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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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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리대전서(性理大全書)》는 명(明)나라 성조(成祖)(재위 1402~14241)의 칙명을 받들어 호광(胡廣)과 양영(楊榮)과 김유자(金幼孜)를 비롯한 학자 42명이 공동으로 편찬하였다. 《성리대전서》의 ‘성리(性理)’는 인성(人性)과 천리(天理)를 위주로 하는 송나라의 이학(理學)을 지칭하며, ‘대전(大全)’은 그에 관한 제반 학설을 한데 모았다는 뜻이고, ‘서(書)’는 서적을 가리킨다. 이 책은 1415년 9월에 70권 30책(冊)으로 간행되었으며, 송(宋)나라의 명저(名著) 9권과 송원(宋元)의 학자 121명의 주요 학설을 수록하고 있다.
《성리대전서》는 송나라 이학자(理學者)들의 학설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내용과 체제는 주자학(朱子學)과 《주자어류(朱子語類)》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 책에 열거된 학자 121명 가운데 정주학자(程朱學者)가 절반을 넘을 뿐만 아니라 주희 및 그 제자들의 학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성리대전서》의 편찬이 정주학(程朱學)을 국시(國是)로 하는 통치 체제의 확립이라는 목적과 관련이 되어 있다.

2. 저자

(1) 성명:호광(胡廣)(1370~1418), 양영(楊榮)(1371~1440), 김유자(金幼孜)(1367~1431), 소시중(蕭時中)(1383~1425), 진순(陳徇), 주술(周述)(?~1436), 진전(陳全), 임지(林誌), 이정(李貞), 진경저(陳景著)(1397~?), 여학기(余學夔)(1372~1444), 유영청(劉永淸), 황수생(黃壽生), 진용(陳用), 진수(陳璲)(1385~1466), 왕진(王進), 황약중(黃約仲), 도순(涂順), 왕우(王羽), 동모(童謨), 오복(吳福), 오가정(吳嘉靜), 황상(黃裳), 하민(叚民), 홍순(洪順), 심승(沈升), 장창(章敞)(1376~1437), 양면(楊勉), 주침(周枕)(1381~1453), 오신(吾紳)(1381~1441), 진도잠(陳道潛)(1364~1433), 왕선(王選), 황복(黃福)(1362~1440), 조우동(趙友同)(1364~1418), 왕부원(王復原), 증진(曾振), 요사경(廖思敬), 부주(傅舟), 두관(杜觀), 안경수(顏敬守), 팽자비(彭子斐), 유계안(留季安)
(2) 자(字)·별호(別號):호광은 일명 호정(胡靖)이라고도 하며, 자(字)가 광대(光大), 호(號)는 황암(晃庵),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양영은 별칭이 양도응(楊道應) 또는 양자영(楊子榮)이며, 자가 면인(勉仁),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김유자는 이름이 선(善)인데 자(字)로 이름을 대신하였으며, 호는 퇴암(退庵),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3) 출생지역:호광은 강서성(江西省) 길수현(吉水縣), 양영은 건안(建安)(지금의 복건성(福建省) 건구(建甌)), 그리고 김유자는 지금의 강서성 협강현(挾江縣) 나전현(羅田鎭)에서 태어났다.
(4) 주요활동과 생애
호광은 남송(南宋)의 이름난 신하인 호전(胡銓)(1102~1180)의 후손으로 건문(建文) 2년(1400) 장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한림원(翰林院) 수찬(修纂)과 시강(侍講), 문연각대학사(文淵閣大學士)를 거쳐 내각수보(內閣首輔)(재상)에까지 올랐다. 성조(成祖)를 따라 두 차례 몽고(蒙古)와의 전쟁에 참전했다.
양영은 건문 2년 진사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한림원 편수(編修), 문연각대학사, 한림시독(翰林侍讀)을 거쳐 내각수보에 올랐다. 양사기(楊士奇)(1366~1444), 양부(楊溥)(1372~1446)와 아울러서 ‘삼양(三楊)’이라 칭해졌으며, 그의 거주지가 도성의 동쪽에 있었기에 당시 사람들이 ‘동양(東楊)’이라고 불렀다.
김유자는 건문 2년 진사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호과급사중(户科給事中), 한림원 검토(檢討), 문연각대학사, 태자소보(太子少保) 겸 무영전대학사(武英殿大學士)를 역임했다.
(5) 주요저작:호광의 저서로는 《호문목공잡저(胡文穆公雜著)》와 《호문목집(胡文穆集)》 등이 있고, 양영의 저서에는 《후북정기(後北征記)》와 《양문민집(楊文敏集)》이 있으며, 그리고 김유자의 저서에는 《북정록(北征錄)》과 《후북정록(後北征錄)》, 《문정공전집(文靖公全集)》이 있다.

3. 서지사항

《성리대전서》는 일명 《성리대전(性理大全)》이라고도 한다. 이 책의 편찬은 영락(永樂) 12년(1414) 11월에 시작되어 영락 13년(1415) 9월에 이르러 70권 30책(冊)으로 간행되었다. 명청(明淸) 시기에 간행된 판본으로는 경태(景泰) 6년(1455) 서림위씨인실당간본(書林魏氏仁實堂刊本), 만력(萬曆) 25년(1597) 오면학간본(吳勉學刊本), 강희(康熙) 12년(1673) 내부중수명판인본(内府重修明板印本), 그리고 《사고전서(四庫全書)》본(本) 등이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따르면 조선에 《성리대전서》가 처음 전해진 것은 세종 원년(元年)(1419)이다. 그리고 중종(中宗) 26년(1531)에 명나라의 갑인자(甲寅字)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 《성리대전서》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조선에서는 세종 10년(1428), 중종 13년(1518), 중종 32년(1537), 명종(明宗) 18년(1563), 그리고 선조(宣祖) 2년(1568)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성리대전서》를 간행하였다.

4. 내용

이 책은 모두 7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첫머리에는 명나라 성조 주체(朱棣)(1360~1424)가 쓴 서문이 실려 있다. 권1부터 권25까지는 송나라 이학자들의 아홉 종류의 책이 원문 그대로 실려 있으며, 권26에서 권70까지는 주돈이(周敦頤)(1012~1073)에서 황진(黃溍)(1227~1357)에 이르는 송나라와 원나라의 학자 121명의 주요 학설을 13개의 특정 주제별로 모아놓았다. 이 13개의 특정 주제는 다시 130여 개의 세부 항목으로 분류된다. 이 항목에 따라 학자 121명의 담론을 한 조목 한 조목 채록하되 조목마다 성씨(姓氏)만 기록하고 책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권1은 주돈이의 《태극도(太極圖)》, 권2~권3은 주돈이의 《통서(通書)》, 권4는 장재(張載)(1020~1077)의 《서명(西銘)》, 권5~권6은 장재의 《정몽(正蒙)》, 권7~권13은 소옹(邵雍)(1011~1077)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권14~권17은 주희(朱熹)(1030~1200)의 《역학계몽(易學啓蒙)》, 권18~권21은 주희의 《가례(家禮)》, 권22~권23은 채원정(蔡元定)(1135~1198)의 《율려신서(律呂新書)》, 그리고 권24~권25는 채침(蔡沈)(1167~1230)의 《홍범황극내편(洪範皇極內篇)》이 각각 수록되어 있다.
권26~권27 〈이기(理氣)〉는 총론(總論)·태극(太極)·천지(天地)·천도(天度)(역법(曆法))·천문(天文)(일월(日月)·성신(星辰)·뇌전(雷電)·풍우설박상로(風雨雪雹霜露))·음양(陰陽)·오행(五行)·시령(時令)·지리(地理)(조석(潮汐)) 등 9개의 항목으로, 권28 〈귀신(鬼神)〉은 총론·논재인귀신겸정신혼백(論在人鬼神兼精神魂魄)·논제사조고신지(論祭祀祖考神祗)·논제사신지(論祭祀神祗)·논생사(論生死) 등 5개의 항목으로, 권29~권37 〈성리(性理)〉는성명(性命)·성(性)·인물지성(人物之性)·기질지성(氣質之性)(명재(命才))·심(心)·심성정(心性情)(정서(定性)·정의(情意)·지기지의(志氣志意)·사려(思慮))·도(道)·리(理)·덕(德)·인(仁)·인의(仁義)·인의예지(仁義禮智)·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성(誠)·충신(忠信)·충서(忠恕)·공경(恭敬) 등 17개의 항목으로, 권38 〈도통(道統)〉·〈성현(聖賢)〉은총론·공자(孔子)·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공맹문인(孔孟門人) 등 7개의 항목으로, 권39~42는 〈제유(諸儒)〉는 주자(周子)·이정자(二程子)·장자(張子)·소자(邵子)·정자문인(程子門人)·나종언(羅從彦)·이동(李侗)·호안국(胡安國)(호인(胡寅)·호굉(胡宏))·주자(朱子)·장식(張栻)·여조겸(呂祖謙)·육구연(陸九淵)·주자문인(朱子門人)·진덕수(眞德秀)·위화부(魏華父)·허형(許衡)·오징(呉澄) 등 17개의 항목으로, 권43~권56 〈학(學)〉은 소학(小學)·총론위학지방(總論爲學之方)·존양(存養)(지경(持敬))·성찰(省察)·지행(知行)(언행(言行))·치지(致知)·역행(力行)(극기(克己)·개과(改過)·잡론처심입사(雜論處心立事))·교인(敎人)·인륜(人倫)(사우(師友))·독서법(讀書法)(독제경법(讀諸經法)·논해경(論解經)·독사(讀史))·사학(史學)·자학(字學)·과거지학(科舉之學)·논시(論詩)·논문(論文) 등 15개의 항목으로, 권57~권58 〈제자(諸子)〉는노자(老子)·열자(列子)·장자(莊子)·묵자(墨子)·관자(管子)·손자(孫子)·공총자(孔叢子)·신한(申韓)·순자(荀子)·동자(董子)·양자(揚子)·문중자(文中子)·한자(韓子)·구양자(歐陽子)·소자(蘇子)(왕안석(王安石)) 등 15개의 항목으로, 권59~권64 〈역대(歷代)〉는 당우삼대(唐虞三代)·춘추전국(春秋戰國)·진(秦)·서한(西漢)·동한(東漢)·삼국(三國)·진(晉)·당(唐)·오대(五代)·송(宋) 등 10개의 항목으로, 권65 〈군도(君道)〉는 군덕(君德)·성학(聖學)·저사(儲嗣)·군신(君臣)·신도(臣道) 등 5개의 항목으로, 권66~권69 〈치도(治道)〉는총론·예악(禮樂)·종묘(宗廟)·종법(宗法)·시법(謚法)·봉건(封建)·학교(學校)·용인(用人)·인재(人才)·구현(求賢)·논관(論官)(이정(莅政))·간쟁(諫諍)·법령(法令)·상벌(賞罰)·왕백(王伯)·전부(田賦)·이재(理財)·절검(節儉)·진휼(賑恤)·정이(禎異)·논병(論兵)·논형(論刑)·이적(夷狄) 등 23개의 항목으로, 그리고 권70 〈시(詩)〉·〈문(文)〉은 고시(古詩)·율시(律詩)·절구(絶句)·찬(贊)·잠(箴)·명(銘)·부(賦) 등 7개의 항목으로 각각 분류되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명나라 성조가 《성리대전서》를 과거 시험에서 경의(經義)의 표준으로 삼도록 전국에 반포하였다. 그로 인해 원래 독자적으로 쓰인 송나라와 원나라의 경의(經義)가 모두 정주(程朱)를 추존하는 이론 구조 속으로 재통합되었다. 《성리대전서》의 출현은 송원(宋元) 이래 경학(經學) 발전사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사건일 뿐 아니라 명청(明淸) 경학의 발전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송대 이학의 명저와 이학가(理學家)의 주요 학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을 뿐만 아니라 성리(性理) 계통의 담론을 주제별로 비교적 상세히 분류해놓았기에 ‘대전(大全)’이라고 할 만하다. 《성리대전서》 70권은 《사서대전(四書大全)》 36권, 《오경대전(五經大全)》 117권과 함께 불과 10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동시에 완성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 당시 성조(成祖)는 몽고와의 제3차 전쟁 준비에 한창이었고,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호광을 포함해서 편찬 작업에 투입된 한림원 학사 18명이 성조를 따라 참전해야 했기에 책의 완성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성리대전서》가 그 내용상 번잡스러움을 면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1715년 이광지(李光地)(1642~1718)에 의해 《성리대전서》에서 중요한 내용만을 간추려 정리한 발취본인 《성리정의(性理精義)》 20권이 간행되기도 하였다.
《성리대전서》는 조선에서의 성리학의 수용과 전파, 그리고 발전에도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이 책은 경연(經筵)과 서원(書院)의 교재로 사용되면서 조선의 학자들에겐 필독서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성리대전서》 가운데 중요한 내용만을 절록(節錄)한 여러 종류의 절요서(節要書)가 간행되었고, 또 이를 통해 성리학의 주요 쟁점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함으로써 조선 성리학의 수준이 제고되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의관을 바르게 하고, 바라보는 시선을 존엄하게 하여, 마음을 가라 앉혀 생활하되 상제(上帝)를 대하듯 하라. 발놀림은 반드시 신중하게 하고, 손놀림은 반드시 공손하게 하여, 땅은 가려서 밟되 개밋둑까지도 돌아서 가라. 집밖에 나서서는 손님을 대하듯 하고, 일을 맡아 할 때는 제사를 지내듯 하여, 조심하고 조심하되 혹시라도 안이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하고, 잡념 저지하기를 성곽 막듯이 하여, 공경하고 삼가되 혹시라도 경솔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동쪽을 가려다 서쪽으로 가지 말며, 북쪽을 가려다 남쪽으로 가지 말도록 하여, 일을 당하여서는 그 일에만 마음을 두되 그 마음 씀이 다른 데로 가지 않도록 하라. 두 가지 일로 마음을 두 갈래로 만들지 말며, 세 가지 일로 마음을 세 갈래로 만들지 않도록 하여, 오직 마음을 하나가 되도록 하되 만 가지 변화를 살피도록 하라. 이러한 마음으로 일해 나가는 것을 ‘공경을 간직하는 것[持敬]’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공경을 간직할 때 생활하는 모든 행동이 어긋나지 않고, 겉과 속이 서로를 바로잡아줄 수 있다. 잠시 잠깐이라도 공경을 지니는데 틈을 두면, 사사로운 욕심이 만 가지로 일어나, 불꽃이 없이도 뜨거워지고, 얼음이 없이도 차가워진다. 공경을 지니는데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하늘과 땅이 뒤바뀌어, 삼강(三綱)의 윤리가 없어지고, 구법(九法) 또한 못 쓰게 될 것이다. 아! 아이들이여! 깊이 마음에 새겨두고 공경할지어다. 먹을 갈아 경계하는 글을 씀으로써 감히 영대(靈臺)에 고하노라.[正其衣冠 尊其瞻視 潛心以居 對越上帝 足容必重 手容必恭 擇地而蹈 折旋蟻封 出門如賓 承事如祭 戰戰兢兢 罔敢或易 守口如甁 防意如城 洞洞屬屬 罔敢或輕 不東以西 不南以北 當事而存 靡他其適 弗貳以二 弗參以三 惟精惟一 萬變是監 從事於斯 是曰持敬 動靜無違 表裏交正 須臾有間 私欲萬端 不火而熱 不氷而寒 毫釐有差 天壤易處 三綱旣淪 九法亦斁 於乎小子 念哉敬哉 墨卿司戒 敢告靈臺]” 권70 〈경재잠(敬齋箴)〉
(2) 색인어:호광(胡廣), 양영(楊榮), 김유자(金幼孜),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 성리대전서(性理大全書), 성리대전(性理大全)
(3) 참고문헌
• 性理大全書(文淵閣四庫全書本)
• 性理大全(明 胡廣 等 纂修, 山東友誼書社)
• 性理大全(明 胡廣 等 纂修, 保景文化社)
• 〈朝鮮王朝對《性理大全》的接受硏究〉(邱敬霞, 山東大學 碩士學位論文, 2014)
• 〈《五經四書性理大全》的編纂與文化傳承〉(姜海軍, 五邑大學學報 社會科學版, 2016)
• 〈明永樂《四書五經性理大全》纂修地及其背景考〉(朱冶, 南都學壇, 2015)
• 〈從明成祖的政治權衡論官修《大全》之編纂〉(李曉明, 中國高校社會科學, 2016)
• 〈《性理大全》의 形成과 그 影響〉(권중달, 《中央史論》 제4집, 1985)
【김홍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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