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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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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송南宋 소희紹熙 연간에 황당黃唐에 의해 처음 합각合刻된 이래로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의 명칭이 생겨났다. 십삼경十三經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주례周禮》, 《의례儀禮》, 《예기禮記》,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춘추곡량전春秋穀粱傳〉, 《춘추좌씨전春秋左氏戰》, 《논어論語》, 《이아爾雅》, 《효경孝經》, 《맹자孟子》 모두 13종이며, 이에 대한 주注와 소疏를 모아놓은 십삼경주소는 모두 416권으로 되어 있다.

2. 저자

(1)성명:정현鄭玄(127~200), 하휴何休(129~182), 공안국孔安國(?~?), 조기趙岐(108~201), 하안何晏(193~249), 왕필王弼(226~249), 한강백韓康伯(?~?), 두예杜預(222~284), 범녕范甯(339~401), 곽박郭璞(276~324) 공영달孔穎達(574~648), 가공언賈公彦(?~?), 서언徐彦(?~?), 양사훈楊士勛(?~?), 이융기李隆基(685~762), 형병邢昺(932~1011), 손석孫奭(962~1033)
(2)자字·별호別號:정현의 자는 강성康成, 하휴의 자는 소공邵公, 공안국의 자는 자국子國, 조기의 자는 빈경邠卿, 하안의 자는 평숙平叔, 왕필의 자는 보사輔嗣이다. 한강백은 본명이 백伯이고 자는 강백康伯으로 주로 자로 칭하였다. 두예의 자는 원개元凱, 범녕의 자는 무자武子, 곽박의 자는 경순景純, 공영달의 자는 충원冲遠이다. 이융기李隆基(685~762)는 당唐나라 황제로 묘호는 현종玄宗이다. 형병의 자는 숙명叔明, 손석의 자는 종고宗古이다.
(3)출생지역:정현은 북해北海 고밀高密(현 중국 산동성山東省), 하휴는 임성任城 번현樊縣(현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공안국은 현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조기는 경조京兆 장릉長陵(현 섬서성陝西省 함양咸陽), 하안은 완宛(현 하남성河南省 남양南陽), 왕필은 산양山陽 고평高平(현 산동성山東省 금향金鄕), 한강백은 영천潁川 장사長社, 두예는 경조京兆 두릉杜陵(현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 범녕은 순양順陽(현 하남성河南省 석천淅川), 곽박은 현 산서성山西省 문희聞喜, 공영달은 기주冀州 형수衡水(현 하북성河北省), 가공언은 명주洺州 영년永年(현 하북성河北省), 형병은 조주曹州 제음濟陰(현 산동성山東省), 손석은 박주博州 박평博平(현 산동성山東省 임평荏平)이다.
(4)주요활동과 생애
정현은 후한後漢의 경학가로 한대漢代 금문경학과 고문경학의 논쟁을 종합하여 집대성하였는데, 고문경학을 위주로 하고 아울러 금문경학을 취하였다.
하휴는 후한後漢의 경학가로 금문경학을 집대성하였으며, 고문경학을 반대하였다.
공안국은 전한前漢의 경학가이며 공자의 11대손이다. 공자의 구택舊宅을 헐다가 벽 속에서 고문으로 된 《상서》, 《논어》, 《효경》 등을 얻었다. 고문학을 주장하였다.
조기 역시 후한後漢의 경학가이다. 마융馬融의 형의 딸에게 장가들어 마융에게 《주례》에 대해 묻기도 했다. 당시 학풍과 달리 《논어》와 《맹자》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하안은 삼국 시대 위魏의 경학가로 현학玄學을 일으킨 인물이다. 노장사상을 근간으로 경전을 해석하여 경학을 현학화하였다.
왕필은 삼국시대 위魏의 경학가로 노장학에 심취하였으며 하안 등의 노장학자들과 교유하였다. 의리학義理學을 제창하여 후대에 영향을 끼쳤다.
한강백은 진晉나라의 경학가로 〈계사전繫辭傳〉을 비롯한 십익十翼에 주注를 붙여 《주역주周易注》를 지었다.
두예는 서진西晋의 경학가로 여러 전투에서 전공戰功도 높았다. 특히 《춘추》 연구에 밝았다.
범녕은 동진東晋의 경학가로 당시 성행하던 왕필, 하안의 현학玄學에 반대하였다.
곽박은 동진東晉의 경학가로 천문, 고문기자古文奇字, 복서술卜筮術, 시부詩賦에 밝았다.
공영달은 당나라 건국 후 국자박사國子博士와 국자좨주國子祭酒 등을 역임했다. 당 태종의 명을 받아 《오경정의五經正義》를 찬술하였다.
가공언은 당나라 경학가로 삼례三禮에 밝았던 장사형張士衡에게 수학하였다. 예학禮學에 정통하여 공영달孔潁達 등과 《예기정의禮記正義》 편찬에도 참여했다.
서언은 당대唐代 인물이라고도 하고, 북위北魏의 서준명徐遵明이라고도 하나 자세하지 않다. 양사훈은 당나라 초 경학가로 생애가 자세하지 않다.
이륭기는 당唐나라 6대 황제인 현종玄宗으로 《효경孝經》에 직접 주를 달았다.
형병은 북송 때 경학가로 삼례三禮·삼전三傳·《효경孝經》·《논어論語》·《이아爾雅》 등의 의소義疏를 교정하였고, 송나라 진종에게 《효경》·《예기》·《논어》·《춘추좌씨전》 등을 강론하였다.
손석은 북송 때 경학가이다. 황제의 칙명으로 형병邢昺, 두호杜鎬 등과 함께 제경정의諸經正義와 《장자》 및 《이아》의 석문釋文을 교정하고, 《상서》·《효경》·《논어》·《이아》 등을 고정考正하였다. 또한 조기趙岐의 《맹자주孟子注》를 교정하고, 육덕명陸德明의 《경전석문經典釋文》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였다.
(5)주요저작
정현의 저작에는 《천문칠정론天文七政論》, 《노예체협의魯禮禘祫義》, 《육예론六藝論》, 《모시보毛詩譜》, 《박허신오경이의駁許愼五經異義》, 《발공양묵수發公羊墨守》, 《기곡량폐질起穀粱廢疾》, 《정지鄭志》 등이 있다. 하휴의 저작에는 《공양묵수公羊墨守》, 《좌씨고육左氏膏育》, 《곡량폐질穀粱廢疾》 등이 있다. 조기의 저작에는 《맹자장구孟子章句》, 《삼보결록三輔決錄》 등이 있다. 하안의 저작에는 《논어집해論語集解》, 《도덕론道德論》, 《무명론無名論》 등이 있다. 왕필의 저작에는 《주역주周易注》, 《주역약례周易略例》, 《노자지략老子指略》, 《노자도덕경주老子道德經注》, 《논어석의論語釋疑》 등이 있다. 한강백의 저작에는 《주역주周易注》가 있다. 두예의 저작에는 《춘추좌씨경전집해春秋左氏經傳集解》, 《춘추석례春秋釋例》, 《춘추장력春秋長歷》 등이 있다. 범녕의 저작에는 《춘추곡량전집해春秋穀粱傳集解》 등이 있다. 곽박의 저작에는 《이아주爾雅注》, 《삼창주三蒼注》, 《방언주方言注》, 《산해경주山海經注》, 《도찬圖贊》, 《목천자전주穆天子傳注》, 《수경주水經注》, 《주역동림周易洞林》, 《초사주楚辭注》 등이 있다. 공영달의 저작에는 《오경정의五經正義》가 있다. 가공언의 저작에는 《주례의소周禮義疏》, 《의례의소儀禮義疏》 등이 있다. 서언의 저작으로는 《춘추공양전소春秋公羊傳疏》가 있다. 양사훈의 저작에는 《춘추곡량전소春秋穀粱傳疏》 등이 있다. 형병의 저작에는 《논어정의論語正義》, 《이아정의爾雅正義》, 《이아의소爾雅義疏》, 《효경정의孝經正義》 등이 있다. 손석의 저작에는 《경전휘언經典徽言》, 《오경절해五經節解》, 《오복제도五服制度》 등이 있었으나 전해지지 않으며, 현재 《맹자음의孟子音義》, 《맹자소孟子疏》가 전하는데 주희는 《맹자소》가 손석의 저술이 아님을 고증하였다.

3. 서지사항

십삼경주소는 한대漢代, 위진魏晉 시기의 학자들이 저술한 고주古注에다 당대唐代 공영달孔穎達의 소疏가 합쳐진 《오경정의五經正義》와 송대宋代 학자들의 소疏가 합쳐져 완성되었다. 《오경정의五經正義》는 《주역정의周易正義》(왕필王弼과 한강백韓康伯의 주注) 10권, 《상서정의尙書正義》(공안국孔安國의 전傳) 20권, 《모시정의毛詩正義》(모형毛亨의 전傳과 정현鄭玄의 전箋) 70권, 《예기정의禮記正義》(정현鄭玄의 주注) 63권, 《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正義》(두예杜預의 집해集解) 60권이다.
여기에 당唐의 가공언賈公彦이 《주례주소周禮注疏》(정현鄭玄의 주注) 42권, 《의례주소儀禮注疏》(정현鄭玄의 주注) 50권을 찬술하였고, 서언徐彦이 《춘추공양전주소春秋公羊傳注疏》(하휴何休의 해고解詁) 28권을 찬하였으며, 양사훈楊士勛이 《춘추곡량전주소春秋穀粱傳注疏》(범녕范甯의 집해集解) 20권을 찬함으로써 9경이 갖추어졌다.
송宋에 이르러 형병邢昺이 《효경주소孝經注疏》(당唐 현종玄宗 어주御注) 9권, 《논어주소論語注疏》(하안何晏의 집해集解) 20권, 《이아주소爾雅注疏》(곽박郭璞의 주注) 10권을 찬하였으며, 손석이 《맹자주소孟子注疏》(조기趙岐의 주注) 14권을 찬함으로써 13경의 주소가 모두 갖추어졌다.
청나라 때 완원阮元이 여러 판각들을 참조하여 《십삼경주소교감기十三經注疏校勘記》를 만들었는데, 이 교각본校刻本이 가장 신뢰할 만한 판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4. 내용

‘십삼경十三經’은 이른바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비롯하여 경전으로 존중 받는 주요 문헌의 총칭으로 중국 고대의 왕조 주나라 초기부터 기록되기 시작한 《시경》과 《서경》을 필두로 《주역》·《주례》·《의례》·《예기》·《춘추공양전》·《춘추곡량전》·《춘추좌씨전》·《논어》·《이아》·《효경》·《맹자》를 포함하는 총 13종의 유가 문헌이다.
한대漢代에 《시》·《서》·《역》·《예기》·《춘추》의 오경五經이 국학國學으로 채택되었는데, 당대唐代에 와서 태종太宗이 공영달孔穎達에게 오경에 대한 주注와 소疏를 모아 편찬하도록 명하여 《오경정의五經正義》가 간행되었다. 여기에 예禮에 삼례三禮가, 춘추春秋에 삼전三傳이 정비되어 구경九經체제로 변화하였다. 송대宋代에는 형병邢昺이 진종眞宗 함평咸平 3년(1000)에 《효경주소孝經注疏》와 《논어주소論語注疏》, 《이아주소爾雅注疏》를 찬술하고, 손석孫奭이 《맹자정의孟子正義》를 찬술하여 구경九經에 사경四經이 붙여진 십삼경十三經 체제가 완성되었다. 이때부터 십삼경은 주소본注疏本을 포함하여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로 일컬어졌고, 원元·명明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5. 가치와 영향

십삼경으로 대표되는 유가 경전에 대한 관심은 중국 고대부터 존재하였다. 한당漢唐의 경학經學을 중심으로 한 십삼경주소는 남송南宋 주희朱熹의 신주新注가 부상하면서 주류 학술의 자리를 내주게 되지만 여전히 경전 해석에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축으로 존재하였고, 이후 청대淸代 한학漢學이 부활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고구려高句麗에서는 태학太學에서 기본교과로 채택하였고, 백제百濟에서도 오경박사五經博士 제도를 두었다. 신라新羅에서는 설총薛聰이 방언方言으로 구경九經을 읽었으며, 통일신라統一新羅에 들어와 원성왕元聖王 때 인재임용제도였던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에서 《춘추春秋》, 《예기禮記》, 《논어論語》, 《효경孝經》 등을 과목으로 채택하였다. 고려高麗에서도 국자감國子監뿐 아니라 최충崔冲의 구재학당九齋學堂 등 사학私學에서도 구경九經을 중심으로 교육정책이 시행되었다. 또 유교儒敎를 국시國是로 하는 조선朝鮮에서는 성균관成均館과 향교鄕校를 중심으로 사서오경四書五經이 널리 읽혔으며, 서원書院이 건립되면서부터는 각 지방의 대다수 지식인들이 탐독하여 독자적인 주석서를 남기기도 하였다.

6. 참고사항

(1)명언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더불어 말할 만한데 함께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요,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 함께 말하면 말을 잃는 것이니,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잃지 않으며, 또한 말을 잃지 않는다.’[子曰 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 不失人 亦不失言]”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 “지금 제가諸家의 설說 중에 타당한 것만을 채집採集하여 그 성명을 기록하고, 타당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상당히 많이 고치고서 책명을 《논어집해論語集解》라 하였다.[今集諸家之善 記其姓名 有不安者 頗爲改易 名曰論語集解]” 《논어주소論語注疏》 〈논어주소해경서論語注疏解經序 서해序解〉
• “선비들이 독서하는 것은 마땅히 경학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경학은 마땅히 주소注疏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士人讀書 當從經學始 經學 當從注疏始]” 완원阮元 〈중각송판주소총목록重刻宋板注疏總目錄〉
(2)색인어: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십삼경十三經, 오경정의五經正義, 경학經學, 공영달孔穎達, 완원阮元
(3)참고문헌
• 十三經槪論(蔣伯潛, 上海古籍出版社)
• 十三經注疏 附校勘記(阮元 校刻, 中華書局)
• 十三經注疏 標点本(十三經注疏整理委員會, 北京大學出版社)
• 十三經注疏 整理本(十三經注疏整理委員會, 北京大學出版社)
• 경학개설:중국 고전 13경 해제(何耿鏞 저, 장영백 외 역해)
• 유학의 경서와 학적 전통(이경무, 범한철학)
【이영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18.05.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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