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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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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는 현재 보존된 제일 완정(完整)된 중국 고대 세시 기록이다. 형초(荊楚)(현(現) 호북성(湖北省)) 지역의 24절기와 세시월령 및 풍물고사를 담은 필기체 산문으로 중국세시기의 효시다. 남북조시대의 양(梁)나라 사람 종름(宗懍)이 지었으며 후대 중국 자국은 물론 한국, 일본 등 여타 세시 저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면 세시풍속을 기록한 중국의 각종 저록에 ‘세시기’란 명칭이 따르는데 특히 당대(唐代)에 ≪모모세시기(某某歲時記)≫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형초세시기≫는 총 37편으로 원단(元旦)에서 제석(除夕), 윤달에 이르기까지 모두 49조를 기재하였으며 매 항목마다 간략히 세시풍속을 기술하고 안어(按語)로써 시속(時俗)을 설명하였다. 인용문헌은 약 90여 권으로 유교경전·불경·도경(道經)·사서(史書)·인물전기(人物傳記)·지리풍속서·지괴소설집(志怪小說集)·천문서(天文書)·의서(醫書)·시부(詩賦)·유서(類書)·민간속언(民間俗諺) 및 신화·전설 등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2. 저자

(1) 성명:종름(宗懍)[498∼561(?), 502∼565(?)]
(2) 자(字)·별호(別號):자는 원름(元懍).
(3) 출생지역:출생지는 형주(荊州)로 북주(北周) 남양(南陽) 열양(涅陽)(현 하남(河南) 열양현(涅陽縣)) 사람
(4) 주요활동과 생애
종름은 남북조시대의 대신(大臣)이자 저명한 학자로 특히 사학방면에 탁월하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전고(典故) 인용에 뛰어나 향리에서 소아학사(小兒學士)라고 불렀다. 8대조는 종승(宗承)으로 진대(晉代) 영가지란(永嘉之亂)(311년)에 진(陳)을 토벌한 공이 있어 시상현후(柴桑縣侯)에 봉해졌고 의도(宜都) 태수에 제수되었다. 아버지는 음산령(陰山令)의 종고지(宗高之)이며 자손대대 강릉(江陵)(호북성 강릉현)에 살았다. 종름은 전통적 세도가의 후손으로 유교적 가풍 속에서 성장하고 출사했다. ≪형초세시기≫에서 유교의 예제(禮制) 외에 불교․도교, 민간신앙의 토속적인 요소를 보여준다.
양 무제(梁武帝) 525년 수재(秀才)로 추천되었고, 왕부장사(王府長史) 유지린(劉之遴)이 양 원제(梁元帝)에게 천거하여 왕부기실(王府記室)과 서기관(書記官)을 겸했다. 종름은 양 원제와 30년 가까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신안현후(信安縣侯)에 봉해졌다. 이후 왕부의 형옥참군(刑獄參軍)과 장서기(掌書記), 별가(別駕)와 강릉령(江陵令), 오병(五兵)·도관(都官)·이부(吏部) 각 상서(尙書) 등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부상서 재임 시 천도(遷都) 문제에 직면하여 형주 토착인 종름은 다수의 건업(建業) 천도설에 반대하며 형주 천도설을 주장하였다. 이와 관련지어 ≪형초세시기≫의 저술동기를 향토애정신으로 해석한다. 당시 북제(北齊)의 대표적 문인인 안지추(顔之推)(531∼591)가 연령과 지위의 차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종름의 재주를 높이 사 교유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승성(承聖) 3년(554) 양왕조는 서위(西魏)의 침략을 받아 강릉은 함락되고 원제는 살해되었다. 종름과 왕극(王克)·유각(劉殼)·은불해(殷不害) 등 수십 인은 서위로 연행되었으나 남조 문사의 예우를 받아 북조에 출사한다. 종름은 북주 효민제(孝閔帝) 천조(踐阼) 원년(元年)(557)에 중용되어 거기장군(車騎將軍)·의동삼사(儀同三司)를 지냈고,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왕포(王褒)와 인지전(麟趾殿)에서 군서간정(群書刊定) 사업에 종사한다. 보정(保正) 연간(561∼565) 64세로 죽었으며 문집 20권을 세상에 남겼다. 그러나 후세에 전하지 않고 오직 ≪수서(隋書)≫·≪구당서(舊唐書)≫·≪신당서(新唐書)≫에 저록만 보인다.
(5) 주요저작:≪형초세시기≫, ≪용천묘비(龍川廟碑)≫

3. 서지사항

현행 ≪형초세시기≫의 판본은 중교설부계통본(重較說郛系統本)과 보안당비급계통본(寶顔堂秘笈系統本)으로 모두 약 16종류가 전해진다. 중교설부계통본은 간략히 도정본(陶珽本)·설부본(說郛本)이라 칭하며, 보안당비급계통본은 비급본이라 간칭(簡稱)한다. 전자의 판본이 약 12권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되었으며, 본고의 저본으로 삼은 〈사고전서본(四庫全書本)〉은 보안당비급계통본이다.
≪형초세시기≫ 각 본엔 모두 주(注)가 있다. 즉 문(文) 속의 안어(按語)는 수(隋)나라 두공첨(杜公瞻)(?~?) 작으로 전해진다. 두공첨은 왕육영(王毓榮)의 《형초세시기교주(荊楚歲時記校注)》(台北: 文津出版社, 1987), 〈사부비요본(四部備要本)〉 등에서는 두공섬(杜公贍)으로 기재한다. ≪신당서≫와 ≪구당서≫에 종름의 ≪형초세시기≫ 1권과 두공첨의 ≪형초세시기≫ 2권이 나란히 보인다. 두공첨은 저작좌랑(著作佐郞)과 산기상시(散騎常侍)를 지냈다. 두유(杜蕤)의 아들이며 ≪옥촉보전(玉燭寶典)≫의 저자 두대경(杜臺卿)의 조카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였고 가풍의 훈도를 받고 자랐다. 수나라에 출사하였으며 안양령(安陽令)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두공첨 주 ≪형초세시기≫는 두대경이 지은 ≪옥촉보전≫의 인용이 많다. 저작으로 오언율시 〈같은 마음으로 부용꽃을 읊다(咏同心芙蓉)〉이 전한다.
종름 서(書)를 최초로 인용한 수대 두대경의 ≪옥촉보전≫은 모두 “형초기운(荊楚記云)”이라 기재하였다. 두대경은 ≪옥촉보전≫12권을 수문제 개황(開皇) 원년(581) 상진하였다. 실제로 ≪옥촉보전≫에서 인용한 다른 제 서(諸書)를 검토해볼 때 원서명(原書名)을 엄격히 적었으니 ≪형초기≫가 종름 서의 원명일 가능성이 높다. ≪형초세시기≫ 서명은 당 무덕(武德) 7년(624)에 성립된 ≪예문유취(藝文類聚)≫에 수없이 인용되었다. ≪옥촉보전≫의 성립연대를 수대 581년에서 617년간으로 볼 때 ≪형초기≫에서 ≪형초세시기≫까지의 서명 변화의 편폭은 최대한 581~623년(43년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두공첨은 종름 서에 상세한 주석을 달아 ≪형초세시기≫라 제명하였다. 두공첨의 ≪형초세시기≫ 성립연대는 대략 수 양제(隋煬帝)(580~618년 재위) 대업(大業) 연간인 605년에서 617년 사이로 추정한다. 두공첨이 ‘세시’를 덧붙인 것은 종름 서의 원서(原序)에서 “형초 지방의 세시를 기록한다.”는 기록에 기인할 것이다.
종름의 ≪형초기≫ 내용은 형초 지방의 풍물고사 위주이나 두공첨의 주 ≪형초세시기≫에서는 남북 세시풍물을 비교하는 등 완정에 가까운 중국세시기를 이룬다. 특징은 ≪형초기≫ 자구에 주해를 가하고, 관련문헌 자료 및 인용문헌의 미비한 것을 보완하고, 본문의 항목을 보충하고, 인용문헌의 이본을 소개하고, 민간에 구전되는 관행을 보기(補記)하고, 북인과 남인의 풍속을 비교한 점 등이다. 그러므로 ≪형초기≫가 형초 지방에 국한된 풍속을 그렸다면 ≪형초세시기≫는 중국 고금을 통한 중국 전토(全土)의 풍속을 집대성하였다고 평가된다.

4. 내용

≪형초세시기≫는 종름 편찬으로 원명은 ≪형초기(荊楚記)≫로 알려져 있고 정확한 제작연대는 미상이다. 종름의 생졸(生卒) 연대는 ≪주서(周書)≫권42에 “보정연간에 죽었고 64세였다[保定中卒 年六十四].”라는 기록에 근거한다. 보정 연간을 561년에서 565년으로 본다면 제 명제(齊明帝) 영태(永泰) 원년(498)이나 양 무제(梁武帝) 천감(天監) 원년(元年)(502)에 태어나 북주 무제(武帝) 시대(561~565)에 죽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저작동기에 대해서는 일설에 향토애정신설(鄕土愛精神說)이 제기되나 종름 자신이 직접 언급한 기록은 없다.
≪형초세시기≫는 중국 전통문화로 대표되는 형초의 세시풍속을 음력 봄[춘(春): 정월·2·3월], 여름[하(夏): 4·5·6월), 가을[추(秋): 7·8·9월], 겨울[동(冬): 10·11·12월], 윤월(閏月) 순서의 체재로 기술하였다. 해[歲]를 시작하는 정월에 세시풍속 행사가 많아 가장 중시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숫자 1, 3, 5, 7, 9, 15의 절일(節日)이 많은데 1, 3, 5, 7, 9는 양수로서 중시되어왔고 15는 달의 영결(盈缺)과 관련지어 역시 중시한다. 절일엔 24절기를 포함하며 오절공(五節供)으로 1월 7일(인일(人日)), 3월 3일(상사(上巳)), 5월 5일(단오(端午)), 7월 7일(칠석(七夕)), 9월 9일(중양(重陽))을 든다.
≪형초세시기≫에서 기술한 절일은 정월 1일(元旦), 7일, 입춘(立春), 15일, 미일(未日), 월내(月內), 회일(晦日); 2월 8일, 춘분(春分), 사일(社日), 한식(寒食); 3월 3일; 4월 월내, 8일(욕불(浴佛)), 15일; 5월 월내, 5일, 하지; 6월 월내, 복일(伏日); 7월 7일, 15일(中元); 8월 월내, 14일; 9월 9일; 10월 삭일(朔日); 11월 중동(仲冬), 동지; 12월 8일(납팔절(臘八節)), 세전(歲前), 세모(歲暮); 윤월 월내 등 32여조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제신(祭神), 축귀(逐鬼), 거악(去惡), 제액(除厄), 송구영신(送舊迎新), 건강(전염병 예방·치료·퇴치, 의약, 양생(養生)·장수(長壽)), 시절음식, 농사(잠상(蠶桑)·생산), 역사고사(사건·인물전기(人物傳記)), 신화·전설, 시부(詩賦), 종교(민간신앙·유불도), 오락유희·체육문화 활동, 남북풍속 비교 등으로 집약된다.
≪형초세시기≫이후 중국의 전통문화인 절일은 발전·변화·소멸·신생의 과정을 두루 거치면서 면면히 전승되어 왔다. 그 형식과 내용면에서 대동소이하나 시대별, 지역별, 민족별, 계층별로 비교 연구하면 각기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세시풍속 활동을 통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벽사진경(辟邪進慶)”이다. 나아가 고대부터 관민(官民)이 함께 어우러져 종교와 예의를 바탕으로 거행해왔던 연중행사는 점차 현대로 오면서 오락적인 성향이 강해지며 지역과 민중을 결집시키는 전국적 축제로 자리매김한다.

5. 가치와 영향

중국 세시기의 기원은 ≪시경(詩經)≫ 〈국풍(國風)〉, ≪예기(禮記)≫ 〈월령(月令)〉 등에서 보이는 상고 중국 민속과 관련지을 수 있다. 후한 최식(崔寔)의 ≪사민월령(四民月令)≫이나 오(吳)나라 주처(周處)의 ≪양선풍토기(陽羨風土記)≫는 중국인의 생활을 단편적으로 담고 있어 완정(完整)한 세시기라 볼 수 없다. 처음에는 호족(豪族)이나 국가의 백성에 대한 수시의식(隨時意識)에서 비롯되었고, 수대에는 상층(上層)과 백성이 합성되는 양식을 거쳐 두공첨(杜公瞻) 주(注) ≪형초세시기≫(605~617) 등에서 세시기의 모태를 완성한다. 정월부터 납월까지 윤월(閏月)을 포함하여 당시 양자강(揚子江) 중류 지방의 풍속과 연중행사를 기술하는 형태는 후대 세시기 체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형초세시기≫의 가치는 옛 풍속습관과 신앙을 반영하여 후세 민속학의 중요한 보고(寶庫)가 되고, 사용된 문자가 청신하고 유창하며 시인들의 시부가 인용되어 문학성이 높다. 나아가 고대의 신화와 전설·의약·체육문화 활동 등 사회 상황이 보존되어 다방면의 학술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또한 중국 위진남북조 이후의 세시기와 한자문화권인 한국, 일본 세시기와의 상호 관련성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세시기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1819), ≪경도잡지(京都雜志)≫(정조(正祖) 무렵) 등에서 ≪형초세시기≫의 인용구를 발견하여 한중 양국의 세시풍속 관련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동국세시기≫에서 자주 인용한 ≪형초세시기≫와 상호 비교해보면 양서 모두 형식에 있어 음력 정월부터 12월까지 순차적으로 윤월을 포함하여 세시풍속을 기록하였다. 절일의 명칭과 행사 및 성격도 대동소이함을 보인다. 기수(奇數)를 중시하고 해를 시작하는 정월의 행사가 가장 풍성한 것도 일치한다. ≪형초세시기≫는 항목마다 중국 고금의 민속 관련 문헌 90여 권을 두루 인용하였다. ≪동국세시기≫ 역시 ≪형초세시기≫를 포함해 50여 권의 중국민속 관련 문헌과 시, 전통풍속과 속언(俗諺) 등의 자료를 인용하였는데 상당 부분 견강부회(牽强附會)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즉 모화사상(慕華思想)에 젖어 우리 민속의 기원을 억지로 중국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작자가 연원을 찾아 그 변화 발전과정을 탐구한 점은 학자로서 매우 성실한 자세라고 높게 평가된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이에 어른과 아이 모두 의관을 단정히 하고 차례대로 웃어른께 세배하며, 초백주(椒柏酒)를 바친다. 도탕(桃湯)을 마시며, 도소주(屠蘇酒)와 교아당(膠牙餳)을 바친다. 오신반(五辛盤)을 먹으며, 부우산(敷于散)을 권하며, 각귀환(却鬼丸)을 복용하고, 각각 계란 한 알씩을 권한다. 무릇 음주(飮酒)의 차례는 어린 순서대로 하였다. 양(梁)나라에선 사람들이 자극성 있는 채소를 먹지 않았고, 형(荊) 지역은 이로부터 또 계란을 먹지 않았지만 일반적인 관습을 따른다[於是長幼悉正衣冠 以次拜賀 進椒柏酒 飮桃湯 進屠蘇酒 膠牙餳 下五辛盤 進敷于散 服却鬼丸 各進一鷄子 凡飮酒次第從小起 梁有天下不食葷 荊自此不復食鷄子 以從常則].” 〈정월(正月) 원일(元日)〉
• “오월은 속칭 악월(惡月)로 금기(禁忌)가 많다. 침대와 자리를 햇볕에 말리지 않으며 집짓기를 꺼린다. ≪이원(異苑)≫을 살피건대 이르길, “신야(新野)의 유식(庾寔)이 일찍이 오월에 자리를 말리다 별안간 한 어린애가 자리 위에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그 형체가 없어지더니 그 후 유식의 자식이 죽었다.” 했다. 혹시 여기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5월 5일은 욕란절(浴蘭節)이라 한다. 모든 백성들이 여러 풀을 밟는 놀이[鬪百草之戲]를 하며, 쑥을 뜯어 사람을 만들어 출입문 위에 걸어 독기(毒氣)를 막는다. 창포(菖蒲)를 잘게 썰거나 가루를 내어 술에 띄운다[五月俗稱惡月 多禁 忌曝牀薦席 及忌蓋屋 按異苑云 新野庾寔 嘗以五月曝席 忽見一小兒死在席上 俄而失之 其後寔子遂亡 或始於此……五月五日 謂之浴蘭節 四民竝蹋百草之戱 採艾以爲人 懸門戶上 以禳毒氣. 以菖蒲或鏤或屑以泛酒].” 〈오월(五月) 오일(五日)〉.
• 또 ≪속제해기(續齊諧記)≫에 이르길, “여남현(汝南縣)의 환경(桓景)이 비장방(費長房)을 따라서 유학하였는데 비장방이 말하길 ‘9월 9일 너희 집에 재액이 있을 터 급히 집안사람들로 하여금 주머니를 만들어 수유(茱萸)를 가득 담아 팔에 걸어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게 하면 화가 소멸될 것이다.’라 했다. 환경이 이 말을 따라 가솔을 이끌고 산에 올라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니 닭·개·소·양이 일시에 폭사하였음을 보았다. 비장방이 그 일을 듣고 가축들이 대신 죽은 것이라 하였다.” 했다. 오늘날 세인들이 등고하여 술을 마시고 부녀자들이 수유낭(茱萸囊)을 차는 것은 대개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又≪續齊諧記≫云 汝南桓景 隨費長房遊學 長房謂之曰 九月九日 汝家中當有災厄 急令家人縫囊盛茱萸繫臂上 登山飮菊花酒 此禍可消. 景如言 擧家登山 夕還 見鷄犬牛羊 一時暴死. 長房聞之曰 此可代也.” 今世人九日登高飮酒 婦人帶茱萸囊 蓋始於此].” 〈구월(九月) 구일(九日)〉
• “그리하여 〈동경부(東京賦)〉에 이르길, “한 해를 마칠 때 대나(大儺) 행사를 하여 여러 재화(災禍)를 쫓아낸다. 방상시는 도끼를 들고, 무격(巫覡)은 갈대 비를 잡고, 진자만동(侲子萬童)(축귀의식(逐鬼儀式)을 진행하는 동남동녀)은 붉은 두건[丹首]과 흑색 겉옷을 입고 복숭아나무로 만든 활에 가시나무로 만든 화살을 쏘는데 과녁에 맞히지는 않는다.” 했다. 단수(丹首)는 곧 붉은 두건이며, 액(厄)을 쫓아내는 복장이다[故東京賦云 “卒歲大儺 驅除群厲 方相秉鉞 巫覡操茢 侲子萬童 丹首玄製 桃弧棘矢 所發無臬 丹首 帥赤幘也 逐除所服].” 〈십이월(十二月) 팔일 八日〉
(2) 색인어: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형초지역(荊楚地域), 종름(宗懍), 두공첨(杜公瞻), 전통문화(傳統文化), 세시풍속(歲時風俗), 절일(節日), 24절기(二十四節氣)
(3) 참고문헌
• 荊楚歲時記(淸文淵閣 欽定四庫全書本)
• 荊楚歲時記(四部備要本)
• 荊楚歲時記譯注(譚麟 譯注, 湖北人民出版社)
• 荊楚歲時記(姜彦稚 辑校, 岳麓书社)
• 荊楚歲時記(守屋美都雄 譯注, 布目潮渢他 補訂, 동경: 平凡社)
• 荊楚歲時記校注(王毓榮, 台北: 文津出版社)
• 荊楚歲時記(宋金龍 校注, 山西人民出版社)
• 中國古歲時記の硏究(守屋美都雄, 동경: 帝國書院)
• 荊楚歲時記(宗懍 저, 尙基淑 譯著, 집문당)
• 東國歲時記(洪錫謨 저, 정승모 옮김, 풀빛)
• 중국대세시기Ⅰ·Ⅱ(국립민속박물관)
• 荊楚歲時記(尙基淑 역저, 지식을 만드는 지식)
• 中國通史 上冊(傅樂成, 台北: 大中國圖書公司)
• 中國的民間節日(范玉梅, 北京: 人民出版社)
• 中國民間諸神(宗力·劉群, 河北人民出版社)
• 中國民俗與民俗學(張紫晨, 杭州: 浙江人民出版社)
• 中國歲時禮俗(喬繼堂, 天津人民出版社)
• 中國風俗槪觀(楊存田, 北京大學出版社)
• 中國傳統偶像(聆鍾·門巋 등 편저, 天津: 百花文藝出版社)
• 造神史話(王德恒·張寶樹, 天津: 百花文藝出版社)
• 中國節(李露露, 福建人民出版社)
• 中國民間禁忌風俗(萬建中, 북경: 中國電影出版社)
• 韓國歲時風俗硏究(金明子, 경희대 박사논문)
• 荊楚歲時記硏究(상기숙, 《민속연구》제5집, 안동대민속학연구소)
• 中國古今地名大辭典(香港: 商務書局)
• 中國人名大辭典(上海: 商務印書館)
• 中國民俗辭典(香港: 商務印書館·湖北辭書出版社)
• 中國神話傳說辭典(香港: 商務印書館·上海辭書出版社)
• 中國歷代職官辭典(賀旭志 編著, 吉林文史出版社)
• 歲時紀時辭典(湖南出版社)
• 中國風俗大辭典(北京: 中國和平出版社)
【상기숙】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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