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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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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자의 언행 및 공자와 문인과의 논의를 수록한 책이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誌〉에는 《공자가어》 27권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이미 실전失傳되어 전하지 않으며, 저자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현전하는 《공자가어》 중에는 위魏나라의 왕숙王肅(195~256)이 발견하여 주석을 달았다는 10권 44편으로 구성된 판본이 가장 널리 통용되었다. 이 책은 오랜 세월동안 왕숙이 공안국孔安國(B.C. 156?~B.C. 74)의 이름을 빌려 위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2. 저자/편자

(1)성명:왕숙王肅(195~256)
(2)자字·별호別號:자字는 자옹子雍, 시호는 경후景侯.
(3)출생지역:본관은 동해군東海郡 담현郯縣, 출생은 회계會稽(지금의 절강성 소흥현).
(4)주요활동과 생애
조조의 위나라 개국시 삼공三公 중의 한사람이었던 왕랑王朗의 아들이고, 그의 딸 왕원희는 사마소司馬昭에게 시집가 진晉의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을 낳았다. 시사時事와 제도에 대한 의견을 건의하였고, 위 문제魏文帝 때 산기황문시랑散騎黃門侍郞에 임명되었다. 시중侍中과 태상太常, 중령군中領軍 등의 벼슬을 지냈는데,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더해졌다. 아버지에게 금문학今文學을 배웠으나 고문학자古文學者 가규賈逵와 마융馬融의 현실주의적 해석을 이어 많은 경서를 주석하고 신비적인 색채를 실용적인 해석으로 대체하였다. 정현鄭玄에 대해서는 고문을 세운 점은 인정했지만 참위설讖緯說을 혼합한 통일해석을 반박하였으며, 정현의 예학禮學 체계에 반대하여 《성증론聖證論》을 지었다. 《위서魏書》에 따르면, 그의 학설은 모두 위나라의 관학官學으로 공인받아 당시 학관에 세워졌다고 한다.
(5)주요저작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실린 그의 저술은 대부분 없어졌고, 청淸의 마국한馬國翰의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에 집록된 15종 20권만 전한다. 대표적 저서로 《마왕역의馬王易義》, 《주역주周易注》, 《상서왕씨주尙書王氏注》, 《모시왕씨주毛詩王氏注》, 《예기왕씨주禮記王氏注》, 《논어왕씨주論語王氏注》, 《국어장구國語章句》, 《왕자정론王子正論》, 《상서박의尙書駁議》, 《모시박의毛詩駁議》, 《모시주사毛詩奏事》, 《모시문난毛詩問難》 등이 있는데, 《상서박의》, 《모시박의》, 《모시주사》, 《모시문난》 등의 저술은 정현의 설을 논박한 것이다.

3. 서지사항 특징

이 책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왕숙이 공자와 그 제자들의 문답을 기록한 책인데, 정현의 학문을 심히 미워한 왕숙이 오로지 정현에 반대하기 위해 《공자가어》를 짓고 공안국孔安國의 이름을 빌어 그의 저작에 신빙성을 주고자 한 것이다. 왕숙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국어國語》, 《맹자孟子》, 《순자荀子》, 《대대례大戴禮》, 《예기禮記》, 《사기史記》, 《설원說苑》, 《안자晏子》, 《열자列子》, 《한비자韓非子》, 《여씨춘추呂氏春秋》 등에서 공자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공자의 12세손인 공안국의 이름을 빌려 이 책을 만들었는데, 왕숙의 의도는 그 무렵 학계의 주류를 점하고 있던 정현의 학통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기 학설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간행된 판본 중에서 현존하는 대부분의 《공자가어》는 주해본의 형태로 남아 있는데, 크게 왕숙 주해본, 왕광모王廣謨 주해본, 그리고 하맹춘何孟春 주해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책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이다. 그러나 여기에 수록된 것은 27권본으로, 현재의 10권으로 구성된 판본과는 다르다. 또 당나라 때 지어진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는 이미 왕숙이 《공자가어》 21권에 주석을 달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전대의 책과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 없고‚ 당송 이후에 유행한 《공자가어》에 대한 기록에는 대부분 10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대唐代의 안사고顔師古가 《한서》에 붙인 주에서 “지금의 《공자가어》가 아니다[非今之家語]”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두고 말한 것이다.
원대元代에 이르러서는 왕숙의 주해본 외에도 유상경劉祥卿이 왕숙의 주해본에 의거해서 다시 구해句解를 덧붙인 주석본과 왕광모의 주해본 등 새로운 판본이 등장하였으며, 명대明代에는 육치陸治가 보주補注한 명대 만력간萬曆間 장주간본長洲刊本, 하맹춘이 보주한 명대 말엽의 영명서원간본永明書院刊本의 주석본 등이 간행되기도 하였다. 또한 명대 중기 이후에는 중앙에서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관각본·방각본을 간행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황주현黃周賢의 방송간본仿宋刊本과 모진毛晉의 급고각간본汲古閣刊本이 현전하는 대표적인 선본서善本書로 알려져 있다.
청대에 이르러 옥해당玉海堂의 영송촉본影宋蜀本이 출현하였는데 이는 모진이 간행한 급고각간본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여 간행한 것이며 판본 연원에 있어서도 간행 시기가 가장 앞서는 조기 판본을 저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판본으로는 6권 2책의 《신간표제공자가어구해新刊標題孔子家語句解》와 3권 3책의 《표제구해공자가어標題句解孔子家語》, 그리고 10권 3책의 《공성가어孔聖家語》 등 3종류인데, 조선시대에 본서의 간행을 위해 사용된 저본은 《공성가어》를 제외하고 대부분 원대 창암서원본倉巖書院本 계열로 알려져 있다.

4. 내용

《공자가어》는 전체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권에는 〈상노相魯〉, 〈시주始誅〉, 〈왕언해王言解〉, 〈대혼해大婚解〉, 〈유행해儒行解〉, 〈문례問禮〉, 〈오의해五儀解〉, 제2권에는 〈치사致思〉, 〈삼서三恕〉, 〈호생好生〉, 제3권에는 〈관주觀周〉, 〈제자행弟子行〉, 〈현군賢君〉, 〈변정辯政〉, 제4권에는 〈육본六本〉, 〈변물辨物〉, 〈애공문정哀公問政〉, 제5권에는 〈안회顔回〉, 〈자로초견子路初見〉, 〈재액在厄〉, 〈입관入官〉, 〈곤서困誓〉, 〈오제덕五帝德〉, 제6권에는 〈오제五帝〉, 〈집비執轡〉, 〈본명해本命解〉, 〈논례論禮〉, 제7권에는 〈관향사觀鄕射〉, 〈교문郊問〉, 〈오형해五刑解〉, 〈형정刑政〉, 〈예운禮運〉, 제8권에는 〈관송冠頌〉, 〈묘제廟制〉, 〈변악해辯樂解〉, 〈문옥問玉〉, 〈굴절해屈節解〉, 제9권에는 〈72제자해七十二弟子解〉, 〈본성해本姓解〉, 〈종기해終記解〉, 〈정론해正論解〉, 그리고 마지막 제10권에는 〈곡례자공문曲禮子貢問〉, 〈곡례자하문曲禮子夏問〉, 〈곡례공서적문曲禮公西赤問〉 등이 실려 있다.

5. 가치와 영향

《공자가어》는 비록 위서라고는 하지만 여러 전적에 제각기 전해지던 이야기를 발췌하여 초기 유가의 면모를 보여준 중요 저작이며, 동시에 《논어》에서 볼 수 없는 공자의 관한 일화집으로 가치가 높다. 특히 이 책의 발문跋文은 《공자가어》에 대한 고증뿐만이 아니라 그 위작의 근거까지도 대략 밝히고 있어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사고전서간명목록四庫全書簡明目錄》 권9에서는 “《공자가어》는 비록 《한서》 〈예문지〉에 이름이 보이기는 하나 책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금본今本은 대개 왕숙이 공자의 문인에게 의탁하여 정현의 학설을 공박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마소馬昭 등 여러 학자들이 이미 그것을 상세히 논하였다. 그러나 왕숙이 비록 꾸며 만든 것이기는 하나‚ 실제로는 역시 여러 서적에 나뉘어 실린 공자의 일사逸事를 발췌하여 만든 책으로 미언대의微言大義가 또한 왕왕 보인다. 그러므로 유가의 책에 편입시키고‚ 마침내 첫머리로 삼은 것이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

6. 참고사항

(1)명언
• “나무는 조용히 서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모시고 싶어 하지만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夫樹欲靜而風不停 子欲養而親不待]” 〈치사致思〉
• “가혹한 정치는 사나운 호랑이보다 더 잔혹하다.[苛政猛於暴虎]” 〈정론해正論解〉
• “사람을 죽일 때에도 또한 예가 있어야 한다.[殺人之中 又有禮焉]” 〈곡례자공문曲禮子貢問〉
(2)색인어:공자孔子, 논어論語, 공자가어孔子家語, 공성가어孔聖家語, 가어家語, 왕숙王肅, 정현鄭玄, 위서僞書, 예문지藝文志, 경적지經籍志
(3)참고문헌
• 孔子家語(王肅 註, 淸朝後期刊)
• 孔子家語(何孟春 註, 淸 道光28(1848)刊)
• 標題句解孔子家語(王廣謀 句解, 純祖4(1804)刊)
• 孔聖家語(吳嘉謨 集校, 肅宗年間)
• 공자가어(이민수, 을유문화사)
• 공자가어(임동석, 동서문화사)
【함현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18.05.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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