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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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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은 《춘추(春秋)》를 해석한 책으로 약칭하여 《공양전(公羊傳)》이라고도 불리며 모두 11권으로 되어 있다. 《공양전》은 곡량숙(穀梁俶)(곡량적(穀梁赤)이라고도 함)의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함께 공자(孔子)가 지은 《춘추(春秋)》를 해석한 삼전(三傳) 가운데 하나이다. 이 세 가지 전(傳)은 경문(經文)만 같고 해석 방법이 서로 달라 유가(儒家)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서 중요한 경전으로 여기고 있다. 공양고(公羊高)가 전한 《춘추》는 경문의 미언(微言)(뜻이 함축되어 미묘한 말)과 대의(大義)를 해명하여 편찬 저술한 책이다. 제나라 사람인 공양고가 《춘추》에 대해 전술한 것이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현손 공양수(公羊壽)와 그의 제자 호무생(胡毋生)에 이르러 비로소 책으로 완성되었다.

2. 저자

(1)성명:공양자(公羊子)(?~?), 공양수(公羊壽)(?~?), 호무생(胡毋生)(?~?)
(2)자(字)·별호(別號):공양자의 자(字)는 고(高). 호무생의 자는 자도(子都). 한 경제(景帝) 때 박사를 지냈다.
(3)출생지역:공양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 호무생은 전한(前漢) 제(齊)(현 산동성(山東省) 치박(淄博))이다.
(4)주요활동과 생애
공양자는 한(漢)나라 금문경학(今文經學)의 선구자로 공자(孔子)의 문인 자하(子夏)의 제자이며, 《춘추》를 연구하여 춘추대의(春秋大義)를 밝혔다. 호무생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능통하여 유생(儒生)들의 추중을 받았다. 나이가 들자 고향 제로 돌아갔다. 하휴(何休)가 지은 《춘추공양전해고(春秋公羊傳解詁)》에 그의 학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한나라 시대에는 동중서(董仲舒)가 《공양전》을 근거로 유교적인 사상 통일을 꾀하면서 ‘공양학(公羊學)’이 성행하기도 하였는데, 한나라는 《공양전》을 정통으로 채택함으로써 새로운 체제를 현실에 착근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효과적으로 수행해냈다. 사실을 생생하게 복기하고자 한 《좌씨전》에 비해 해석의 여지를 넓게 잡은 《공양전》이 혁신의 논리를 구축하고 변혁의 동력을 뽑아내는 데에 훨씬 유용했기 때문이다. 동중서는 공양학을 이용하여 한제국의 이념적 지배이론을 구축함으로써 경학이 현실 정치를 추동하는 주요한 힘으로 작용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5)주요저작:《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제(齊)나라 사람인 ‘공양자(公羊子)’가 《공양전》을 저술하였으며, 《공양외전(公羊外傳)》 50편이 별도로 있었지만 외전은 모두 없어졌다고 기술되어 있다.

3. 서지사항

《반고(班固)(32~92)가 편찬한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보면 공양전은 11권으로 되어 있으며 《공양외전(公羊外傳)》 50편이 별도로 있었는데 외전은 모두 없어졌다고 했다.
당(唐)나라 사람 안사고(顏師古)는 “공양자의 이름은 고(高)이다.”라고 했고 “공양(公羊)에 함축된 뜻은 무엇인가? 이는 사람의 복성(複姓)이다.”라 했다.
《공양전》이 책으로 완성되기 전에는 입과 귀로 전해져 왔는데 이러한 전승과정은 동한(東漢)의 하휴(何休)가 지은 《춘추공양전》 서문이나 당(唐)나라 서언(徐彦)이 지은 《대굉서설(戴宏序說)》에 기록되어 있는데, 자하(子夏)가 공양고(公羊高)에게 전하고 공양고는 그의 아들 공양평(公羊平)에게, 공양평은 그의 아들 공양지(公羊地)에게, 공양지는 그 아들 공양감(公羊敢)에게, 공양감은 그 아들 공양수(公羊壽)에게 전했는데, 한나라 경제 시기에 이르러 공양수는 그의 제자 호무자도(胡毋子都)와 함께 죽백(竹帛)에 기록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내용은 세 가지로 정리되는데, 첫째는 《공양전》은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로부터 전해졌다는 것과 둘째는 《공양전》이 자하로부터 한나라 경제 초까지 340년 동안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 셋째는 한나라 경제 때 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중 세 번째 설이 가장 신뢰할 만한 내용이라 하겠다.
또한,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의 〈춘추공양전주소(春秋公羊傳註疏)〉에는 “《공양전》 안의 내용 중에 ‘자심자왈(子沈子曰)’, ‘자사마자왈(子司馬子曰)’, ‘자여자왈(子女子曰)’이나 ‘고자왈(高子曰)’, ‘노자왈(魯子曰)’은 모두 전수(傳受)한 경사(經師)들인데 공양자(公羊子)에 다 나오지 않는 것들이다.” 했고, 이밖에 경전 속의 여러 정황을 보더라도 공양고에게서 다 나왔다고 보기 어려우며 자하가 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공양전》은 책 전체가 공양고에 의해 쓰인 것은 아니며, 여러 사람이 함께 창작한 것으로 공양가(公羊家)에서 가학으로 전승되다 마지막에 공양수와 그의 제자인 호무자도가 정리 필사하여 책으로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제일 타당하다 할 수 있다.
공자(孔子)가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춘추(春秋)》는 매우 간결한 서술을 특징으로 하며, 명분(名分)에 따라 용어들을 엄격히 구별하고 있다. 때문에 수많은 학자들이 그 의미를 해석하고 풀이하는 주석서(註釋書)인 ‘전(傳)’을 지으면서 이른바 ‘춘추학(春秋學)’이 나타났는데, 반고(班固)( 32~92)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춘추》에 대한 전(傳)이 모두 23가(家) 948편(篇)이나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오늘날까지 전하는 것은 좌구명(左丘明)의 《좌씨전(左氏傳)》 30권과 《공양전(公羊傳)》 11권, 곡량숙(穀梁俶)의 《곡량전(穀梁傳)》 11권 등 3개 전(傳)만 전해지고 그 나머지는 다 없어졌다. ‘춘추삼전(春秋三傳)’은 모두 유가(儒家)의 핵심 경서(經書)인 ‘13경(十三經)’에 포함된다.
‘춘추삼전’에서 《좌전》은 춘추시대 사실(史實)에 대한 내용이 풍부하고 규모도 최대로 방대하며 역사를 위주로 한 저작으로 역사에 대한 특징들이 기사(記事)에 상세하고 역사적 실증적 해석을 중심으로 한다.
《공양전(公羊傳)》과 《곡량전(穀梁傳)》은 형태가 비슷하고 역사를 위한 저작이 아니라 《춘추(春秋)》의 경문(經文) 해석에 치중했다. 《공양전》은 《곡량전》보다 더 경문 해석에 대한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춘추》를 연구하는 데 있어, 《춘추》에 쓰인 언사(言辭)와 조구(造句)나 경문(經文) 속에 들어 있는 미언대의(微言大義)나 공자(孔子)가 《춘추》를 편찬할 당시의 시대적 사상이나 감정을 탐색할 수 있는 전은 《공양전》이라 하겠다. 또한 경문을 해석하는 데에서도 《춘추》에 기재된 각종 사건의 출발이나 그것을 인용하고 열어가는 것이나 경의 뜻을 밝혀 해석하는 데 있어 《공양전》 만 한 게 없다.
《좌전(左傳)》이 사실(史實)로써 공자의 《춘추(春秋)》를 주석하여 증명하였다면 《공양전》은 오로지 경문에 대하여 문답형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으며, 경문에서 알기 어려운 부분들을 거론할 때는 층층이 설명을 하고 있다. 반면 《곡량전》은 고문학에 가까울 뿐이라고 했다.

4. 내용

《공양전》은 문답(問答) 형식으로 경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어 예로부터 《춘추》의 경문(經文)에 숨겨져 있는 공자의 뜻, 곧 미언대의(微言大義)를 밝히는 중요한 서적으로 전한(前漢) 시대 금문경학(今文經學)의 주요 경전이었다.
또한, 이른바 춘추필법(春秋筆法)을 이해하는 데 《공양전(公羊傳)》을 빼놓을 수 없는데, 《공양전》이 말하는 휘(諱)는 은휘(隱諱)의 의미로 어떤 역사사실에 대하여 생략하고 쓰지 않거나 혹은 곡필(曲筆)로 진상을 엄폐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원년(元年)은 군주의 시년(始年), 봄은 세시(歲始), 수(狩)는 군사훈련을 위한 사냥인데, 봄의 사냥은 묘(苗), 가을의 사냥은 수(蒐), 겨울 사냥은 수(狩)라 부른다는 등의 고대 문화의 언어 해설들을 풀어놓은 것이 매우 많아 《공양전》은 춘추시대의 중국문화지식과 중국문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사적 문헌이다. 따라서 중국의 문화지식이나 경학사(經學史)나 정치사상사나 학술사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목록은 제1편 은공시대(隱公時代), 제2편 환공시대(桓公時代), 제3편 장공시대(莊公時代), 제4편 민공시대(閔公時代), 제5편 희공시대(僖公時代), 제6편 문공시대(文公時代), 제7편 선공시대(宣公時代), 제8편 성공시대(成公時代), 제9편 양공시대(襄公時代), 제10편 소공시대(昭公時代), 제11편 정공시대(定公時代), 제12편 애공시대(哀公時代)이다.

5. 가치와 영향

《공양전(公羊傳)》을 바탕으로 공양학이 일어나는데, 이는 공자가 만들었다고 하는 《춘추》를 공양전에 기초하여 해석한 학문으로, 《공양전》에서 발견된 공자의 이상을 현실 정치에 실현하려 하는 정치사상이다. 《공양전》이 전한(前漢)의 동중서(董仲舒)에게 전해져 공양학이 형성되고, 후한(後漢)의 하휴(何休)에 의해 대성되었다. 그러나 《춘추》를 《좌씨전(左氏傳)》에 기반하여 해석하는 좌전학(左傳學)이 주류가 되면서, 공양학은 쇠퇴했다. 청대(淸代)에 이르러, 상주학파(常州学派)에 의해 공양학이 중시되고, 청말(淸末)의 학문과 정치사조에 큰 영향을 주어 경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청나라 후기의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을 찾으려는 이들이 나타남에 따라 한때 크게 성행했다. 청(淸)나라 말의 요평(廖平)·강유위(康有爲)·양계초(梁啓超)·담사동(譚嗣同)·손문(孫文) 등에게 영향을 주어 신해혁명(辛亥革命)을 일으킨 원인으로 작용했다.
주석서나 참고서로는 한대에 동중서가 지은 《춘추번로(春秋繁露)》, 후한(後漢)의 하휴(何休)가 영제(靈帝) 때 지은 《춘추공양해고(春秋公羊解)》·《공양묵수(公羊墨守)》, 하휴와 서언(徐彦)의 주(注)를 모은 《춘추공양전정의(春秋公羊傳正義)》, 청대 공광삼(孔廣森)의 《춘추공양통의(春秋公羊通義)》, 장존여(莊存與)의 《춘추정사(春秋正辭)》, 유봉록(劉逢祿)의 《공양하씨석례(公羊何氏釋例)》, 진립(陳立)의 《공양의소(公羊義疏)》, 마종련(馬宗璉)의 《공양보주(公羊補注)》 등이 있다.
한국에서도 《공양전》은 고려시대 교육기관인 국자감(國子監)의 이수과목 중 하나로 《논어(論語)》와 《효경(孝經)》을 선수과목으로 이수하게 하고, 경서들을 《상서(尙書)》,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 3개 영역으로 나누어 각 영역에서 1개의 경전씩 학습하게 하였다. 고려 시대에 성리학이 수용되면서 정통론적 문명론이 수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원(元) 간섭기 이제현(李齊賢)과 이곡(李穀)은 의리와 명분, 인의를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이를 윤리적 원칙으로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또한 이들은 원을 정통왕조로 보고 원의 동아시아 지배를 합리화하였는데, 이는 권도를 인정한 원의 춘추공양학을 수용한 결과였다. 이는 고려 말 이색(李穡)에게로 이어졌다. 이색은 고려왕조를 유지하기 위한 논리로써 우왕(禑王)의 왕위계승을 인정하는 시세적 춘추론을 전개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태조(太祖) 4년조에 정도전(鄭道傳)과 정총(鄭摠)이 공양삼세(公羊三世)의 일과 사마천의 편년체(編年體)의 규범으로 《고려사(高麗史)》의 편찬 기준을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어째서 ‘왕정월(王正月)’이라고 하였는가. 크게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서이다.[何言乎王正月 大一統也]” 〈노 은공(魯隱公) 원년〉
• “군친(君親)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만약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는 반드시 주벌(誅罰)해야 한다.[君親無將 將而必誅焉]” 〈노 소공(魯昭公) 원년〉
• “〈공자(孔子)가〉 새로 지었다고 기록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크게 수축했기 때문이다. 옛 건물을 수축한 것은 기록하지 않는 법인데, 여기에서는 왜 기록하였는가. 비난하는 뜻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무엇을 비난한 것인가. 공실(公室)의 일에 힘쓰지 않은 것을 비난한 것이다.[其言新作之何 修大也 修舊不書 此何以書 譏 何譏爾 不務乎公室也]” 〈노 정공(魯定公) 2년〉
(2)색인어:공양전(公羊傳), 공양자(公羊子), 공양고(公羊高), 공양수(公羊壽), 호모생(胡母生)·자도(子都), 동중서(董仲舒), 반고(班固), 곡량전(穀梁傳), 좌전(左傳), 춘추(春秋)
(3)참고문헌
• 春秋公羊傳注疏(何休 解詁, 徐彦 疏, 北京大學出版社)
• 春秋公羊傳譯注(王維堤·唐書文, 上海古籍出版社)
• 춘추공양전(남기현 해역, 자유문고)
• 춘추공양전(박성진, 지식을만드는지식)
• 春秋(竹內照夫, 平凡社)
【서영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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