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동양고전해제집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 개요

《당재자전》은 원대(元代)에 신문방(辛文房)(?~?)이 400명 가까운 당대(唐代) 시인(詩人)들의 행적과 문학적 성취를 간략히 소개한 책이다. 저자가 보기에 당시의 ‘재자(才子)’란 곧 아름다운 글, 특히 멋진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당대(주된 활동 기간이 오대(五代) 시기였던 인물도 일부 포함) 문인(文人)들에 대한 최초의 집단전기(集團傳記)이고, 그들의 시에 대한 간단한 평가도 있어 문학평론집의 성격 역시 갖는다. 중국 문화에서 당시(唐詩)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만큼, 《당재자전》이 간혹 중국에서 ‘국학(國學)’의 입문서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2. 저자

(1) 성명:신문방(?~?)
(2) 자(字):양사(良史)
(3) 출생지역:서역인(西域人)이라고 전하나, 그 정확한 출신 지역은 불분명하다.
(4) 주요활동과 생애
신문방의 삶에 관한 기록은 정사(正史)를 비롯한 주요 문헌들에 거의 나오지 않고, 그의 활동과 생애는 극히 단편적으로만 알 수 있다. 원대 육우인(陸友仁)(1290~1338)의 글에 따르면, 신문방은 왕집겸(王執謙)(1266~1313)과 동시기의 인물로서 당시 문단(文壇)의 영수이던 양재(楊載)(1271~1323) 등과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국사원(國史院) 편수관(編修官)을 역임했던 (정거부(程鉅夫), 《설루집(雪樓集)》 권18, 〈대원하동군공포도공신도비명(大元河東郡公布都公神道碑銘)〉) 신문방 스스로 상당한 문학적 재능을 갖추어 많은 문사(文士)들과 교류하였을 법하다.
신문방은 당대의 시인들을 지극히 흠숭했다. 이러한 인식과 태도는 《당재자전》의 내용은 물론 그 첫머리에 서문처럼 실린 ‘인(引)’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 글에 의하면 원 성종(成宗)(재위 1294~1307) 대덕(大德) 8년(1304)에 이 책을 편찬하였는데, 현존하는 《당재자전》은 이후 좀 더 보완된 것일 가능성도 있다.
(5) 주요저작:신문방의 저작으로 《피사(시)집(披沙詩集)》이 존재했던 듯하나 일찍이 망실되었고, 현재 그의 글은 《당재자전》 이외에 고작 몇 편의 시만 확인될 뿐이다.

3. 서지사항

《당재자전》은 원대부터 간행되기 시작하여 명대(明代)에 널리 읽혀졌던 듯하다. 그러나 청(淸) 건륭제(乾隆帝)(재위 1735~1795) 시기에 이르러 중국에서 온전한 모습의 책이 사라져버렸던 듯하다. 본래 《당재자전》은 10권에 398명의 전기를 싣고 있었지만, 사고전서본(四庫全書本)의 경우 8권에 287명의 전기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는 10권으로 이루어진 원본에 가까운 《당재자전》이 여럿 남아 있었다. 따라서 19세기 이후 중국의 학자들이 일본의 서책을 역수입하여 《당재자전》의 원형을 되찾고자 노력하였다.
《당재자전》의 기존 선본(善本)은 일본의 선혜헌구장본(善慧軒舊藏本)이지만(중국에서 광서(光緖)(1875~1908) 연간 콜로타이프판으로 인쇄), 종래 널리 통용된 것은 1924년 중국의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영인한 일본의 일존총서본(佚存叢書本)이었다. 후술하듯이 《당재자전》에 대한 치밀한 고증의 산물인 《당재자전교전(唐才子傳校箋)》은 예전의 모든 판본들을 충분히 검토하였으므로, 현재로서는 이 《당재자전교전》이 가장 신뢰할 만한 《당재자전》이라고 해도 좋다. 국내에도 일존총서본에 근거한 삼간초당본(三間草堂本)를 저본으로 삼은 임동석의 번역본이 출판되어 있다. 이 국역본은 최신 연구 성과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였을지라도 일반인들의 교양서로서는 손색이 없다.

4. 내용

《당재자전》의 첫머리에서 신문방은 278편의 “전(傳)” 그리고 이 가운데 “부록(附錄)”한 120명에 관한 기록으로 총 10권의 책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설령 서술 형태에 차이가 있더라도, 그는 400명 가까운 당의 “재자” 곧 재주가 뛰어난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집단전기를 쓰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가 융성했던 당대에는 문학적 소양이 중시되었을 뿐더러 신문방 자신도 이러한 능력을 존숭하였으므로, 이 책에서 재자의 범위가 주로 문학적 기량 특히 작시(作詩)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제한되었다. 당대의 저명한 학자 안사고(顏師古)(581~645)나 명재상이던 요숭(姚崇)(651~721) 같은 자들이 여기에 실리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당재자전》은 수록 인물들을 대개 생존 시기에 따라 배열한 뒤 개개인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개인별 서술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구성된다. 첫째, 해당자의 이름⋅자호(字號)와 출신 지역 등을 밝혀 그 신원을 명확히 한다. 둘째, 당사자의 행적을 설명하는데, 문학적 특성을 드러내는 고사(故事)나 과거(科擧) 관련 사실이 비교적 상세하다. 셋째, 문학 작품에 대한 평가와 저작의 전래 여부 등을 여러 방식으로 기록해 둠으로써 이 책에 문학평론서와 같은 성격도 부여한다.
물론 《당재자전》의 이러한 내용은 한계가 적지 않다. 많은 문인들을 소개하려다 보니 간략한 설명에 그치고, 시기적으로도 당 후기(後期) 상황에 치중해서 초당(初唐)⋅성당(盛唐) 관련 기록이 매우 영성(零星)한 것이다. 게다가 사실과 어긋나는 기술도 적지 않아 일찍부터 많은 의문과 비판을 초래하였다. 고적(高適)(704∼765)의 사후에 나온 《중흥간기집(中興間氣集)》을 그의 책이라고 한다거나(권2, 〈고적〉), 당대에 두보(杜甫)(712∼770)를 “본받고자 한[効]” 이가 당언겸(唐彦謙)(?∼893경)뿐이라는(권9, 〈당언겸〉) 등의 이야기가 그 좋은 예이다.
기실 《당재자전》의 개인 이력 부분에는 착오가 무척 많아서, 모든 인물의 기록이 여타 문헌들과의 대조⋅검토를 요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선종(傅璇琮) 등 20여 명의 전문가들이 이 작업에 뛰어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성과가 전술한 《당재자전교전》으로서 무려 5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다. 《당재자전》을 교정(校訂)⋅고증(考證)⋅보완한 이 책은 당과 오대 시기의 시인 혹은 문인들에 관한 가장 믿을 만한 전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5. 가치와 영향

《당재자전》의 내용, 특히 인물의 행적 관련 기록에 오류가 많은 이유는 신문방이 그들의 정확한 경력 확인보다 문학적 성취에 대한 품평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탓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이들 중 정사에 입전(立傳)된 자는 100여명에 불과함을 간과해서 안 된다. 다시 말해, 대부분 수록 인물들에 관한 서술이 문집⋅필기(筆記)⋅시화(詩話)⋅등과기(登科記)⋅도서 목록이나 개인의 행장(行狀)⋅묘지(墓誌) 등 다양한 자료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헌들 중 일부는 현존하지 않으므로 그 사료적 가치가 큰 경우도 많다. 따라서 《당재자전교전(唐才子傳校箋)》의 사례에서 보듯이, 당⋅오대 시기 문인들의 전기를 만들려면 《당재자전》을 주된 기반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송대(宋代) 계유공(計有功)(?~?)의 《당시기사(唐詩紀事)》도 일면 이 책과 유사하나, 개인의 행적 기록은 상대적으로 소략하기 때문이다.
《당재자전》에서 주목되는 사실은 지위⋅신분의 고하를 막론한 인물 선정이다.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고관들을 뺀 반면 시명(詩名)을 떨친 평민들을 다수 포함시킨 것이다. 실제로 신문방은 “악기(樂妓)” 설도(薛濤)(770~832)(권6, 〈설도〉)와 “여도사(女道士)” 어현기(魚玄機)(840~868)(권8, 〈어현기〉) 같은 여류 시인은 물론 당조(唐朝)에 대한 반란을 부추겼던 소환(蘇渙)(?~775)에게까지 상당한 분량의 독립된 전기를 할애하였다. 이 책은 전통적인 남녀차별 의식이나 도덕관념으로부터 꽤 자유로웠으며,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더욱 폭넓은 계층의 당대 시인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하겠다.
《당재자전》에 수록된 인물들의 풍부한 문학 관련 활동 기록도 결코 홀시할 수 없는 점이다. 여기에는 시의 학습⋅창작⋅증여⋅감상 등과 연관된 일화가 유난히 많고, 그 문학적 가치에 대한 당시 혹은 후대의 품평이나 신문방 자신의 논평도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일화의 사실 여부, 논평의 타당성 등에 당연히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용이 개별 문인의 성향,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및 이에 대한 훗날의 인식을 아는 데 요긴한 자료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당재자전》은 개인의 흥미로운 고사를 중심으로 쓰여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따라서 이 책이 시가 융성했던 당대의 문학사 나아가 시인들의 사회적 역할이 컸던 중국 특유의 역사와 문화 이해를 위한 입문서처럼 여겨졌다고 해서 별로 이상하지 않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시(詩)는 문(文)이면서도 음(音)을 가진 것이다.……무릇 시로써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을 감동시키며, 인륜을 두텁게 하고, 풍속을 바로잡을 수 있다.……당은 거의 300년 동안 안정된 상황에서 훌륭한 도(道)를 실행하였는데……나는 〈이러한 당대 시인들의〉 높은 뜻을 아득히 그리워하고 직접 그 도를 체득해 보려 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경개(梗槪)와 행적을 연구해 보니 〈관련 기록이〉 흩어져 있고 서로 어긋나서, 〈그들의〉 작품들을 훑어보더라도 형식과 내용〈의 특징〉을 알 수 없었고 그 성명은 익숙해도 〈실제 행적의〉 요체를 분별하지 못하였다. 늘 〈이를〉 심히 안타깝게 여기던 차에 때마침 한가로운 시간이 많아져 〈이 작업에〉 방해되는 일을 다 제쳐두고, 서적들을 두루 읽으며 〈특히〉 사서(史書)와 문집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 결과〉 더러 많은 문헌들에서 상세한 정황을 파악하여 예전부터 전해오던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는데, 〈새로 알게 된 내용을〉 글로 써보니 분명하게 근거가 있어 〈당대〉 모든 시기의 융성함을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독자적 견해를 주장하는 책을 만들게 되었다. 〈수록한 인물들은〉 각기 먼저 시기를 기준으로 선후를 정하고 〈그 인물에 대한〉 공변된 의론까지 덧보태었으니, 누가 〈이 책을〉 허망하다고 비방할 수 있겠는가.……이역의 사인이 젊은 나이로는 뛰어나다고 해도, 보고 들은 바에 얽매이니 어찌 완전할 수야 있을까. 감히 이러한 〈나의〉 확실한 생각을 밝히지만, 뜻을 같이하는 이들에 의지하여 함께 〈당대의 시인들에 대한 이해를〉 넓혔으면 싶다.……[詩, 文而音者也.……夫詩所以動天地, 感鬼神, 厚人倫, 移風俗也.……唐幾三百年, 鼎鐘挾雅道……余遐想高情, 身服斯道. 究其梗槪行藏, 散見錯岀, 使覽於述作, 尙昧音容, 洽彼姓名, 未辨機軸. 嘗切病之頃, 以端居多暇, 害事都捐, 游目簡編, 宅心史集. 或求詳累帙, 因備先傳, 撰擬成篇, 斑斑有據, 以悉全時之盛, 用成一家之言. 各冠以時, 定爲先後, 遠陪公議, 誰得而誣也.……異方之士, 弱冠斐然, 狃於見聞, 豈所能盡. 敢倡斯盟, 尙賴同志, 相與廣焉.]”〈권1의 ‘인(引)’〉
(2) 색인어:신문방(辛文房), 당재자전(唐才子傳), 당(唐), 시(詩), 전기(傳記), 서역(西域), 설도(薛濤), 어현기(魚玄機), 소환(蘇渙), 당시기사(唐詩紀事)
(3) 참고문헌
• 당재자전(임동석 역, 서울 김영사)
• 唐才子傳(佚存叢書本, 上海 商務印書館)
• 唐才子傳(三間草堂本, 臺北 廣文書局)
• 唐才子傳校正(周本淳, 臺北 文津出版社)
• 唐才子傳全譯(李立朴, 貴陽 貴州人民出版社)
• 唐才子傳校箋(傅璇琮 주편, 北京 中華書局)
• 唐詩紀事校箋(王仲鏞, 北京 中華書局)
• 唐才子傳之硏究(布目潮渢⋅中村喬, 東京 汲古書院)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