정조(正祖)가 손수 뽑아 만든 《당송팔자백선(唐宋八子百選)》에 실려 있는 〈노자론(老子論)〉·〈군술책(君術策)〉·〈상추밀한태위서(上樞密韓太尉書)〉·〈제주민자묘기(齊州閔子廟記)〉·〈소곡전(巢谷傳)〉 등과 같은 소철(蘇轍)의 문장이 우리나라 사대부들 사이에서 많이 애독되기도 하였다. 실제 정사에서도 연산군 때 대간(臺諫)들이 임사홍(任士洪)의 등용을 저지하면서, 소철이 신종(神宗)에게 올린 글인 〈상신종서(上神宗書)〉 중 “간악한 사람의 시초는 대간으로 꺾어도 충분하지만 커진 다음에는 간과(干戈)로 막아도 부족하다.[奸人之始,以臺諫折之而有餘,及其旣盛,以干戈禦之而不足]”고 한 말을 인용하였고, 광해군 때 홍문관에서 과거응시자의 강직한 발언을 용서해주어 언로를 넓힐 것을 청하면서, 소철이 과거에서 인종(仁宗)에게 극간(極諫)했는데도 용납된 일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일의 타당 여부는, 못 사람들의 입이 공정히 평한다.”[事之當否,衆口必公). 〈论衙前及诸役人不便札子〉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터럭만한 작은 것이라도 취할 마음이 있으면, 아래 사람들은 산처럼 큰 것을 취하려고 한다.”[上有毫髮之意,則下有丘山之取] 〈久旱放民間債欠·貼黃〉
•“정치는 낡은 정치와 새 정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니 백성을 편하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政無舊新,以便民爲本] 〈傅堯兪御史中丞〉
•“마음이 올바르면 이익이 되는 일이 눈앞에 이를 때 반드시 알게 되고, 해를 끼치는 일이 닥치게 될 때에 반드시 알아차릴 수 있다.”[心不可乱,则利至而必知,害至而必察] 〈上皇帝书〉
(2) 색인어:난성집(欒城集), 소문정공문집(蘇文定公文集), 소철(蘇轍), 전집(前集), 후집(後集), 삼집(三集), 응조집(應詔集), 소순(蘇洵), 소식(蘇軾),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3) 참고문헌
•蘇轍集, (蘇轍,中國戱劇出版社)
•譯註 唐宋八大家文抄 蘇轍, (金東柱, 傳統文化硏究會)
•蘇轍學術思想述評, (陳正雄, 文史哲出版社)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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