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동양고전해제집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 개요


이지상(李志常)이 찬술(撰述)한 《장춘진인서유기(長春眞人西遊記)》 전 2권은 전진교(全眞敎)의 수령(首領) 구처기(丘處機)(1148~1227)가 중앙아시아[서역(西域)] 원정 중이던 칭기스 칸(Činggis qan 成吉思汗)의 부름을 받아, 이지상(李志常)을 비롯한 제자 18명과 만나러 갔다 온 행정(行程)에 대한 기록이다.

2. 저자

및 편자
(1) 성명:저자는 구처기(丘處機)(1148~1227), 편자는 이지상(李志常)(1193~1258)
(2) 자자(字)·별호(別號):구처기의 자는 통밀(通密) 호는 장춘자(長春子)이고, 이지상은 자는 호연(浩然), 호는 진상자(眞常子) 또는 통현대사(通玄大師)
(3) 출생지역:구처기는 등주(登州) 서하(棲霞)(현 산동성), 이지상은 산동(山東) 관성(觀城)
(4) 주요활동과 생애
구처기는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고 친척의 손에 의해 자랐다. 19세에 산에 들어가 도를 닦기 시작하여 다음 해에 전진교조(全眞敎祖) 왕철(王喆)(왕중양(王重陽) 1112~1170)을 스승으로 삼았다. 금(金) 대정(大定) 9년(1169) 스승을 따라 섬서(陝西) 지방으로 가서 반계(磻溪)(現 섬서성 보계(寶鷄) 동남), 농주(隴州)(現 섬서성 농현(隴縣)) 등지에 거하면서 수행하였다. 왕철 사후에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대정 28년 금(金) 세종(世宗)의 부름을 받아 중도(中都)에 가서 자못 후대를 받았다. 몽골이 흥기하자 산동(山東) 지방은 몽골과 금, 송 세 나라의 쟁탈전이 벌어지는 곳이 되었다. 구처기는 서하산(棲霞山) 속에 은거하면서 송과 금 양측의 초청을 모두 거절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1219년 칭기스 칸의 부름을 받아, 1221년에 출발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고 1224년 연경에 도착했다. 중원에 돌아온 이후 연경 태극궁(太極宮)에 거주하였다. 칭기스 칸은 그를 ‘총관천하도교(總管天下道敎)’로 임명하고 전진교 도사(道士)들에게 부세(賦稅)와 차발(差發)을 면제해주었다. 구처기는 1227년 7월 연경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지상은 1218년 장춘진인 구처기의 제자가 되었으며, 1238년 청화대사(淸和大師) 윤지평(尹志平)의 뒤를 이어 전진교 교조가 되었고 1256년 물러나 1258년 사망하였다.
(5) 주요저작:구처기는 《반계집(磻溪集)》, 《명도집(鳴道集)》 등이 있다. 이지상은 《우현집(又玄集)》 20권을 지었다하나 현전하지 않는다.

3. 서지사항


이 책은 과거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건륭(乾隆) 연간에 전대흔(錢大昕)이 소주(蘇州) 현묘관(玄妙觀)의 《도장(道藏)》 중에서 찾아내어 발문(跋文)을 붙여 출간함으로써 비로소 학술계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민국(民國) 시기에 해녕(海寧) 왕국유(王國維)에 의한 교주본(校注本)(1926)이 가장 좋은 판본이다.

4. 내용


1219년 겨울, 칭기스 칸은 근신(近臣) 유중록(劉仲祿)에게 조서(詔書)를 가지고 내주(萊州)(現 산동성(山東省) 액현(掖縣))로 가서 구처기를 모셔오도록 하였는데, 이에 구처기는 제자인 이지상 등 18명과 중앙아시아[西域]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경(燕京)(現 북경(北京)) 근처에서 한 동안 머무르다가 거용관(居庸關)으로 나가 북행하였다. 1221년 봄에 선덕(宣德)(現 하북성 선화(宣化))을 경유하여, 야호령(野狐嶺)을 너머 북쪽으로 고비 사막을 지나 몽골고원을 경유하여 칭기스 칸의 막냇동생 테무게 옷치긴(Temüge Otčigin)의 영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서쪽으로 길을 바꿔 훌룬 보이르 호를 지나 케룰렌 강을 따라 몽골고원 중앙을 통과했다. 계속 서행하여 금산(金山)(現 알타이 산맥) 부근에 있는 칭카이 성[鎭海城]에 도착 후 금산을 넘어 일리 일리하(亦列河)(現 伊犁河)를 지나, 같은 해 11월에 사미사간(邪米思干)(現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Samarkand)에 도착했다. 다음 해(1222) 4월에 대설산(大雪山)(現 힌두쿠시Hindukush 산맥)을 너머 칭기스 칸을 만나고, 5월에 다시 사마르칸트로 되돌아왔다. 8월에 다시 칭기스 칸의 진영을 방문해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칭기스 칸은 그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묻자 “경천애민위본(敬天愛民爲本)(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아끼는 것이 근본입니다)”이라고 대답하였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에 대해 묻자 “유위생지도이무양생지약(有衛生之道) 而無養生之藥(삶을 지키는 방법은 있지만 영원히 살 수 있게 하는 약은 없다)”, “청심과욕(淸心寡欲)(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줄이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칭기스 칸은 구처기의 의견을 크게 칭찬하고 그를 ‘신선(神仙)’이라고 칭했다. 1223년 3월에 귀국을 허락받고, 사마르칸트를 떠나 귀환길에 올라 오랜 여정 끝에 1224년 연경으로 귀환했다.

5. 가치와 영향


이 책에서 기술한 여행 경로와 산천지리 지형과 풍속, 의복과 음식, 과일과 초목에 대한 기록은 13세기 몽골고원과 중앙아시아사 및 몽골사[元史] 연구에 귀중한 내용들이다.

6. 참고문헌
(1) 명언
‧ “선생이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중록[劉仲祿]이 말하기를, “선생(장춘진인)의 명성은 사해(四海)에서 존중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황제(칭기스 칸)께서 특별히 저(유중록)에게 조서(詔書)를 내려서 산과 바다를 넘고 세월이 얼마나 걸리든지 간에 반드시 선생님을 데리고 오라 하셨습니다.[師躊躇間 仲祿曰 師名重四海 皇帝特詔 仲祿踰越山海 不限歲月 期必致之]” 〈왕국유(王國維), 《장춘진인서유기주(長春眞人西遊記注)》 상권(上卷), 4쪽〉
‧ “삶을 지키는 방법은 있지만 영원히 살 수 있게 하는 약은 없다.[有衛生之道 而無養生之藥]” 〈왕국유(王國維), 《장춘진인서유기주(長春眞人西遊記注)》 상권(上卷), 58쪽〉
(2) 색인어:장춘진인서유기(長春眞人西遊記), 전진교(全眞敎), 구처기(丘處機), 이지상(李志常), 칭기스 칸(Činggis qan 成吉思汗), 왕철(王喆)(왕중양(王重陽)), 태극궁(太極宮), 총관천하도교(總管天下道敎), 도장(道藏), 왕국유(王國維)
(3) 참고문헌
‧ 長春眞人西遊記注二卷(王國維, 淸華學校硏究院, 1926)
‧ 長春眞人西遊記注二卷(王國維, 正中書局, 1962)
‧ 〈長春眞人西遊記〉(陳正祥, 《中國遊記選注》 第3篇, 常務印書館, 1979, 54~97쪽)
‧ 〈칭기스 칸을 알현한 중국인 도사 장춘진인〉(趙阮, 《유라시아로의 시간 여행》, 사계절, 2018)

【김장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