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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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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병실기(練兵實紀)》는 명(明)나라 장수 척계광(戚繼光)이 16세기 후반 북방의 기병을 저지하기 위한 전술을 정리한 병서(兵書)로서 척계광이 저술한 또 다른 병서인 《기효신서(紀效新書)》와 함께 대표적인 저술이다. 이 책은 《기효신서》의 내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북방의 여진족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 체계와 무기, 편제 등 각종 군사체제를 개편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2. 저자

(1) 성명:척계광(戚繼光)(1528~1587)
(2) 자(字)·별호(別號):척계광의 자는 원경(元敬), 호는 남당(南塘) 혹은 맹제(孟諸),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3) 출생지역:등주위(登州衛)(현 중국 산동성(山東省))
(4) 주요활동과 생애
명나라 가정(嘉靖) 7년(1528) 등주위(登州衛) 지휘첨사(指揮僉使)를 지낸 무장인 척경통(戚景通)의 아들로 태어난 척계광은 17세 때인 가정 23년(1544), 부친이 서거하자 당시의 관례대로 부친의 직을 세습하여 등주위 지휘첨사에 임명되었다. 1548년부터 북경 근처 요충지인 계주(薊州)로 이동하여 북방 몽골의 침입을 여러 차례 방어하는 데 성공하였다. 가정 32년(1553) 6월에는 산동도지휘첨사(山東都指揮僉使)가 되어 산동성 일대의 왜구 침입에 대비하였다. 가정 34년(1555) 참장(參將)으로 승진하여 영파(寧波), 소흥(紹興), 대주(台州) 등 세 부(府)의 방어를 담당하여 여러 차례 이 일대에서 왜구를 격퇴하였다. 척계광은 효과적인 왜구 토벌을 위해 이 일대의 백성 4천여 명을 모아 새로운 체제와 전술에 따라 군사를 편성, 훈련시켜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를 척가군(戚家軍)이라 하였다.
절강성 일대에서 전공을 세운 그는 가정 43년(1563) 12월 복건총병관(福建總兵官)으로 승진하여 복건성 일대의 왜구를 소탕하였다. 왜구 토벌에 공을 세운 그는 융경(隆慶) 2년(1567) 대학사(大學士) 장거정(張居正)의 천거로 북경 근처인 북직예(北直隷)의 주진(主鎭)인 계주와 그 주변의 군사를 통괄하는 총리계주창평료동보정련병사무(總理薊州昌平遼東保定練兵事務)에 임명되었다. 이후 15년 동안 재직하면서 타안부(朶顔部) 등 북방 몽골족과의 전투에서 그들의 수령을 사로잡는 등 큰 전공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척계광은 후원자였던 장거정이 1582년 사망하자 이듬해 계주총병(薊州總兵)에서 물러나 광동(廣東) 총병으로 전보되고 이후 병이 악화되어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낙향하였다가 만력(萬曆) 15년(1587) 12월 8일에 사망하였다.
(5) 주요저작:《기효신서(紀效新書)》, 《지지당집(止止堂集)》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연병실기》는 정집(正集) 9권과 잡집(雜集) 6권, 그리고 부도(附圖) 60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6책이다. 정집 9권의 목차는 권1 연오법(練伍法), 권2 연담기(練膽氣), 권3 연이목(練耳目), 권4 연수족(練手足), 권5~8 연영진(練營陣), 권9 연장(練將)으로 이루어져 있다. 잡집은 권1~2 저장통론(儲將通論) 상·하, 권3 장관도임(將官到任), 권4 등단구수(登壇口授), 권5 군기제해(軍器制解), 권6 거보기해(車步騎解)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4. 내용

《연병실기》는 척계광이 북방 기병에 대항하고자 전차를 중심으로 하여 보병과 기병을 동시에 활용하는 전술을 수록하였다. 특히 《기효신서》가 근접전 병사인 살수 위주의 보병 전술을 채택하고 있는 것과 달리 《연병실기》에서는 전차와 기병, 보병을 배합한 전술을 구사하고, 무기도 《기효신서》의 단병기(短兵器)와 함께 조총과 쾌창(快鎗), 그리고 화전(火箭) 등의 여러 화약 무기를 아울러 갖추도록 하여 적 기병의 공격을 먼 거리에서부터 막을 수 있도록 한 점은 중요한 시사를 주었다. 기병의 경우도 조총 등 여러 화기를 함께 장비한 점이 매우 특징적이다. 즉 보병과 마찬가지로 기병대(騎兵隊)도 조총수(鳥銃手)와 쾌창수 각 2명을 두되 조총수는 쌍수도(雙手刀)를, 쾌창수는 쾌창에 붙은 긴 자루의 곤봉(棍棒)으로 근접전을 하도록 하였다. 단병을 가진 당파수(鎲鈀手), 도곤수(刀棍手), 대봉수(大棒手) 각 2명도 당파수는 화전을, 도곤수와 대봉수는 궁시를 각각 가지도록 하여 장병과 단병을 함께 장비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연병실기》에는 전차를 활용하였으므로 이를 다루는 거병(車兵)이라는 병종이 있는 점이 큰 특징이다. 평탄한 야전에서 적 기병의 공격을 받을 경우에 대응하여 척계광은 평탄한 중국 북방의 지형적인 특성과 몽골 등 북방 기마 민족의 전법을 고려하여 포차(砲車)의 기동성과 불랑기의 뛰어난 살상력을 결합한 전술을 고안하였다. 이 전술은 수레 주위에 방패를 설치하고 불랑기 2문을 장치한 전차를 제작하고 128량의 전차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그 안에 기병과 보병을 두어 불랑기 등의 사격으로 적의 대형이 흩어지면 기병과 보병을 돌격시켜 적군을 공격하는 이른바 거영(車營) 전술이었다.
거영의 기본 단위는 전차 1량을 중심으로 거병을 편제한 ‘종(宗)’으로, 그 편성은 먼저 전차를 운용하고 그 속에서 불랑기 등을 조작하는 정병(正兵) 10명과 전차 주위에서 조총 등을 사격하는 기병(奇兵) 10명으로 각각 한 대를 편성하도록 하였다. 정병대(正兵隊)는 지휘자인 거정 1명과 불랑기 2문을 조작하는 불랑기수(佛狼機手) 6명, 화전을 사격하는 화전수(火箭手) 2명, 그리고 전차의 뒤에서 조정하는 타공(舵工)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병대는 전차의 좌우에서 전차를 보호하고 전차 사이로 들어오는 적 기병을 공격하는 부대로서 대장(隊長) 1명과 조총수 4명, 등패수 2명, 당파수 2명, 그리고 화병(火兵) 1명으로 이루어졌다.
보병은 그 이전 《기효신서》에서 근접전 군사 중심의 대에 더하여 다양한 화약무기를 배치하여 화력(火力)을 충실히 강화한 편제를 채택하였다. 《연병실기》에서는 보병 각 대마다 대총(隊總) 뒤에 조총과 쌍수장도(雙手長刀)를 가진 오장(伍長) 2명을 두고, 이어서 장병쾌창수(長柄快鎗手) 2명을 두도록 하였다. 장병쾌창수의 뒤에는 등패수 2명, 낭선수 2명, 그리고 화전을 장비한 당파수 2명을 배치하였다.

5. 가치와 영향

《연병실기》는 16세기 후반 척계광이 북방의 기병에 대항하고자 전차를 중심으로 기병과 보병을 통합한 전술에 대한 내용을 수록한 병서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이전에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저술한 《기효신서》의 내용을 참조하고 아울러 16세기 성능이 향상되던 화약무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전차 중심 전술을 정리하여 북방 기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연병실기》의 전술은 전차를 중심으로 하여 보병과 기병을 함께 활용하였으므로, 기병이 부족한 조선에서는 점차 위협이 되던 북방 여진의 기병을 저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임진왜란 중 이 책이 조선에도 도입되어 북방 여진의 기병 전술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 개발과 군사 편제 개편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는데, 17세기 초 광해군대 한교(韓嶠)가 편찬한 《연병지남(練兵指南)》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힘이 있고 영리한 자 두 명을 일오장(一伍長)과 이오장(二伍長)으로 삼고 조총수로 충원하는데, 조총으로 장병(長兵)을 삼고 아울러 쌍수도(雙手刀)를 익혀 단병(短兵)으로 삼는다. 힘이 있고 영리한 자 두 명을 제3, 4번 군사로 삼아 쾌창수로 충원하되 각각 긴 자루를 가진 쾌창으로 단병을 삼아 가까워지면 자루를 써서 대곤으로 단병을 삼는다. 살기가 있고 사격에 능한 자 2명으로 제7, 8번 군사로 하여 도곤수(刀棍手)로 충원하되 도곤으로 단병을 삼고 활로 장병을 삼는다. 힘이 있고 사격을 익힌 자 2명으로 9, 10번 군사로 삼아 대봉수(大棒手)로 충원하되 대봉(大棒)으로 단병을 궁시로 장병을 삼는다. 용렬하고 사역하는 것을 맡을 만한 자 1명을 제11번 군사로 삼하 화병(火兵)으로 충원한다.[以有力伶俐者二名 爲一伍長二伍長 充鳥銃手 以鳥銃爲長兵 仍習雙手刀爲短兵 以有力伶俐者二名 爲第三第四 充快鎗手 各執長柄快鎗爲短兵 近用柄大棍爲短兵 以有殺氣能射者二名 爲第七第八 充刀棍手 以刀棍爲短兵 以射爲長兵 以有力習射者二名 爲第九第十 充大棒手 以大棒爲短兵 弓矢爲長兵 以庸碌可役者一名 爲第十一名 充火兵]” 《연병실기》 권1 〈연오법(練伍法) 기병(騎兵)〉
• “힘이 있고 영리한 자 두 명을 일오장(一伍長)과 이오장(二伍長)으로 두고 각각 조총수로 삼되 아울러 쌍수장도(雙手長刀) 한 자루를 겸하여 갖추도록 한다. 제1번은 왼쪽에 제2번은 오른쪽에 둔다. 또 2명은 장병쾌창수(長柄快鎗手)로 삼는데, 쾌창의 자루는 짧은 곤(棍)을 대신하되 제3, 4번 군사로 삼는다. 민첩하고 뼈가 부드러운 자 2명으로 등패수(藤牌手)로 삼되, 제5, 6번 군사로 삼는다. 힘이 크고 얼굴이 검되 용맹한 자로서 낭선수(狼筅手)를 삼는다. 위의 두 무예는 단병은 있지만 장병은 없고 제7, 8번 군사로 삼는다. 어리고 정신에 살기가 있는 자 2명으로 당파수(鎲鈀手)로 삼되 아울러 화전(火箭)을 갖추어 그 당파 위에 화전을 걸쳐서 사격하는 데 편리하게 하되 9, 10번 군사로 한다. 용렬한 자 1명은 화병(火兵)으로 삼는다.[以有力伶俐者二名 爲一伍長二伍長 各爲鳥銃手兼雙手長刀一把 第一名在左 第二名在右 又二名 爲長柄快鎗手 鎗柄卽代短棍 爲第三名第四名 以便捷骨柔者二名 爲藤牌手 爲第五名第六名 又以力大貌黑而粗猛者 爲狼筅手 二藝俱有短無長 爲第七名第八名 以年少有精神殺氣者二名 爲鎲鈀手 仍兼火箭 以其鈀上可架火箭便於放也 爲第九名第十名 以庸碌者一名 爲火兵]” 《연병실기》 권1 〈연오법(練伍法) 보병(步兵)〉
(2) 색인어:척계광(戚繼光), 연병실기(練兵實紀), 기효신서(紀效新書), 거병(車兵), 불랑기수(佛狼機手), 장병쾌창수(長柄快鎗手)
(3) 참고문헌
• 《練兵實紀》(《中國兵書集成》 所收, 解放軍出版社)
• 《中國兵書名著今譯》(李零, 軍事譯文出版社)
• 《紀效新書》(國防軍史硏究所, 朝鮮本影印)
• 《연병지남》(노영구 역주, 아카넷)
• 〈조선후기 兵書와 戰法의 연구〉(盧永九,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노영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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